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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05화 (305/307)

제305화

305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유토, 그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말했다.

다만 오늘 에르제가 일본으로 향했다는 것은 기사까지 나며 공공연하게 드러난 일정이었기 때문에, 공항에는 한국과 비슷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수많은 현지 팬들과 한국 팬들이 피켓 등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에르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밀면 안 됩니다!!”

경호원들이 진땀을 흘리며 팬들을 막았다.

‘음.’

그리고 에르제는 난감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매혹의 힘은 확실히 해외 팬들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렸고, 그 덕분에 빌보드 1위라는 기염을 토하게 도와준 것은 맞았지만.

‘이런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

일반적인 팬들보다 조금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는 것.

지금도 보라.

당장에라도 자신을 향해 뛰어들 것처럼 몸을 밀어 넣고 있지 않은가.

‘……후.’

하지만 한국의 팬들 또한 비슷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이렇게 극변하지는 않았다.

‘나라마다 특징이 조금 다른가.’

변화의 양을 따지자면, 미국 그리고 한국, 마지막으로 일본 순서로 심해진다.

‘어쩌면, 평소 억눌려 있던 제어 장치가 얼마나 강했느냐에 따라 다를지도.’

일본의 국민성을 생각해 보면 꽤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하며 에르제는 혈기를 운용해 그들에게 걸려 있는 매혹의 힘을 풀어 주었다.

뭐가 됐든 여기는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

“어떡해……!”

본능에 사로잡혀 있다가 풀려난 일본 팬들이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실례했다, 죄송하다는 말은 기본 옵션이었다.

‘쉽게 풀리기도 하는구나.’

에르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유토는 마중 나오겠다더니 어디에…….’

두리번거리며 나아갔지만, 유토의 이응도 보이지 않았다.

준비시켜 둔 차로 향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라하임. 유토한테 연락 한번 해 봐.”

“예, 로드.”

라하임이 명을 받들어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순간.

“그럴 필요 없어요.”

뒤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

에르제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분홍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이가 서 있었다.

다소 과감한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가 유토예요.”

“……아.”

에르제는 그녀와 손을 맞잡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토트윈의 서은우입니다.”

“에르제이기도 하고요?”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 유토는, 성큼성큼 걸어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키는 170cm가 훌쩍 넘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걸음걸이의 보폭이 상당히 넓었다.

“뭐 해요? 안 타고.”

“이봐. 지금 태도가 그게.”

“라하임.”

발끈한 라하임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지만, 에르제의 말에 금세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섰다.

“여긴, 카테이아 대륙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에르제와 관련된 일이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모양.

라하임이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고, 에르제는 그녀 옆자리가 아닌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이야, 나한테 뒷자리를 다 주는 건가요? 편하네.”

활기차게 웃으며 말한 유토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한국어를 잘 하네요?”

“아하핫.”

물어본다는 게 그거? 유토는 그런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 7개 국어 할 줄 알아요. 일본어 수준으로.”

훗, 하고 웃는 그녀를 보며 라하임이 얼굴을 구겼다.

“서은우 님께서는 13개 국어를 하십니다.”

“호오.”

유토는 눈을 빛내며 곧바로 프랑스어로 물었고, 에르제는 선선히 프랑스어로 대답해 주었다.

혹시 해외에 나갈 경우를 대비해 이곳저곳 많이 쓰이는 언어들을 영구적으로 기억해 두었는데, 막상 쓰이는 곳이 언어 배틀 하는 곳이라니.

“뭐,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에르제는 좌회전하는 차의 관성에 몸을 맡기며 말을 이었다.

“유토 씨가 쓴 곡, 다 자작곡인가요?”

“흐응, 혹시 표절이라도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죠.”

에르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유토가 쓴 곡은, 카테이아 대륙의 양식을 따온 곡들이었다.

에르제가 안단테에게 넘겨주었던 자신이 작곡한 곡들, 그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명백히 지구의 코드 진행과 멜로디를 사용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고, 지금까지 한 번도 카테이아 대륙의 방식으로 곡을 작곡한 이는 지구 역사상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

그렇기에 에르제는 조금 자극적인 대화로 이끈 것이다.

‘이대로 솔직하게 실토하면 좋을 텐데.’

하지만 유토는 싱긋 웃을 뿐.

“그런가아. 표절 증거는 있고요?”

다시 넌지시 이쪽을 떠보기만 했다.

‘……흐음.’

지구에서 단순히 특별한 사람이 이제야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카테이아 대륙 출신인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단계이기에, 카테이아 대륙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없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것을 끝으로 스튜디오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다.

* * *

유토가 작업을 하는 곳은 본인의 집이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장비와 설비는 충분히 갖춰져 있는 곳이었는데, 작업실이라고 부를 만한 장소는 따로 없는 듯했다.

그저 방 하나에 장비들을 모두 박아 넣고 작업하는 스타일인 모양.

방을 구경하는 에르제에게, 유토가 차를 한 잔 내왔다.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에르제는 차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상쾌한 감각이 입 안에 감도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괜찮네요.”

“다행이네.”

후훗, 웃은 유토는 장비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몸을 빙글 돌렸다. 이를 따라 의자도 빙글빙글 돌아갔다.

“제가 왜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하는지 혹시 알고 있나요?”

정신 사납게 굴던 유토는 그렇게 물었다.

에르제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제가 노래를 잘해서?”

“자신감은 좋네요.”

하지만 유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땡! 틀렸어요.”

“그러면?”

“곡을 한 번 들어 보는 쪽이 더 빠를지도?”

유토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장비들의 전원을 쭈르륵 켰다.

