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7화 (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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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이름 모를 계곡.

난 계곡가 바위에 앉아 가만히 앞을 보았다.

제법 세찬 물살이 흐르는 겨울 계곡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변 지면에는 살며시 눈이 깔렸다.

그 주변에 앙상한 마른 가지를 드러낸 소나무들이 총총히 서 있었다.

흐르는 계곡 언저리에는 살얼음이 제법 끼었고, 세찬 물살이 흐르는 중앙은 보기만 해도 시릴 것 같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물살이 계속 흐르는 까닭에 얼음이 끼지 않은 것 같지만, 그보다는 중앙이 꽁꽁 얼 정도로 날이 춥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 같다.

“아!”

나는 머리를 숙이며 양손을 들었다.

손으로 머리를 한 움큼 쥐어뜯으며, 겨울 맨땅바닥을 보았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야아아아!”

목이 쉬어라, 크게 외쳤다.

내가 앉아 있는 계곡으로 외침이 메아리쳤다.

그때.

“아저씨, 안 추워요?”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난 몸을 미미하게 양쪽으로 움직이며 손을 내리고 머리를 바로 들었다.

뒤돌아보았다.

보이시한 중성의 미(?)를 풍기는 남장 소녀 나리.

나는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나리를 보며, 며칠 전에 노인 여지에게 물어본 것을 생각했다.

“왜 손녀 이름을 나리라고 했습니까? 소녀인데 남자처럼 옷을 입힌 것이 영.”

조부이자 천민촌의 촌장인 노인 여지의 답변은 날 당혹시켰다.

“높으신 분들을 나리라고 부릅니다. 일찍 부모를 여윈 나리가 복을 많이 받으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노인 여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와 함께 있던 중년인은 유자儒者였다.

천민과 신분이 달라 노인 여지는 공대했다. 나에게 말하는 어투를 보면 노인 여지는 나를 어정쩡하게 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좋다.

나보다 한참이나 연상인 노인이 내게 공대하는 것은 영 거북하니까.

암튼 난 노인 여지의 답변에 어이 상실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무슨 손녀 이름을 그렇게 무성의하게 짓는지, 잠시 머리를 돌려 내가 기억하는 지식을 끄집어냈다.

이해가 된다.

고려 시대에 천민들은 성도 이름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전해지는 기록을 보면 성은 없지만 평량이란 이름을 가진 종이 있었다.

종이라는 것이 조선 시대와 고려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 최하층 계급 중 하나인 것은 불변이다.

도망친 노비를 쫓는 추노꾼이 있는 것처럼, 도망쳐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종들이 적잖았다.

평량도 그런 종들 중 한 사람이었다.

도망쳐 나름 재물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망한 주인이 일가족을 데리고 평량을 찾아왔다.

“넌 우리 집 노비야. 노비의 재산은 곧 주인인 내 재산이라고. 알겠어?”

평량은 재산을 가로채려는 주인과 일가족을 죽여 버렸다.

살인은 결국 드러났고, 평량은 엄격한 형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천민이라고 해서 이름을 막 짓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성이 없는 것은 아마 확실한 것 같다.

‘그자들도.’

내게 검을 휘둘렀던 두 남자 짱돌과 메기.

메기가 내가 아는 어류 메기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음의 다른 뜻을 가진 것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려 시대에도 메기가 메기로 불렸는지 내 지식 범위 밖이다.

암튼 천민들 이름이 엉망진창인 것은 맞다.

난 나리가 남장을 한 이유를 노인 여지에게 재차 물었다.

“봄가을로 왜구들이 기승을 부린다네. 그 악귀 같은 놈들은 남자들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귀한 양식과 재물을 마구 약탈해 가지. 여자들을 강간, 납치해서 팔기도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네. 놈들의 패악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어쩌겠는가? 남장을 하면 빠르게 도망치기에도 좋고, 죽을지언정 끌려가는 일은 없을 테니, 마지못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네.”

남장의 이유가 왜구 때문이었다.

왜구가 봄가을로 출몰한다는 노인 여지의 말을 듣는 순간 바다가 멀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고려 말 왜구가 가장 기승을 부릴 당시, 왜구의 배 한 척당 40~50명이 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통상 대마도와 규슈 북부 그리고 히가사나카 시코쿠 해안가에 사는 쪽발이 놈들이 왜구가 되어 한반도로 쳐들어온다.

가을 추수로 거둔 양곡을 약탈, 겨울을 보낸 후에 봄이 오면 다시금 한반도로 약탈하러 오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많을 때는 왜구의 수가 몇만 명에 이르렀다는 고려사 기록도 있다.

노인 여지의 대답에 난 속으로 오만상을 지었다.

