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42화 (42/247)

<-- 42 회: 2-13 -->

타다닥.

손에 검을 쥐고 계단을 줄달음쳤다.

그리 오래지 않아 시야에 3층이 들어왔다. 힘껏 계단을 박찼다.

휘이익.

내 몸의 변화에 한 줄기 기대감을 품었다.

뒤쫓아 오는 최양백, 무사들.

그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난 뛰어올랐다.

‘어, 어.’

속으로 당황했다.

점프력이 예전과 달라져도 엄청 달라졌다. 예전에는 2미터도 못 미쳤는데, 지금은 2미터를 훌쩍 넘겼다.

가볍게 3층에 올라서며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내 눈에 발정이 날 대로 난 한 마리 개에새에키가 보였다.

이가 빠진 것처럼 두어 개의 모서리가 닳은, 가느다란 몇몇 금이 간 탁자.

예의 여인이 탁자에 반쯤 누워 있었다.

옆모습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음흉하고 삼류 건달같이 생긴 놈이 몸으로 여자를 찍어 누르며 음심을 채우려 했다.

바지를 급히 푸는 놈, 만전.

여자는 저항하며 발버둥 쳤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놀려 찍어 누르는 만전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으며 입은 옷은 걸레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보기에 매우 흉했다.

“흐흐흑. 저리 가아아아, 이 나쁜 놈아! 으흐흐흑.”

여자는 몸부림치며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만전은 몸으로 여자를 누르며, 자신을 밀치고 때리는 여자의 주먹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흐흐흐. 가만히 있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야. 응. 그렇지 않으면 네년뿐 아니라 지금 밖에서 내 호위 무사들에게 얻어맞는 네년 남편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만전의 협박에 여인은 움찔했다.

그걸 지켜보려고 하니, 흔히 말하는 천불이 난다.

“이 개노무시키야아아아.”

고함치며 만전을 향해 득달같이 뛰었다.

여인은 흠칫거리더니 날 보았다.

만전은 당황하며 급히 날 돌아보았다.

“웨엔…….”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시야에 뛰는, 생전 본 적이 없는 내가 보일 테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바람같이 만전에게 짓쳐 들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처럼.

만전에게 이르러, 오른발을 번쩍 들어 인정사정없이 걷어찼다.

만전은 중심을 잃고 우측 바닥으로 넘어졌다.

과당탕.

재빨리 넘어져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만전에게 다가갔다.

그사이 3층으로 최양백을 위시한 무사들이 올라왔다.

“잡아.”

“만전 님을 보호해.”

무사들은 황급히 내게 달려오려 했다.

최양백은 움찔거리더니, 양손을 옆으로 활짝 벌렸다.

“멈춰.”

달려 나가려는 무사들을 제지하며 날 노려보았다.

난 씨익 웃었다.

손에 쥔 검의 검첨劍尖을, 일어나려는 남전의 목에 댔다. 조금만 힘주면 만전의 목은 검에 꿰뚫릴 것이다.

“서툰 짓 않는 게 좋아.”

난 좌로 비켜서며 최양백과 무사들을 보았다.

“이!”

최양백은 험악한 인상을 썼다.

난 힐긋 여인을 쳐다보았다.

“괜찮습니까?”

“네, 네에에.”

여인은 그새 일어나 급히 옷매무새를 고쳤다.

한 손으로 상의 윗부분을 쥐고는 겁먹은 얼굴로 최양백과 무사들을 힐끔거렸다.

“내 뒤로 오십시오.”

모르는 여인이기에, 안쓰러운 마음에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다.

“예에.”

여인은 최양백과 무사들보다는 내가 마음이 놓이는지 주춤거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난 인상을 쓴 최양백을 향해 고함쳤다.

“여인의 남편을 데려와.”

“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

난 최양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전의 목에 검을 바짝 들이댔다.

스윽.

검첨이 만전의 목을 파고들었다. 대번에 살갗이 베이더니 옅은 혈선이 나타났다.

“흐윽.”

만전은 기겁하며 목을 뒤젖혔다.

그 광경을 본 최양백이 소리쳤다.

“멈춰.”

난 최양백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 이르러 뒤로 돌아가는 여인을 흘낏거렸다.

“여인의 남편을 데려와.”

“이익!”

최양백은 격한 표정을 지었다.

