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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을 꿈꾼다면 모를까?
대번에 가로 하야마가 격한 표정을 지으며 다카요시를 향해 다시 소리치려 했다.
“다카요…….”
번주 류켄은 왼손을 들어 하야마를 향해 뻗었다.
“아…….”
눈을 살며시 감았다 뜨며 하야마에게 자중하라는 무언을 건넸다.
움찔.
하야마는 번주 류켄의 무언을 알아듣고 가볍게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내키지 않는다는 속내가 물씬 풍겼다.
번주 류켄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무례를 저지르는 다카요시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입가가 비틀리는 듯 알아보기 힘든 매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 각오가 되어 있군, 다카요시.”
“도노!”
다카요시는 목청을 돋우며 머리를 깊이 팍 숙였다.
가신이 번주를 똑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번주의 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번주의 허락 없이 번주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번주에 대한 도전, 항명, 무례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다카요시는 서둘러 머리를 숙였다.
“말해 봐라, 다카요시.”
번주 류켄의 눈동자가 매서운 빛을 발했다.
냉철.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듯한 타이라노 류켄의 모습에 하야마를 비롯한 가신들은 움칫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하 수상하여 슬그머니 눈을 들어 번주 류켄과 다카요시를 몰래 번갈아 보았다.
다카요시는 몸을 미세하게 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도노.”
“마지막 기회?”
“네.”
다카요시는 머리를 들어 정좌한 번주 류켄을 보았다.
“요시미츠가의 모든 것을 내다 팔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마련한 재물로 저희 야마토 전역에서 낭인들을 사 모을 생각입니다.”
번주 류켄, 가로 하야마를 비롯한 가신들은 다카요시의 말에 움칫했다.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요시미츠가의 모든 것을 판다면 못해도 천여 명에 이르는 병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고려로 출정할 배와 천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소모할 보급품 역시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출정해서 다시 요시미츠가를 일으킬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요시미츠가는 끝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군가인 타이라노가에, 출정에서 획득한 재물 중 일정 부분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가신으로서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까지 고려로 출정하여 얻은 재물 중 3분의 1은 번주가인 타이라노가문에 바쳐 왔다.
요시미츠가는 고려로 출정하여 양식을, 각종 진귀한 것들을, 값이 나가는 재물을 약탈하여, 번주가에 바치고 그 나머지로 성장해 왔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
요시미츠 다카요시는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하려 했다.
그 결연함이 무릎을 꿇은 채 번주 류켄을 쳐다보는 자세에서 물씬 풍겨 나왔다.
하야마를 위시한 가신들은 다카요시의 결연함에 감복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요시미츠가의 가독을 이은 자답구나.’
‘하긴. 번주께 실망만 드렸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모양이군. 사지에서 생을 구하겠다니.’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사지에 던져 놓고, 사지에서 생사의 승부를 해 보겠다!’
하야마와 가신들은 무사의 결연한 각오를 말없이 무언으로, 온몸으로 보여 주는 다카요시의 결심에 마음 한구석으로 숭고함이란 감정을 느꼈다.
숙연한 분위기가 막 일려는 찰나.
“훗.”
의외였다.
번주 류켄이 실소하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카요시.”
“핫!”
다카요시는 상체를 숙이며 양손을 뻗어 바닥을 덮은 다다미를 짚었다.
손가락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키고 살며시 손바닥을 띄운 동작은 주군이자 번주인 류켄에 대한 극고의 공경을 나타냈다.
다카요시는 무언으로 순종을 말하는 듯 머리를 숙였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네 눈에는 번주인 나 타이라노 류켄에 대한 충성심이나, 가주로서 요시미츠가에 대한 애정이 보이지 않는다.”
다카요시는 귀에 들린 번주 류켄의 말에 흠칫거리며 당황하는 옅은 기색을 띠었다.
그와 같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급히 외쳤다.
“도노!”
다카요시는 목청을 높였다.
하야마를 비롯한 가신들은 번주 류켄의 말에 당황하며 일제히 류켄을 쳐다보았다.
번주 류켄은 거침이 없었다.
머리를 숙인 다카요시를 노려보며 성난 목소리로 질타를 퍼부었다.
“네게는 오직 네 눈을 그리 만든 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밖에 없다. 아울러 할복한 네 형 키요하라의 뒤를 따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면에 숨어 있다. 내 말이 틀리느냐? 다카요시!”
냉철한 목소리였다.
하야마와 가신들은 움칫거리며 일제히 다카요시를 바라보았다.
불쾌하다.
그들의 시선에 그와 같은 감정이 깃들었다.
