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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서 있던 장 씨가 몸을 숙여 무엇인가를 쥐더니, 땡중에게 뛰어갔다.
타닥.
언제 챙겼는지, 오른손에 술병을 든 것이 뇌물을 먹이려는 모양이다.
‘참 잘한다, 잘해.’
고려 시대의 승려는 신분이 상류층이고 지식층으로 여겨졌다.
신분이 중세 교황청의 성직자와 유사하다.
장 씨는 중의 곁에 가더니 손에 쥔 술병을 슬쩍 내밀었다.
“헤헤. 해심 스님.”
“히이이.”
해심이라는 중은 술기운에 그런지 활짝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리와 짱돌이 겁먹은 얼굴로 슬금슬금 이규보의 뒤로 움직였다.
두 남녀의 기척에 난 어리둥절했다.
‘왜 저래?’
그사이 장 씨는 중에게서 떨어져 천막으로 걸어갔다.
해심은 조심스레 움직이는 나리와 짱돌을 보더니 버럭 소리쳤다.
“네 이 연놈들아! 천한 것들이 예가 어디라고 얼쩡거리느냐?”
“힉.”
나리와 짱돌은 화들짝 놀라며 이규보의 등에 바짝 붙었다.
“죄, 죄송해요, 스님.”
“잘못했구먼요.”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멀뚱거리며 돌아가는 추이를 보는데 이규보가 나섰다.
“나무아미타불.”
이규보는 양손을 가슴으로 들어 합장하며 머리를 숙였다.
해심은 흠칫했다.
“스님, 곡차가 과하신 듯한데.”
“허, 험.”
해심은 이규보가 점잖게 나오자 멋쩍은 듯 헛기침했다.
“오라비.”
나리가 날 쳐다보며 불렀다.
무심코 나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뭐라? 오라비?”
해심이 발끈했다.
이규보는 일순 곤혹스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스님.”
난 영문을 알 수 없어 가만히 해심을 보았다.
“네 이놈, 봐하니 천민인 듯한데 감히 머리를 빳빳이 들고, 게다가 머리쓰개까지 써!”
“스님.”
이규보가 주사를 부리려는 해심을 만류하려 했다.
난 불쾌감을 느꼈다.
‘이 양반이.’
사람 차별하는 것 같아 영 아니올시다다.
불교가 언제부터 사람을 신분으로 나누었는지.
‘하긴 뭐. 고려 불교가 귀족 불교이긴 하지만.’
난 언짢았다.
보기에 해심은 영락없는 땡중이다. 다른 승려들도 해심과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가능하면 해심만의 편견이었으면.
그사이
“네 이 연놈들!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해심이 언성을 높였다.
슬그머니 내 가슴속에서 성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승려면 승려답게 처신하시죠. 불가에서 금하는 술을 드셨으면 곱게 승방에 가서 누워 주무십시오. 그리고 사람은 왜 차별합니까?”
발끈한 탓에 내 목소리가 다소 사나웠다.
“뭐라?”
해심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보게.”
이규보가 급히 나서며 날 만류하려 했다.
“네 이놈!”
해심이 날 향해 소리쳤다.
“노오옴?”
내가 생전 처음 보는 해심이란 땡중에게 놈 자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
“이 양반이 날 언제 봤다고 대놓고 놈이야.”
성내며 한 걸음 나섰다.
“오라비.”
나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잡았다.
“뭐라? 천한 것이 어디서 행패야아아!”
“천한 거? 허어.”
난 어이가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규보가 급히 나와 해심 사이에 끼어들었다.
“스님…… 이보시게.”
나와 해심을 번갈아 보며 말리려 했다.
한편 천막에 서 있는 장 씨와 장정들은 싸우기 직전으로 보이는 이민호와 해심을 번갈아 보았다.
‘쯧쯧.’
장 씨는 혀를 찼다.
중도 중 나름이다.
해심은 최충헌의 큰며느리인 하동 정씨의 일가다.
큰 사고를 치고 무마할 요량으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그 때문에 서천왕사에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무뢰배였다. 복색만 출가한 중이지 시정잡배와 별 차이가 없다.
‘잘못 엮였군.’
장 씨는 이민호가 봉변을 당할 것이라 여겼다.
그사이 이규보는 나와 해심 사이를 중재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스님, 이러지 마시고.”
정중하게 해심을 대했다. 고려가 불교 국가라는 점이 이규보의 언행에서 절실히 드러났다.
“이보시게.”
“옆으로 비키십시오.”
나는 이규보에게 말하며 해심을 향해 두어 걸음 내디뎠다.
“아무리 땡중이라지만 정도가 있는 법.”
눈을 부릅떴다.
