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8화 (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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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TV의 리얼 프로를 보면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출연자들이 10시간 넘게 생고생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서 있던 나리는 잽싸게 움직였다.

주위에서 용케 나뭇가지들을 주워 와 잠시 두어 번 부싯돌을 탁탁 부딪치더니 이내 모닥불을 피웠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피우는 일련의 과정이 나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허어얼!”

군에서 생존 훈련을 처음 받을 때, 제일 고생했던 것이 바로 불 피우기였다.

생전 처음이라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우라질.

어떻게 된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고려 중기 말로 타임워프 한 이래 ‘헐’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입에 올린다.

나리는 품속에서 제법 기다란 마麻를 꺼내 모닥불에 살며시 얹었다.

구워 먹을 요량이었다.

나리는 날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뭐랄까?

남장 소녀의 보이시한 매력이라고나 할까?

난 독자라 여동생에 대한 환상(?)이 있다. 친구들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이 한때 엄청 부러웠다.

“좀만 기다리시오, 아자씨.”

나리 녀석 신 나서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투리를 쓰는 것이 구수하다.

“아자씨는 무슨! 오빠!”

“예에?”

나리는 어리둥절했다.

난 피식 웃었다.

오빠라는 말보다 오라버니라는 말이 더 먹혀들 고려 시대다.

“오라비라고 부르란 말이다.”

“아, 야아.”

나리를 날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난 나리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다. 지금은 고려 중기 말. 무신의 시대다.

60년에 걸친 무신의 시대는 이전보다 더 살기 어렵다. 게다가 곧 몽고가 침입한다.

천민의 삶은 더는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양민이라고 해서 나을 것이 없다.

추수한 곡식 태반을 최충헌이 무신들과 함께 정사政事를 보는 도방都房에 군량미로 모조리 다 빼앗겼다.

교정도감敎定都監이라고 하던가?

엎친 데 덮친다고 흉년에 이은 기근이 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몽고의 침략이 있었다.

고려 전 국토를 떠돌며 유리걸식하는 이가 수십여 만 명에 달했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나는 와 있고, 지금 내가 마주 보는 활짝 미소 지은 나리의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망설였다.

지금의 시대에 나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지식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아는 지식과 다행히 챙겨 온 준상이와 상면이가 내게 생일 선물로 준 수동 충전기와 외장 메모리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난감해했다.

역사를 비틀어 버리면 미래가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다. 바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머릿속 한 구석.

차원의 이론이라고나 할까?

이미 정해진 흐름에서 돌연 흐름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생기면, 기존의 흐름과 다른 흐름이 창출된다.

그 시점을 시작점으로 새로운 차원이 생성되고 또 다른 역사의 흐름이 생긴다는 이론이 생각났다.

우주는 수없이 많은 차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실제로 맞는지는 모르겠다.

‘썩을!’

그저 이론일 뿐이다.

시간이 꽤 지났다.

나는 나리와 함께 모닥불에 앉아 나뭇가지로 구워진 마를 빼냈다.

후후.

입김을 불어 가며 마를 먹기 시작했다.

“윽!”

맛이 영이다.

나리는 날 보며 킥킥거렸다.

“오라비,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에요.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에요.”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얼굴을 찡그린 채 구워진 마를 조금씩 씹어 먹었다.

초근목피.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 속 거죽을 먹고, 들판의 풀로 배를 채우는 나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으로 씹던 것을 삼키며 몽고의 제1차 침략을 생각했다.

‘2차 침략 때 처인성에서 승려 김윤후에게 죽은 살리타이가 최고 지휘관이었지.’

요나라, 그러니까 거란 공략에 한창 매진하던 살리타이가 2대 칸인 오고타이의 명에 3만 대병을 거느리고 고려를 침략했다.

그것은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오랜 외교 관계를 염두에 둔 후방 정지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거란 패잔병이 고려로 들어오고, 고려 조정이 그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려가 수월하게 정복할 만하다고 얕잡아 본 정복 전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몽고의 고려 제1차 침략이 이루어졌다.

고개를 들어 시린 겨울 하늘을 보며 잠깐 연도를 생각했다.

젠장. 가물가물해.

‘그게 그러니까.’

잠시 뒤 나는 고개를 바로 하고 올해 열다섯 살이라는 나리를 보았다.

