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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82화 (282/307)

제282화

282화

대마녀를 만나러 가는 길.

에르제는 윤소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녀와 뱀파이어, 그런 이야기가 아닌 실장과 아이돌이 할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번에 너희들 투어 시작하잖아. 연습은 많이 했어? 원래는 내가 직접 점검하고 해야 하는데.”

“맨날 회사에 없으면서 점검을 어떻게 해요.”

에르제가 눈을 흘기며 그녀에게 말했다.

“장 대표가 뭐라고 안 해요?”

“아~ 너 모르는구나?”

윤소희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실장이기는 한데, 장 대표보다 힘이 세.”

“?”

“모카 엔터테인먼트 지분이 내가 더 높거든.”

윤소희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비비며 씩 웃었다.

“마녀들이 돈이 많아.”

“아아.”

불쌍한 장 대표.

에르제는 속으로 애도를 하며 걷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중간에 스치는 마녀들의 표정이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전쟁 물자니 뭐니 해서 조달을 부탁하더니, 막상 그것들은 제대로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대금은 대금대로 지불한 뒤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다.

“아하.”

그리고 그런 에르제의 생각을 읽었는지 윤소희가 대신 의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었다.

“네가 살던 카테이아? 그곳에선 마녀들의 성격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그…… 과학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다들 연구욕들이 엄청나거든.”

“연구욕이요?”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카테이아 대륙에서의 마녀들은, 조금 적나라하게 말을 하자면 돈을 밝히는 존재들이었다.

어느 종족이든 수지만 맞으면 물건을 팔았고, 그리고 그 돈을 또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데에 썼다.

물론 그들 또한 좋은 물건을 만들고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에 미쳐 있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팔기 직전까지의 마음가짐.

이미 팔아넘긴 뒤에는 관심을 끊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곳 본단의 마녀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보고 싶어 하거든. 그런데 네가 막상 물건을 받아 놓고 쓰지를 않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에르제는 지구와 카테이아 대륙의 다른 문화에 신기했다.

똑같은 마녀들인데 환경에 따라, 살고 있는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윤소희와 잡담을 나누며 걸어가던 중.

그들의 앞에 고개를 위로 꺾어야 끝을 볼 수 있는, 그 정도로 높은 문이 나타났다.

“다 왔어. 원로들은 없을 거야.”

대마녀가 직접 윤소희에게 안내를 부탁했는지, 그녀는 문 안쪽의 상황도 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대마녀님께서는 밀려 있는 공무를 처리하고 있는 중이니까, 들어가서 조금 기다려야 할 거야.”

“……감히 로드를 기다리게 한단 말입니까?”

“이제 로드 아니라며.”

분노한 라하임에게 윤소희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꾸했다.

“상관없어.”

그리고 에르제도 라하임의 등을 툭툭 두들기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이었지만 문은 자동으로 끼익, 소리를 내며 넓게 열렸다.

그 여파로 불어온 바람에 에르제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다.

“끝나면 연락해. 같이 들어가게.”

“그럴게요.”

스마트폰을 흔드는 윤소희의 모습을 뒤로하고, 에르제는 홀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라하임은 망부석처럼 문 앞에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쿵―.

곧 두 사람의 모습을 가리며 문이 닫혔고, 에르제는 길게 뻗은 길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열 사람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 그리고 그 좌우에는 층이 나누어진 의자들이 보였다.

이곳이 본단 회의 장소라고 하더니, 족히 수백 석은 될 것 같은 의자들이 좌우에 퍼져 있다.

가장 최상층의 높이도 아파트 6층 정도의 높이는 되었기에, 꽤나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카테이아 대륙의 마녀들은 따로 생활하면서 은신처를 구해 두는 편이었는데.’

여기는 그냥 아예 산을 파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천천히 회의 장소를 감상하며 나아간 에르제의 앞에, 이윽고 거대한 벽이 등장했다.

좌우에 늘어서 있던 의자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5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아마 저 자리가 원로들이 앉는 자리.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왔니?”

대마녀가 앉아 있었다.

안경을 쓴 채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의 종이들을 사락사락 넘기던 그녀는.

“잠시만.”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잠시 조용히 해 달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1분, 5분, 10분…….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대략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그사이 서류의 절반 정도를 처리한 대마녀가 기지개를 켜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긴 시간을 별다른 움직임 없이 기다린 에르제를 보며 그녀는 픽 미소를 지었다.

“에이리스랑 대악마 사건 이후로는 오랜만에 보네.”

“시간이 빠르죠.”

“그러게.”

대마녀는 뚜둑, 소리를 내며 목과 허리에 뭉친 근육을 풀었다.

“얌전히 기다린 보상은 해 줘야지.”

