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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95화 (295/307)
  • 제295화

    295화

    민주혁은 말은 혼자 가도 괜찮다 해 놓고서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내내 초조한 기색이었다.

    안병인의 기력은 회복되었다고 하니 그쪽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무래도 대중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

    ‘……다들 일부러 폰을 안 보고 있으니.’

    괜히 기사나 댓글을 찾아보았다가 민주혁에게 반응을 들킬까 싶어서, 에르제가 가는 동안만이라도 찾아보지 말자 제안한 것이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를 했고, 해서 다들 의식적으로 무튜브 같은 것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간간이 뜨는 무튜브의 자극적인 영상들이 민주혁과 안병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기에, 멤버들은 관심 없음 혹은 채널 추천 안 함 버튼을 빠르게 연타해야 했다.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니까 더 힘드네.’

    에르제는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며 카시트에 몸을 기댔다.

    곧 안병인이 누워 있다는 병원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바로 왔기 때문에 다 같이 왔지만, 여기서는 민주혁만 따로 내릴 것이다.

    “주혁아. 일단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자. 기자들이…… 문제인데, 일단 주차장 들어가서 슬쩍 눈치 보자.”

    “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민주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비공식적으로 재빨리 움직인 것이지만, 기자들의 코는 예민하다.

    아마 기사가 뜬 날부터 안병인이 입원했다는 병원 입구에서 죽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없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에르제는 민주혁에게 작게 속삭여 그 사실을 전해 주었다.

    이미 에르제는 일족들을 이용하여 기자들이 주차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두었다.

    정신을 조작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단순한 ‘매료’ 정도를 이용해.

    “기자들은 지하 주차장이 아니라, 병원 정문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민주혁이 들어갈 곳을 비워 두었다.

    “……어떻게 알아?”

    그는 에르제를 신뢰하고는 있었지만, 이건 미래를 알고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러나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가 귀신들 볼 수 있는 거 알지?”

    “아……!!”

    그제야 민주혁이 입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신들한테 물어본 거구나.”

    “그렇지.”

    전혀 아니었지만, 민주혁에게는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편하다.

    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응. 알려 줘서 고마워.”

    그렇게 속닥거림이 끝이 나고, 곧 차는 지하 주차장에 멈췄다.

    에르제의 장담대로 지하 주차장은 조용했다.

    “멀리서 차 보고 급하게 달려온 기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바로 가.”

    “응.”

    에르제의 말에 민주혁이 빠르게 차 문을 열고 내렸고, 이윤은 그가 병실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휴, 다행히 기자들은 안 만났네. 죄다 정문에 가 있는 것 같더라.”

    이미 알고 있었던 에르제를 제외하고는 멤버들은 꽤 불안해했던 눈치였기에 이윤의 말을 들은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지금 기자들 만났다가는 주혁이 멘탈 완전 무너졌을 거야.”

    “맞아여. 일부러 기사도 안 보고 있었는데…….”

    “아마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막 얘기했겠지.”

    그리고 다시 숙소를 향해 출발한 차 안에서 짧게 토론이 이어졌다.

    분명 호의적인 반응보다는, 이때다 싶어 물어뜯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도 안병인 회장님이면, 이런 언론 쪽으로는 일가견이 있으시지 않을까? 대기업 회장이면…….”

    “그럴 가능성은 있겠네. 근데 요즘 세상에 언론 통제 같은 거 하기는 불가능하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지?”

    “음…… 댓글 알바?”

    “어쨌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인가.”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해 고뇌했다.

    “아마 우리 대표님도 최대한 친분 있는 기자들한테 부탁해서 우호적인 기사를 써 달라고 할 것 같은데…… 그거로 충분할지 모르겠네.”

    “……그러면 결국, 주혁이와 안병인 회장님의 과거사를 풀어야 하는 거 아냐?”

    “최대한 피하면 좋을 이야기인데 상황이 악화되면…… 그때는 그래야 할 수도.”

    물론 그때가 되면 민주혁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에르제 또한 범인을 색출하는 것 정도로는, 이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 중이었다.

    ‘방법이 진짜 없는 건가.’

    에르제는 마른세수를 하며 생각을 거듭했지만, 역시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쉰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결책은 나중에 강구해 보도록 하고, 일단은 그 빌어먹을 기자를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숙소에서 내린 토트윈 멤버들에게 에르제가 말했다.

    “나, 잠시 머리가 아파서 동네 돌고 들어갈게.”

    “음…… 지금 주혁이 말고 우리도 타깃이야. 괜히 들켰다가 소란 안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윤치우의 걱정스러운 말에 에르제는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진짜 산책 때문이 아니라, 뱀파이어로서 할 일이 있다고.

    “……아.”

    대충 알아들은 윤치우가, 그에게 모자를 하나 던져 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써. 오래…… 안 걸리지?”

    “금방 올게.”

    “뭐? 치우 형, 형 말이 맞았는데 왜 갑자기 허락을…….”

    “쟤 눈을 봐.”

    윤치우가 에르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잖아.”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윤치우는 태현우와 안단테를 잡아끌며 에르제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현우. 절대 문제 안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에르제는 싱긋 웃어 주고는 서둘러 숙소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박쥐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최초 기사를 낸 것은 ‘문종원’이라는 기자였다.

