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307화
“왔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 소리가 공항을 가득 메웠다.
“꺄아아아악!! 은우 오빠!!”
“여기요! 여기 봐 주세요!!”
“여기 사인 좀!!”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팬들과 기자들이 공항에서 나온 에르제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는 양 손바닥을 들어 올려 흔들어 주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다시 한 번 큰 소란이 일었지만, 이번에는 기자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서은우 씨! 잠시 인터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이번에 초동 판매량이 60만을 돌파했는데……!”
“오늘 귀국한 소감 한마디만!”
그에게 기자들이 가까이 다가오며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바로 옆에 기립해 있던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물러서십시오.”
“촬영 제외하고, 인터뷰 등은 금지입니다.”
“지나가겠습니다. 비켜 주세요.”
그러나 기자들이 그런 말에 포기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경호원들을 넘어뜨릴 기세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물러나세요!!”
결국 뒤에서 따라오던 매니저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앞을 막아서야 할 정도였다.
“악!!”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여기자 한 명이 인파에 떠밀려 뒤로 크게 넘어져, 무릎을 딱딱한 바닥에 세게 찧고 말았다.
“으으…….”
그녀가 무릎을 부여잡고 신음을 내뱉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남자에게만 집중할 뿐.
하지만 반대로, 에르제가 그녀를 발견했다.
“……사람이 다쳤는데.”
날카로운 말에, 기자들이 움찔하며 좌우로 갈라졌다.
에르제가 넘어진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자, 경호원들이 그 안이 보이지 않도록 원을 만들어 감쌌다.
“괜찮아요?”
“네. 네! 괜찮, 괜찮아요!”
에르제가 자신을 신경 써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상당히 당황한 상태였다.
“피가 나네.”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왼쪽 팔로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반대편 손을 그녀의 다친 무릎을 향해 뻗었다.
“아.”
에르제의 엄지손가락이 다친 부위에 닿자, 그녀가 어깨를 움츠렸다.
슥―.
무릎 위로 살짝 흐른 피가, 그의 엄지손가락에 묻어 나왔다.
“피는 멈췄을 테니, 일어나셔도 돼요.”
“어, 어?”
그의 말대로, 더 이상 무릎의 상처에서는 피가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다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가 멍한 얼굴로 앉아만 있자, 에르제가 그녀의 손을 잡아 반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장비 때문에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음에도, 그에게는 손쉬운 일인 듯 보였다.
“아…….”
그가 살짝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를 떠나자, 원으로 둘러싸고 있던 경호원들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을 따돌리고 공항 밖으로 나온 에르제는, 혼자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오늘 차는 뭐예요?”
“그냥 밴입니다.”
“선팅은 되어 있죠?”
“네. 햇빛이 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
에르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시죠.”
경호원들은 에르제를 장 대표가 준비한 차에 태우고는, 그 뒤의 다른 차량에 하나둘씩 올라탔다.
차의 중간으로 이동한 에르제는 그대로 쓰러지듯이 자리에 앉았다.
푹신푹신한 쿠션이 잔뜩 쌓여 있던 여독을 풀어 주는 기분이었다.
“흐으으.”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에르제에게, 매니저가 운전석에 타며 말을 걸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고생했어, 라하임. 해외까지 따라온다고.”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인데요.”
라하임이라 불린 매니저는 멋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들었다.
“어디.”
차의 시동이 켜지자, 에르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얀 송곳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혀가, 그대로 엄지손가락을 핥았다.
스륵―.
그러자 새빨간 피가, 혀에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으음……. 별로네.”
그가 한숨 비슷한 소리를 뱉어 내자, 라하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로드. 아까 그 여자, 권속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냥 작은 배려.”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여자 이름이랑 어디 소속인지 확인해 봐.”
“예.”
“그리고 그 여자, 병원 가 보라고 해. 그대로 두면 조만간 쓰러질 것 같아.”
“알겠습니다.”
에르제는 양팔을 앞으로 쭉 폈다.
“끄으으. 오랜만에 멤버들 얼굴 보러 가 볼까.”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마치고, 몇 주 만에 모카 엔터테인먼트로 돌아가는 길.
그러나 차 바깥은 아직도 산처럼 몰려온 팬들이 공항 입구 쪽에 몰려 있었다.
그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는 라하임을 막았다.
“잠깐. 잠깐만, 출발하지 마.”
그렇게 말한 에르제는 창을 내려,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주 화답을 해 주는 팬들을 보며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예전에는 팬이라곤, 딱 한 명뿐이었는데.’
자신의 1호 팬이 되어 주겠다던 이는, 어느새 스탭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다고 들었다.
‘시간 참 빠르네.’
예전 뱀파이어 로드로서 살았던 2500년은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지금의 삶은 즐거운 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앞으로의 시간도, 분명 빠르게 흐를 것 같았다.
“가자.”
다시 창을 올린 에르제는, 기억에 잠기며 안대를 올려 썼다.
