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35화 (3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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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는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검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물음에 난 움칫했다.

난감했다.

21세기 검도 도장에서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흐, 흠.”

나는 헛기침했다.

“대식국에서 유명한 검수劍手에게 배웠습니다.”

만병통치약인 대식국을 입에 올렸다.

“가르친 사람이 보통 검수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렇습니까?”

“네. 정말 잘 배웠습니다.”

진짜였다.

조규는 경탄했다는 얼굴빛을 띠었다.

“조금은 경시했었습니다. 그 점 사과드리죠. 이제부터는 진짜입니다!”

난 흠칫했다.

조규가 말끝에 힘주며 지면을 두 발로 밀었다.

순간.

휘이잇.

날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흑.”

점프력이 장난이 아니다. 높이뛰기 선수 저리 가라다. 감탄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조규가 일순간 목전에 이르렀다.

난 검을 휘두르기 쉽게 좌측으로 이동하며 조규가 내리치는 목검을 피했다.

이어, 오른손에 쥔 목검을 좌로 휘둘렀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검로가 지면에 내려서는 조규의 우측 옆구리로 향했다.

난 곧 귀에 들릴 둔중한 울림을 기대했다.

그런데.

따악.

둔탁한 일성一聲과 함께 내가 손에 쥔 목검이 옅은 진동을 일으켰다.

진동이 흘러든 손바닥에서 얼얼한 통증이 일었다.

“욱.”

어느새 조규가 민첩하게 손에 쥔 목검을 휘둘러 내 목검을 막았다.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며 충격과 함께 진동이 일었다.

부르르.

조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 향해 민첩하게 돌아섰다. 그와 함께 내 우측 허벅지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그사이 나는 조규의 목검과 부딪친 충격, 그 충격으로 인해 일어난 진동 때문에 좌로 이동했다.

어깨너비 어림의 거리를 게처럼 미끄러졌다.

찰나, 간발의 차이로 조규의 목검이 내 우측 허벅지를 스쳤다.

‘히익.’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조규.

진짜 검객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사전에 맞춘 액션 신이 아니라, 무슨 늑대처럼 동물적인 동작으로 날 따라붙었다.

쉭.

난 조규를 떨치고 거리를 두기 위해 왼쪽으로 움직였다. 원을 그려 가며 조규를 주시했다.

조규는 그런 나를 바짝 따라오며 연방 목검을 떨쳤다.

옅은 풍압과 함께 조규의 목검이 내 허리와 하체를 노렸다.

쾌속한 속검速劍이었다.

서너 개의 검이 동시에 날 공격해 오는 것 같다.

가병들은 눈을 치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 사부님의 검을 피하고 있어.”

“세상에. 아슬아슬하지만 조 사부님이 따라잡지를 못하다니.”

“궁술에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조규의 검이 이민호에게 닿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는 조규라면 이미 이민호의 몸에 목검이 닿아, 일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조규의 목검은 계속 허공을 때렸다.

이정찬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공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조규가.’

이민호를 이미 땅에 쓰러뜨렸어야 하는데.

조규가 이민호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이민호가 조규의 공격에 궁지에 몰려 숨을 헐떡거리는 광경이 눈에 보여야 하는데, 그와 같은 광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정찬은 자신이 뭘 잘못 보지나 않았나, 속으로 의심에 의심을 했다.

기막히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절실히 느꼈다. 이민호의 움직임이 조규 못지않다는 것이 놀라웠다.

오른손에 쥔 목검을 빙글 돌려, 90도 각도로 고쳐 쥐었다.

내게 가장 익숙하고 능숙한 지검법持劍法은 군에서 배운 군용 나이프 쥐는 법이다.

검도 도장에서 배운 걸로는 조규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나는 판단했다.

군용 나이프.

내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자신하는 무기 중 하나다.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여 조규를 상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냥 원을 그리며 조규의 우측으로 돌았다.

승부는 체력 싸움이 될 듯했다.

나는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검투劍鬪를 원했었다.

정신없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이마와 얼굴이 굵은 땀방울로 가득하기를 바랐다.

내 가슴을 그득 메운 울화를, 답답함을, 그렇게 굵은 땀방울을 통해 몽땅 다 배설하고 싶었다.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고, 비록 나무로 만든 목검일망정 실컷 휘둘러 보고자 하였다.

