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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00화 (300/307)

제300화

300화

민주혁은 아버지의 몸 상태가 회복되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토트윈 멤버들에게로 합류했다.

“구성 새로 짰다면서. 나도 확인해 보자.”

이번에 터진 일을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완전히 잊히게 만들기 위해, 안단테와 에르제는 미국 투어의 콘서트 순서와 구성을 새로 조정했다.

기존의 방식은 안정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투어의 목적은 완전히 보여 주기 형태의 콘서트.

댄스 브레이크가 없는 노래에 이를 추가하거나, 화음 파트를 늘리거나, 솔로 구간에서 사운드를 비워 임팩트를 준다든가.

에르제와 안단테,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한 결과가 현재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중이었고.

뒤늦게 합류한 민주혁 또한 빠르게 일정에 맞춰 몸을 풀었다.

“크게 바꾼 건 아니니까, 투어 전에 헷갈려서 고생하고 그러지는 않겠네. 지금이 딱 한계치야.”

민주혁은 얼마 남지 않은 일정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 우리 몇 년 같이 활동했잖아여. 헤헤.”

안단테가 민주혁의 칭찬에 쑥스럽게 볼을 긁적였다.

“투어 첫 시작이 LA였나?”

“응. 그때 우리 토크쇼 해 줬던 MC도 초청했더니 온다더라.”

“오, 그래?”

“응. 자기가 미국 1호 팬이라고 우기면서, 무조건 온대.”

“풉.”

조금은 풀어진 분위기에 멤버들이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

민주혁과 안병인의 관계가 알려진 이후로 내내 심각한 얼굴들이었는데, 당사자가 괜찮아 보이니 덩달아 감화된 모양이었다.

“아무튼,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일어나. 연습하자.”

그러나 민주혁의 재촉에, 멤버들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 * *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

한국 공항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모였다.

민주혁의 일로 확실히 토트윈의 버즈량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일반인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이번 일로 인해서 투어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요?”

“안병인 회장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언제 아셨습니까!!”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물론 기자들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대단했다.

조그마한 마이크와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미는 이들이 출국 수속을 받기도 어려울 정도로 길을 막아서고 있던 것이다.

“비켜 주세요. 지나가겠습니다.”

만약 라하임이 초월적인 신체 능력으로 기자들을 뚫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너무나도 결과가 뻔했다.

“토할 거 같아여.”

안단테는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죄지은 것처럼 굴지는 마.”

에르제는 안단테의 허리에 손을 대 펴 주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

있는 사실 그대로 설명을 했고, 이걸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사과할 건, 지금까지 알리지 않았다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들이 물어뜯는 부위는 전혀 달랐으므로, 에르제는 당당히 그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에르제뿐만이 아니다.

토트윈의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가 빳빳했다.

오히려 그들이 공항에 입고 나온 패션을 보여 주듯, 런웨이를 걷는 것 같기도 했다.

‘멘탈이 다들 좋아졌어.’

에르제는 픽 웃으며 대열의 맨 뒤에서 여유롭게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카메라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하고 올게요.”

기자들은 정보를 캐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은 토트윈이 기가 죽을까 싶어 응원을 온 이브들이 대다수.

최대한 씩씩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토트윈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공항 너머로 사라졌다.

* * *

미국에 도착하고 콘서트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민주혁과 안병인에 관한 후속 기사는 끊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재 국내 탑급 아이돌 멤버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회장이 부자 관계라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퍽 부럽고 질투가 나나 봐.”

LA에서 시작하는 콘서트 전날.

에르제는 민주혁과 단둘이 방 안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네가 그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관심도 없는 건지, 쯧.”

“뭐야, 위로야?”

민주혁이 어이없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자,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 그냥 팩트 체크 같은 거지.”

“…….”

눈을 흘긴 민주혁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의 속은 시꺼멀 것이다.

겉으로는 밝은 척, 힘들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글쎄 당사자만이 겪는 고통이 있을 테니까.

‘심지어 해명 글 이후에, 안병인 회장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신경이 많이 쓰이기는 할 것이다.

억지로 폰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원래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그 덩치를 키워 가지 않던가.

말없이 바닥을 보고 있던 민주혁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따지고 보면, 네가 은인인 건데.”

발바닥으로 바닥을 슥슥 문지른 녀석이 말을 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원망하게 되더라.”

“나를?”

“응. 그냥, 살던 대로 두지. 그랬으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을 텐데…… 하고.”

“음.”

에르제의 시선도 바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서 민주혁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 건지.”

픽, 조소를 머금은 민주혁이 에르제의 어깨를 툭 쳤다.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이 훨씬 나은데 말이야. 그치?”

“……그래. 차라리 아는 편이 낫지.”

에르제는 민주혁의 말에 동의했다.

최근 로드의 힘을 찾아오면서 알게 되었던 에이리스의 과거.

그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나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평생 에이리스를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은 이해는 가.”

“응? 뭐가?”

민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고, 에르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할 날이 있겠지.

다만 지금은 아니다.

“뭐야, 뭔데 그래.”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야.”

“……개인적인 이야기.”

민주혁은 에르제의 말을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연습생일 때 말고는 네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말을 하던 민주혁이 아, 하고 정정했다.