    어디 유명한 언론사가 아닌 찌라시 위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대형 떡밥이라며 명확한 사실관계도 조사하지 않고 서은우의 말만으로 기사를 낸 모양이었다.

    ‘진짜여도 문제고, 가짜여도 문제인 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에르제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겨우 누그러뜨렸다.

    예전에도 민주혁과 안병인을 노리던 기자 하나가 있었다.

    그 인간은 심지어 범법 행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기 때문에 처리하는 데에 죄책감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사안이 조금 달랐다.

    우선 정보를 준 것이 서은우였고, 그 기자는 단순히 돈이 될 거라 생각해 기사를 낸 것뿐.

    마음에는 매우, 아주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직업 그대로 행동했다는 거다.

    ‘……그래도, 용서가 되지는 않네.’

    에르제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얼굴을 구겼다.

    곧, 문종원의 집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그의 위치 정보를 준 것은 세리나였는데, 얘기를 듣기로는 두둑한 성과금을 포함해 휴가까지 받아 집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고 한다.

    ‘팔자도 좋지.’

    에르제는 더욱 속도를 높인 뒤에, 문종원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에 도착해 빙글빙글 돌았다.

    405동, 702호.

    찾았다, 에르제는 날개를 접고 아래로 활공해 그대로 702호의 창가로 날아갔다.

    쨍그랑―!!

    그러고는 그대로 혈기를 몸에 두른 채로 창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야 X발!”

    방 안에서 핸드폰을 보며 뒹굴거리던 문종원은, 갑자기 들려온 유리 깨지는 소리에 서둘러 거실로 뛰쳐나왔다.

    “박……쥐? 이렇게 낮에?”

    그는 거실 한복판에 들어온 박쥐를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니, 아니. 낮이라서 여기로 들어온…… 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쥐 상태의 에르제를 보던 그는, 이내 깨진 창문을 보며 욕설을 뱉어 냈다.

    “아아!! 젠장, X발. 이건 뭐 동물한테 유리값 물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재수 더럽게 없네. 최근 운 좋더니만 갑자기 왜 이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성을 보며 에르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문종원이 날쌔게 뛰쳐나오는 바람에 변신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이대로 저 꼴을 더 두고 볼 인내심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이봐.”

    에르제는 박쥐에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창밖을 보며 투덜대고 있던 문종원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사람 목소리에 놀라서 몸을 뒤로 확 젖혔다.

    “어? 어어어?!”

    에르제를 발견한 것에 어찌나 놀랐는지, 어느새 그의 몸이 창밖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뒷걸음질 치다 그대로 몸이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창가 난간의 높이가 상당히 높았기에, 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운도 좋지.”

    에르제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림과 동시에 모자를 벗었다.

    “누, 누구야 너!”

    문종원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들어…… 온 거야!! 박, 박쥐는 또 어디 갔어! 아니, 너 누구냐고!!”

    갑자기 자신의 집 안에 등장한 의문의 남자, 인간이라면 패닉에 빠질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르제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 몰라?”

    “오, 오지 마!!”

    에르제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거실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그의 눈가에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잘, 잘못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칼도 들지 않았는데, 왜 살려 달라고 하는 건지.

    이렇게 겁이 많은 인간이 그런 기사는 어떻게 썼는지 몰라.

    “당신은 타이핑으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서는, 이제 와서 살려 달라?”

    “타……이핑?”

    그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가고 이내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다.

    “헉, 허억. 죄송합니다! 기사는, 기사는 내리도록 할게요! 안병인 회장님께 다시는 누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비는 모습이 안쓰럽다.

    “드라마가 사람들 다 망쳐 놓는다니까.”

    에르제는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기자라서 그런가? 상상력이 풍부하네.”

    “……어.”

    그리고 그제야 문종원은 에르제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지금까지는 두려움에 명확하게 사물을 식별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코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진짜로 나 몰라? 나 그래도 꽤 유명한 편인데. 네가 기사 쓴 민주혁의 동료기도 하고.”

    “서, 서은우…….”

    문종원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 나왔다.

    자신의 집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그보다 여길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온갖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그의 눈동자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대답은 빨리해 줬으면 좋겠어. 또 쓸데없는 말 늘어놓으면 내 인내심이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하……!!”

    그러나 문종원은 되레 서은우임을 알아본 뒤로 태도가 바뀌었다.

    “연예인이 이래도 돼? 남의 집에 무단 침입!? 민주혁이랑 같이 싸잡아서 나락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지? X발, 보니까 그렇네. 어, 그래. 창문을 깨서 내 시선을 돌린 다음에 몰래 저쪽으로 들어왔구나?”

    낄낄 웃으며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는 녀석을 보고 에르제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 정신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웬만하면 쓰기 싫었는데. 네가 자초했다.”

    에르제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문종원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단박에 이마를 잡힌 문종원이,

    “뭐야 X발!! 놔 이 X끼야!”

    양손으로 에르제의 팔을 붙잡으며 떼어 내려 했지만, 그의 팔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잘 버텨 봐.”

    그리고 에르제의 손바닥을 타고, 혈기가 문종원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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