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5화 (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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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내부 깊숙이 자리한 DNA와 RNA가 덮치는 입자에 이상 반응하기 시작했다.

체내로 유입되는 입자는 DNA와 RNA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나선 고리의 하부가 산산이 흩어지고, 나선과 나선을 잇는 연결이 끊어졌다.

이민호는 그 충격에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흔히들 인체는 신비하다고, 작은 우주와 같다고 말하곤 한다.

생명의 본질?

살고자 하는 생명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둘 다 명확하진 않다.

딱히 이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무엇이 눈을 떴다.

이민호 내면에 있는 미지의 무엇은 입자로 인해 파괴된 DNA와 RNA를 복원시키려 했다.

DNA와 RNA는 급격한 변이를 일으켰다.

단절된 고리가 이어지고, 이전의 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구조의 DNA와 RNA가 광속에 육박하는 속도로 생성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새로운 구조의 DNA와 RNA는 삽시간에 이민호의 내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입자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민호의 신진대사에 깊이 관여하는 사이, 외부에는 다수의 연구원이 급히 연구소를 탈출하며 각 층에 설치되어 있는 폐쇄 격문을 닫아 버렸다.

“폭발하면 인근 30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날아갈 수 있어.”

소장은 매우 다급했다.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장님.”

“그들을 구할 시간이 없어. 폐쇄하라면 해에에에!”

몇몇 연구원이 탈출하며 긴급 폐쇄를 반대했지만, 소장이 강력하게 압박을 가해 어쩔 수가 없었다.

소장에게 동조한 몇몇 연구원이 그만 연구소를 폐쇄하는 비상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말았다.

그사이 지하를 가득 메운 입자들로 말미암아 지하 100미터의 공간과 시간의 두 축이 이상 반응 하기 시작했다.

차원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X와 Y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X축의 시간과 Y축의 공간 사이에는 대각의 상승 곡선이 늘 유지된다.

예를 들어 공간 좌표가 10이라면 시간 좌표 역시 10으로 비례한다.

공간 좌표가 15로 변동하면 자동적으로 시간 좌표 역시 15로 변동하여 균형을 맞춘다.

반대로 공간 좌표가 5가 되면 시간 좌표 역시 5가 된다.

만약 공간 좌표가 5인데 시간 좌표가 10이라면 차원이 붕괴되는 상황이 생긴다.

각 입자들은 우주 생성 초기의 상태를 만들어 내는 까닭에 지하 100미터의 공간 좌표가 흔들리자 시간 좌표 역시 흔들렸다.

조짐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점이었다.

점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콩알만 해졌다가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로 불어났다. 이내 테니스 공 크기가 되었고, 축구공 크기로 되었다가, 삽시간에 애드벌룬 크기가 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와 함께.

슈우우욱.

검은 구멍은 지하 100미터 터널과 접한 인근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콘크리트 더미와 각종 집기 그리고 자잘한 용품들 등.

일련의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며 구멍으로 스며들듯 빨려 들어갔다. 의식을 잃은 이민호 역시 빙글빙글 몸이 돌며 검은 구멍으로 향했다.

구멍은 이민호를 빨아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천장과 바닥을 뜯어내듯 마구 빨아들였다.

그로 인해 천장의 붕괴가 가속되었으며, 바닥에 거미줄 같은 금들이 갔다.

쩌쩌쩍.

그리 오래지 않아 금이 간 바닥의 콘크리트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벗겨진 콘크리트는 창졸간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뒤를 바닥 아래에 있는 엄청난 양의 흙이 뒤따랐다.

지하 100미터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80미터, 60미터…… 10미터.

단계적으로 폐쇄된 연구소가 지하로 함몰되었다.

마치 지하 핵폭발 실험이 일어난 것처럼 사방 몇백 미터가 지하로 푹 꺼졌다.

둥근 원형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았다.

2장

겨울 삭풍이 휑한 고개를 훑었다.

휘이이잉.

고개 우측은 급경사의 언덕이었다.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나무들이 언덕을 가득 메웠다. 주위 지면은 잔뜩 내린 눈으로 뒤덮였다.

