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289화
단정하게 잘라 둔 흑발, 나른해 보이면서도 오만하고 고고한 눈빛, 같은 인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뚝하고 날카로운 콧대,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
D.D.의 멤버들이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같은 사람인 건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눈앞의 남자는 상상하던 미의 기준을 뛰어넘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180 후반은 될 법한 큰 키에 탄탄한 몸까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
“인사해. 저번에 미리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새롭게 멤버가 될 ‘실버레인’이라고 해. SR로 부르면 된다더라.”
“은색 비…….”
이름은 그렇게 잘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뭐랄까, 눈앞의 남자는 좀 더 퇴폐적이고 어둠과 가까운 듯이 보였으니까.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중, D.D.의 멤버 하나가 손을 들고 매니저에게 물었다.
“그런데, SR은 외국인이에요?”
“응. 근데 좀 한국인처럼 생긴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물어봤어요. 헷갈려서.”
조금 무례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으나, SR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관조하듯 D.D.의 전원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을 뿐.
리더 ‘KAL’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갑자기 새 멤버를 추가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와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SR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위에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것도 같았다.
처음 예능 프로그램으로 데뷔할 때부터 그들이 잠재적으로 정해 두었던 라이벌은 하나, ‘토트윈’이었는데.
그들이 두 발 앞서갈 때, 한 발 따라가는 것이 고작인 지금.
D.D.에게 부족한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것이 분명한 인재가 맞았으니까.
‘팬들도, 납득할 수 있을 수준의 외모…….’
D.D.의 전체적인 외모는 아이돌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지만, 토트윈과 비교하면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서은우라는 존재.
그는 토트윈 내에서도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며, 노래와 춤까지 수준급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멤버였다.
‘그리고 소속사의 차이…….’
KAL은 약간 죽은 눈으로 SR을 바라보았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인정하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아.’
아마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초에 소속사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묵살했으니까.
우리끼리 해 보고 싶다, 갑자기 새 멤버가 들어오면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등등.
온갖 이유를 대며 영입을 반대했는데 기어코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싫은 건 싫은 거지.’
그러나,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다.
이미 결정되어 버린 상황이고, 계약자인 자신들은 권리가 약했다.
그냥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녀석과 잘 지내는 수밖에.
그렇게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니.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매니저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아아, 미안해. 말없이 찍어서. 그런데 대표님이 사진 하나 보내달라고 하셔 가지고. 너희들이랑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다 하시네.”
“……괜찮아요.”
그렇게 대답한 KAL은 어물쩍거리는 다른 멤버들에게 슬쩍 눈치를 주고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 나는 김세환, D.D.의 KAL이야. 편한 대로 불러도 돼. 내가 리더니까 궁금한 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
자신이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SR은 맑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 * *
‘D.D.’, 그들의 목표는 하나.
어떠한 그룹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토트윈을 잡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흔히 말하는 라이벌 의식, D.D.의 멤버들에게는 그것이 뼛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새로 들어온 멤버한테 강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SR은 토트윈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저렇게까지 불태우고 있는 걸까?
‘우리랑은 아이돌이 된 과정 자체가 다른데…….’
KAL은 연습실에서 아직도 춤 연습을 하고 있는 SR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돌로 데뷔한 쪽.
1위부터 순위가 매겨진 순서대로 그룹에 포함되어 지금까지 아이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초창기 방송은 이상하리만치 토트윈을 의식했다.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당연히 에이리스의 명령을 받았던 제이의 농간이었지만, KAL을 포함한 멤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으니.
그저 전염이 되듯 토트윈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룹 이름까지 저격을 한 수준이니까.’
대중들과 팬들이 그것까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D.D.라는 그룹명도 토트윈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였다.
Dead dragon.
한글로는 죽은 용이며, 또다시 죽음을 한자로 변환하게 되면 사용.
‘그리고 그걸 뒤집으면 용사…….’
판타지 세계의 각종 괴물들을 용사인 자신들이 잡겠다, 뭐 이런 의미라고…….
‘그걸 그렇게까지 꼬아 놓으니, 사람들이 모르지.’
KAL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그룹이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토트윈에게 ‘만들어진’ 악의와 반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과 음방에서 자주 마주쳐 보기도 하고 콜라보도 하게 되면서 친밀감이 조금씩 올라가게 된 것이다.
해서, 지금은 순수한 경쟁자로서의 감정만 가지고 있을 뿐.
아니, 굳이 말하자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선배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쪽에서 D.D.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KAL의 시선이 다시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SR에게 닿았다.
‘저 녀석은 왜 저렇게까지.’
연습 시간은 이미 아득히 상회했고 탈진 직전의 모습이면서도 꿋꿋이 참아내고 있다.
외모만으로 아이돌이 되겠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이 아닌 것은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 이유가 수상하고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겠다는 의지면 납득하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도대체 토트윈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저렇게까지 의욕을 불태우는 걸까?
