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46화 (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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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라고 하나 아들은 아들.

두 아들이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무뢰배 중의 무뢰배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그동안 쉬쉬해 왔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비록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쉬쉬하는 것과,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전자는 덮어 둘 수 있으나, 후자는 덮어 둘 수 없다.

그 차이는 의외로 크다.

김인준이 그사이 고개를 슬쩍 들어 말을 탄 최향을 보았다.

“나으리, 만전 님은…….”

그 순간이었다.

“감히 종놈이 어느 분께 함부로 말을 붙이는 게야!”

고함치며 최항의 왼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몰아왔다.

형형한 안광과 역삼각형의 얼굴 그리고 눈 밑 두덩이 두툼한 무사.

최향의 호위장 권호렴.

김인준은 최향의 왼쪽에 이르러 날렵하게 뛰어내리는 권호렴을 쳐다보며 성난 눈빛을 띠었다.

최향은 김인준을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씩.

네 까짓게.

그런 속내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최향은 말 머리를 돌리며 권호렴을 힐긋거렸다.

“적당히.”

알아서 해라.

그 말이었다.

“예, 주군.”

권호렴은 재빨리 자세를 가다듬더니, 최향에게 대답했다.

최향은 말 머리를 돌려 이민호를 향했다.

또각또각.

권호렴은 그런 최향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권호렴은 김인준을 향해 돌아서며 낮은 위협조의 음성을 흘렸다.

“가노 주제에.”

말에서 신분에 대한 우월 의식과 멸시가 물씬 풍겼다.

‘우욱.’

김인준은 양손을 말아 쥐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에 옆에 서 있는, 머리 숙인 최양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참게.”

김인준은 최양백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슬쩍 든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바르르.

가늘게 몸을 떨며 권호렴을 노려보았다.

최양백은 그런 김인준을 힐긋거리며, 마음이 급한 듯 보이는 눈빛을 띠었다.

“인준!”

낮으나 힘찬 부름.

김인준은 머리를 숙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으득.

권호렴은 머리 숙인 김인준에게 다가가 서며 호령조로 소리쳤다.

“내 오늘 네놈의 방장함을 엄히 징치할 것이야.”

왼손에 든 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높이 들었다.

일순.

쉭.

단발單發의 파공과 함께 검집이 김인준의 좌측 어깨를 때렸다.

빠악.

둔중한 소리와 함께 김인준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커허어억.”

김인준은 강한 통증과 그에 동반된 아픔에 오른발 무릎을 맨땅바닥에 꿇었다.

털썩.

머리를 숙이며 고통을 참아 내는 김인준을 향해, 그사이 다시 검집을 높이 든 권호렴이 성난 표정을 지었다.

“종놈 주제에!”

검집이 벼락인 양 김인준을 향해 완만한 호선弧線을 그렸다.

7장

우뚝.

최향이 내 앞에 섰다.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최향을 올려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

“누구냐니까!”

최향이 고함쳤다.

“…….”

난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놈이!”

최향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호위 무사 몇이 재빨리 말을 몰아 최향의 주변으로 다가와 섰다.

다들 최향을 섬기는 자들이다.

행여 주인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판단, 호위하는 호위 무사로서의 책무에 충실한 자들이었다.

“네 이놈!”

“죽고 싶은 것이냐?”

무사들이 최향에게 무례하다고 날 질책했다.

두어 명이 손에 쥔 활을 안장에 걸고, 허리춤에 맨 검을 빼 들었다.

촤, 촤, 촤앙.

발검 소리가 메아리쳤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지요, 참지정사 나으리.”

최향은 귀에 들린 고함에 움칫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이규보였다.

두어 걸음 나서며 양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그와 함께 반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응?”

최향은 이규보의 인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자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척이나 낯이 익은 얼굴의 사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사이 서너 명의 무사가 이규보를 향해 뛰었다.

최향은 오른손을 슬며시 들었다.

“서라.”

무사들은 멈칫거리며 최향을 향해 돌아섰다. 수하임을, 순종할 것임을 나타내듯 양쪽 옆으로 비켜섰다.

최향은 머리를 수그리는 무사들을 힐긋 보았다가 이규보를 보았다.

살며시 미소 지었다.

빙긋.

이규보는 담담한 얼굴로 최향을 마주 보았다.

