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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노인은 절벽을 오르자마자 뛰었다.
후다닥.
두 다리 사이에서 자개바람이 일듯 매우 빠르게 어두운 산길을 줄달음쳤다.
평생을 두고 오갔던 길이라 눈 감고도 오갈 수 있었다. 어두운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양 노인은 서서히 숨이 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다닥.
뛰는 만큼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무섭도록 빠르게 뛰었다. 나이 탓에 뛰는 것이 힘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빠르게 가서 알리는 만큼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기에 양 노인은 나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헉, 헉.”
양 노인은 한 줄기 바람인 양 어두컴컴한 산길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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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부.
여강 상류에 있는 세 개의 속현을 거느린 곳으로 상당히 번화한 고을이다.
강을 오가는 배들 중 일부가 종종 정박하여 실린 물자를 풀고, 인근에서 나는 약초와 그 밖의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터라 제법 상업商業이 발달했다.
일련의 상거래를 도맡은 것이 지방 호족인 영파 조가였다.
당대 영파 조가의 수장인 장자 조의는 주변 고을 사람들의 인심을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이문을 취하여, 여파의 다른 지방 호족에 비해 수탈이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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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한 영파부 정문 좌우에는 창을 꼬나 쥔 두 관병이 서 있었다.
양 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두 관병에게 다가가 서며, 왜구의 배가 조금 전 여강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음을 알렸다.
두 관병은 코웃음 쳤다.
“이 영감탱이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쉰 소리야.”
“어여. 돌아가라고. 영감. 험한 꼴을 보기 전에 말이야.”
두 관병은 양 노인을 하찮게 보았다.
입은 복색이 천민에 가까워 신분이 낮다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아니 그게.”
“어허.”
“이 영감이 진짜.”
두 관병은 양 노인의 말을 전혀 들으려하지 않았다.
양 노인은 몇 번이나 말했지만 관병들이 자신을 쫓아내려하자 어쩔 없다는 듯 돌아섰다.
두 관병은 힘없이 걸어가는 양 노인의 등을 보며 툴툴댔다.
“가뜩이나 번을 서느라 짜증이 나는구만.”
“어디서 다 늙은 노인네가 와서는?”
두 관병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 있는 자세를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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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는 봉건 왕조 국가다. 조선 에 비해 고려의 여인은 자유로웠다.
그것은 신라의 자유로운 성풍속이 어느 정도 고려로 이어진 까닭이다.
신라는 천년을 이었다. 하여 달리 천년 제국이라 말하곤 한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중북부까지 하나로 통일한 신라는 말기까지 그들의 모든 풍속을 곳곳으로 퍼트렸다.
말기에 이르러 잠시 왕건과 견훤으로 말미암아 후삼국 시대가 열렸지만, 그것은 잠시의 혼란이었을 뿐이다.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자, 사실상 신라의 모든 것이 고려의 상층부로 스며들었다.
고려 왕실의 근친혼은 신라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것은 지방 호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나, 유교가 전래된 이후 왕실을 제외한 지방 호족들은 근친혼을 버렸다. 하지만 유교의 영향으로 조선처럼 일부다처제의 관습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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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헉.”
“흐윽…… 하악.”
넓은 방안에 남녀의 가쁜 호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옆으로 밀고 닫는 출입문 너머에는 세 개의 둥근 의자가 놓여 있는 원탁이, 그 원탁 너머에는 얇은 비단 천이 쳐져 있는 침상이 놓여 있었다.
은은히 비치는 침상에는 벌거벗은 두 남녀가 앉아, 한창 운우지락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쉰 서너 되어 보이는 장년인 조의.
몸을 제법 단련한 듯 체구가 건장했다.
조의의 다리에는 서른 두엇 되어 보이는 여인이 앉아, 두 다리로 조의의 허리를 조았다.
여인은 빠르게 몸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때마다 가슴에 봉긋 솟은 큼지막한 두 수밀도가 위아래로 심하게 들썩였다.
조의는 지그시 반개하듯 가늘게 눈을 떴다.
‘허어억. 며, 명기로고.’
심중 절로 경탄이 일었다.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사고파는, 포구에서 조그마한 어물전을 하던 마가라는 상인.
자신과 한창 운우지락에 빠져 있는 여인은 마가의 내자였다.
