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41화 (4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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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있을 때,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던진 것이 바로 군용 나이프다.

곧, 좌판에 이르렀다.

눈에 띄는 것이 죄다 여자들의 장신구였다.

그중 끝이 뾰족한 것들을 눈에 들어오는 대로 양손에 덥석덥석 쥐었다.

“아니.”

좌판의 주인이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뒤돌아섰다.

“아니, 이 사람이! 이보시오. 셈을 하지도 않고 물건을 가져가면 어떻게 하오.”

뒤에서 좌판 주인이 소리치며 날 쫓아오는 기척이 들렸다.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좌판 주인은 급한 나를 도둑으로 매도했다.

난 좌판 주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조금 전에 보았던, 사내에게 머리를 움켜잡히고 질질 끌려갔던 여인이 맴돌았다.

늦으면 천추의 한을 남길지도 모른다.

강간!

머리에 성폭행의 대명사가 생각났다.

‘18!’

성범죄를 저지른 놈은 거시기를 잘라 버려야 한다.

빨리 서둘지 않으면 그 여인이 큰일을 당할 것 같아, 마음이 무척 조급해졌다.

난 전력을 다해 뛰었다.

타다닥

시야에 무사들이 흩어 놓는 사람들이 보였다. 검을 휘두르며 몰려서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터라, 사람들은 부득불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들은 고성을 지르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안 꺼져!”

“죽어 볼래?”

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졌다.

무사들과 거리를 벌려 안전을 확보하려는 속내가 한눈에 보이는 광경이었다.

난 흩어지는 사람들에게 이르렀다.

사, 사, 삭.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를 날렵하게 스치며 무사들을 향해 뛰어갔다.

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창졸간에 사람들 사이를 지나자, 아무렇게나 손에 쥔 검을 휘두르는 무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응?”

“뭐야?”

무사들이 나를 보고는 어리둥절했다.

“서.”

“어딜 뛰어와.”

그들 중 두 무사가 내게 소리치며 앞을 막으려 했다.

난 갈지자로 움직이며 손에 쥔 머리 장식물 중 두 개를 던졌다.

쉬, 쉭.

낮은 파공과 함께 장식물은 곧바로 두 무사를 향해 날아갔다.

장식물이 공중을 가르는 속도는 가히 빛살이었다. 광선인 양 눈부시게 빨랐다.

저음의 격중음과 함께 장식물은 두 무사의 어깨에 정확히 박혔다.

퍼, 퍽.

두 무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껑충 넘어졌다.

“아악.”

“크아악.”

넘어지는 두 무사의 손에서 검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사이.

두 무사의 동료들이 고함치며 내게 몰려왔다.

“저놈이.”

“잡아.”

“죽여 버려.”

살의를 머금은 외침들이 귀에 들렸다.

난 재빨리 몰려오는 무사들을 향해 몸을 틀며, 만약을 위해 몇몇 장식물을 남기고, 손에 쥔 모든 장식물을 집어 던졌다.

쉬쉬쉬쉬쉭.

다수의 파공음이 울렸다.

장식물들은 아침 햇살인 양, 내게 몰려오는 무사들의 발치에 박혔다.

퍼퍼퍼퍼퍽.

위협이었다.

내게 덤비면 죽는다.

그런 속내를 무언으로 알리는 행위다.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내게 방해되지 않게 잠시 발을 묶어 두려 했다.

“헉.”

“히이이익.”

내게 몰려오던 무사들이 멈칫멈칫거리며 섰다.

머리를 숙여 발치에 있는 지면에 깊이 박힌 장식물을 보았다가 머리를 들어 날 보았다.

내 의도가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무사들은 서서 날 쳐다보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자신들이 속절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나는 넘어진 두 무사에게 다가갔다.

두 무사가 지면에 떨어뜨린 두 자루 검劍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검을 발로 차올렸다.

가슴 높이로 떠오른 검을 잽싸게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몸을 틀어, 3층 전각 입구로 향했다.

타다닥.

기민한 내 움직임에 무사들은 움칫거리며 당황하는 기색을 띠었다.

“어?”

“잡아.”

“뭐하는 거야?”

무사들이 날 쳐다보며 고함쳤다.

힐긋.

나는 뛰며 무사들을 뒤돌아보았다.

“죽고 싶은 놈만 따라와라.”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쥔, 남겨 둔 장식물을 슬쩍 들었다.

무사들은 흠칫거리며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동료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보았다.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들 중 몇몇이 앞장섰다. 날 뒤따라오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었다.

후다다닥.

앞서 뛰는, 전각 입구로 향하는 내 귀에 무사들이 뒤쫓아 오는 다수의 기척이 들렸다.

“잡아.”

“놓치면 호위장님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으실 거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저놈을 잡는 것이 좋잖아.”

“놈은 혼자야. 우린 열둘이라고.”

날 쫓아오는 무사들은 고함치며 서로 사기를 북돋웠다.

전각 1층.

