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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87화 (287/307)
  • 제287화

    287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꿈이다.

    ‘단독’으로 공연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

    토트윈은 그 꿈의 무대에서, 첫 투어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역시, 로드께서는 대단해.”

    “왜 매해 갈수록 덕심이 깊어지는 걸까요. 저 요즘 일도 잘 안 해요, 흐엉.”

    세리나의 말에 장미영이 익살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픽 웃은 세리나는, 새까맣게 몰려 있는 인파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거고, 우리가 문제네. 인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떻게, 매료를 쓸까요?”

    “그럴 거면 내 매혹의 힘을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치만 그렇게 하면 인간들의 정신이 다치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네.”

    이곳의 가드나 직원들이면 모를까, 실수로 로드의 소중한 팬에게 정신적인 후유증을 남기는 것은 좋지 않다.

    이브는 로드에게도 소중하지만, 자신에게도 소중한 ‘일족’들이었으니까.

    “어떻게 한담.”

    세리나는 장미영의 ‘매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이내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정상적으로 들어가자.”

    “네? 입장만 한참 걸릴 것 같은데에.”

    “다들 똑같은 입장이잖아.”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는 장미영이었지만 세리나는 단호했다.

    “우리도 이브고, 저들도 이브잖아. 우리만 특혜를 받는 건 아닌 것 같아. 우리 둘로 인해서 다른 이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거고.”

    “아아, 역시. 탄복했어요.”

    장미영은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역시 홈마의 생각은 따라갈 수 없어요.”

    “큼큼!”

    어깨를 으쓱 올린 세리나가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로드가 데뷔하기 전부터 이브였다고. 이브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이브였다니까. 미영이도 조금만 더 덕질을 하다 보면 나처럼 될 수 있단다.”

    “역시!”

    거의 콩트 수준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리나는, 뱀파이어의 기억력으로 그 인간이 누구인지 금세 알아챘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했지만.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 콘서트에서 보았던 남자 팬, 그가 볼을 긁적이며 서 있었다.

    “그러네요.”

    대답을 하며 세리나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니,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물론 압도적으로 적은 숫자였지만…… 뭐랄까, 다른 남자 아이돌에 비하면 두 배는 될 수치였다.

    대충 주변을 확인한 세리나는,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나저나, 이번에도 티켓팅 성공한 거예요?”

    “아…… 어쩌다 보니.”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인재일지 모르겠다.

    토트윈의 티켓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전쟁이었다.

    티켓팅을 하는 날이면 피시방 3분의 1은 팬들이 앉아 탄식과 환호를 번갈아 지른다는 괴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 몇 분이면 좌석 수와 관계없이 모두 팔려 나가는 어마어마한 전쟁, 그리고 눈앞의 남자 팬은 그것을 두 번이나 이겨냈다.

    “대단한데요? 진짜 말 그대로 피켓팅이었는데…….”

    “그러게요.”

    남자 팬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핸드폰으로 티켓팅하는 게 제일 확률이 높긴 하더라고요. 운 좋게 새로 고침이 잘 먹어서.”

    “운도 실력입니다.”

    그것도 두 번이라면 운에서 운명으로 높여 줄 생각도 있다.

    세리나는 남자 팬의 어깨를 덥석 부여잡고 말했다.

    “SNS 같은 거 하세요?”

    “아, 넵. 하죠.”

    원래는 실제로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지만, ‘남자 팬’에 더불어 티켓팅의 실력자!

    세리나는 장미영 다음으로 처음 그녀의 실물을 공개했다.

    “세리나가 제 닉네임인데, 따로 홈페이지 운영도 하거든요. SNS랑 같이요.”

    “아……! 동생한테 들었어요. 그걸 홈마? 라고 한다고.”

    “그렇답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세리나가 당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제 건 꽤나 유명하지요. 동생분도 알고 있을걸요?”

    “아……! 그래요?”

    네임드 홈마는, 팬들 사이에서 또 다른 팬을 양산시킨다.

    토트윈의 팬이면서 세리나의 팬인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팬’이라기보다는…… 추종자(?)에 가깝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남자 팬은 사진까지 찾아보지는 않는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지만, 세리나는 직접 자신의 계정을 알려 주며 팔로우까지 했다.

    “어디 다른 데 가서, 저 실제로 봤다는 말은 하지 마요. 그쪽한테만 특별히 알려 주는 거예요.”

    속닥거린 세리나가 씩 웃자, 남자 팬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세리나의 옆에 있는 장미영을 발견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홈마인 세리나보다, 더 놀란 반응이었다.

    “저…… 혹시, 장미영 배우님?!”

    “호호. 저 맞아요.”

    그리고 장미영도 딱히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토트윈의 열렬한 팬이라는 건 만천하에 다 알려졌으니, 딱히 숨길 것도 없는 것이다.

    물론 토트윈이 주인공인 이곳에서 주목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가려 두었지만 말이다.

    “와……! 연예인을 이렇게 코앞에서 볼 줄이야.”

    남자 팬은 조심스럽게 장미영에게 사인과 사진을 부탁하고는, 감사하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건 자랑해도 돼요?”

    “어차피 투어 보러 왔다고 자랑할 거라서, 후후. 괜찮아요. 다만 오늘 콘 끝나고 나서.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럼요.”

    남자 팬의 대답에 장미영은 기세등등하게 세리나를 바라보았다.

    ‘훗, 내가 이겼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세리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나도, 연예계 진출을 해야 하나.”

    “언니 배우 생각 있으면 말해요. 내가 가르쳐 줄게.”

    “……됐어.”

    세리나는 손을 내젓고는.

    ‘입장하실게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대기실에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다, 드디어 무대로 향하는 길.

