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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일찍부터 소금의 중요성과 경제성에 눈을 떴다.
소금을 국가 전매 사업으로 간주, 상당한 비중을 두고 관리해 왔다.
그 이면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두 번째 부인 나주 오씨가 있다.
사서에는 장화왕후로 기록되어 있고, 그녀의 아들이 바로 고려 두 번째 왕 혜종이다.
나주 오씨의 부친 오다련은 전라도 일대에서 유명한 소금 상인으로 큰 부를 쌓았다고 한다.
나주 오씨와 왕건이 부부의 연을 맺으며 오다련의 부는 왕건에게 흘러 들어가 군비로 전용되었다.
고려는 일찍부터 소금이 국가 재정에 막대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금은 오직 국가에서 제조, 판매할 수 있었다.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한 후, 뒷돈을 받고 소금 제조와 판매에 있어 허가 아닌 허가를 내주었다.
일부 대상인이 정권을 장악한 무신들의 비호와 묵인 아래 소금을 버젓이 생산, 판매하며 막대한 부를 얻었다. 해당 부의 일부는 당연히 뒤를 봐주는 무신들에게 흘러들어 갔다.
전형적인 정경 유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이 정권을 잡은 60여 년 동안 고려의 국가 재정은 파탄 나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국가 전매 사업의 문란이었다.
모든 국가의 부가 무신들에게 대부분 귀속되며 국가 재정의 개인 사유화가 가속화되었다.
이규보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긴장감을 느꼈다.
이전의 소금 제조는 많은 노동력과 땔감을 필요로 하는 원시적인 형태였다.
들어가는 품에 비해 마진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소금은 상당히 비쌌으며, 부유하지 못한 가난한 백성의 경우 소금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데, 종이에 쓰여 있는 제조법은 논처럼 특정 공간에 바닷물을 가두어 두고 장시간에 걸쳐 많은 양의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원가가 매우 낮고, 생산성이 극대화되어 보다 쉽고 빠르게 막대한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규보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대체 그 사람은 어디서 이런 것을.”
이규보는 이민호를 생각하며 급히 손에 쥔 종이를 넘겼다.
“이건 병법?”
종이 상단에 삼시 연발법이라 쓰인 글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학과생에게 한문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한문을 모르면 전해지는 각종 사서를 보기 힘들다. 물론 한글 번역본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번역한 까닭에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때문에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에게 한문은 필수 분야다.
하다못해 한문으로 죄다 기록되어 있는 조선 왕조 실록 정도는 술술 읽어 내려가며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한문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문을 읽을 수 있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견해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민호는 곧 인근 지방 호족들의 회합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그때 그들에게 보여 주고, 설득하여 지원을 이끌어 내려 했다. 그런 이유로 부족한 한문을 총동원해 밤을 새워 가며 호족들에게 보여 줄 자료를 만들었다.
“궁수들을 모두 셋으로 나누어…… 쏘는 화살의 양을 줄이고 연속성을 극대화하는…….”
이규보는 종이에 쓰인 병법으로 보이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는 몰랐지만, 일찍부터 조총의 효율성을 높이 산 오다 노부나가가 3교대 연발 사격이란 전술을 생각해 냈다.
예의 전술로 오다 노부나가는 1575년 나가시노에서 당대 최강이었던 다케다의 기마군단을 궤멸시켰다.
그 전술을 궁수들에 적용한 병법에 이규보는 획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병법대로라면.”
이규보는 조금 전에 보았던 연발노의 도면을 급히 챙겨 보았다.
두 종이를 서로 대조하듯 양손에 쥐고 번갈아 보았다. 머릿속에서 한 환상이 떠올랐다.
적에게 쉼 없이 내습하는 수많은 화살들.
궁은 거리를 두고 아군의 희생과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에게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입히는 데 최적의 병기다.
연발 노와 삼시 연발법.
그 조합은 자신이 보기에 무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퍼붓는 수많은 화살의 비에서 무사할 수 있는 적은 없을 듯 보였다.
“…….”
이규보는 입을 쩌억 벌리며 망연자실했다.
“이건 학살이야.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심중 두려움이 일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이 현실화되면 왜구쯤은 아마 가볍게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보는 손에 쥔 종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나머지 몇몇 종이들을 본다면 기함할지도 모른다.