“아니지. 연습생 때도 거의 이야기를 안 나눴구나. 그때는 내가 너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에르제는 쿡쿡 웃으며 동의했다.

서은우를 왕따시키던 무리는 아니었지만, 민주혁은 그냥 서은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당시 서은우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착각하며 주변 상황에 불평불만만 늘어놓던 녀석이었으니까.

태현우와 윤치우가 특이한 케이스였던 것뿐이다.

“별로 할 얘기가 없어.”

에르제는 어깨를 위로 올리며 대꾸했다.

나머지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니까.

뒷말을 삼키고 가만히 기다리니 민주혁이 완전히 침대에 널브러졌다.

“나중에, 얘기하고 싶은 맘 들면 언제든지 해. 무슨 이야기든 들어줄 테니까.”

“…….”

그의 말에 에르제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다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만약에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인간이 아니면?”

민주혁은 누운 채로 고개만 들어 올려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 소리냐는 눈빛이었다.

“뭐야. 너 설마 악귀거나 그런 거 아니지?!”

“뭐래.”

“놀랐잖아.”

민주혁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민하다 대답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건 뭔 소리인지.”

하긴, 현실파 민주혁에게 ‘악귀’도 충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을 텐데.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밝히면 믿는 건 둘째 치고 아주 혼이 나가고 말 것이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에르제는 그의 허벅지를 툭 내리쳤다.

자신이 뱀파이어이며 서은우가 아니라는 사실은, 윤치우만으로 충분했다.

“아무튼.”

입을 연 에르제는 민주혁 몰래 손에 혈기를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푹 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뭐 하는…….”

“그냥 재워 주는 거야.”

애초에 그가 민주혁의 방에 들어왔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만약 생각이 복잡하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편히 푹 잘 수 있도록.

그동안 안병인의 간호에 이어서 연습까지.

최근 벌어진 일을 잊기 위해 너무 몰두했던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에르제는 전날이라도 충분히 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아직 오후 9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대로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자게 할 예정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밤을 새기도 하니까.’

“…….”

에르제는 곤히 떨어진 민주혁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격, 이라고 표현하기는 뭐 하지만…… 내일부터는 상황을 뒤집을 예정이었다.

‘매혹의 힘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한다.’

애초에 서은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자신의 책임이기도 했다.

웬만해서는 편법 같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딱…… 이번까지만.

‘……서은우, 그 녀석은 다 잊고 살고 있으려나.’

에르제는 쯥, 하고 혀를 차며 방문을 닫아 주었다.

* * *

다음 날, 미국 투어의 첫 콘서트 당일이 되었다.

LA에 위치한 초대형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다행히 안병인과 민주혁의 일 때문에 일정이 미뤄지지는 않았고. 몇천 석이나 되는 좌석이 꽉 들어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매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한국에 있는 팬들이 콘서트에 오겠다며 여행을 겸해 오기도 한다고.

“으아, 진짜 잘해야 하는데!”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는 동안 안단테는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잘하는 녀석이, 꼭 뒤에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하던 대로만 해.”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연습 때 200퍼센트를 해야, 실전에서 100퍼센트가 나오는 법이래여! 근데 연습 때 내가 과연 200퍼센트만큼 했던가!?”

눈물도 많고 걱정도 많고…….

“키 빼고 다 많네.”

“와!!!”

안단테가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얼굴을 했다.

“은우 형이! 나한테, 그런 말을!”

“왜, 나는 키 커.”

“그러니까여!”

안단테가 손가락으로 태현우를 가리켰다.

“현우 형이 하면 뭔가 열 받는 기분인데, 은우 형이 그러니까 슬퍼여!”

“하하, 미안해.”

“인마 나는 왜!?”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는 분위기에, 메이크업 팀과 헤어 담당 스태프들이 같이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는, 확실히 많이 올라왔다.

다들 ‘보여 주자’라는 목표 의식이 확고한 상태.

에르제는 무대에 오르기 전, 혈기를 온몸에 충분히 돌리며 예열했다.

‘등장부터, 강렬하게 간다.’

곧, 콘서트 진행 요원이 들어와서 오프닝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후, 리허설 때만큼만 하자!”

다짐을 하는 안단테, 그리고 다른 멤버들.

에르제는 혈기를 살짝 풀어 그들의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었다.

다소 올라가 있던 어깨들이 조금씩 내려온다.

“미국 투어는 진짜 빡센 일정이 될 거야. 그만큼 뒤로 갈수록 지칠 수도 있어.”

윤치우가 리프트로 향하기 전, 멤버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 콘서트인 오늘. 임팩트를 최대한으로 주자. 오늘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서, 뒤에서도 지치지 않게끔.”

속도가 빠르게 붙어 줘야, 관성 덕분에 힘이 좀 덜 드는 법이다.

긴 거리의 마라톤이 아닌, 이건 중장거리의 레이스.

“페이스, 유지하고.”

윤치우가 결연한 멤버들의 눈빛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동시에 장난 섞인 표정까지도.

“오랜만에, 이거 한번 해 볼까?”

“?”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것보다, 윤치우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빨랐다.

“나대지 마.”

“……아.”

“제발.”

윤치우가 단호하게 내민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재촉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멤버들의 손이 그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동시에, 위로 치솟았다.

“심장아아아아아악!”

부끄러움은 주변 스태프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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