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화
283화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에르제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무대에 오르자.
“놀랐어?”
대마녀가 푸훗, 하고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정밀…… 검사를 한다 하지 않았나요?”
“응. 이것도 정밀 검사의 일환이야.”
대마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시선을 무대 밖 객석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에르제를 이곳으로 안내한 수습 마녀와 더불어서, 수많은 마녀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너희들 팬이 좀 있더라고? 아, 물론 대부분은 그냥 연예인이 여기 와서 신기해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니, 그러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문제는,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것이었다.
“왜 무대가…….”
“네가 그랬잖아.”
대마녀는 에르제의 말을 잘라 내며 말했다.
“인터뷰를 할 때, 그리고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 매혹의 힘이 발현이 되었다면서.”
“그랬…… 죠.”
“그러니까, 그 발동 조건이 어떻게 되는 건지, 매혹의 힘이 발현이 되었을 때 전제된 상황이 뭔지, 네게 일어나는 변화는 또 뭔지…….”
그 뒤로 대마녀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에르제의 귀에는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저 혼자, 공연을 하라는 거 아니에요?”
“응, 맞아.”
태연하게 대답하는 대마녀의 얼굴에 에르제가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공연을 하는 거? 그래, 그냥 팬 서비스를 한다 치고 할 수 있다.
전력으로 공연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곧 있을 투어에 체력적인 부담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매혹의 힘이 너무 강하게 발현이 되면,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요. 이제 나한테는…….”
더 이상 로드의 힘이 없으니까.
매혹의 힘을 걸었다가 다시 풀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대마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거 아니니?”
“……?”
“나 이래 보여도 대마녀야.”
허리춤에 손을 올린 대마녀는 으쓱 어깨를 올렸다.
“당연히 매혹의 힘이 마녀들에게 닿지 않도록 손을 써 뒀다는 뜻이지.”
“……아.”
대마녀의 말에 에르제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얇은 막을 발견했다.
아마 에르제의 힘이 발현이 된다 하더라도, 혈기가 객석까지 닿지 않도록 막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되네요.”
에르제는 그제서야 안도하는 듯한 낯빛을 띠었다.
아무리 대마녀라 하더라도, 이미 매혹에 걸린 이들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은 없다.
매혹의 힘은 그것을 건 당사자가 풀어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매혹이 되지 않도록 하는 거라면, 에르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미리 테스트를 해 볼 수 없는 게 불안하기는 한데요.”
그런 에르제의 말에 대마녀가 쌍심지를 켰다.
“내가 다른 이들도 아니고 마녀들로 허세를 부릴 것 같아? 나도 안전하지 않았으면 시도도 안 했어.”
“그건, 그렇네요.”
하긴, 대마녀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그녀가 마녀들을 가지고 도박을 할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매혹의 힘이 발현된 것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니까.’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대마녀가 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네 몸에 있는 혈기를 감지해 줄 거야. 매혹의 힘까지는 발현이 되지 않더라도, 혹여 혈기를 검출할 수 있다면…….”
말끝을 흐리는 대마녀의 모습에 에르제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로드의 힘이 없으니까 혈기가 검출이 될 일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기가 발견이 된다면, 아직 그의 몸에는 ‘로드의 힘’이 미약하지만 남아 있다는 뜻이리라.
“알겠어요.”
이어 마이크 형태로 제작된 검출 장비를 귀에 꽂은 채, 에르제는 홀로 무대 위에 섰다.
지난번 솔로곡을 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이 있는 무대 위에 혼자 서는 것은…….
‘처음이네.’
에르제는 새삼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호기심 어린 마녀들의 시선이 잡아먹을 듯이 쏟아졌다.
이전에는 다른 멤버들과 같이 견뎌 냈다면 지금은 홀로 견뎌야 하는 상황.
그러나 다행히도 에르제는 ‘음유 시인’이었을 때,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일이었다.
“반갑습니다.”
에르제의 오른팔이 아래로 곡선을 그렸고, 그는 고고하고도 오만하게 허리를 숙였다.
짝짝짝!!
그리고 마녀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에르제의 솔로곡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솔로곡 이후에 추가로 토트윈의 곡 3개까지.
총 4곡을 마친 에르제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서는, 라하임이 건네준 호흡기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후욱, 후욱.”
혼자 무대를 하는 것은 그만큼 힘이 들었다.
그동안 토트윈 멤버들의 파트가 얼마나 많았었는지, 그리고 이걸 홀로 소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날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어, 문제…… 헉, 는 없어.”
“……로드께서 힘을 잃지만 않으셨어도.”
침통한 라하임의 말에 내가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라하임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글쎄.”
대마녀였다.