해심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뜩이나 현대에서 고려 시대로 떨어져 심사가 편치 않구만.
‘너, 잘 걸렸어.’
가려운데, 자발적으로 긁어 주려는 해심이다.
“뭐시라!”
해심은 눈을 치켜뜨며 성난 표정을 지었다.
고려 최고 명문이자 문벌 귀족 중 문벌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하동 정씨 일족이다.
본의 아니게 사고를 쳐 강제로 삭발하고 중이 된 것만도 분통이 터지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천민으로 보이는 놈이 감히 자신에게 시비질이다.
“네 이노옴!”
해심은 손에 쥔 두 개의 술병을 옆으로 집어 던졌다.
술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그와 함께 담긴 술이 맨땅으로 쏟아졌다.
해심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우락부락한 표정을 지었다. 한판 할 작정임이 한눈에 드러나는 모습이다.
“어따 대고 누구에게 놈이야, 이 땡중아!”
나는 고함쳤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다.
“어허. 왜 이러시는가?”
이규보가 날 말리려 했다.
“옆으로 비키시라니까요.”
왼손으로 날 막아서는 이규보를 옆으로 밀쳤다.
“이 때려죽여 마땅한 천한 것이.”
해심이 마주 고함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한 마리 성난 황소가 돌진하는 것처럼 사뭇 기세가 사나웠다.
“이크.”
이규보는 해심의 쇄도에 놀란 기색을 띠었다.
“오라비.”
나리가 뒤에서 소리쳤다.
“옆으로 비켜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리에게 말하며 왼발을 내밀었다.
스윽.
내민 왼발에 체중을 실으며 무릎을 구부렸다. 양손을 힘주어 말아 주먹 쥐어, 가슴 높이로 들었다.
이래 봬도 한 무술 하는 나다. 해심에게 꿀릴 것은 하나도 없다.
해심은 이내 내게 이르렀다.
“죽어.”
날 향해 오른손 주먹을 뻗었다.
히죽.
나는 실없이 웃으며 오른발로, 해심의 오른 발목을 걷어찼다.
로우킥.
빠악.
해심은 일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억!”
당황이라는 감정이 밴 외마디가 해심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멍청이.’
주먹을 휘두를 때 몸의 축이 되는 발을 살짝만 건드려도 공격은 무위로 돌아간다. 아울러 자세가 곧바로 흐트러지고 공격하기에 최적의 상황이 자동적으로 연출된다.
난 비틀거리는 해심에게 다가가 오른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쾅.
해심은 뒤로 나가자빠졌다.
“우아아아악.”
그 광경을 나리와 이규보를 비롯한 이들이 보고는 고함쳤다.
“꺄아악.”
“멈추시게.”
“안 돼에.”
나는 그들의 고함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해심.
이 작자가 넘어져도 곱게 넘어지지 않았다. 발이 무슨 가위인 양 넘어지며 내 다리를 걸었다.
그 바람에 뒤이어 나는 바닥에 모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무술?’
알아챘다.
해심이 상당한 무술 실력을 갖춘 자라는 것을.
콰당탕.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역공이라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서둘러 맨땅바닥에서 일어났다.
해심 역시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옆으로 비켜서며 오른발을 날 향해 내민 일자형 자세.
난 해심의 기세에 흠칫했다.
‘저건.’
그림으로 본 적이 있다.
수박희라던가?
고려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난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난 고개를 까닥이며 오른발을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발끝을 사선으로 젖히며 양손을 가슴으로 들어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조심해요.”
“스님, 그만하시지요.”
나리와 이규보를 비롯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주변에서 나와 해심이 싸우는 것에 사람들이 몰렸다.
나와 해심은 서로 뚫어져라 보며 눈동자를 번득였다.
우리 둘 다 상대방이 한 방(?)이 있다는 것을 공히 느끼고 있었다.
섣불리 공격해 들어갔다가 역공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나와 해심을 신중해지려 했다.
가만히 상대방을 주시하며 자세의 허실을 살폈다.
치고 들어가 상대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틈이 눈에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공격할 작정이다. 그 때문에 섣부른 공격을 자제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상대의 눈과 취한 자세를 조심스레 훑었다.
‘흠.’
상대 해심은 수박을 익혔다.
나는 수박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 이유로 조심스러워졌다.
‘저 몸에서 나오는 파워가 상당할 텐데.’
해심의 상체가 제법 탄탄해 보여, 힘이 상당히 셀 것 같다.
덩치에서 나오는 펀치력이 예상외일 것이다.
‘하지만.’
난 내심 미소 지었다.
씩.
덩치가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하체가 부실하다.
상체가 무거우면, 그 상체를 감당해야 하는 하체는 자연 약해진다. 더불어 움직임이 느려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