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6화 (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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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인은 내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허무맹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무슨, 지금이 어떤 시댄데 산적? 풉!”

이럴 때는 가볍게 웃어 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암.

두 남자.

짱돌과 메기라는 두 남자는 괴상망측한 옷을 입은 이민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신들보다 어려 보인다.

웃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들을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그렇다.

짱돌과 메기는 발끈했다.

이민호가 자신들을 비웃는다. 그리 여겼다.

“이 자식이.”

“얀마. 너 죽고 싶어?”

자신들보다 나이도 어린놈이 비웃다니.

짱돌과 메기는 성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낡을 대로 낡은 칼을 이민호에게 내밀었다.

험악한 언동이었다.

중년인이 이상한 복색을 한 이민호를 쳐다보았다.

“이보시게. 목숨은 하나뿐이네.”

주의를 주려 했다.

난 대꾸하지 않았다.

깨끗이 무시하며 내게 검을 내민 짱돌과 메기를 향해 돌아섰다.

“나, 참. 썰리지도 않는 드라마 소품을 들고……. 이봐요. 장난치지 말고.”

두 사람은 나와 그리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드라마 촬영장에 와 있는 것 같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두 사람에게 교통편을 물어보았다.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목숨이 몇 개야?”

짱돌과 메기는 이민호를 향해 고함쳤다.

화난 모습이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이민호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입은 옷도 그렇고, 말하는 말투도 난생 처음 듣는다. 게다가 건방지다.

“이보게. 저들은 칼을 들었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네.”

중년인은 이민호가 행여나 짱돌과 메기에게 해를 당할까? 염려했다.

난 중년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엑스트라일 게 뻔한 짱돌과 메기의 장난(?)에 발끈했다.

난 짱돌과 메기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면전에 서며 고함쳤다.

“이봐요. 당신들 지금 영화 소품 들고 뭔 수작을 부…….”

일순간.

“이 노무 자슥이.”

“너어!”

짱돌과 메기가 손에 든 낡을 대로 낡은 칼을 높이 들었다.

겁을 줄 요량이었다.

실제로 이민호를 벨 생각은 없었다. 칼이 이민호를 향하며 바람을 갈랐다.

그사이.

“어쭈. 베 봐. 베어 보라고. 썰리지도 않는 영화 소품 가지고.”

난 짱돌과 메기를 향해 크게 두 걸음을 내디디며 고함쳤다.

과감하게 상체를 내밀었다.

일순.

짱돌과 메기가 휘두르는 칼에 나 스스로 몸을 들이댄 꼴이 되고 말았다.

서, 서억.

대번에 입은 옷이 잘리고 살이 베였다.

날카로운 날이 배를 베며 스쳐 지나가는, 몸이 절로 움찔거려지는 서늘한 날이 주는 차가운 느낌에 난 멈칫거리며 크게 놀랐다.

“허어억.”

이내 격한 통증과 아픔이 일었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짱돌과 메기를 바라보았다.

“써…… 썰리네.”

썰린다.

영화 소품이 아니라 진짜 칼이다.

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꽈당.

칼에 베인 아픔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가물거리는 의식 사이로 중년인이 내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뭔가 따뜻한 것이 내 몸을 훔쳤다.

기분 좋다.

뭐라고 할까?

따뜻한 온수에 피곤한 몸을 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노곤 노곤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몸이 살며시 부양하는 듯한 느낌이다. 문득 두 사람이 내게 칼을 휘두르던 기억이 났다.

그와 함께.

“아아악!”

난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아! 뜨거. 뜨거어어어!”

흡사 인두로 지지는 듯한 아픔에, 나는 일어나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두 노소가 방바닥에 앉아 뛰는 이민호를 올려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예순은 넘은 듯 보이는 백발이 무성한 노인 여지.

손녀인 듯 보이는, 남장을 한 열다섯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소녀 나리.

노소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방방 뛰는 이민호를 무슨 괴물 보듯 주시했다.

“할아버지, 저 사람 칼 맞은 사람 맞지예?”

“그, 글쎄다.”

여지는 손녀 나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나는 손을 들어 벌거벗겨진 상체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상체에는 무슨 부황을 뜬 듯한 자국이 선명했다.

조금 전 일어날 때 내 몸에서 떨어진 것들이 생각나 바닥을 보았다.

“뜸.”