여인은 얼마 전에 남편이 도박장에서 시비가 붙어 비명횡사하며 졸지에 과부가 되었다. 그런데 제법 미인이란 소리를 듣고 침상으로 들였다.
그것이 이틀 전이다.
동침해보니 방중술이 제법이라 데리고 자는 맛이 상당했다.
“허, 허억.”
조의는 여인과의 운우지락에 꿈을 꾸는 듯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짓이 주는 쾌락과 희열에 깊이 빠졌다.
‘좋구나. 좋아.’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옳았다는 것에 조의는 심중 흡족했다.
그런데.
“나리. 쇤네입니다.”
방문 밖에서 집사 이첨의 말이 들렸다.
순간 조의와 여인이 멈칫하며 일련의 행동을 멈췄다.
“이!”
조의는 그 짓이 중간에 끊긴 것에 화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부끄러운 듯 경황이 없는 듯, 급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츠렸다.
조의의 무릎에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조의의 가슴에 붙였다. 그러자 봉긋한 가슴의 두 수밀도가 조의의 가슴에 맞닿자 이내 찌그러졌다.
여인은 가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풍성했다.
21세기 같으면 충분히 글래머 소리를 들을만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 사이 조의는 방문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무슨 일이냐?”
“네에. 그것이 여강에 왜구가 나타났다 합니다.”
“뭣이!”
조의는 크게 놀랐다.
놀라기는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두 남녀의 얼굴빛이 공히 하얗게 급변했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조의와 여인의 얼굴에서 그득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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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의 거처 뜰.
얼마나 급했는지 조의는 침의 차림으로 밖으로 나와 섰다.
우측 옆에는 집사 이첨이, 발치에는 양 노인이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 모습에서 지방 호족이 양민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 일면이 드러났다.
양 노인은 자신이 잘못보지 않았음을, 어렸을 때 보았던 왜구의 배가 틀림없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확실합니다요. 나리.”
“이, 이런.”
조의는 당황했다.
양 노인은 영파부에 정착한지 수십여 년이라, 안면이 있다.
자신에게 거짓을 고할 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조의는 몹시 마음이 급해 이첨을 돌아보았다.
“이 집사.”
“예에. 장자 어른.”
“즉시 무사장을 비롯, 가병들을 깨우고 말을 준비하게. 내 직접 가서 확인해 볼 것 인즉. 속히 준비하게.”
“예에에.”
이첨은 급히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조 가는 영파부의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한 터라, 잡다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20여 명 남짓의 가병을 양성했다. 상거래를 어지럽히는, 포구 인근의 치안을 잡기위해 가병들을 적극 활용해왔다.
이첨은 돌아서며 뛰어갔다.
조의는 양 노인에게 물러가라 말한 후 뒤돌아섰다. 서둘러 입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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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三刻 후, 조의는 무사장과 가병들을 대동하고 강가의 한 언덕에 섰다.
바로 지척에서 10척의 배가 좌측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두웠지만 배의 형태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어, 조의는 대경했다.
“허억.”
자신의 눈에 보이는 10여 척의 배는 결코 고려의 배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양 노인의 말이 맴돌았다.
‘나리. 틀림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봤던 왜구의 배가 틀림없습니다요. 진짭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면 요 목을 뎅강 잘려버리셔도 됩니다요.’
조의의 머리에서 양 노인의 말이 밀려나며 여주 서가에서 있었던 호족들의 모임이 떠올랐다.
‘그, 그렀다면.’
호족들의 모임에서 서양헌이 경고한 것이 맞았다.
조의는 후회했다.
당시에 자신이 그 경고를 왜 하찮게 여겼는지, 내심 땅을 쳤다.
조의는 고개를 뒤돌려 무사장과 가병들을 보았다. 신속히 움직이기 위해 다들 말을 탔다.
“무사장.”
“예. 나리.”
“지금 당장 여주 서가로 사람을 보내게. 여강에 왜구의 배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고 다른 호족들에게 알려, 속히 대책을 세우십사 말을 전하게.”
“예, 나리. 명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조의는 가병들을 보았다.
오른손 검지를 들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섯 명의 가병을 가리켰다.
“너, 너. 너희들은 왜구의 배를 뒤쫓아라. 어디로 향하는지, 어느 포구에서 배를 멈추는지 알아낸 후 내게 알리도록 해라.”
“예에. 나리.”
“너희가 얼마나 막중한 일을 맡았는지 한시도 잊지 마라. 결코 게으름을 피워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