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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90화 (290/307)

제290화

290화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은 일본.

그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서은우가 대악마의 힘을 아직 가지고 있을 때의 경우였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여기로 당장 날아오라고 하면 되니까.

대악마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

신이 서은우를 카테이아 대륙으로 보내면서 대악마의 힘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분명 육체를 다시 얻는 조건으로 힘을 거둬 갔겠지.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인가.’

첫 번째 가설의 고민을 끝낸 에르제는 곧장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라 방법이라 말은 했지만 사실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다른 이를 이용해서 그를 데려오는 것뿐.

‘적합한 사람은 라하임이나, 그림자에 숨을 수 있는 플랑, 혹은…… 지서후나 대마녀 정도인가?’

빠르게 인선을 추린 에르제는 손가락을 접으며 고민했다.

우선 라하임은 이쪽 매니저 일로 바쁘다. 녀석 혼자만 한국에 날아갔다 오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와야 하는 것.

당연히 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세 사람 중에서는 누가 가장 괜찮을까?

‘그쪽도 신입 멤버로 들어간 모양이니까, 함부로 며칠씩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텐데.’

무난하게 공항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플랑과 지서후를 이용하는 것도 어렵겠고…….’

두 사람 모두, 라하임보다 빠를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으니까.

남은 건 대마녀뿐인가.

저번에도 로드의 힘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았는데.

‘철면피 한 번 깔지 뭐.’

지금은 그 정도로 시급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에르제는 얼굴을 굳힌 채 스마트폰으로 대마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번에 새로 D.D.에 합류한 신입 멤버를 이곳으로 최대한 빨리 데려올 수 있겠냐고.

그리고 답장은 금세 왔다.

[ 나도 만능이 아니거든?! 텔레포트 같은 건 너희 대륙에나 있는 얘기지, 여기서는 그런 거 불가능해. 공기 중의 마력량 자체도 다르다면서. ]

결론은 ‘불가’였다.

“아아, 결국 내가 찾아가는 수밖에 없나.”

에르제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멤버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텐데.

심지어 써먹을 만한 적당한 변명거리도 없다.

‘웬만해서는 투어에 지장을 주고 싶지는 않은…….’

손가락을 튕기며 생각을 거듭하던 에르제는, 문득 어제 태현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던 이야기가 지금은 가능성 넘치는 이야기로 보여졌다.

‘태현우 가족들을 이번 투어에 게스트로 초대했다고 했지?’

원래는 한국에서 투어 첫 무대를 할 때 초청하려 했다고 들었는데, 녀석의 부모님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차선으로 둔 것이 일본에서의 콘서트.

‘미국으로 가면 거리가 너무 멀어지니까, 딱 다음 공연이 마지노선이라 했었지.’

음음.

에르제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동자가 데구루루 구른 뒤에 책상 위에서 멈추었다.

‘시간은, 충분하겠네.’

달력의 날짜를 확인한 에르제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장 대표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받는소리가 들려왔다.

[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

“어…… 아뇨?”

[ 갑자기 야밤에 전화해서 놀랐잖아! 뭔데? ]

수화기 너머,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색색 대고 있을 장 대표의 모습이 훤했다.

속으로 쿡쿡 웃은 에르제는 빠르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일본에서 하는 콘서트라, 멤버들 가족 초청을 위해 비워 둔 자리가 다 차지 않았잖아요?”

[ 그랬지? 왜? ]

“혹시, 그 빈 자리에 제가 원하는 사람들을 초청해도 괜찮나요?”

[ 음…… 못할 건 없기는 한데. 왜? 저번에 말했던 그 사촌의 고종의…… 아무튼, 그 친척 데려오려고? ]

“아뇨.”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고개를 저었다.

“D.D. 멤버들, 저희 콘서트에 부르고 싶은데.”

[ ……. ]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뜬금없이 나온 D.D.라는 단어에 장 대표의 사고 회로가 정지한 모양이었다.

[ 어…… 은우야? 음. ]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장 대표는, 10번의 ‘음……’을 더 하고 나서야 겨우 하고 싶은 말을 끝마칠 수 있었다.

[ 그게, 네가 원한다고 막 초청이 되는 게 아니거든? 사실 연습생들이나 곧 데뷔하는 아이돌이 콘서트 관람하고 하는 거야, 왕왕 있는 일이기는 한데……. ]

“안 되나요?”

[ 아니, 아니!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지. ]

“음.”

에르제는 장 대표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오란다고 오겠느냐 이 얘기였다.

과거 LAK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토트윈은, 당시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선배의 무대를 보며 배우는 것과 바이럴, 홍보 등등.

한 마디로 신인으로서 취한 스탠스일 뿐.

[ D.D.랑 너희가 막, 친한 그룹 사이고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으면 모를까. 사실 그렇잖냐. 그쪽에서는 우리를 라이벌이라고 막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투어하는데 보러 올래? 라니. 우리가 더 잘나가고 있으니까 약 좀 올리겠다는 뜻밖에 더 되겠어? ]

장황한 이야기였지만 에르제는 전부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다고 하면 역이용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 부분을 파고들어 보면 어떨까요?”