언덕 좌측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도끼로 내리찍는 듯한 가파른 경사인 데다가 상당한 크기의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자칫 떨어질 경우,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다.

고갯길에 마주 선 세 남자.

남쪽에 서 있는 남자, 중년인은 머리쓰개를 쓰고 두루마리가 생각나는 긴 장옷을 입었다.

수염이 턱을 뒤덮은 중년인의 얼굴은 유순하고 온화했다. 남루하고 허름한 중년인의 행색은 집안 살림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중년인의 맞은편에 서 있는, 손에 칼을 든 두 남자의 행색은 중년인보다 더했다.

얇은 홑옷을 입고 겨울 삭풍에 떠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하는 짓에 겁먹었는지 몸을 가늘게 덜덜 떨었다.

손에 쥔 매우 낡아 보이는 칼 역시 떨렸다.

양쪽에 날이 있으면 검이라고, 한쪽에만 날이 있으면 칼이라고 부른다.

두 남자는 어디서 갖고 왔는지 모르지만 칼을 들고 중년인을 위협했다.

“가진 것을 다 내놔.”

“목숨이 아까우면 다 두고 가.”

두 남자의 고함에 중년인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오랜 흉년과 기근으로 도처에서 도적과 화적패들이 횡행했다.

마주한 두 남자는 산적인 듯한데, 뜻밖에도 순박한 면이 엿보였다.

중년인은 정중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가난한 사람이오. 가진 것을 내놓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니 그만 보내 주시오.”

“닥쳐.”

“없으면 옷이라도 벗어.”

두 남자의 고성에 중년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허.”

중년인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

“우와아아아악.”

난데없이 당황이라는 감정이 밴 비명이 우측에서 들렸다.

중년인과 두 남자는 움칫하더니, 거의 동시에 우측 언덕을 돌아봤다.

떼구루루.

누군가가 눈발을 구르며 고갯길로 떨어졌다.

“아아악.”

삽시간에 고개 바닥에 이르며 처박힌 자세로 사지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한 남자.

“뭐, 뭐야?”

“글쎄.”

두 남자.

천민인 까닭에 이름이 없는, 짱돌과 메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년인은 처박힌 남자, 이민호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허!”

괴상한 옷차림이었다.

알록달록했으며 머리는 싹둑 깎은 것이 승려 같았다. 민머리를 미처 다시 밀지 못한 것 같아, 그렇다고 승복을 입은 것도 아니라, 게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터라 알 수 없었다.

“뭐 이런 괴상하게 생긴 인간이 있데.”

“그러게 말이여. 난생처음 보는 잔디.”

두 남자는 처박힌 이민호를 바라보며 괴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

난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들었다.

흔히 삭신이 쑤신다는 말처럼 온몸이 욱신욱신거렸다. 몸이 누군가에게 대판 얻어터진 것처럼 아주 엉망진창이다.

아파 뒈지겠다.

산악 생존 훈련을 한 1년 동안 받은 기분이다.

난 천천히 일어났다.

“끄으응.”

일어서며 팔다리를 살폈다. 그래도 어디 부러진 데는 없다.

난 움찔거리다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별안간 추워졌다.

“으…… 추워.”

온몸을 덮쳐 오는 삭풍이 주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 뭐야.”

“가진 거 다 내놔.”

귀에 들리는 말에 짱돌과 메기를 돌아보았다.

“허어얼.”

기막히다.

내 눈에 보이는 두 남자.

서른은 넘을 듯 보였다. 무슨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옷을 입었다.

하는 짓과 말이 영락없는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산적이다.

“이 사람들이.”

난 슬그머니 머리를 드는 짜증이라는 감정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보시게.”

점잖은 말이 들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어럽쇼.”

제대하기 전에 내무반에서 본, 제목이 무 거시기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이보게. 자네 누군가?”

중년인은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하다는 눈으로 날 보았다.

“저들은 말일세.”

중년인은 눈짓으로 짱돌과 메기를 가리켰다.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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