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2화
302화
자체 콘텐츠.
그동안 토트윈이 바빠지면서 거의 손에서 놓았던 것이었다.
1달이면 아이디어를 짜고 준비하는 기간으로는 충분했다.
이 뒤에 있을 콘서트는 그동안 반복적으로 해 오다 보니 이제는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그쪽으로 부담이 덜한 것도 장점이었다.
“그러면 1주일 정도, 아이디어랑 준비 기간 거치고 1주일 정도 촬영하면 되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3주 정도 잡자. 여유 있게.”
“휴식 시간은 그래도 2주 정도 둬야 하지 않나?”
“원래 1달 쉬는 거니, 2주 정도 쉬긴 해야 해. 하지만 어차피 아이디어 짜고 뭐 그러는 건…… 그렇게 시간 많이 안 잡아먹을걸? 그거 하면서도 쉴 수 있을 거야.”
태현우의 말에 다들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1주일 플러스 1주일 이렇게 2주로 잡고 여유 기간으로 1주일 정도 더 두자. 어쨌든 3주 안에 완성해 보는 걸로!”
“오케이. 그러면 우리 1주일에서 2주 쉬고 있을 때, 팬들한테 자컨 보여드릴 수 있겠다.”
“음. 특히 한국에 계신 팬들은 투어 내내 우리를 보지 못하니까, VOD 말고는. 자컨은 확실히 의미가 있겠어.”
민주혁은 손가락을 튕기고는,
“오케이. 바로 아이디어 짜러 간다.”
곧바로 방으로 슥 들어가 버렸다.
“흐엉. 어차피 은우 형 걸로 될 것 같은데에.”
“시끄러. 이번엔 내 거로 할 거야.”
안단테는 아이디어 뱅크 타령을 하며 태현우에게 끌려갔다.
거실에는 윤치우와 에르제, 둘만이 남았다.
볼을 긁적이던 그는 에르제에게 물었다.
“최근에 콘서트 할 때 느꼈던 이상한 기분.”
“응?”
“네가 한 거지?”
“…….”
거의 확신을 하고 있는 말투에 에르제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응.”
“그것도 뱀파이어 능력이야?”
“맞아. 좀 더 활기차게 해 준 것뿐이니까…….”
“나는.”
윤치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우리는, 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지. 뭐가 됐든 팬들이 더 좋아하고 우리한테 이득이 되는 길이라면.”
“?”
에르제가 ‘그럼 뭔데?’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윤치우가 씁쓸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냥, 네 걱정돼서. 저번에 쓰러진 적도 있고. 설마,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아.”
걱정이었나.
에르제는 흠, 하고 팔짱을 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무리하고 있는 것은 맞다.
요즘은 밤에도 기력 회복한다고 고생하고 있기도 했고, 종종 라하임의 혈기를 나누어 받는 중이었으니까.
‘라하임도 나 대신 혈기 채우느라 고생 중이지.’
하지만, 못 버틸 정도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고, 또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야.”
에르제는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게 편법이라고 생각했어.”
“편법?”
“응. 다른 아이돌 그룹은 그동안 노력해 온 것과, 실력, 재능으로 부딪히고 있는데…… 나는 인간을 넘어서는 힘을 사용하는 게 맞나 싶었거든.”
“…….”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웃기더라?”
에르제가 픽 웃었다.
“최근에 D.D.에 새로 합류했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애, 기억해?”
“아아…… 그 SR?”
“응.”
SR, Silver Rain.
이 몸의 주인, 서은우.
그는 눈먼 신관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D.D.와 소속사 측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다행히 확정 발표하기 전이라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이와 같은 사실을 떠올리며 윤치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아, 왜?”
“네가 보기에, 걔 춤이랑 노래 어땠어?”
“그냥…… 평균 혹은 그보다 살짝 위? 아, 춤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D.D. 측 리더, KAL이 에르제에게 따로 보내온 영상을 토트윈이 함께 본 적이 있었다.
노래와 춤 연습을 하고 있는 SR의 영상이었다.
― 어떤 것 같아요? 진지하게
의심스러운 거 있으면 보내라고 했을 때, 바로 다음 날 보내왔던 영상 중 하나였다.
윤치우가 SR의 실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그 이유.
“물론, 무대에 섰을 때 더 잘할지 못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안 되거든. 갑자기 꽤 괜찮은 그룹에, 새 멤버가 뜬금없이 들어온다? 그것도, 춤 노래가 평이한 수준인 멤버가?”
“……아.”
에르제는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도, 연습생 때 똑같은 이유로 데뷔조에 들었어.”
“그랬……지. 지금은 완전 달라졌지만. 아, 같은 사람이 아니지.”
윤치우가 쿡쿡 웃었고 에르제도 따라 웃었다.
‘SR이 서은우라는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뤄야겠네.’
원래는 윤치우에게 SR이 서은우라는 사실을 말해 주려 했으나, 서은우의 기억을 지운 지금은 불가능한 일.
에르제는 표정을 고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외모도 사실 재능이라는 이야기지.”
“맞아. 외모는 가장 큰 무기야. 어쩌면, 목소리보다 더.”
“같은 의미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의 힘도.”
“…….”
“내 재능이라고 생각하려고.”
에르제의 말에 윤치우는 꽤 말이 없었다.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뭔가를…….
하지만 윤치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달랐다.
“나는 네가 너만을 돋보이게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응?”
“뱀파이어의 힘, 너한테만 집중시키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고.”
“나한테만?”
