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화
294화
다음 투어 일정인 미국으로 향하기 전, 토트윈은 무려 1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미국 투어가 시작되면 콘서트 중간중간 간격이 좀 있다 하더라도, 이동하는 데에만 절반의 시간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의 1주일이 미국 투어 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뜻이었다.
“오늘은 해변 어때! 해변!”
예전에 하와이로 휴가를 갔던 기억이 좋게 자리를 잡았는지, 태현우가 거실에서 튜브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크게 소리쳤다.
“음…… 오늘은 해가 너무 뜨겁지 않아?”
“그러니까 가야지!”
“살 타면 윤이 형한테 엄청 혼날걸.”
쿡쿡 웃는 윤치우의 어깨 너머로 그림자처럼 에르제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몰래 손가락에서 혈풍을 쏘아 튜브를 터뜨렸다.
펑!!
“엥??”
태현우는 이제 막 빵빵해지고 있던 튜브를 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이게 왜 터져?”
“아무래도, 이건 운명 같은 게 아닐까?”
에르제는 헛기침을 하며 그제야 몸을 드러냈다.
“튜브가 터졌다는 건, 해변가로 가지 말라는 어떤 계시 같은 거지.”
“……너 신 같은 거 안 믿는다며?”
용케도 그 말을 기억한 태현우가 일침을 놓았지만 에르제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로드의 힘이 다시 돌아온 지금, 에르제는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였다.
당연히 뜨거운 해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온 라하임 또한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안 됩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은 좋지만, 콘서트에 영향이 갈 수 있는 것은 하지 못하게 하라고 들었습니다.”
“쳇.”
태현우는 완전히 바람이 빠져 버린 튜브를 집어던지며 투덜댔다.
“그럼 계속 숙소에만 있으라고?”
“나랑 같이 쇼핑 가여!”
쇼핑 홀릭 안단테가 태현우를 꼬시기 시작했다.
“너희 가면 나도 같이 갈게. 은우도 같이 갈 거지?”
“응. 그럴게.”
더불어 윤치우와 에르제까지 쇼핑 대열에 합류하자 결국 태현우는 입술을 삐죽하고 내미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내비쳤을 뿐.
“에휴, 알겠어.”
태현우는 액티비티를 포기하고 멤버들과 같이 도시로 나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 맛있는 건? 그건 먹어도 되죠?”
태현우의 질문에 라하임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장 대표님이 말하시길, 어차피 연습으로 칼로리 소모량이 엄청난 그룹이라면서. 먹는 건 자유롭게 드셔도 된다 했습니다.”
뭐, 태현우가 말은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사실 토트윈이 먹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평소 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답게, 이미 위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과하다 싶을 때면 알아서 조절하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그 와중에 에르제는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댔지만…… 전혀 살이 찌지 않았으므로 논외였다.
“난 네가 부럽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태현우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응?”
그러더니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주혁이는 어디에 있어?”
그러고 보니 민주혁이 거실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휴가 기간을 알뜰하게 쓰겠다며 아침부터 나갈 준비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옷 갈아입는 거 아닐까?”
에르제는 그렇게 대답을 내어놓으며 민주혁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침대에 앉아 있는 민주혁을 발견했다.
“주혁아?”
“……아아 ……아.”
민주혁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넋이 나간 것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민주혁!”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에르제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몸 상태를 살폈다.
혈기를 그의 몸 안에 주입해 순환시켜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서은우, 이 X끼 민주혁한테 뭔 짓 한 거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르제는 서은우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민주혁의 상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왜…….’
보통 이런 경우는, 정신적인 이유가 큰데.
“왜, 무슨 일이야?”
“주혁이 거기 있어?”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에르제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멤버들도 방 안으로 뛰어와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곧바로 에르제의 곁으로 다가온 태현우가 민주혁의 상태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혁은 지금까지 그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을 꽤나 담담하게 넘긴 편이었다.
하지만 민주혁이 이렇게 바들바들 떨고 있을 정도면,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일이…….’
에르제는 설마, 하는 마음에 민주혁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들었다.
양손에 움켜쥐고 있던 물건이 빼앗겼는데도, 민주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아아, 하면서 몸을 떨고 있을 뿐.
‘상태가 많이 심각한데.’
에르제는 한 손으로는 민주혁의 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혈기를 불어넣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민주혁이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젠장, 잠금이 걸려 있어.’
메인 화면은 넘어갔지만, 민주혁이 보고 있던 코코아톡은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이걸 어떻게…… 일단,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해서 에르제가 따뜻한 혈기를 불어넣으며 입술을 짓씹을 때였다.