“예전에 두어 번 뵌 적이 있는데, 소생을 참지정사께서는 기억하시는지요?”

“하하하하. 내 어찌 아버님이 아끼시는 삼혹호 선생을 모르겠소이까?”

최향은 호방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본 적이 오래되어 곧바로 알아보지 못하였소이다그려. 그 점 송구하게 생각하오이다, 선생.”

말하며 왼발을 들어, 상체를 오른쪽으로 틀며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으음.”

신음하며 이규보를 향해 걸어가는 최향을 응시했다.

묵이가 내게 다가와 오른쪽 어깨를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띠었다.

“나리, 상처가 깊습니다.”

“됐어. 그보다 천을 좀 구해 와. 기왕이면 지혈 효과가 있는 약초도 좀 가져오고.”

“아, 예에에.”

묵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옆으로 돌아섰다.

후다다닥.

빠르게 뛰어가는 폼이 날 엄청 걱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빨리 날 풀어라.”

만전이 날 돌아보며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훗.”

가볍게 웃어 주었다.

최향의 등장에 속이 구린 모양이다.

난 만전에 대한 주의와 경계를 풀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김인준과 최양백은 서른 중후반으로 보이는 자(권호렴)에게 궁지에 몰린 듯 쩔쩔매고 있었고, 이규보는 면전으로 걸어와 서는 최향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그 후 서윤, 서풍 형제를 소개하며 눈짓으로 날 가리켰다.

서윤, 서풍 형제는 공손히 최향을 대하며 뭐라 말을 붙였다.

최향은 두 형제와 짧은 대화를 나누며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그런 다음 이규보가 날 쳐다보며 뭐라 입을 놀리자, 시선을 돌려 날 보았다.

‘젠장맞을.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조금 혼란스럽다.

전체 상황은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다. 하지만 최우와 만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놓인다.

‘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빌어먹을이다.

내 눈 가득 들어오는 고려의 하늘은 예전에 내가 설던 21세기의 하늘과 별반 다르지 않아, 왠지 모를 서글픔을 자아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고려라는 과거 시점에 대한, 낮추어 보는 오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같잖게, 우스꽝스럽게 생각되는 걸까?

산다는 게 참 지랄 같다는 생각이 된다.

영화 ‘혹성 탈출’에 나오는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온몸이 굵은 동아줄에 결박당한 채, 나는 수레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반갑기 그지없는, 내가 살던 21세기에서는 멸종하다시피 한 토종 누렁소가 끄는 수레.

덜커덕덜커덕.

수레 좌우에는 최향을 따르는 무사들이 나란히 걸었다.

무사들은 1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서, 힐긋힐긋 날 흘겨보았다.

그 모습에서 진한 경계심이 묻어났다.

저 멀리 앞쪽에서는 최향이 도도한 풍채를 자랑하며 말을 몰았고, 그 주변에 이규보와 서가 형제 그리고 해심을 비롯한 일행들이 있었다.

그들은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으며 여유만만하게 길을 나아갔다.

최향에게서 뒤로 여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만종, 만전 형제와 김인준 그리고 최양백 등이 길을 걸었다.

난 제일 마지막이었다.

묵이가 수레 앞에 척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소를 몰았다. 종종 고개를 뒤돌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았다.

“마! 괜찮아.”

묵이의 시선이 내 오른쪽 어깨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화살에 꿰뚫린 어깨에는 약초를 짓이겨 뭉친 것을 발랐다. 그리고 고운 명주 천으로 어깨를 칭칭 둘러맸다.

“나리.”

묵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어여 앞이나 봐.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릴라.”

“나리, 죄송합니다. 묶여 계시는데 제가 수레를 몰아서.”

“됐어. 신경 꺼.”

묵이에게 웃어 보이며 벌렁 뒤로 누웠다.

허리 뒤춤으로 돌려 묶인 양손이 바닥과 등 사이에 괴어, 상당한 통증을 유발했다.

‘젠장!’

얼굴을 찡그리며 하늘을 보았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했나?’

그 죽일 인간.

날 들들 볶다 못해, 아주 가루로 만들려고 했던 훈련 교관 강석우.

그 인간이 요즘 왜 자꾸 생각나는지 몰라.

‘풉.’

난 속으로 실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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