“멤버 전원이 뜰 필요는 없잖아 사실.”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윤치우의 속마음,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안했거든. 될까? 잘할 수 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서, 평범하게 데뷔조에 들어오고, 또 평범한 내가 리더를 하게 되고…….”
노래, 춤, 작곡, 작사, 외모 등.
아이돌로서 필요한 요소들을 꼽아 보면, 윤치우는 전부 평균 이상이었다.
뭐랄까, 육각형 스탯이지만 꽉 찬 육각형은 아닌?
천방지축인 태현우와 안단테, 차가운 성격의 민주혁. 리더라는 자리 또한 그들보다 윤치우가 나았기에, 맡고 있던 것뿐.
“그래서 네가 은우가 아닌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안도했다?”
“…….”
“웃기지? 은우의 외모에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그 통상적인 능력을 생각해 보면, 토트윈은 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윤치우는 고개를 들어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고.”
“뱀파이어의 힘을 무대에서 사용한 적은…….”
“없어? 한 번도?”
“……있어.”
그것 보라는 듯, 윤치우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뭐라 하려고 한 거 아니야. 그냥, 어쨌든 그런 걸 기대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두들기며 말을 골랐다.
“……그래서 너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은우를 찾았던 것도 그래서야.”
“무슨 말이야?”
“죄책감이 들더라고. 은우의 몸을 차지한 뱀파이어가 사실 팀에는 도움이 더 된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있고 바라고 있다는 게. 스스로, 소름이 끼치더라.”
은우는 어디에 있어? 그렇게 묻던 윤치우의 목소리 이면에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섞여 있었다는 뜻이었다.
“후우.”
세게 깨문 입술 사이로 신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1년 전, 그쯤까지는 거울을 보면 부수고 싶을 정도로 혐오감이 들었어.”
“지금은, 괜찮고?”
“괜찮아졌지. 뭐 괜찮아진 건지, 아니면 적응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윤치우에게, 에르제가 말했다.
“윤치우, 너는 잔소리를 참 잘해. 제2의 이윤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갑자기 뭔 소리야?”
“그리고 멤버들의 멘탈을 누구보다 잘 잡아 줘. 흔들리고 있는 타이밍을 정확히 캐치해서, 적절한 말을 해 주니까.”
에르제는 윤치우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공부도 열정적으로 해. 실제로 우리 중에서 나 다음으로 영어를 제일 잘하는 것도 너고.”
“…….”
“배려심도 제일 많지. 작곡, 작사 쪽은 할 수 있으면서도 손을 아예 대지 않았잖아.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걸? 네가 단테를 위해서 물러난 거지.”
그제야 에르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윤치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뱀파이어가 아니었어도. 아니, 가진 게 외모밖에 없던 서은우였어도. 토트윈은 분명히 잘됐을 거야. 각자, 자기가 할 역할들을 충분히 해내고 있으니까. 멤버들 중 누구도,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냥 아주 조금. 아주 조금, 편하게 갈 수 있게 하는 것뿐이야.”
리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동안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윤치우였다.
속은 꽤나 곪았을 것이다.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었을 테니까.
오늘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던 것도, 에르제가 혈기를 살짝 운용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 곪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보다 윤치우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더는 너밖에 할 수 없어. 나는 누구를 다스리는 입장이었거든.”
“……고마워.”
윤치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조금 해소가 되었는지 눈을 반짝였다.
“힘이 좀 나는 것 같은데? 이것도 네 능력인가?”
“아니, 그건 좀.”
“농담이야.”
픽 웃은 윤치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체 콘텐츠, 좋은 생각이 났어.”
“갑자기?”
에르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지만, 윤치우는 아이디어를 잊기 싫었는지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원래 이런 건 갑자기 생각나는 법이야. 아무튼 고마워. 정말로 힘이 됐어.”
“…….”
쿵, 닫히는 방문을 보며 에르제는 볼을 긁적였다.
뭐가 됐든, 결과만 좋으면 됐다.
* * *
본격적으로 자체 콘텐츠에 대한 회의를 하기로 한 날.
1주일이나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기간은, 단 하루 만에 결정이 났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하더니, 윤치우가 들고 온 아이디어가 실제로 정말 좋았던 덕분이었다.
“오…… 이건, 꽤.”
“진짜로 좋아여! 내 건 구려여!”
“나도 치우 형 거로 찬성. 더 볼 필요도 없어. 바로 촬영하자 그냥.”
민주혁까지 동의하자, 윤치우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은근히 단순하단 말이야.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최종 동의 의사를 표했다.
“나도 좋아.”
“오케이! 그럼 이거로 하자!”
태현우가 박수를 짝! 하고 쳤다.
“토트윈 온에어!”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치우가 가져온 플롯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별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아이돌 그룹이 흔히 하지 않는 시도일 뿐.
일반적으로 아이돌 쪽은 ‘비하인드’ 형식의 자체 제작 콘텐츠가 넘치는 편이었는데, 일단 그것과 차별점을 둔 게 마음에 들었다.
‘아예 예능화를 시키자라.’
주요 플랫폼은 당연히 무튜브.
그곳에, 꾸준히 토트윈의 예능용 영상을 올리자는 이야기였다.
간단한 게임으로 한 회를 채우든, 혹은 큰 에피소드로 몇 회를 채우든 간에.
‘회차가 쌓이는 형식의 자체 콘텐츠.’
토트윈 온에어, 그런 이름으로 올라가는 것은 이 그룹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마음에 들어.’
속으로 결론을 내린 에르제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신난 멤버들에게 물었다.
“그럼, 첫 촬영도 치우 형 플롯대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