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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93화 (293/307)
  • 제293화

    293화

    서은우가 자신의 육체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분명 신경이 쓰일 만한 일이었지만, 에르제는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

    처음부터 토트윈에 자신의 육체로 합류한 것도 아니었고, 이제는 이 몸이 더 익숙해졌으니까.

    무엇보다도 이를 잃으면 지금까지 지구에서 쌓아 온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에르제에게는 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생각한 게 내 몸을 해치겠다는 거라니.’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는 사고방식이다.

    녀석은 처음 의식으로 자신을 이곳에 불러왔을 때부터 그랬다.

    ‘조금만 더 스스로를 사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과거 그가 겪었던 일을 변명으로 대기에는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이나 보여 주었던 행동이 너무 심했다.

    원래 서은우를 만나서 물어보려고 했던 ‘에이리스를 죽인 이유’는, 오늘 녀석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됐다.

    그저 이제는 필요 없어졌으니까. 로드의 힘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정말, 별거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은우는, 내 몸에 들어왔더라도 아이돌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복도를 걸어가며 에르제는 곰곰이 생각했다.

    서은우를 이대로 둔다면 스스로를 또다시 망가뜨릴 것이고, 그 피해는 온전히 D.D.에서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다.

    D.D.와 의리를 지켜야 할 정도로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녀석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꼴은 그다지 보고 싶은 광경이 아니었다.

    팔짱을 낀 채로 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에르제는 고민을 잠시 접어 두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아이돌을 그만두게 하는 것뿐.

    ‘기존에 에이리스가 가지고 있던 연예계를 제어할 수단들은 아직 남아 있기는 한데.’

    예능계에 여기저기 퍼져 있는 고위 관계자들, 방송국 쪽 인간들 등등.

    에이리스가 자신을 몰락시키기 위해 깔아 두었던 발판들은 아직 유효했다.

    인간이 되었지만 ‘제이’가 꾸준히 관리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물론 제이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쓰려고 남겨 둔 모양이지만 말이다.

    ‘이제는 내가 로드니까 상관…… 아.’

    제이는 이제 인간이지?

    뱀파리스의 힘을 잃었으니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다. 로드로서의 명령권이 그한테는 통하지 않으니까.

    쩝, 입맛을 다신 에르제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제이한테 부탁을 하는 건 좀…… 안 내키는데.”

    아, 모르겠다.

    일단은 세리나를 시켜서 서은우를 감시하고 있으라 할 수밖에.

    뭔가 일을 벌이려 하면 사전에 차단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제일 나을 듯했다.

    “오늘 일로 나한테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걸 알았을 테니…… 자포자기하거나, 뭐 진짜 열심히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에르제는 대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토트윈 멤버들과 서은우를 제외한 D.D.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르제가 서은우를 데려갔던 것 때문인지, 그들의 얼굴에는 은근히 걱정스러운 기색이 남아 있었다.

    “!”

    “은우!”

    D.D.의 리더 KAL과 윤치우가 에르제를 발견하고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별일……은 없었지?”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걱정하는 윤치우의 태도에 에르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냥 별일 없었어.”

    “정말……이죠?”

    에르제의 대답에 KAL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연신 손을 비비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손바닥에 땀이 찼던 모양이었다.

    ‘너무 과격한 방법으로 끌고 갔나…….’

    에르제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그냥 이야기만 나눴어요.”

    “아아…… 다행이네요. 한국말을 잘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기도 했고…… 이번에 연습생 기간도 없이 신입 멤버로 들어온 터라…….”

    아무것도 모르니 이해해 주세요, KAL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말이, 아직 토트윈 멤버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태현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KAL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SR이란 분은 외모가…… 압도적이기는 한데. 연습생 기간도 거치지 않았다는 건 진짜예요?”

    “네. 저희도 사실 소속사에서 통보 수준으로 받은 거라.”

    “음…… 그래도 기본적인 건 테스트를 해야 하지 않나요?”

    요즘에는 단순히 얼굴만으로 아이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SR의 외모는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났지만, 노래나 춤 모두 하자가 있다면 타 팬들에게 물어뜯기 당하기 딱 좋았으니 말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꽤나 큰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일.

    그러나 KAL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노래도 괜찮게 하고, 춤은 잘 추는 편이에요.”

    “……일반인 기준은 아니죠?”

    “네. 다른 아이돌분들 기준으로요.”

    “허.”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

    연습생 기간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노래와 춤을 ‘아이돌스럽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해서였다.

    물론 그 외에 몸을 만들거나 인성 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었지만.

    ‘팬들이 좋아할 아이돌이 되는 것’,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상업성’을 키우는 일인 것이다.

    “외모는 역대 최고 수준이고, 노래랑 춤이 어느 정도 되면……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민주혁의 말에 KAL이 코끝을 긁적였다.

    “심지어 춤은, 저희 그룹 멤버들 중에서 두 번째로 잘 춰요. 메인 댄서 바로 밑 정도…… 아!”