그녀는 에르제의 귀에 아직 걸려 있던 이어 마이크를 가져가며 씩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대마녀는 이어 마이크, 그러니까 검출 장비를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마녀들과 무대 사이에 있는, 투명한 벽.
그곳에는 커다랗게 금이 가 있었다.
“……!”
설마, 하는 생각에 에르제가 대마녀를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매혹의 힘은 현재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원할 때 발현이 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다.
그동안 매혹의 힘을 썼다 느꼈을 때는, 이에 당했던 다른 사람들을 보며 깨달았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무대를 준비하기를 잘했네. 여러모로 말이야.”
대마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검출 장비를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혈기를 썼을 때 드러날 거라 했던, 붉은색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매혹의 힘도 확실하게 발현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어.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는데?”
대마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에르제를 일으켜 세웠다.
“잠깐, 로드께서는 아직……!”
“라하임.”
대마녀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너는 에르제가 로드의 힘을 찾길 원하고 있지 않아?”
라하임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마녀가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어. 투어 시작하면, 기회는 영영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에르제의 몸에서 검출된 이 힘. 원천이 어디인지, 나는 왠지 알 것 같거든.”
그녀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이대로 두면, 로드를 잃을 수도 있어.”
“……!”
결국 라하임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중에서 가장 전문가인 대마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라하임.”
그리고 에르제도 라하임에게 웃어 보였다.
“대마녀가 날 해칠 리는 없거든.”
이건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현재 마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고객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대로 에르제에게 위해를 가한다고 대마녀가 얻을 이득은 단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뱀파이어들과 적대 관계가 되면 가장 큰 고객을 잃는 꼴만 되니 말이다.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대마녀는 에르제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를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검사를 시작하고 해결책을 찾을 거야.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 괜찮지?”
끄덕끄덕.
에르제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조금 전 대마녀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귀에 거슬렸다.
힘의 원천, 그리고 로드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
무척 궁금했지만, 곧 있으면 이에 대해 알게 될 터.
“라하임, 너도 따라와. 네 도움도 필요해. 정확히는 네 피가.”
“……알았다.”
그렇게 검사실로 향하던 도중 대마녀가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참, 좋은 소식이 하나 있긴 해.”
“?”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대마녀가 말을 이었다.
“아까 네 무대, 매혹의 힘과 별개로 녀석들에게 꽤나 어필이 된 모양이야. 벌써부터 카페에 가입하고, 팬이 된 애들도 있더라.”
“아.”
“아마 내일쯤이면 이 일도 마무리될 텐데, 돌아가기 전에 애들한테 사인도 해 주고 사진 좀 찍어 줘.”
“……보답은 그거면 될까요?”
“어. 그, 나랑도 사진 하나 부탁할게.”
볼을 긁적이며 말하던 대마녀는 에르제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도착했다.”
그녀의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돌리니, 온갖 기계 장치가 가득한 방 안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동 원리도 알 수 없고, 무엇을 동력 삼아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즉, 생전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뜻이었다.
“……이거로 내 몸을 검사하고, 혈기가 나오는 원천을 찾는 건가요?”
에르제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지만 대마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예상 밖의 말이었다.
“아니, 너는 지금부터 누군가를 만날 거야.”
“……누구를?”
“그건, 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봐.”
대마녀가 가리키고 있는 손끝에는,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통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복제 인간’이나 ‘외계인’의 소재를 다룬 영화에서 본 듯한 기계였다.
“저게…….”
“네가 아까 말했잖아. 너한테 위해 가할 일은 없다고. 날 믿어.”
묘하게 확신이 서려 있는 대마녀의 말에, 결국 에르제는 망설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 뭐가 되었든 지금 혈기와 매혹의 힘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야 한다.
투어를 도는 와중에 대규모 매혹의 힘이 발현이 되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이 될 테니까.
‘기껏 대악마의 강림을 막았는데, 내가 대악마가 되어 버릴 수는 없지.’
에르제는 결연한 눈빛을 띠며 원통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치이익―.
곧 연기와 함께 문이 닫히고, 에르제는 그대로 원통 안에 갇혔다.
갑갑한 기분도 잠시, ‘우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원통 내부에 초록색의 빛이 들어오며 작동을 시작했다.
미세한 진동이 계속해서 원통 내부에 발생하고……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난 시점.
녹색 빛의 뿌연 연기 속에서, 인영이 서서히 드러났다.
흐릿했던 모습이 점점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고.
“……!!”
결국 완전히 정체를 드러낸 그녀를 보며, 에르제는 침음을 삼켰다.
“에이리스.”
그녀의 여동생이자 오래된 적.
서은우에게 죽임을 당했던 그녀가, 지금 에르제의 눈앞에서 버젓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