의욕 수준이 아니라 마치 원한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내심 불안함까지 느끼는 중이다.
“형. 쟤, 좀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느끼고 있던 게 자신만이 아니었는지,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멤버도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약간 정신 놓은 사람 같아. 아까 내가 말 걸었더니, 연습할 때는 말 걸지 말래. 그래 놓고 지금 3시간째잖아.”
“…….”
“이 정도면 토트윈 멤버 선정할 때 최종 탈락이라도 한 거 아냐? 그래서 막, 복수하려고 저러는 거 아닐까?”
“그건 아니래잖냐.”
KAL은 대답하며 팔짱을 꼈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외국에서 살다가 올해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고 하는데, 기존에 다른 소속사에 있던 적도 없다고 했으니까.”
“그거야, 조사가 아직 덜 돼서…….”
“고아에다가 연고 있는 친척도 없다는 것까지 알아냈는데, 그 정도도 조사가 안 되었을까?”
게다가 소속사가 무슨 흥신소도 아니고, 과거에 특별히 범죄 이력이 없는지 확인만 하면 됐지.
“어쨌든, 우리랑 목적지가 같으면 생각이 크게 부딪히는 일은 없겠지.”
KAL은 똑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것이라는 확신보다는,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하지만, KAL의 바람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 * *
“야, 괜찮아?”
“어제부터 계속 상태가 이상해여!!”
민주혁과 안단테가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으며, 태현우는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윤치우는 ‘투어를 중단해야 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꼬박 하루 내내, 에르제의 정신은 완전히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어이!!’
에르제는 소원을 빌어 보거나 심지어는 기도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신에게 접촉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이리스와 서은우, 그들에 대한 위협도 없어진 마당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신성력인지 뭔지, 그거 다 회복된 거 아니냐고! 대답 좀 해!!’
에르제는 이제 예의마저 집어치운 채 신을 계속해서 불러 댔다.
하지만…… 아무리 서은우의 몸속에서 영겁의 시간을 버텨 왔다 해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존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때려치우는 게 낫겠군.’
뭐가 됐든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그냥 해결책을 찾는 편이 나을 듯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에 대한 대답은 포기하자.
그렇게 20시간 만에, 에르제가 처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겉으로 보기에 멍했던’ 표정을 푸니, 눈앞에 걱정스러움으로 가득한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마치 내부 관조를 할 때처럼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 에르제는 식겁한 가슴을 누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무려, 20시간.
멤버들이 자러 들어갔던 어젯밤 8시 30분 즈음부터 생각에 빠졌으니…… 다음 날 오후 4시 30분인 지금까지 이러고 있었다는 얘기다.
멤버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 미안해. 생각을 좀 하느라.”
“뭔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냐고!!”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태현우가 에르제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댔다.
“이렇게 흔들어도 반응 하나 없었어! 알아?! 하 씨!!”
“……치우 형이, 일단 더 지켜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벌써 투어 취소하고, 병원에라도 강제로 데려갔을 거예여.”
안단테가 입술을 씹으며 얘기했고, 민주혁은 후우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에 담겨 있던 감정이 뭔지는, 굳이 추측하지 않아도 알 듯했다.
“미……안?”
“당연히 미안해야지, 이 자식아!”
태현우는 이내 어깨를 흔드는 것을 멈추고는, 보다 격렬하게 찰싹찰싹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물론 다시 로드의 힘을 찾아온 덕분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악!! 왜 내가 아픈데!!”
반대로 태현우가 본인의 손을 감싸 쥐며 울상을 지었다.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본 에르제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젯밤부터 꼼짝 않고 있었던 터라, 좁은 방 안에 5명의 멤버 전원이 들어와 있던 상황이었다.
“음, 그냥 진짜 완전 정신을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미안.”
에르제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렇게 걱정을 시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멤버들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걱정을 했을지 눈에 환히 보였다.
“……은우가 이렇게 사과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건 그래.”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기색을 띠고 있는 멤버들은, ‘무슨 일 있으면 털어놓아라.’ ‘병원 가야 하면 말해라.’ 등의 말을 남기고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그리고 에르제는 어느새 텅 빈 방 안에 앉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멤버들을 걱정하게 만든 건 그렇다 치고…….
이제는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이 사달을 만들었을 확률이 제일 높은 신은 응답이 없고, 그렇다면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본인.
‘……아, 근데 자리 비우면 또 걱정하고 그럴 텐데.’
어쩔 수 없이 투어를 뒤로 미뤄야 하나.
이미 지은 죄가 하나 있다 보니,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친척 찬스는 너무 최근에 사용해서, 또 써먹기는 그래.’
게다가 연일 이어지는 콘서트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고.
‘……아니, 아니지.’
그러다 에르제는 고민 끝에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왜 직접 찾아갈 생각만 했을까?
‘그래, 반대도 있잖아.’
그쪽에서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들면 되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