무사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다카요시가 이용하려 한 듯한 배신감을 느꼈다.
‘고노오!’
하야마는 진중하게 목소리를 깔며 눈을 치켜떴다. 화를 내기 직전이었다.
번주 류켄은 하야마를 향해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하야마!”
낮으나 엄중한 목소리에 하야마는 움찔거리며 번주 류켄을 보았다.
‘욱!’
하야마는 눈에 보이는 번주 류켄의 성난 눈동자에 황급히 머리와 상체를 숙였다.
복종과 충성을 나타내는 몸짓이었다.
끼어들지 마라!
번주 류켄의 확고한 주의에 가신들은 분분히 머리를 숙였다.
무거운 침묵이 좌중을 내리눌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질식감이 서서히 자리한 이들을 휘감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류켄은 시선을 돌려, 머리 숙인 다카요시를 보았다.
“감히 나 타이라노 류켄을 네놈이 희롱하고자 하는 것이냐? 다카요시!”
성난 외침이었다.
네 본심을!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라.
외침에는 번주 류켄의 그런 속내가 깃들어 있었다.
다카요시는 머리를 숙인 채 뒤돌아보았다.
“문을 열어라.”
그 말에 번주 류켄과 가로 하야마 그리고 가신들이 어리둥절했다.
모두의 시선이 열리는 문으로 향했다.
서서히 열리는 문.
스르륵.
방바닥을 살며시 덮는 긴 장옷을 여미며 한 여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사박사박.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짙고 검은 눈썹을 그렸으며 눈썹 위에 미인 점을 찍듯 두 개의 점을 찍은 여인은 샤머니즘적인 느낌을 주었다.
가로 하야마는 방으로 걸어들어 오는 여인 요시미츠 나나에의 모습에 발끈했다.
그 자신의 딸이자, 죽은 다카요시의 형 키요하라의 아내다.
시집을 가면서 성이 요시미츠로 바뀌었다.
“감히 주군과 가신들이 번의 정사를 논의하는 곳에 허락도 받지 않고 여인네가 들어오다니!”
무례하다.
주군을 욕보이는 것이냐?
하야마는 자신의 딸과 다카요시에게 성냈다.
번주 류켄이 다카요시에게 요시미츠가의 가독을 승계하라 했다.
그것은 다카요시가 요시미츠가의 가주가 됨을 의미하며, 요시미츠가에 속한 모든 것이 다카요시에게 귀속됨을 뜻한다.
죽은 형의 부인 요시미츠 나나에는 다카요시의 소유가 되었다.
키요하라가 요시미츠가의 가주였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꽃에 주인이 생기면 당연히 그 소유권은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간다.
번주 류켄은 다카요시에게 가독 승계를 명하며 형수 나나에를 취하라 명했다.
주군의 명은 절대적이다.
그런 이유로 가신인 다카요시는 공석이 된 요시미츠가의 가주 위를 승계하며 형수 나나에를 자신의 여인으로 취하였다.
나나에는 말없이 무릎 꿇은 다카요시의 좌측 뒤, 두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양손으로 장옷의 옷깃을 쥐고 천천히 방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손을 내밀어 방바닥에 깔린 다다미를 짚으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차분하고 단아하며 공손한 자태가 명가의 여인다웠다.
하야마를 필두로 가신들이 오직 남자들만의 공간인 번의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 나나에가 나타난 것에 성난 표정을 지었다.
“이 무슨 무례인가? 다카요시.”
“주군을 업신여기는 것이냐!”
“할복의 죄임을 모르느냐?”
꽤 시끄러웠다.
번주 류켄은 심중 당혹감을 느꼈다.
말없이 머리 숙인 나나에와 다카요시를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이놈이!’
감히 다카요시가 자신에게 승부를 걸어왔다.
일찍이 하야마의 딸인 나나에를 갖고 싶었으나, 이미 하야마가 다카요시의 형 키요하라의 여인이 되기로 약혼이 되어 있었다.
주군이 가신의 여인을 탐하거나 강제로 취하는 것은 가신들의 결속과 충성심을 해치는 일이라 류켄은 자신의 마음 깊이 나나에에 대한 욕구를 파묻었다.
그런데 다카요시가 그와 같은 자신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나나에를 눈앞에 내놓았다.
번주 류켄은 매우 당혹스러워 혼란을 느꼈다.
그사이 하야마를 비롯한 가신들이 엄히 다카요시와 나나에를 꾸짖었다.
“다카요시, 왜 입을 다물고 있느냐?”
“설명해라, 다카요시.”
성토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