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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형부의 옥에 갇혀 있는 나를 몇몇이 찾아왔다.
“걱정하지 마시게. 곧 풀려날 걸세.”
이규보가 찾아와 제법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그에게 난 몇 가지를 당부했다.
“자, 자네!”
이규보는 소스라쳤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귀신을 보듯 날 보았다.
씩.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시면 선생이나 나,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이규보는 말을 잃고 멍하니 날 보았다.
그리 며칠 지나지 않아 서윤, 서풍 형제가 찾아왔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십니까?”
묻는 서윤에게 반문했다.
서윤은 움칫거리며 난처해했다. 그러자 왼쪽에 서 있는 서풍이 입을 열었다.
“해심 스님에게서 공이 노린 바를 들었소. 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오.”
서풍은 내가 광주 이가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을 염두에 둔 듯 하대하지는 않았다.
“흠. 덜컥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일단 여주에 계시는 양헌 공께 알리는 것이 먼저라는 걸 말하고 시간을 벌도록 하십시오. 양헌 공이라면 곧 답을 내리실 터이니, 그 결정에 따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만약 최우가 압박하면 예를 내세우십시오. 혼인이란 인륜지대사이니 부모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예법에 맞다 말하면 최우도 그리 강권하지는 못할 겁니다. 무턱대고 거절했다가는 자칫 최우의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나는 서윤, 서풍 형제에게 처신에 주의하라 말해 주었다.
두 형제가 간 후, 그리 오래되지 않아 묵이와 땡중 해심이 날 찾아왔다.
“나리.”
묵은 반색하며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내가 앉아 있는 옥으로 밀어 넣었다.
난 음식들을 보곤 다소 놀랐다.
“와우.”
옥 밖에 있는 묵을 보았다.
“야아, 너! 재주 좋다, 닭에다가 술까지 구해 가지고 오다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옥 내부로 음식을 가져오는 것이 말이다.
“하하하. 조금만 고생하시게. 곧 나오실 테니 말일세.”
땡중 해심이 날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설명이나 해 보시지요, 스님.”
난 해심에게 말하며 닭다리 하나를 잡아 뜯었다.
쭈우욱.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해심이 대꾸했다.
“추밀원 부사께서 자네를 석방시키겠노라 말했네.”
“우물우물. 그래요. 좀 이상하군요. 그 양반이 아들을 그리 만든 날 순순히 풀어 줄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땡중 해심은 날 쳐다보며 씩 웃었다.
“부사께서 서풍 공을 높이 산 모양이네, 이 시주. 아니, 글쎄 사위를 삼고 싶어 하시네.”
“훗.”
난 가볍게 웃었다.
일전에 찾아온 형제를 통해 들은 바가 있다. 웃는 내게 해심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부사께서 자네를 따로 좀 보자고 하십니다.”
“나를?”
일부러 놀란 척했다.
해심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난 해심의 말에 내심 고소를 머금었다.
‘후후.’
알 만하다.
내 말이 최우에게 먹혔다는 것을 알아챘다.
묵이와 해심이 돌아간 후, 뜻밖의 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
최향.
바로 그였다.
난 옥을 사이에 두고 최향과 마주한 채,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
입을 꾹 다물고, 옥 밖에 서 있는 최향을 보았다.
최향은 나처럼 입을 다물고 날 보기만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입을 여는지 내기라도 하듯, 침묵으로 일관하며 뚫어져라 서로 마주 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최향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듣자니 광주 이가의 사람이라지?”
“오신 용건이 그것 때문입니까?”
난 최향에게 말하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양손을 머리 아래로 끼어 넣으며 깍지를 꼈다. 내 행동에 최향은 흠칫하더니 미소 지었다.
씩.
최향은 색다른 별미를 맛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어떤가,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이?”
“호오. 그러니까 인재 영입을 위해 직접 행차하셨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겠네.”
“…….”
난 침묵했다.
‘역시, 최향인가?’
인재를 알아보고, 인재 욕심이 남다른 자다.
내가 알기로 대장군 최준문을 필두로 상장군 지윤심, 장군 유송절, 낭장 김덕명 등.
다수의 측근을 이미 확보하고 한껏 세를 자랑하고 있다.
난 최향을 보며 물었다.
“내게 뭘 줄 수 있습니까?”
최향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무엇을 원하나? 벼슬을 달라고 하면 벼슬을 줄 것이고, 돈을 원하면 만금을 주겠네. 여인을 달라고 하면 고려 최고의 미인을 자네에게 줌세.”
난 왼쪽으로 돌아누우며 왼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그런 거 말고 다른 것을 주시죠.”
“무엇을?”
최향은 눈을 반짝였다.
난 거침없이 말했다.
“병권!”
순간.
“…….”
최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지그시 날 응시하며 불쾌감을 내비쳤다.
“무례하군.”
“그만 가 보시죠. 이미 많은 것을 가지신 분이 뭘 더 바라십니까? 그게 다 욕심입니다.”
난 최향에게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최향은 내가 생각하는 그릇이 아닐뿐더러, 이미 많은 측근을 곁에 두고 있어, 내가 최향 밑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그리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렵다.
매우 권력 지향적이라 자칫 토사구팽 당할 가능성도 크다.
그에 반해 최우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에게는 매우 대범하게 은혜를 베풀 줄 안다.
애첩을 김준에게 줄 정도라면 여느 사람과 그릇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추밀원 부사로서 문신에 속하지만 일련의 기록을 보면 무신 뺨칠 정도로 숭부 정신이 강하다.
“잘 생각해 보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이네.”
최향은 말하며 옆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나는 일어나 바로 앉으며 왼쪽을 쳐다보았다.
“그만 나오시죠.”
내 말에 누군가가 당황하는 나직한 기척이 들렸다. 천천히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최우였다.
난 정면에 와 서는 최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 들으셨습니까?”
최우는 몹시 혼란스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왜 거절했는가? 승낙했다면 필시 많은 것을 얻었을 터인데.”
난 슬며시 웃었다.
“그릇이 작습니다.”
내 말에 최우는 움찔했다.
“얘기 들었습니다. 여주 서가와 혼인을 맺고 싶어 하신다고요.”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그런 것은 또 어찌 아는가?”
“훗.”
난 실소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옥으로 날 찾아온 이들에 관한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계실 텐데요.”
최우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이런저런 한담을 나눴다.
그사이 시간이 제법 지났다.
난 최우에게 결정타를 날리듯 제안했다.
“고려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어 드리죠. 대신 지방 호족들의 뒤를 봐 주십시오.”
“날 고려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어 준다?”
최우는 얼토당토않다는 기색을 띠며 내게 물었다.
“일전의 일도 그렇고, 왜인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뭔가 생각한 바가 있었을 터인데.”
난 싱긋 웃었다.
“재미있는 옛날 얘기가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무슨.”
최우는 어리둥절했다.
“몽골이라는 대초원에 에수게이라는 족장이 있었습니다.”
난 테무친, 칭기즈칸에 대한 것을 최우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최우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관심이 있는 듯 경청했다. 그러다가 테무친이 칭기즈칸이며 지금 서하를 멸망시키고 금을 공략 중임을 말하자…….
“컥!”
최우는 크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