1차 침략이 일어나면 아마 나이가 서른여덟쯤 될 것이다.

‘그때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겠지.’

이것도 인연일까?

“나리야.”

“야, 오라비.”

마를 먹던 나리가 날 보았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네?”

나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나이 서른이 되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으로.”

나는 말을 하다가 멈칫거렸다. 나리가 알아들을지 모르겠다.

“나리야.”

“야아, 오라비.”

나리가 말똥말똥 눈동자를 굴리며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남악이나 동악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100년 동안 산에서 나오지 마라!”

나는 지리산과 금강산의 옛 지명을 언급했다.

“…….”

나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나리에게 가볍게 툭 말을 던졌다.

“네 나이가 30이 넘으면 아마 엄청난 전쟁이 일어날 거다.”

“야아아아아! 전쟁이라고라!”

나리는 엄청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그게 무슨 말이신가? 전쟁이라니?”

내 왼쪽 뒤, 서남방에서 중년인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나리가 내 왼쪽 어깨 너머를 보았다.

난 그사이 흠칫하며 뒤돌아보았다.

중년인.

고갯길에서 보았던, 짱돌과 메기가 털려고 한 자가 서 있었다.

갈 데가 없는 유자라며, 잠시 천민촌에 머물고 싶다는 의사를 촌장 여지에게 밝혔단다.

천민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신분이라, 노인 여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내가 칼에 베였을 당시, 사람을 죽이려고 한 짱돌과 메기를 엄히 야단쳐 마을로 함께 날 옮겼단다.

나로서는 빚 아닌 빚을 진 사람이다.

중년인은 날 향해 걸어오며 얼굴에 진한 의구심을 띠었다.

3장

나와 중년인 그리고 나리는 모닥불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조금 전에 자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가?”

중년인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뉘십니까?”

“아…….”

중년인은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기색을 지었다.

나리는 나와 중년인을 번갈아 보았다.

천민이라 태생적으로 눈치를 보는 삶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난 슬쩍 나리를 곁눈질하며 눈에 보이는 나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중년인을 엄청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다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녀석이 얼마나 당했으면, 사람을 저리도 무서워할까?

짠하다.

21세기의 교육을 받은 내게 천민이니 귀족이니 하는 차별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만민은 평등하다!

그것이 내가 아는 상식이다.

“난 백운거사라고…… 그저 그렇고 그런 자지. 허허. 술과 거문고 등을 좋아하는…….”

“배, 백운거사! 하, 하면 춘경春卿 이규보!”

나도 모르게 머리에 떠오른 것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앉아 있는 중년인이 동국이상국집을 쓴 그 이규보라니. 놀랄 노 자다.

“어?”

이규보는 기함할 듯 놀랐다. 대경실색하며 바라보았다.

“자, 자네…….”

아차 했다.

‘이런 망할!’

아무래도 실언한 것 같다.

“오라비, 저 나리를 아셔라?”

나리가 내게 물었다.

“으, 으응.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다.

“자네, 도대체 어디 사는 뉘기에 날 아는가?”

이규보가 내게 물었다.

‘젠장맞을!’

현재의 고려 왕은 강종.

내가 아는 이규보는 2년인가 3년 만에 죽은 강종 사후에 등극한 고종의 제위 3년 차에 참관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다.

‘가만. 최충헌이 일흔한 살로 끽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며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일각에서는 이규보가 최충헌에게 아부했던 희대의 아첨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관직에 나가기 위해 최충헌을 찬양, 숭배하는 듯한 글을 지었다. 그 덕에 전주목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관직에 나갔다.

그 이전에는 과거에 급제하였음에도 관직으로 나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자네 어디에 사는 뉘인가?”

이규보가 내게 재차 물었다.

난 쳐다보며 신중하게 말을 건넸다.

“아, 예. 저는 양광도 광주에 살았던 이씨 집안의 자손으로 이민호라고 합니다.”

“하면, 한주?”

“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고려 태조 23년에 한주가 지금의 광주로 지명이 바뀌었다.

내 본향이라 잘 안다.

이규보는 기이하다는 눈으로 날 보았다.

난 속으로 뜨끔했다.

‘이 양반이.’

혹시 무슨 이상한 눈치를 챈 것은 아닐까?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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