    아직 팬들의 얼굴은 마주하지도 못했지만 벌써부터 복도 내에 열기가 가득했다.

    ‘후끈하네.’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 만나는 자리.

    에르제뿐만이 아니라 토트윈의 다른 멤버들도 흥분과 기대감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오늘 무대는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서 하자. 이번에 첫 콘서트 하고 일본이랑 미국 거쳐서 투어 진행하면, 휴식 기간이 긴 만큼 마지막 콘 하러 한국 돌아올 때까지 엄청 오래 걸릴 테니까.”

    윤치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노파심에 윤치우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무대도 허투루 한 적이 없었다고.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했고 오늘도 해 왔던 대로 보여 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도포 자락이, 걸음에 맞춰서 펄럭였다.

    * * *

    어느덧 도착한 백스테이지.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객석은 환호로 가득 찼다.

    올림픽 주경기장,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기에 환호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울림을 뿜어냈다.

    “가자.”

    그리고 윤치우의 말과 함께 토트윈이 무대 위로 등장했을 때는.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이 뒤집힐 것 같은 충격이, 무대 위로 전해져 왔다.

    사극 느낌을 물씬 나게 만드는 도포, 현대식으로 개량한 한복 때문이었다.

    팬들은 연신 토트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응원봉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ㅡ!!!

    토트윈이 손을 들어 화답하자 다시금 쏟아져 나오는 우렁찬 환호.

    무대에 꿋꿋이 발을 디디고 있던 에르제가,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만들 정도의 기세였다.

    ‘엄청…… 나네.’

    에르제는 속으로 하하,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그들의 착장이 이런 반응을 의도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더 좋은 반응이었다.

    팽팽, 돌아가는 로드의 힘이 에르제의 기분을 따라 맹렬하게 몸속을 회전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매혹의 힘.

    에르제는 딱,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약한’ 힘만 흘리며.

    ‘세리나와 장미영도 왔구나.’

    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리고 오프닝 무대가, 시작되었다.

    둥둥둥ㅡ!

    드럼 소리와 함께 깔리는 베이스 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탁, 탁, 탁.

    토트윈도 발을 까딱이며 발을 맞췄다.

    조금은 너른 듯한 도포 자락이 이에 맞춰서 하늘하늘 흩날렸다.

    하늘색, 하얀색, 청록색…….

    다양한 색깔의 도포 자락이 빙글 돈다.

    한 바퀴, 반주에 맞춰 대열을 돌며 정돈한 토트윈의 가운데에서 에르제가 걸어 나왔다.

    오프닝의 오프닝, 콘서트의 첫 곡은 팬들에게 새로 선보이는 곡 중 하나. ‘밤이 온다’.

    경쾌한 사운드에 더불어 사극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다양한 전통 악기들이 에르제의 주변에 감돌았다.

    ㅡ 파랗던 하늘이 노래지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의 불을 밝히면

    우리는 그때서야

    밤의 거리를

    ㅡ 휘영청 걸린 달이 뜨면

    길을 다니는 우리들이

    하나둘씩 눈에 불을 밝히면

    온다, 온다

    덩실덩실, 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특유의 춤사위.

    안무 속에 섞인 한국적인 무용이 드러나고, 토트윈의 신곡이 제대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특별 버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토트윈의 모습.

    기존에는 할로윈의 이미지를 담아서 판타지적인 괴물들을 데려와 콘셉트를 잡았다면.

    이번 곡 ‘밤이 온다’는, 일부러 사극적인 느낌을 첨가하고 의상도 맞춘 곡이었다.

    바로, 한국 내에 있는 괴물들.

    토트윈은 흔히 말하는 요괴들을 하나씩 맡아서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있었다.

    평소보다 길게 기른 은발을 쓸어 올리는 윤치우는 ‘장산범’.

    약간 산발 형태로 매만진 적색 머리카락의 주인인 민주혁은 ‘두억시니’.

    홀로 흑색 옷을 입고 갓까지 착용한 안단테는 ‘어둑시니’. 터덜터덜 움직이는 그의 춤선이, 절로 침을 삼키게 만든다.

    이어서 금발의 태현우는 ‘도깨비’였다. 도포 안에 갖춰 입은 줄무늬 옷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에르제는 예전에도 한 번 선보인 적 있었던 ‘구미호’였다.

    머리는 짧은 흑발이었지만 에르제가 입고 있는 도포의 뒷자락은, 정확히 9개로 갈라져 있었다.

    ‘아마, 지금 곧바로 알아채기는 어렵겠지만.’

    나중에 VOD 판매가 되고 콘서트를 다녀온 팬들이 분석하기 시작하면, 금세 그들의 의도를 알아챌 것이다.

    휙, 휘릭.

    에르제는 손과 발을 시원시원하게 뻗으며 군무를 맞춰 갔다.

    ㅡ 온다, 온다.

    밤이, 온다.

    조금 명도를 낮춘 조명 속에서, 경쾌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요괴들에 대한 친근감을 상승시킨다.

    악하게 보이면서도 친근한 느낌.

    ㅡ 아무도 없는

    밤거리는

    우리들의 차지

    앞으로 있을 투어에서는 온통 영어로 된 노래들이 나오겠지만.

    ‘밤이 온다’는 제목부터 가사 전부, 한국어로 이루어진 노래.

    흥겨운 리듬과 요괴들이 벌이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

    ㅡ 우우우, 우우ㅡ!

    자유자재로 음역을 왔다 갔다 하는 에르제의 간들거리는 목소리가 증폭되어 낭랑하게 울려 퍼졌고.

    팬들은 실제로 구미호에게라도 홀린 듯 눈동자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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