그 뒤로 에르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금 전에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꽤 그럴듯하다 여겼는지, 장 대표도 말없이 들었다.

그렇게 에르제의 말이 끝났을 때.

[ 음…… 일단, 뭐 된다고 확신은 못 하는데. 노력은 해 보마. ]

장 대표는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D.D.를 왜 갑자기 초대하겠다고 한 거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멤버, 제가 아는 사람 같아서요. 미국 투어까지 다 하고 나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 당최 뭔 소린지. 알겠다 그래. ]

물론 완벽하게 납득한 태도는 아닌 듯했지만.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오후, 장 대표는 D.D. 소속사의 답을 가지고 왔다.

* * *

Silver Rain, 줄여서 SR.

그는 거실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치를 못 챌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만.’

이렇게 빨리 에르제에게서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원래는 데뷔를 하고 나면 자신이 지구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릴 요량이었는데.

‘저번에 그 매니저란 놈이 찍어간 사진 때문인가.’

SR은 미간을 좁히며 까득, 손톱을 깨물었다.

지옥이나 여기나 하여간 믿을 놈 하나 없는 세계인 것은 똑같다.

보나 마나 모카 엔터 쪽 직원에게 정보를 유출하는 놈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 인간을 찾아낼 방법도, 족칠 힘도 없었으니까.

“에휴.”

단순히 한숨을 뱉어낸 SR은 짐을 챙기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발단은 장태수 대표, 그러니까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라는 작자의 전화였다.

D.D.를 토트윈의 콘서트에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

당연히 거절을 하려 했던 D.D.의 소속사 대표는, 뒤에 이어진 말 때문에 멈칫하며 그 소식을 D.D.에게 전했다.

“토트윈과 우리, 두 그룹의 대중적인 인식을 바꿔 보자 하더구나.”

“대중적인 인식이라면…….”

“왜, 우리만 라이벌 구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그거 말이다.”

말을 하는 대표의 표정은 착잡했는데, 사실 멤버들의 표정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토트윈은 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상태였고, D.D.는 이제야 그들의 데뷔 1년 차에 비빌 수 있을까 싶은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D.D.의 팬들은 그들의 편을 들었지만, 다른 팬들이나 대중들의 시선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멍청이들로 보였을 테니까.

심지어 이번 신입 멤버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흘러나갔을 때도 태반이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비주얼 멤버 추가로는 따라잡기는 어려울 거라면서.

“애초에 예능 플롯을 그딴 식으로 짜지만 않았어도……!”

“세환아.”

대표는 짐짓 D.D.의 리더에게 엄포를 놓은 뒤에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손해 볼 건 없다 생각한다. 너희들 와신상담이라는 말 알지?”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

말뜻을 이해한 멤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그냥 토트윈과 친한 후배 그룹, 딱 그 정도에서 만족해 보자. 우리는 우리대로 열심히 해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만간 뒤집어 놔. 그때 가서는 우리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라이벌로 엮어 줄 거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토트윈 콘서트로 오라는 초청은 받아들이실 건가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던진 SR의 질문에,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저녁에 바로 출발하자.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네!!”

우렁찬 대답이 울려 퍼졌던 것까지가…….

‘어제의 이야기.’

그리고 별달리 챙길 게 없는 SR을 제외하고, 멤버들이 이토록 분주한 이유이기도 했다.

‘짜증 나.’

당연히 에르제에게 감정이 좋을 수 없는 SR은 입술을 짓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 분노만 하고 있으니 열이 올라서였다.

촤악, 촤악.

찬물을 몇 번이나 얼굴에 끼얹고 나니 조금 기분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3시간 뒤면 비행기를 탈 테고, 그다음 날이 되면 에르제 그 X끼가 공연하는 모습을 직관해야 할 테지.

‘공연이 끝나면 당연히 나한테 접근해 올 것이다.’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고, 찾아오는 대신 자신을 그곳으로 불렀다.

‘애초에, 해코지를 할 생각이었으면 직접 찾아오거나 다른 놈들을 시켰겠지.’

자신과 에이리스의 세력을 무너뜨린 그 빌어먹을 놈들을 이용해서.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자신에게 아직 대악마의 힘이 남아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일 터였다.

에르제는, 신과 자신의 계약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은 녀석에게 로드의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이건 놈과 내 관계에 있어 크게 작용할 거야.’

씨익, 불쾌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대악마의 힘을 미끼로 녀석을 무릎 꿇게 해 볼까?

아니면 협박을 할까?

같은 아이돌이 되어서 쳐부수는 것 말고, 더 재미있어 보이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아아.’

허세는 위세가 되고 또 기세가 된다.

‘응해 주마.’

SR은 입술 위를 혀로 핥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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