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06화 (306/307)

제306화

306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유였다.

“난 옛날이야기에는 관심 없어.”

유토는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냥꾼에 관한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지구에서의 새 삶에 이미 적응한 뒤였고, 여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았다고 한다.

오직 돈.

그녀가 뱀파이어 사냥꾼 활동을 했던 이유처럼, 그녀의 목적은 돈이었다.

“지구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유토는 자신의 작곡 장비들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말했다.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 뭐든 했지.”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까지 했다고 한다.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좀 더 뛰어났기 때문에, 성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고도.

“그런데 말이야. 그 정도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더라. 그래서 이걸 시작했지.”

유토는 씩 웃으며 2번 트랙을 재생했다.

이번에도 카테이아 대륙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곡이었다.

“뱀파이어들을 괴롭히지 않을 때는 뭘 했겠어? 돈도 있겠다, 유흥에 많이 썼지. 그리고 그때 질리도록 들었던 게 이런 노래들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에르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쩌면, 내가 네 노래를 들었을 수도 있지. 물론 서로 알아보지는 못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말이야. 문제는 내가 노래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는 거야.”

“싱어송라이터라면서.”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노래를 잘하는 건 아냐.”

“사람들은 노래 실력 가지고 문제 삼진 않던데?”

“그건 내가 작곡을 워낙 잘해서 그런 거고.”

훗, 웃은 유토는 다리를 꼬며 앉았다. 그녀의 키를 덮을 정도로 커다란 의자였다.

“너는 카테이아 대륙의 멜로디라는 것을 알아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르잖아.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지난 1년간 지구의 분위기와 카테이아 대륙의 분위기를 섞는 데 주력했어.”

3번 트랙, 다음 곡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완성했지. 역시 무튜브에 올려 보니까 반응들이 좋더라고?”

“그러니까, 곡이 좋아서 노래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 거지.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란 말이야.”

“…….”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녀의 노래 실력을 문제 삼는 이도 있을 테니까.

아니라면 좋겠지만, 지구의 인간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유토의 노래 실력이, 프로 가수급은 아니니까.’

목소리가 좋고, 듣기 좋은 것까지는 인정할 만한 수준이었다.

“너도 대충 문제를 눈치챈 모양이네.”

“……그렇긴 한데, 사실 노래를 배우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잖아.”

“그것보다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

“시간을 아끼는 대신, 돈은 줄어들고.”

“뭐, 그건 틀린 말이 아니네.”

유토는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서 뭐든 했다고 하더니, 이럴 때는 돈을 포기하다니?

에르제가 의아한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그녀가 설명해 주었다.

“너, 생각보다 이 시장 구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가 봐.”

“나는 아이돌 전문이야.”

“……어, 응 그래.”

유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이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튼, 작곡가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할 건지, 말 건지 그것만 정해.”

“여기 왔다는 건 하려고 왔다는 뜻 아닐까 싶은데?”

“떠보기는. 너 내 정체 확인하려고 온 거잖아.”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그녀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빼먹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카테이아 대륙의 정서도 어느 정도 살려야 하는 곡이니까…… 이에 적합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거잖아 너는.”

“맞아.”

“그렇다면 카테이아 대륙 출신이면서, 음유 시인으로 활동까지 했던 뱀파이어 로드. 그리고 현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로 등극한 토트윈의 ‘비주얼 멤버’, 서은우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뭔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자화자찬을 늘어놔?”

“정산 비율.”

“어?”

유토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정산 비율 더 높여. 5대 5.”

“와! 양심 없어!! 기본 8대 2로 먹는 건 알고 있는 거지?”

“그런 건 몰라. 난 아이돌 전문이라니까.”

“하……!”

에르제의 발뺌에 유토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아무튼 5대 5.”

“7.5대 2.5!”

“5대 5.”

“7…… 7대 3!”

“5대 5.”

“아아! 진짜!! 오케이, 내가 여기까지 양보한다. 6대 4, 아니면 절대 안 돼! 나도 돈 벌어야지!”

“…….”

에르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나 때문에 천 벌 거, 억을 벌면. 5대 5여도 이득 아닌가? 나는 오히려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건데.”

에르제가 손가락 5개를 펴 보였다.

“역으로 3대 7을 제안해도 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해 줄까? 5대 5. 내 최대한의 배려야. 옛 추억을 되살려 준 것에 대한 보답.”

“……아아!!”

유토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좌절했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이 처참하게 흩날렸다.

“적당히 밑의 급으로 타협을 봤어야 했나? 2000년 넘게 로드로 굴러먹은 놈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다 들려.”

“들리라고 하는 말이거든?”

유토는 씩씩대며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오케이, 5대 5. 콜.”

에르제가 손을 내밀었고, 잠시 망설이던 유토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 * *

유토와 함께 곡 작업을 하는 시간은 꽤 길어졌다.

