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37화 (37/247)

<-- 37 회: 2-8 -->

따다다다당.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격한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으음.”

난 옅은 신음을 흘렸다.

사나운 바람처럼 빗발치는 조규의 검격을, 오른 팔뚝에 붙인 목검으로 끊어 치듯 짧게 밀어냈다.

그와 함께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대나무처럼 몸을 미미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또한 몸을 움츠려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며, 방어에 치중했다.

나와 달리 조규는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중했다.

쉬, 쉬, 쉬잇.

조규는 숨 쉴 틈도 없이 날 몰아붙였다.

대여섯 개의 목검이 동시에 날 공격해 오는 것 같았다. 목검이 흘리는 세찬 파공에 절로 몸이 움찔거려졌다.

‘조금만 더!’

수비에 치중하는 이점?

그것은 힘을 비축하여 역공을 가할 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격에 치중한 조규는 역공을 가할 시, 곧바로 수비로 전환하기가 용이치 않다.

역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부위를 파고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규의 공격이 가해 오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만 집중했다.

따다다당.

내가 쥔 목검과 조규가 빗발처럼 내치는 목검이 부딪치는 울림이 계속 퍼졌다.

조규의 목검과 내 목검이 부딪칠 때마다 충격과 진동이 일었다.

내 목검을 타고 손아귀와 팔로 충격과 진동이 스며들었다.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꽈악.

난 이를 악물며 충격과 진동을 참았다.

조규는 내가 수비에 치중하자 한층 더 맹렬하게 공격을 가해 왔다.

내가 쥔 목검과 조규의 목검이 부딪칠 때마다 이는 충격과 진동이 갈수록 거세졌다.

‘조금만 더.’

난 조규가 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빗발치는 공격을 오른팔에 붙인 목검으로 쳐 내며, 유심히 조규와 조규의 목검을 보았다.

머릿속에서 날 가르친 교관 강석우의 말이 맴돌았다.

-비단 검술뿐만 아니라 상체를 주로 움직이는 무술의 경우, 대부분 하체가 약하다. 또한, 하체에 대한 수련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많다.

난 팔뚝에 붙인 목검으로 막 부딪친 조규의 목검을 밀쳤다.

‘지금!’

발을 성큼 내디뎌 조규에게 바짝 다가섰다.

조규는 내 움직임에 의구심을 띠며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몸으로 밀치려고 한다고 생각한 듯 오른발을 뒤로 뺐다.

재빨리 우측으로 비켜서며 왼발 무릎을 구부렸다.

조규는 재빨리 체중을 왼발에 실으며 몸을 낮췄다. 왼쪽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상당히 대처가 빨랐다.

‘후후!’

나는 속으로 나직이 웃었다.

강석우 그 인간에게 생각이 미쳤다.

내가 그 작자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다 못해 피가 맺힌다.

꼭 내무반에서 슬리퍼를 싣고 있을 때 나타나, 꼬투리를 잡아 전투화 뒤축으로 내 발가락을 누르듯 밟는다.

그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배운(?) 그대로 조규에게 행했다.

오른발로 조규의 왼발 발가락 부위를 밟았다.

꾸욱.

내가 밟자마자 조규가 소스라치더니 고개를 들었다.

“크아아아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이 꽤나 컸다.

주어진 고통이란 본능에 매우 충실한 모습이라, 난 슬쩍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씩.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는 조규를 밀며, 냅다 조규의 얼굴에 박치기를 넣었다.

퍼억.

내 이마가 정확하게 조규의 얼굴에 닿았다.

“크아아악.”

대번에 비명과 함께 조규가 땅에 나가떨어졌다.

조규는 땅에 떨어지며 떼구루루 굴렀다.

잠시 움칫거리는가 싶더니, 곧 의식을 잃었다. 사지를 아무렇게나 뻗고 맨땅바닥에 너부러졌다.

지켜보던 이정찬과 가병들은 그 광경에 망연자실했다.

“…….”

다들 입을 쩌억 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규는 검의 고수였다.

가병들을 가르치는 무 사부였는데, 허무맹랑하게도 박치기에 당해 버렸다.