사학과라 잘 안다.

전해지는 기록에 왜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 시대다.

당시 신라가 왜구로 인해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섰고,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의 광개토 태왕이 왜구를 물리쳐 신라를 구했다는 기록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가만 있자. 내가 알기로 그 당시는 5세기였으니까 대략 400년쯤 될 테고.’

내가 있던 2015년까지 아마 못해도 1,600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는 일본이란 족속에게 언제나 당하기만 했다.

왜구가 기승을 부린 것은 조선 초까지 이어졌으니까. 그리고 임진왜란에다가 경술국치 그리고 내가 조선 중기 말로 오기 전에 일본 총리 아베 거시기 새끼가 개지랄 염병 떤 것을 생각하면.

‘아, 스트레스!’

기껏해 봐야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한 것이 유일한 응징이다. 하지만 힘들게 대마도를 정벌하고도 고대로 내버려 두고 철군했었다.

세종 할배가 후손들이 일본 쪽발이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쪽발이 시키들에게 고통을 당한 것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우우우. 쪽발이 시키들!’

차라리 확 멸종되어 버리면 얼마나 좋아. 일본 열도를 우리가 꿀꺽하면 곧바로 태평양이 활짝 열리는데. 잘하면 우리가 해양 강국이 될지도 모르는데.

암튼 지간에 일본 시키들은 우리에게 도움이라고는 쥐뿔도 안 되는, 싸그리 태평양에 처넣어 버려야 하는 족속들이야.

사이좋게 지내기는 개뿔이!

얼마나 왜구가 기승을 부렸으면 차라리 손녀가 죽을망정 끌려가는 것을 막으려고 남장까지 시켜?

손녀에게 남장을 시키는 조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노인 여지가 남장 소녀 나리에 관해 내게 말해 주었다.

“나리의 부모도 왜구에게 당했다네. 아들놈은 죽고 며느리는 왜구들에게 끌려가, 내 손으로 저 어린것을 지금까지 키웠는데.”

말하는 노인 여지의 그늘진 얼굴에서 깊은 슬픔과 체념이 진하게 묻어났다.

‘아우우우! 진짜!’

엄청 열 받았다.

미래나 과거나 쪽발이 시키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만 주는 더러운 인종들이다.

멸종!

지구상에서 화악! 지우개로 지우듯이 깔끔하게 없애 버렸으면 참 좋겠다.

내가 무슨 인종차별주의자라서, 국수주의자여서가 아니다.

부모 형제자매를 한번 잃어 보라.

쪽발이 시키들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하는 놈의 아가리를 확 잡아 찢어 놓고 싶은, 아니 죽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안 느끼려야 안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미래의 사학자다.

무지몽매한 일반인들과는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이유로 왜구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지독하고 엄청난지 잘 안다.

장장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왜구로 인해 고통 받고 피붙이를 잃었다.

선조 25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이후, 약 320년이 지났을 때 우린 일본에 나라를 잃었다. 내가 살았던 2015년까지 일본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 아 새키들은 잘 먹고 잘 산다. 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해 주는 빵빵한 경제력을 가졌다.

그 경제력도 알고 보면 우리가 동족상잔의 전쟁 6.25를 벌일 때, 한반도에서 북한과 중공군을 상대로 싸운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군수 물자를 생산 및 보급하면서 일으킨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죄다 우리를 괴롭히고, 빨대를 깊숙이 꽂아 등골과 피땀을 쭉쭉 빨아 먹어 온 일본 족속들.

그런데 지금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떵떵거리며 지 잘났다고 기승을 부린다.

아베 그 작자를 필두로 우익이라는 세이들이 뭐라고 개지랄을 떨었던가?

“종군 위안부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 일본이 관여되었다는 증거가 없다. 다 조작이다.”

“한국은 어리석은 나라다.”

“우리 대일본국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다.”

“왜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일을 계속 사과하라고 요구하는가?”

“우리가 없었다면, 우리가 한국 제품을 사 주고 각종 설비와 자본재를 공급해 주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이 말하는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우리 일본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날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개지랄 염병을 떨어 왔지 않는가?

피해자는 우린 어떠했는가?

생각만 해도 분통이 절로 터진다.

“염병! 보복은커녕 화났다는 제스처 하나 제대로 못 취하고 맨날 빌빌거리기만 하고.”

쪽발이 시키들에 대한 보복은 필수가 아니라 필연이다. 지구상에서 일본인이란 인종 자체를 확실히 박멸, 멸종시켜야 한다.

분노?

NO!

천 년이 넘는 세월과 시간 동안 계속 당해 온 피해자의 쌓이고 쌓인 증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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