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36화 (3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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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병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조, 조 사부님이 밀려?”

“밀리긴, 대등한 거야.”

“가만히 좀 있어 봐.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 같은데.”

가병들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바짝 대치한 이민호와 조규를 바라보았다.

조금 당혹스럽다.

그들이 아는 조규는 강했다. 그런데 이민호가 그런 조규와 대등하게 겨루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단지 궁술에 뛰어나다고만 생각했는데. 검술까지 뛰어날 줄은 미처 몰랐다.

절레절레.

이정찬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났는지.’

가병들이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당혹감을 느꼈다.

‘으음.’

이정찬은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가만히 이민호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자신이 속한 여주 서가.

과연 이민호가 서가에 득이 되는 인물일지, 아니면 해가 되는 인물일지.

지금은 전자에 가까울 것이지만, 단지 식객일 뿐이다.

식객이란 언제든지 서가를 떠날 수 있는 뿌리가 없는 부평초와 같다.

식객을 가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면 가문의 좌장과 식객 사이에 남다른 유대가 있어야 한다.

이정찬은 작은 이채를 반짝였다.

‘아가씨.’

문득 서혜가 생각났다.

‘잘만 하면.’

이정찬은 알 듯 모를 듯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어제 있었던 지방 호족들의 연회에서 이민호가 광주 이가의 사람임을 입증받았다.

그 정도 신분이면 손색은 있지만 서혜와 신분에서 꿀릴 것은 없다.

‘아무래도 일간 장자님을 한번 찾아봬야겠군.’

이정찬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서양헌에게 넌지시 말할 필요가 있다고 내심 생각했다.

난 바로 앞에 있는 조규를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조규는 내 미소에 미미하게 눈가를 떨었다.

“대단하십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역수 검이라니. 처음입니다.”

“역수 검?”

내가 의아해하자, 조규가 의외라는 기색을 띠었다.

“모르는 것입니까? 검을 거꾸로 쥔 것을 역수 검이라 하지 않습니까?”

조규는 말하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싱긋.

나는 부드럽게 재차 미소 지었다.

‘걸렸어.’

일부러 말을 걸었다.

일순.

움찔.

조규가 몸을 미미하게 양쪽으로 움직였다. 얼굴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떴다.

나는 다섯 손가락을 말아 주먹 쥔 왼손으로 조규의 우측 옆구리를 가격했다.

퍼억.

“컥.”

조규는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심 아차했을 것이다. 뒤늦게 내 왼손이 자유롭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을 게 뻔하다.

나는 연이어 조규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퍼, 퍼, 퍽.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며, 등이 굽은 새우처럼 조규의 몸이 좌측으로 꺾였다.

“컥.”

조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금!’

난 눈을 반짝이며 있는 힘껏 목검을 맞댄 조규를 밀어붙였다.

콰당탕.

조규는 이내 균형을 잃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맨땅바닥에 넘어지며 몹시 당황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네다섯 걸음 남짓 거리를 벌리며 손에 쥔 목검을 지면으로 늘어뜨렸다.

“후.”

심호흡하며 천천히 일어나는 조규를 바라보았다.

나가떨어진 조규를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규는 여전히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주변에 서 있는 가병들이 놀라 중얼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마, 맙소사.”

“조 사부님이 쓰러지셨어.”

“내가 뭘 잘못 본 것은 아니지.”

다들 반신반의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적인 감정을 얼굴에 띠었다.

이정찬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조규와 이민호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조규가 이민호에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리어 이민호가 조규에게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한 것과 다른 현실에 이정찬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심중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일어난 조규가 내게 말을 붙였다.

“왼손.”

오른쪽 옆구리를 가격당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속내가 밴 짤막한 조규의 말에 난 흐릿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씩.

조규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세에서 왼손이 자유롭다는 걸 말입니다.”

“…….”

“그런데 왜 치고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치고 들어왔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텐데.”

조규는 의문을 느끼는 눈치였다.

난 꺼림이 밴 목소리로 대꾸했다.

“혹시 몰라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조규 님은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 같아서, 섣불리 치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치고 들어갔다가 역공을 당하면 저만 손해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조규는 흠칫했다.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조규의 대꾸에 난 내심 움칫했다.

‘역시.’

맨땅바닥으로 조규가 넘어졌을 때, 실은 치고 들어갈까 생각했었다.

내 눈에 당황하는 조규가 보였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조규는 공격하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눈동자가 살아 있었다.

왼 주먹으로 조규의 우측 옆구리를 가격한 것은 나름 혼신을 다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왼 주먹으로 조규의 옆구리를 가격하지 않았다면 쓰러지지 않았을 조규다.

아무래도 치고 들어갔다가 조규의 역공에 당할 가능성이 클 것 같아,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내가 보기에 조규의 검술이 남달라, 심중 경계심이 일었다. 무엇보다도 조규의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스윽.

조규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날 매섭게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나는 목검을 쥔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며 가로로 눕혔다.

끄덕.

가볍게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조규는 날 보며 마주 고갯짓했다.

서서히 나와 조규가 서 있는 주변으로 긴박감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퍼져 나갔다.

원을 그리며 나와 조규를 둘러싼 가병들은 숨죽였다. 나와 조규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바라보는 가병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조규를 쳐다보는 이정찬의 눈동자에 염려라는 작은 감정이 실렸다.

반짝.

이정찬의 눈동자가 작은 빛을 발했다.

한편.

저벅저벅.

가병들의 수련장으로 서풍이 걸어오고 있었다.

서가를 방문한 각 호족들이 모여, 부친과 함께 한창 논의 중이다.

형 서윤이 장자로서 각 호족의 자녀들을 상대하는 터라, 서풍은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서풍은 꾸준히 수련하는 것이 무위를 유지하고 상승시킨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가병들의 수련장에서 땀을 흘리려 했다.

“응?”

서풍은 시야에 보이는, 원을 그리며 둘러선 가병들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의아했다.

“왜들?”

서풍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각 지방 호족들이 서가에 온 탓에, 지난 이틀 동안 서가의 가병들은 2교대로 나뉘어, 서가 곳곳을 엄히 지켰다.

지키는 가병들을 제외한 다른 가병들은 평상시처럼 수련과 휴식을 병행했다.

수련은 가병들의 무력과 기강 확립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단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가병들이 수련은 하지 않고 빙 둘러서 있는 모습이 서풍은 마뜩지 않았다. 하여,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조규와 이정찬이 가병들의 수련을 맡고 있을 텐데. 그 두 사람이 이렇게 방만하게 가병들을 통솔할 리가 없는데.

서풍은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속내를 가슴에 품고 서풍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둘러서 있는 가병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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