방바닥에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흩어진 쑥을 뭉친 작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칼에 베인 것이 뒤늦게 생각나 고개를 숙여 배를 보았다.

“어라?”

몇몇 상흔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거의 다 아물었다.

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에 낡고 허름한 황토방과 쳐다보는 두 노소가 들어왔다.

“여긴 어딥니까?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었던 겁니까?”

영문을 몰라 노인 여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요.”

귀에 들린 소녀 나리의 음성에 시선을 돌렸다.

이게 말이 돼?

“그, 그러니까 선왕이 희종이라 불린다 이거죠.”

“그렇다네.”

자신을 여지라고 밝힌 노인의 말에 난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한 충격을 맛보았다.

희종.

내가 아는 지식에 따르면 최충헌이 자신이 세운 신종을 폐하고 태자 희종을 옹립했다.

그런데 그런 희종이 다시금 폐위되고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면 지금의 왕은 고려 22대 왕인 강종 왕오일 것이다.

‘가만 있자. 내시낭중 왕 머시기가 최충헌을 궁에서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었지. 당시 도방의 무인들이 최충헌을 구했고, 열 받은 최충헌이 왕 머시기를 신종이 사주했다고 해서 폐위하고, 한남공 정인지 뭔지 하는 왕족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김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그렇게 말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명색이 사학과 출신이지만 입대하며 몇 년의 공백이 생겼다.

그동안 아는 것을 상당히 많이 까먹었다.

연도는 내가 아무리 사학과라지만 진짜 잘 외워지지 않는다.

몇몇 중요한 것만 조금 기억이 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입을 쩌어억 벌리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나는 2015년 늦봄의 서울에 있었는데.

Oh! My God!

백 투 더 고려 무신 정권 시대?

지저스!

아니지, 디저스!

내가 고려 무신 정권 그것도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시대로 타임 워프하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충격을 추스르고 내게 닥친 황당하고 엄청난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장장 사흘이 걸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최충헌의 시대로 오게 되었는지.

‘그래!’

머릿속에서 연구소 지하 100미터에 있던 가속기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가속기가 주원인인 것 같다.

연구소가 무너지며 가속기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내가 고려에 와 있는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외에 달리 갖다 붙일 그럴싸한 이유가 없다.

“니미를!”

난 욕하고 말았다.

휴대폰에 남겨진 준상이와 상면이의 메시지.

난데없이 북한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연구소가 폭격을 받은 것 같다.

지난 사흘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내 몸이 이상해졌다.

여지라는 천민 마을의 촌장이 그랬다.

“닷새 만에 일어났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네 배의 상처가 그동안 깨끗하게 아물었네.”

엄청난 상처 치유력과 회복력에 여지라는 노인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이 마치 날 해부해 보고 싶은 듯 보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고려 중기 말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암튼 노인 여지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보았다.

괴인.

그런 존재로 보는 것 같아, 난 찝찝했다.

노인 여지는 짱돌과 메기를 불러 나에게 사죄하게 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어떻게 도적질을 하려고 하는가? 게다가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엄청 화냈다.

“죄송하구먼요.”

“미안하드라고.”

짱돌과 메기는 내게 사죄했다.

순박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날 죽이려 칼을 휘둘렀던 자들이라 용서하기 어려웠다.

노인 여지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이며 거듭 사과했다.

“용서해 주시게.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겠는가? 그 만큼 우리네 형편이.”

노인 여지는 말끝을 흐렸다.

머리가 허연 백발인 노인이 머리를 숙이는 것에 나 몰라라, 화만 낼 수 없었다.

결국 모른 척하며 사죄를 받아들였다.

‘다른 시대도 아니고 고려 중기 말 최충헌의 시대라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조선 시대만 해도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산으로 들어가 화적패가 되었다는 기록이 실록 곳곳에서 보인다.

고려 시대라면 더할 것이다.

천민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려 중기 말 천민의 삶이란 인간 이하라는 것을 알기에 훌훌 털기로 했다.

속이 쓰리긴 하지만.

쩝.

어쩔 도리가 없다.

사죄하는 짱돌과 메기라는 두 작자를 그렇다고 대놓고 죽일 수도 없고.

‘젠장. 마누라와 아이들이 있는 가장이 아니라면.’

배고파 우는 아이들 때문에 그 짓을 했다고 다 큰 남자가 질질 짜다니.

울며 사죄하는 짱돌과 메기.

에라.

그래 내가 엄청 손해 보고 만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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