* * *
[ 토트윈 12주 연속 빌보드 1위 사수! ]
[ 토트윈 팬 사인회 개최. ‘모카 엔터테인먼트 경호 인력 배치에 최선을 다할 것’ ]
[ 모카 엔터테인먼트 새 아이돌 그룹 런칭, ‘토트윈 선배님들을 본받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포부 밝혀 ]
5년이란 시간이 지나 토트윈 멤버들의 나이도 20대 중 후반에 머무르게 된 무렵.
그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견줄 수 없는 수준의 위치에 올랐고,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토트윈 열풍이 불고 있을 정도.
어딜 가든 국빈 대접을 받을 정도로, 현재 토트윈의 위상과 인기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더 이상 위를 노릴 수 없는 곳, 그리고 또한 완벽하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그룹.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일지라도, 토트윈 내부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문제가.’
에르제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그들의 숙소 소파에 앉아, 널브러져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음악 방송 출연과 예능 출연을 겸한 뒤라 다들 지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책을 읽고 있는 민주혁이 상태가 나아 보였다.
‘……더 미룰 수는 없겠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어느덧 멤버들도 지구 기준으로 2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서서히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실감을 하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더 버텨 봐야 1, 2년이야.’
사실, 지금도 위태위태했다.
타고난 피부와 동안 얼굴이다, 라는 변명이 언제까지고 먹힐 수는 없었으니까.
메이크업으로 점철된 얼굴을 보는 팬들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멤버들은 매일같이 에르제의 맨얼굴을 보는 이들이었다.
아직은 ‘좀 이상한데’ 수준에서 머물러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윤치우랑 어젯밤에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그의 정체를 원래 알고 있었던 윤치우와 논의를 한 결과는 이것이었다.
― 멤버들이 놀라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싫어하게 되거나 밀어내지는 않을 것 같아. 이번 달 중에서 쉬는 날이 내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내일…… 말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에르제 또한 그 의견에 동의는 했다.
말을 하려면 지금뿐이라고.
하지만…….
‘지금같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타이밍에, 괜히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 멤버 간 불화나 이런 게 기사로 나오면.’
그렇게 되면 곤란해진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팬덤이 커버는 쳐 주겠지만, 리스크가 없지는 않으니까.
그들이 유명해질수록,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플랑과 세리나 그리고 라하임을 이용해 기자들의 접근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물샐틈없이 막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
“후우.”
숨을 푹 내쉰 에르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분위기를 알아챈 윤치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에르제가 나지막하게 뱉어 낸 목소리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멤버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데?”
민주혁이 안경을 벗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고민 있어? 아빠한테 해결해 달라고 해 줄까?”
그러고는 다짜고짜 도와주겠다고 말을 꺼냈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말해 봐. 끙끙 앓지 말고. 너 아까부터 좀 표정 이상했어.”
태현우의 말에 안단테와 민주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이미 깊은 생각에 빠져 고민하던 건 다들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리고 퍽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에르제는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나, 사실 뱀파이어야.”
“…….”
“……응? 뱀파이어면, 그 우리 세계관 이야기하는 거야?”
다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에르제를 쳐다보았고, 그는 말없이 손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야! 뭐 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태현우가, 에르제의 손바닥을 잡아챘다.
“빨리 치료…… 어?”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바닥 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았다.
가운데로 뭉쳐진 피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손바닥의 상처는 아문 지 오래였다.
“뭐……야, 이거 마술이야?”
“마술 아니고, 뱀파이어의 능력이야.”
“…….”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는 멤버들에게 에르제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왔어. 어쩌다가 서은우의 몸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서은우가 아니야.”
그리고 에르제는 1시간 넘게,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이건 윤치우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기에, 녀석 또한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언젠가 말을 해야 한다 생각했어. 나는 몇 년이 지나도 늙지 않을 거고, 너희들은 나이를 먹을 테니까……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동안은, 말할 엄두가 나질 않았어. 아니.”
에르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멤버들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사실 지금도, 너희들이 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줄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
“그렇지만…… 토트윈으로 지금까지 함께해 온 너희들을 계속 속이는 건 더……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 늦었지만, 솔직히 털어놓는 게 맞는다고…….”
그러나 에르제의 말이 끝나기 전에 민주혁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태현우는 말없이 웃었고, 안단테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달려들어 머리를 에르제의 품에 집어넣었다.
“어, 어?”
에르제가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를 내자, 멤버들 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뭐든 상관없어.”
윤치우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이야기했다.
“우리는 토트윈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품 안에서 안단테의 고개가 끄덕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태현우가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설마, 나 잘 때 내 피 빤 거 아니지? 아, 나 갑자기 빈혈 오는 것 같아.”
그러고는 이마를 짚고 풀썩 쓰러졌다.
동시에.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숙소 내에는 다섯이 내는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로드. 서은우는, 그의 부모와 함께 잘 지내는 모양입니다. ]
에르제는 라하임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스마트폰을 탁 접었다.
모든 게 완벽하게 끝이 났고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도 지금 해결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에르제가 멤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해.”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