    KAL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연습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거의 쉬지 않고 하던데.”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토트윈 대기실의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노크도 없이 열린 문에 고개를 돌리니 SR이 미간을 좁힌 채 서 있었다.

    “대기실에 없길래 어디에 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나 보네.”

    “아, 사실 너도 이쪽으로 같이 올 줄 알고…….”

    KAL이 어설픈 변명을 하고 있으니 SR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사자도 없는데 뒤에서 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 거지.”

    “아, 아니 그게…….”

    KAL은 굳이 따지자면 SR을 변호하고 있던 입장이었지만, 뭐가 됐든 뒤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맞았기에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한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SR이 입술을 뗐다.

    “돌아가자 이제. 여기에 더 있을 이유는 없잖아.”

    “어? 어어…….”

    “그럼 먼저 갑니다. 선배님들.”

    SR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

    “…….”

    에르제가 선배질 하려고 데려간 거 아니었나?

    인사를 했다는 것만 빼고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떨떠름한 멤버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에르제는 D.D.를 대기실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고 있을 때, 그는 가장 마지막에 문고리를 잡은 KAL에게 작게 속삭였다.

    “제 연락처는 알고 있죠?”

    “네. 저번에 콜라보 할 때…….”

    “혹시라도, SR이 수상한 일을 하거나 의심스러우면 바로 연락 주세요.”

    “……?”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에르제는 한쪽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것도 거짓말 같거든요. 영어, 잘 못하던데.”

    “!”

    KAL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에르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튼 뭔가 수상한 것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별다른 뜻은 없고 그냥, 걱정되면 언제든지 상담 요청하라는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KAL은 몽글몽글한 눈망울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다른 고민 있어도 연락드릴게요.”

    그러고는 후다닥 바깥으로 나간다.

    ‘아니. 그거까지는 허락 안 했는데…….’

    에르제는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등을 보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 * *

    [ 토트윈 일본 투어 성공적! ]

    [ 일본 현지에서도 뜨거운 반응.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토트윈의 ‘AM’과 ‘FM’ ]

    [ 콘서트 직후 현지 인터뷰 ]

    일본에서의 마지막 콘서트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 한국에서는 연일 토트윈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연예부에서 작정하고 기사를 붓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사실 그 뒤에는 ‘청화’의 입김이 어느 정도 들어갔다.

    예전, 뱀파이어 로드 에르제에게 도움을 받은 이후 안병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다만 아들의 직업이 공인인지라 세간의 눈을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그것도 지난날 자신의 과오라 여기는 중이었다.

    “회장님. 이번 달 매출 관련 표입니다.”

    “음.”

    안병인은 단정하게 면도한 턱을 쓸며 서류를 받아 빠르게 검토를 마쳤다.

    “좋군.”

    민주혁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후원하고 있던 토트윈은, 현재 그의 노트북에 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 이제는 더 나아가 미국까지.

    토트윈이라는 이름이 아시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낸 곡이 아직도 빌보드에서 버티고 있으니.’

    안병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없고, 아내와 아들 둘이 찍은 사진이었다.

    ‘뉘 집 아들인지 참 잘생겼군.’

    속으로 끌끌 웃은 안병인은 서둘러 표정을 고치고 비서에게 나가 보라 지시했다.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밖으로 나갔고, 안병인은 어느새 다시 흐물흐물해진 표정으로 사진을 집어 들었다.

    다시, 단란한 가족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 이기심으로 망칠 수는 없지.’

    안병인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민주혁이 자신의 아들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기심일 뿐.

    대중들에게 알려진 민주혁의 과거에는 ‘청화’와 자신은 없었다.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데.’

    그런데 갑자기 ‘청화’가 민주혁의 아버지인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면.

    열심히 달리고 있는 토트윈의 행보에 그야말로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였다.

    ‘정보를 철저히 막고 있는지 다시 확인을 해야겠어.’

    괜한 생각을 해서인지, 불안해진 마음을 다시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슬슬 기력도 달리고 걱정만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홍 대표 불러서 식사라도 한 끼 해야겠군.’

    안병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유일한 비밀을 알고 있는 친우에게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도 전.

    방금 밖으로 나갔던 비서가 겁먹은 얼굴로 회장실에 뛰어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들어가겠다는 말도 없이……!! 하지만 워낙 급한 사안이라서!!”

    “괜찮네. 질책하지 않을 테니까, 말해 보게.”

    “그……게.”

    들어왔던 기세와 다르게 비서가 주춤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꾸욱 감았다 뜬 그녀는 이내 결심을 내린 듯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안병인에게 보여 주었다.

    기사의 제목부터 내용을 읽어 내리는 그를 보며, 비서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아무……래도, 도련님과 회장님의 관계가.”

    하지만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비서는 눈앞에 일어난 광경에 짧게 비명을 질렀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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