“이야아아아아아!”

나는 기합을 지르며, 내게 검을 내치는 조규를 향해 맹진猛進했다.

머릿속에서 날 교육시킨 교관 강석우가 떠올랐다.

그 인간(?)이 날 갈구며, 내 머리에 각인시킨 가르침 중 하나.

-싸운다! 그것을 한자로 투鬪라 한다. 투 자를 보면 꼭대기에 임금 왕자가 두 개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처럼 투는 두 놈 중 한 놈이 지가 최고라고 다투는 것을 뜻한다.

피식.

난 나도 모르게 싱겁게 웃고 말았다.

-기술? 체력? 머리? 웃기지 마라. 어떤 형태든지 싸우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똥배짱이다. 의지 따윈 잠시 쓰레기통에 던져 놔! 죽어도 좋다는, 널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그런 똥배짱을 가진 놈이 무조건 싸움에서 이긴다. 명심해라! 상대를 상처 입히면서 나는 상처 하나 입지 않겠다는 멍청한 생각 따윈 아예 하지도 마라. 죽을 각오도 되어 있지 않는 놈이 상대를 죽이겠다?

입이 제멋대로 실룩였다.

-웃기고 자빠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죽음에는 오직 죽음밖에 없다! 알겠나? 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상대를 죽이려면 먼저 내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걸 잊지 마라!

난 강석우 교관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을 회상하며 조규에게 달려들었다.

직각으로 잡은 목검을 사선으로 후려쳤다.

‘야아아아. 이 十시끼야아아아아!’

마음속으로 목이 터져라, 온 세상이 떠나가라 쌍욕을 내질렀다.

강석우 교관.

내가 그 인간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부아아악.

있는 힘을 몽땅 실은 목검을 조규의 좌 하단으로 내리쳤다.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한순간 어두컴컴한 흑야黑夜를 내리치는 벼락 같았다.

‘허억.’

조규는 깜짝 놀랐다.

창졸간에 이민호의 모든 것이 급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기질이 확 바뀌었다.

눈동자가 강렬한 살광을 발했다. 사람을 죽여 본 다수의 경험이 있는 듯 눈에서 살벌한 기운을 뿜었다.

사람의 기를 죽이고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하며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흔한 말로 오금을 펴지 못하게 하는 흉폭한 이민호의 기운.

조규는 자신도 모르게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전율이라는 느낌이 등골을 훑어 내렸다.

뒷덜미가 쭈뼛거리고 전신 솜털이 가시처럼 빳빳하게 일어서는 것 같다.

숨을 쉬기 어려운, 강한 질식감을 주는 잔혹함이 무의식적으로 느껴졌다.

‘이, 이건!’

조규는 부지불식간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머릿속에서 한 상념이 퍼뜩 떠올랐다.

3장

문하를 떠날 때, 스승이 조심하라 신신당부한 부류.

귀문살자鬼門殺者!

귀문이란 저승 문을 의미한다. 살자는 사람을 죽이는 자, 곧 야차를 뜻한다.

귀문살자는 물러서며 저승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을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 피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자를 은유적으로 일컫는 일종의 은어隱語다.

조규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이민호의 쇄도가 너무 빨랐기도 하지만, 돌연 이민호가 사람이 바뀐 것처럼 강렬하고 살벌한 기운을 풍긴 탓에 놀란 영향이 컸다.

따아아아아앙.

목검과 목검이 맞부딪치는 외마디 충격음이 길게 메아리쳤다.

“으음.”

조규는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충격과 진동이 상당했다.

양손으로 목검을 꽉 쥐고 체중을 실어, 내리친 이민호의 검을 막았다.

다섯 오乄자 형태로 이민호와 조규의 목검이 엇갈렸다.

끼이이이.

두 목검의 겉이 긁히는 나지막한 소리가 울렸다.

조규는 몸을 낮추며 무릎을 구부렸다.

‘우욱.’

쥔 목검을 통해 이민호의 목검에 실린 힘이 전달되었다. 상당한 힘이라 최대한 몸을 움츠려, 자신의 힘을 목검에 모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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