에르제 또한 카테이아 대륙의 작곡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기존의 곡들을 더욱 세밀하게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5대 5로 한 게 행운이었다는 거 인정할게.”

물론 에르제가 작곡에 어느 정도 참여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유토는, 순순히 그가 배려해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1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작업을 하고 앨범을 만드는 동안.

토트윈 멤버들의 개인 활동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예능에 나가서 활약을 한다든가,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솔로 활동으로 나선 태현우의 싱글 앨범 또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주 연속 1위, 그리고 빌보드 차트까지 입성.

현재 빌보드에서도 38위라고 하니, 조만간 10위대에 진입하지 않을까 예측 중이었다.

[ 봤냐!? ]

에르제는 태현우에게서 온 자랑 톡을 종료하고는, 미디 화면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기나긴 시간 끝에.

“끝났다아아아.”

에르제의 곡 또한 완성이 되었다.

총 3곡, 한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이 같이 준비되었기에 6곡으로 봐도 되지만…… 사실 가사만 바뀐 거라 상관없고.

“그러게, 끝났네.”

아무튼 ‘카테이아 플러스 지구’식, 곡이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에르제는 그동안 순수하게 유토의 작곡 능력에 감탄을 표했다.

분명 마녀 출신에 뱀파이어 사냥꾼 노릇을 하느라,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는 작곡에 관심도 없었을 텐데.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작곡 능력을 갖추게 됐다니.’

그녀의 돈을 향한 집착과 노력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센스와 재능이 출중했다.

에르제는 아직 녹음 작업이 끝나지 않은 곡을 감상하며 유토에게 말했다.

“이번 일 끝나고 말이야.”

“응?”

유토가 고개를 돌려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너, 우리 곡 전담해서 쓰지 않을래?”

“토트윈? 거기 안단테인가, 걔가 작곡하잖아?”

“녀석도 사람인지라, 모든 곡을 다 작곡하지는 못해. 나머지는 외주로 넘기거나, 좋은 곡 있으면 회사에서 받아 오는 형식이거든.”

“그러니까, 안단테랑 같이 파이를 나누란 말이야?”

“응.”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카테이아 대륙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이질적인 멜로디에서 오는 몽환적인 느낌과, 얼핏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악기 구성…….’

토트윈의 세계관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네가 오면, 토트윈도 완성이 될 것 같아서.”

“흐응. 나를 영입하시겠다?”

유토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생각 좀 해 보고?”

“……우리 회사 실장이 마녀니까, 통하는 것도 있을 거다. 생각해 보고 알려 줘.”

“그러지 뭐.”

유토는 킥킥대며 대꾸했다.

“일단, 이번 우리 합작품의 성적이 얼마나 나오나 보고.”

에르제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정식으로 에르제의 솔로 활동 싱글 앨범 ‘New World’가 발매가 되었을 때.

한국 시장과 일본 시장엔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일부러 실물 앨범은 그리 많게 풀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모조리 동이 났다는 연락이 왔고, 스트리밍 숫자는 4일 만에 천만 단위로 올라갔다.

“미쳤…….”

유토는 이 결과로 자신에게 들어올 돈을 생각하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에르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멤버들 얼굴 볼만하겠는데.’

기꺼이 훌륭한 성적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와 씨.”

방방 뛰어다니는 유토를 보며 에르제는 다리를 꼬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대로 일본 활동을 조금 더 하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

몇 달 만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토트윈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지.

매일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그들 또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성장해 있을 것이다.

‘빌보드, 연속 1위 기록은 못 깼지.’

그리고 그것은, 유토가 합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가 될 것이다.

에르제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 *

2달가량, 에르제는 일본 활동에 전념했다.

‘New World’에 수록되어 있는 3곡 모두 일본어 버전으로 공연을 했고, 일본 내에서 혼자 하는 팬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유명한 작곡가로 거듭난 유토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에르제.

두 사람의 합작은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한 곡만 더 만들자, 라는 유토의 말에 에르제는 추가적으로 곡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던 시기에 맞춰 돌아갈 수 있게 되긴 했다.

‘New World’를 제외하고 추가된, ‘Extra’의 발매가 이루어진 것도 어느덧 3일째.

“먼저 가 있을게.”

“나, 아직 생각 중이다?”

에르제는 유토에게 토트윈의 작곡가로 오라고 한 번 더 이야기하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생각 중이라고는 하지만 에르제는 그녀가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올 때 미리 연락하고.”

“아직 생각 중이라니까!”

“마중은 똑같이 내가 나가 줄게.”

“와, 사람 말 안 듣네.”

에르제는 손을 흔들어 작별을 건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 있었던 라하임이, 공항으로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

창문 너머로 일본 땅이 멀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이 가까워진다.

이제는 카테이아 대륙보다 더 익숙해진 곳을 눈에 담으며, 에르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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