미디부터 시작해서 마스터링 장비까지 모조리 불이 들어왔다.

“이게 제가 처음 작곡한 곡이에요.”

그러고는 1번 트랙을 재생시켰다.

이곳에 오는 동안 유토가 작곡했다는 곡은 모두 들어 보았지만, 처음 작곡했다는 이 곡은 무튜브에 올라오지 않은 것이었다.

‘이 멜로디…….’

그리고 에르제는 미간을 좁히며 유토를 바라보았다.

이것 역시, 카테이아 대륙의 방식으로 만든 곡이다.

“재미있죠?”

그리고 다음, 다음의 다음 곡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안 에르제의 심각한 표정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이거, 정말로 본인이 창작한 것 맞죠?”

해서 그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는 유토의 대답이 조금 늦게 튀어나왔다.

“네. 작곡 자체는 제가 했죠.”

조금은 씁쓸한 얼굴이 그녀의 입가에 맴돌았다.

“……역시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에르제의 귀가 쫑긋 움직이며 작은 소리를 잡아냈다.

“알아보지 못 한다뇨?”

“……그걸 듣네.”

유토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에르제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다 털어놓겠다는 심산처럼 보였다.

“정말로 저 몰라요?”

“……처음 듣는 이름에, 처음 보는 얼굴을 제가 어떻게 알죠.”

“뱀파이어는, 기억력이 용족급 아니던가?”

“!”

뱀파이어라는 말에 에르제의 등허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걸, 알고 있다고?’

“제가 그것도 모르고 에르제 당신과 협업할 거라 생각한 건가요?”

“허.”

에르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매를 좁혔다.

그리고 가만히 듣고 있던 라하임이 되레 나섰다.

“그렇다면, 에르제 님이 뱀파이어 로드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는가?”

“네,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경한 태도라니. 설마 카테이아 대륙 출신인데도 그러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픽, 웃는 유토의 얼굴이 가만히 라하임을 바라보았다.

“내가 카테이아 대륙에서 넘어온 건 맞지만, 그렇다고 뱀파이어 로드를 섬겨야 할 이유는 없는데. 내가 뱀파이어인 것도 아니고?”

“그건…….”

맞는 말이라 라하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번 라운드는 녀석의 패배였다.

“그만해.”

에르제는 라하임을 말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카테이아 대륙에서 넘어왔다면…… 이런 곡을 쓸 수 있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해. 이게 지구에서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잘 먹히던데요?”

유토는 허공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다, 그대로 검지손가락을 라하임에게로 향했다.

“나한테 맞고 엉엉 울면서 도망치던 게 첫 번째, 다음에 봤을 때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줄행랑. 이후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음.”

“……?”

라하임의 얼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도망? 줄행랑?

“지금 나를 도발하는…….”

그러나 유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손등으로 툭툭 두들기는 순간.

라하임의 신형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두드린 벽에서 드러난 공간, 유토는 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철컥, 유토의 손에 들린 새하얀 석궁이 라하임을 조준했다.

“반가워, 라하임. 많이 컸다?”

“너, 설마.”

“맞아.”

싱긋, 웃는 유토의 미소에 라하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라하임?”

“……아, 우리 로드께서는 날 만난 적이 없지?”

유토의 말을 받아 입을 연 것은 라하임이었다.

“로드. 저자는, 뱀파이어 사냥꾼입니다.”

“……뱀파이어 사냥꾼이라고?”

에르제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랑 만난 적이 없다?’

“이름은 샤룬, 뱀파이어를 죽이지 않고 가지고 노는 데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아.”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난다.

에르제는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래 마녀 일족에서 태어난 그녀는, 종족을 버리고 뱀파이어 사냥꾼이 되었다고 들었다.

덕분에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 있던 사냥꾼 중 하나였는데…… 그녀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나는 가지고 놀지 못하니,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거고.”

“빙고.”

유토가 석궁을 다시 벽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뱀파이어를 내 손으로 죽인 적은 없어. 정신이 좀 망가진 녀석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뱀파이어 사냥을 하던 ‘전’ 마녀.

“인간도, 이곳으로 넘어온 건가.”

“음음, 나는 마녀 대표로 넘어왔어. 사실 마녀 집단을 떠난 적은 없었거든.”

“……?”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유토는 그제서야 자신이 왜 뱀파이어 사냥꾼 일을 했는지 말해 주었다.

“나는 전선에서 뛰는 마녀라고나 할까? 너희들, 사냥꾼한테 당하면 마녀들에게서 물건을 사는 수요가 늘었잖아. 그걸 이용한 거지 뭐.”

“……아.”

그러니까, 쥐어패서 물건을 강매했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 물건을 판 건 아니고…… 사냥꾼에게 대비하기 위해, 뱀파이어들이 알아서 마녀들에게 팔아달라 부탁하도록.

“허, 참신한 장사 방법이네.”

여태 몰랐다. 그냥 마녀를 그만둔 마녀인 줄만 알았더니, 생각보다 영악하군.

에르제는 미간을 좁히며 팔짱을 꼈다.

그녀의 정체는 대충 알겠다. 어째서 카테이아 대륙의 작곡 방식을 알고 있는지도 알 것 같고.

하지만.

“그래서, 날 여기로 불러낸 이유는?”

자신은 로드의 힘을 아직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그녀가 강력한 마녀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그 이유만 알 수 없는 상태.

“…….”

유토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에르제를 바라보다가 이내 이마를 찌푸렸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걸 아직도 몰라? 그런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토가 엄지와 검지를 슥 비벼댔다.

“돈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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