자신들이 본 광경은 서로의 검술 실력을 겨루는 격검이 아니었다.

시정잡배들의 막싸움이 생각나는 규칙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공방이었다.

굳이 말한다면 딱 막 싸움인데, 그 공격에 조규가 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의식까지 잃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황망함에 다들 놀란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냈다.

이정찬은 어이없는 광경에 망연해하며 의식을 잃은 조규를 보았다.

‘내, 내가 뭘 잘못 본 거겠지?’

믿기지 않았다.

조규가 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을 연출할 줄이야.

평소 조규는 말수가 적고 찬바람이 돌듯 상당히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섣불리 말을 걸기도, 가까이 다가가기도, 대하기도 어려웠다.

일신 검술이 자신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강한데, 이민호에게 이렇게 어처구니없게도 박치기를 당할 줄이야.

가장 놀란 사람은 어느새 가병들 사이에 끼어, 예의 광경을 본 서풍이었다.

서풍은 경악에 가까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쩌억 벌렸다.

금방이라도 입이 찢어질 듯 매우 크게 벌렸다.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이럴 수가?’

서풍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런 다음, 눈에 힘주며 이민호와 발치에 쓰러진 조규를 번갈아 보았다.

“…….”

서풍은 뭐라 말해야 할지,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조규가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할 줄이야.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이 바로 조규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조규가 본 지 채 얼마 되지도 않는 이민호의 박치기에 당하다니.

서풍은 표현할 수 없는 놀람에 그저 멍하니 이민호와 조규를 바라볼 뿐, 할 말을 잃고 창황망조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쩝.”

나는 입맛을 다시며 쓰러진 조규를 보았다.

‘이거 미안한데.’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만 승패에 연연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답답해, 그저 속에 쌓인 울화를 풀려 했다. 또한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흠뻑 흘려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까 했는데.

조규와 공방을 주고받으며 그만 본래의 목적을 깜빡하고 말았다.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승패에 자신도 모르게 집착하여 잔 수로 조규에게 망신(?)을 주었다.

21세기의 군 특수 부대 수법으로 12세기 고려의 무사를 쓰러뜨려 버린 것은 반칙이다.

12세기에 비해 21세기는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는가?

12세기는 분명 21세기에 뒤처졌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어찌 보면 조규는 선조 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21세기의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난 곤혹스러웠다.

‘이거 어쩌지?’

슬쩍 주변을 둘러싼 가병들을 흘낏거렸다. 죄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크!’

이정찬과 가병들 뒤쪽에 끼여 서 있는 서풍이 보였다.

이정찬과 서풍은 날 뚫어져라 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 가득히 담긴 놀람이란 감정이 한눈에 다 보였다.

‘아, 놔아.’

이 곤혹스러움을 어쩌지.

난감하다.

젠장.

타이라노 번의 포구 하바카.

하바카에 인접한 들판은 야마토 전역에서 몰려온 낭인들로 득실거렸다.

수많은 개미들이 모여 떼를 지은 듯한 광경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낭인들은 저마다 소유한 다양한 병기를 들고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노숙을 한 흔적들이 뚜렷했다.

나무를 가져와 아무렇게나 만든 다수의 움막, 움막 앞쪽의 지면을 파고 불을 피운 구덩이, 곳곳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대소변의 흔적들 등등.

하나같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 투성이였다.

무릇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장마당이 들어서는 것처럼, 각종 다양한 장막들이 들판 양쪽 끝을 따라 들어섰다.

마치 양손으로 들판을 감싸는 듯한 형태로 들어선 장막들 대부분은 술과 여자 그리고 음식을 팔았다.

갓난아이 몸통만 한 나무로 된 술통들이 수북했으며, 거의 벗다시피 한 몸을 파는 창녀들이 낭인들을 유혹했다.

주먹밥과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생선과 각종 산짐승 고기들이 낭인들을 기다리며 솔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겼다.

몇몇 장막에서는 각종 병기를 팔았고, 그 한쪽 옆에는 어이없게도 대장간이 들어섰다.

흔한 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장막들을 온갖 부류의 이들이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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