그의 행동에서 빠르게 눈치를 챈 태현우가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태현우 또한 에르제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없고, 없고…… 없고…….”
하지만 만약 기사까지 떴다면 분명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을 터.
그래서 기사는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할 때.
“이런 X…….”
태현우가 다시금 입을 틀어막으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뱉었다.
“왜, 뭔데!”
윤치우가 빠르게 그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아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아직 조회 수가 높지는 않은 기사였는데, 조회 수에 비해서 댓글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즉 조만간 일파만파 퍼져나갈 기사라는 뜻.
“안병인 회장님하고, 주혁이 관계……가 알려졌어.”
윤치우가 눈을 꾹 감고는 빠르게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일단…… 일단, 나는…… 그 뭐야. 윤이 형한테 말……하고 올게…….”
거의 비틀거리다시피 윤치우가 방을 나가자, 그제야 민주혁이 천천히 반응을 보였다.
패닉 상태에서 겨우 벗어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에르제를 위시한 멤버들은 민주혁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렸다.
“……아아.”
민주혁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목소리를 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기사…… 보시고 쓰러지셨대.”
“뭐?!”
태현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통화를 하고 있는 윤치우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뛰쳐나갔고, 에르제는 말없이 민주혁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괜찮아.”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지만, 예전 ‘악령’ 사건으로 굳게 다져진 둘만의 신의가 있었다.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
“……흐읍.”
에르제의 말에 위로가 되었던 걸까, 민주혁이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냉정하고 딱딱한 모습의 민주혁이 이렇게 약한 얼굴을 할 줄이야.
“흐윽, 흑.”
곧이어서 에르제의 등 뒤로 안단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해요…… 어떻게…….”
마음이 제일 약한 녀석답게 금세 민주혁의 심정에 몰입하고 공감을 한 건가.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고 양팔을 벌렸다.
혈기를 나누어 줘야 할 등판이 두 개로 늘어났다.
* * *
미국 투어 일정을 미루는 것은 쉽지 않다고 소속사에서 알려 주었다.
이미 대관을 하고 티켓까지 판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사정 설명을 하고 아예 취소를 하거나 민주혁을 빼고 콘서트를 진행해야 한단다.
“아니, 취소는 하지 말자.”
하루 만에 정신이 돌아온 민주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취소하지 마.”
주먹을 꽉 쥔 민주혁의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에르제는 그것을 보고도 내색하지 않았다.
“한국에 가서 아버지만 보고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질 내용이었어.”
와중에도 민주혁의 시선은 꼿꼿했다.
“이번 일로 안티가 늘어나거나 악플이 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어쨌든, 먼저 말하지 않고 속이고 있던 건 분명히 내 잘못이니까.”
“그거야, 네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네 과거사가 밝혀졌던 것뿐이고. 그러니까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해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
“물론 해야지.”
이미 심지를 단단하게 굳힌 듯 민주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는 팬들도 있을 거고, 그럼에도 그냥 적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고.”
단순히 민주혁만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문 토트윈과 소속사에 대한 공격도 이루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너희들도 소속사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에르제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아버지부터 뵙는 게 먼저잖아.”
“아아, 그렇지. 비행기 표를 빨리…….”
에르제는 서둘러 표를 예매하려는 민주혁을 막았다.
그의 손에는 이미 비행기 표가 들려 있었다.
“언제…….”
“어제 아버지 쓰러졌다는 이야기 듣자마자 곧바로 했어. 이런 건 지체하면 안 되니까.”
“……고맙다. 어제는 내가 정신이, 없다 보니까…….”
민주혁이 고개를 푹 숙였고, 윤치우가 에르제에게 말없이 엄지를 세워 보여 주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에르제는 주머니에서 비행기 표를 더 꺼내 들었다.
“……?”
“응?”
당연히 민주혁의 것만 있을 줄 알았던 멤버들의 표정에 당황함이 떠올랐다.
“가려면 같이 가야지. 친구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데, 혼자만 보낼 수는 없잖아.”
“……아, 쓰러지신 거야 놀라서 그러셨던 거고 이제는 괜찮다고…….”
“안 돼.”
직접 몸 상태를 확인해 보는 편이 좋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알아내야 하는 정보도 있었고 말이다.
‘기자는 철저하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어.’
도저히 뚫릴 이유가 없는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제한하고 있던 일족의 잘못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기자에게 제보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민주혁과 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그 자식이겠지.’
문종원 기자.
그를 만나 보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필요하다면 기억을 뒤져서라도.
에르제는 멤버들에게 비행기 표를 나누어 주며 결연하게 말했다.
“일본 관광은 다음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