화염병의 원리를 바탕으로 술병에 기름을 채워 적을 향해 던지는 것을 비롯하여 만들기 쉽고 간단한 현대식 응용 병기 아닌 병기들이 해당 종이에 적혀 있었다.
이규보가 그것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특전사의 주 임무 중 하나가 적 후방으로 침투, 적에게 대항하는 반군에 대한 군사 훈련과 지휘 그리고 적 후방 교란이다.
후방 교란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테러다.
적의 요인 인사를 암살하고, 주요 군사 시설물과 교량을 폭파하며, 사보타지를 유도한다.
이민호는 그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행여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어, 지난 며칠 밤 동안 왜구들을 공격할 수 있는 간편하고 효율적인 병기들을 기록해 두었다.
잡초와 풀이 무성한 언덕배기에 두 남녀가 호젓이 앉았다.
두 남녀의 뒤로 두 마리 말이 머리를 숙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저 멀리 앞쪽으로 강이 흐르며 오른쪽으로 휘돌아 나갔다.
삐리리리리.
이민호는 입에 풀피리를 물고 불었다.
우측 옆에 앉은 서혜는 다리를 세우고 무릎에 얼굴을 갖다 댄 채 가만히 강을 바라보았다.
나직이 울리는 풀피리 소리는 듣기에 무척 좋았다.
서혜는 귀에 들리는 풀피리 소리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깊이 심취한 모습이었다.
이민호는 풀피리를 불며 생각했다.
‘하아아.’
막막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자신이 살던 현대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무신 정권하의 고려에서 살아가야 한다.
현대에 적응되어 버린 자신이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한 고려에서 과연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희망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컸다.
‘나리.’
여동생 같았던,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천민촌 사람들이 왜구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이제 다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왜구와 의연히 맞서 싸우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인이기에, 왜구에 대한 분노에 기인하는 투지였다. 한국인치고 왜구나 일본에 호의적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어.’
왜구를 그대로 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여자들은 왜구에게 끌려가 몸을 버리고 먼 곳으로 팔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엄마를 잃은,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아이들이 과연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왜구 한 놈을 죽이면 한 가족을 살리는 것과 같다!’
이민호는 형형한 눈빛을 번쩍였다.
모르면 몰랐을까?
자신의 두 눈으로 천민촌 사람들이, 나리가 왜구들에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죽음으로부터 나 몰라라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최충헌.’
화가 났다.
정권을 잡았으면 잡은 자답게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 아닌가?
왜구가 날뛰면 기록에 전하는 왜구와 홍건적을 전담했던 부대 연호군을 움직이든지, 그도 아니면 호족의 지휘하에 있는 광군이나 주현군에 속한 일품군이라도 출병시켜 왜구를 섬멸해야 할 것이 아닌가?
‘배때기에 기름만 끼어 권세와 영화만 탐하는 썩을!’
정권을 잡은 무신들을 생각하자 나는 울컥 울화가 치밀었다.
훗날 몽고가 6차에 걸쳐 침입할 때, 고려는 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제 딴에는 물리쳤다고 역사에 기록하였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물리친 것이 아니다.
몽고는 보급, 장수와 칸의 죽음, 오랜 전쟁에 지쳐 회군한 것이다. 고려가 군사적으로 한반도에서 몽골군을 밀어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회군하고자 조건을 내세운, 고려가 그 조건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음에도 회군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몽골군은 끊임없이 조건을 제시하였다.
고려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강화를 맺었고, 몽골군은 돌아갔다가 몇 년 되지 않아 다시 고려에 쳐들어왔다.
그런 반복이 계속 이어져 결국에는 국력이 다한 고려가 무신 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원에 항복하며 부마국이 되었다.
그에 일조한 것은 고려 왕실이다.
무신들을 없애고 왕권 강화와 다시금 고려라는 세상의 지배자로 우뚝 서기 위해 원이라는 외세를 고려 왕실이 끌어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들끼리 개지랄 염병을 떨었지!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 몫이었어. 태어나 단 한 번도 창을 잡아 보지 못한 민간인인 백성들이 병사로 징병당해 전장에 서서 몽골군과 싸워야 했다고. 그들이 그렇게 피를 철철 흘리며 싸우는 동안 제 놈들은 안전한 강화도에서 지랄 염병 꼴값들을 떨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