전각 입구에서 4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낡고 허름한 네모난 탁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경장 무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머리는 뭉쳐 단정히 천으로 묶었다.

푸르게 물들인 파란 천으로 질끈 이마를 묶고, 허리춤에 검을 찬 사내는 사나운 기세로 잔을 들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뒤젖히며 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탁자들은 휑했다. 앉아 있는 이들이 없었다.

전각 1층에는 오직 그만이 앉아 있었다.

“크!”

사내는 입에서 뗀 잔을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탁.

심중을 나타내는 듯, 외마디 울림이 나지막이 퍼져 나갔다.

“이!”

성난 표정을 짓는 사내, 호위장 최양백.

홱.

최양백은 우측에 있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돌아보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섬기는 주인 최우의 명으로 서자인 두 아들 만종, 만전 형제의 사냥을 호종했다.

그런데 사냥은 핑계였다.

만종, 만전 형제는 사냥을 빌미로 개경을 빠져나오더니 곧장 남경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남경에 도착한 후, 시중잡배들은 물론 무뢰지당과 악소패거리를 불러 모아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음주 가무는 물론이고 각종 탁류지배와 어울리며 재물을 챙겼다.

그런 한편 기녀이건 양가의 여인이건 미색이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끌고 와, 갖은 음욕을 다 채우며 숱한 문제를 일으켰다.

‘빌어먹을.’

최양백은 고개를 바로 하며 험악한 인상을 썼다.

가노 출신이라. 주인의 두 아들을 어쩌지 못했다. 지금도 한 여인이 3층에서 만전에게 욕(?)을 보고 있다. 그 때문에 2, 3층을 비우고 1층에 홀로 앉아 자작 중이다.

도수가 높은 독주로 심중 치미는 울화를 삭였다.

만종은 전날 남경에서 한다하는 작자들이 마련한, 남경 제일의 기루 천향원에서 새벽까지 향락에 젖었다.

동료 김인준(후에 김준으로 개명)이 무사 다섯을 데리고 천향원에서 대기 중이다.

보나 마나다.

새벽까지 먹고 마시다가 기녀를 품에 안고 늘어지게 자고 있을 터.

만약 지금 3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김인준이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허리춤에 찬 검을 빼 들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최양백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동료 김인준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달라, 김인준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성격 등등.

모든 것이 다른 터라, 그저 독주를 들이켜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섬기는 주군에게 언제나 충성을!

최양백은 충직했다.

배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반면 김인준은 영리했다.

좋게 말하면 지모가 출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한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5장

“제기랄!”

최양백은 거칠게 중얼거리며 탁자에 놓여 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술병을 기울여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술병 주둥이에서 주향이 풍기는 맑은 물줄기가 잔으로 떨어졌다.

최양백이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고 막 잔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휘익.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안으로 뛰어드는 기척이 들렸다.

최양백은 기척에 흠칫하며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시선을 입구로 돌리는데.

쉬, 쉬이잇.

파공이 들렸다.

무엇인가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왔다.

최양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억.”

헛바람을 삼키며 급히 양손을 탁자로 뻗었다. 힘껏 탁자를 집고는 왼쪽으로 넘어뜨렸다.

쿠당탕.

놀라운 완력이었다.

한 힘 하는지 탁자는 이내 모로 섰다.

최양백은 민첩하게 기울인 탁자로 몸을 숨겼다.

‘훗.’

난 탁자를 집어 던진, 홀로 1층에 있는 자(최양백)를 흘낏거렸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씩.

난 흐릿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애초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최양백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보기에 우스웠다.

그저 내가 2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하는 시간을 벌고자, 잠시 최양백의 발을 묶어 두려 할 뿐이다.

날려 보낸 장식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로 쓰러진 탁자 아래 바닥에 박혔다.

파, 팍.

바닥에 아무렇게나 박힌 장식물에 최양백은 당황하더니 황당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허어.”

고개를 숙여 발치에 박힌 장식물을 보았다가 드는 최양백의 얼굴이 급변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사이.

나는 날렵하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러,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타다다.

한 걸음에 두어 개의 계단을 껑충껑충 뛰었다.

“서라!”

뒤에서 최양백이 탁자에서 빠져나오며 고함쳤다.

날 뒤쫓아 오는 기척이 귀에 들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입구에서 예의 날 뒤쫓던 무사들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잡아.”

“뛰어. 뛰라고!”

최양백은 무사들의 고함에 흠칫거리며 잠시 섰다.

시야에 들어오는 수하 무사들­을 뒤돌아보고는 화난 표정을 지었다.

“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수하인 무사들을 탓할 겨를이 없다. 만전이 멀찍이 물러나 명령한 탓에 1층과 3층 사이에는 지키는 수하가 아무도 없다.

3층에는 여인과 만전, 두 남녀만이 있을 뿐이다.

조금 전 계단을 뛰어 올라간 자.

수하들이 뒤쫓는 것을 보면 분명 적에 가까울 것이다.

최양백은 급히 시선을 계단으로 돌리며, 서둘러 계단으로 다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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