난 고함쳤다.

“데려오라고.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아.”

만전의 목에 닿은 검을 슬며시 내밀었다. 검첨이 목을 꿰뚫기 직전이었다.

“멈춰! 데려올 테니 멈춰라.”

최양백이 급히 대꾸했다.

“서두르게 좋아.”

내 말에 최양백은 불쾌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무사들을 돌아보았다.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무사들이 대답했다.

뒤쪽에 서 있던 몇몇 무사가 뒤돌아서더니 빠르게 계단으로 향했다.

난 서 있는 최양백과 무사들을 주시하며, 내 뒤에 서 있는 여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나중에…… 일행들에게 그렇게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네에.”

대답하는 여인의 얼굴에 두려움이 그득했다.

최양백과 무사들을 쳐다보는 모습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계단을 내려갔던 무사들이 예의 구타당하던 남자를 질질 끌고 올라왔다.

남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여인이 남편을 보고는 자질러지듯 외치며 달려 나갔다.

“여보오!”

그 광경이 보기에 짠했다.

여인의 남편을 끌고 온 무사들은, 여인의 남편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여인은 남편에게 뛰어갔다.

남편 역시 바닥에서 머리를 들고, 뛰어오는 아내를 보고는 크게 반색했다.

부부가 서로 얼싸안는 사이, 최양백은 내게 소리쳤다.

“이제 됐느냐? 어서 그분을 놔 드려라.”

난 남편을 부축하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어서 빨리 가세요.”

“고, 고맙습니다, 나리.”

여인은 날 돌아보며 매우 고마워했다. 머리를 숙이는 여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조심하세요.”

“네에.”

난 최양백을 돌아보았다.

“보상해.”

“뭐?”

최양백은 어리둥절했다.

난 목소리를 높였다.

“멀쩡히 길을 가던 이를 강제로 납치해 욕을 보이려 했고, 항의하는 남편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냐?”

“이.”

“내놔.”

난 최양백에게 고성을 질렀다.

“오냐. 네놈이 얼마나 기고만장할지 어디 두고 보자.”

최양백은 날 노려보며 손을 들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전낭이었다.

다소 작아 보이는 전낭을 꺼낸 최양백은 여인의 발치로 던졌다.

휘익.

툭.

전낭은 여인의 발치에 떨어졌다.

최양백은 멈칫거리는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은병이다.”

여인은 발끈했다.

최양백을 죽일 듯 노려보더니, 냅다 전낭을 발로 찼다. 그리고 최양백을 향해 고함쳤다.

“이런 더러운 것을 내가 받을 성싶으냐?”

여인은 매서웠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였다.

난 잠깐 당황했다.

여인이 발로 전낭을 찰 줄은 정말 몰랐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푸하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 들며 크게 웃어 젖혔다.

최양백은 몹시 당황했다.

“허!”

무엇보다도 전낭을 찬 여인이 남편을 부축하며 한이 맺힌, 흔히 말하는 원독에 맺힌 눈빛을 번득이는 것에 심중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와 같은 속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여인은 남편을 부축하며 최양백과 무사들을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느려도 엄청 느린 움직임이었다.

난 여인과 남편을 보며 혹여 다른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무사들이 순순히 보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 예상이 맞았다.

몇몇 무사가 남편을 부축하며 지나가려는 여인을 가로막았다.

그 광경에 난 고함치려 했다.

그런데.

“보내 줘라!”

최양백이 가로막은 무사들을 흘낏거리며 소리쳤다.

난 주춤했다.

예상하지 못한 최양백의 모습에 속으로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위장님.”

“저놈은 만전 님을 잡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저 여인을 잡아 만전 님을 풀어 주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인을 잡아 날 압박하자.

만전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무사들은 그런 의도의 말을 너나없이 내뱉었다.

최양백은 눈을 치뜨며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쳤다.

“보내 주라면 보내 주지 뭔 말이 많아!”

무사들은 최양백의 기세에 눌려 움찔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만전은 그런 최양백을 향해 소리쳤다.

“이노옴. 최야…….”

난 만전을 돌아보며 검을 살짝 움직였다.

스으읏.

만전의 목 살갗이 옅게 베이며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주룩.

만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올려다보았다.

“흐윽.”

얼굴에 겁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난 살의가 물씬 풍기는 시선으로 만전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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