그러고는 훌쩍,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꽤나 위험해 보이는 장면이었으나, 언제 날아왔는지 빗자루가 그녀의 발을 받치고 안전하게 에르제 앞에 내려 주었다.

대마녀는 멋쩍은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거라. 원래 이런 거 안 쓰거든.”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동화 같은 곳에 나오는 ‘지구에서 지어낸 이야기’.

사실 마녀들은 그들 스스로 개발한 물건을 사용한다.

심지어 죽은 용의 사체로 만든 양탄자를 타고 다니던 마녀도 있었다.

“뭐라도 반응을 좀 해.”

에르제가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으니 대마녀가 어색하게 그의 팔을 툭 쳤다.

“아.”

에르제는 잠깐 들었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와아아아’ 라고 영혼 없이 박수를 쳐 주었다.

“응. 내가 괜한 얘기를 했다.”

대마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을 흘겼다.

그러고는 곧바로 에르제가 찾아온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혈석과 관련한 게 궁금하다고?”

“네. 우리들 중에서는 그쪽이 혈석을 제일 많이 다뤄 보았으니까요.”

“흠.”

대마녀는 안경을 벗으며 턱을 쓸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녀는 그렇게 물었고, 에르제는 지난 일들을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서은우의 몸에 다시 들어오면서 로드의 힘을 잃게 되었다는 것부터, 최근 갑자기 매혹의 힘이 발현되었다는 것까지 말이다.

“제 생각에는 그 원인이, 예전에 섭취한 혈석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요.”

“아하.”

전후 사정을 이해한 대마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혈석…… 혈석이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대마녀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근데 네가 섭취했다는 혈석은, 이미 몸 안 곳곳으로 퍼진 상태일 텐데.”

“네. 그때 피에 섞이는 게 느껴졌었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만약 그런 상태라면, 네가 로드의 힘을 잃었을 때 혈석의 힘도 같이 딸려 가는 게 맞거든.”

“…….”

에르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대마녀가 추가로 설명을 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피에 있던 힘들이 그…… 나무? 거기에 흡수된 거니까. 혈석은 로드의 힘에 녹아들어서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거거든.”

“아아.”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의 몸으로 에르제 본인의 힘을 다 쓸 수 없었기에 꽤나 귀찮은 일들을 겪어야 했고, 축복 덕분에 힘을 사용하기에 점차 편해졌었지.

그리고 그것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혈석이었다.

에르제가 로드의 힘을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신체의 내구도 향상과 더불어 가지고 있던 힘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에르제는 영혼 상태에서 이 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혈석의 힘은 그때 같이 빨려 들어가는 게 맞겠어.’

정확히는, 로드의 힘과 하나가 된 혈석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역시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그럼 왜 매혹의 힘이 발현이 된 걸까요?”

“그러게?”

“그쪽도 모르는 건가요?”

“나도 되게 대책 없는 얼굴로 보이지 않니?”

“음.”

대마녀의 말에 에르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고민을 끝냈는지 대마녀가 입을 열었다.

“아예 정밀 검사를 해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정밀 검사요?”

“어어. 우리가 연구한 것들이 제일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알아? 여기야, 본단.”

대마녀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해 보자고.”

“음, 그렇게 하죠. 그러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정밀 검사는 일족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고, 마녀들의 인프라를 빌릴 수 있으면 좋으니까.

정밀 검사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는 모르겠다만…… 이상한 짓을 한다면 라하임과 그림자에 숨어 있을 플랑이 지켜 줄 테니 문제는 없을 터였다.

“좋아. 그럼 나는 이것만 마무리하고 바로 갈게. 마녀들도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 소희한테 말해 둘 테니 방에서 쉬고 있어.”

대마녀는 이제 나가 보라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옆에 세워 둔 빗자루를 타고 다시 업무를 보는 테이블을 향해 높이 날았다.

“……즐거워 보이는데.”

해 보고 싶었다고 하더니 아주 제대로 즐기고 계신다.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언제 윤소희에게 이야기를 해 두었던 것인지, 그녀는 에르제와 라하임을 비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내가 이 장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하는데, 그래도 시설 자체는 좋아.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부탁할 거 있으면, 이거 누르고.”

무슨 식당도 아니고, 방 안에 벨이 비치되어 있는 건지.

참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라하임과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기다리던 차.

약 1시간 정도가 지나니, 수습 마녀가 그들을 데려가기 위해 방문을 똑똑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라하임의 말에 어린 소녀는 귀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모셔 오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수습 마녀의 말에 에르제가 라하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도 되죠?”

“네. 두 분 다 오라고…… 하셨…… 습니다.”

모기처럼 작아지는 목소리에 에르제가 불편한 게 있나 싶어서 물어보려던 순간.

“팬, 팬이에요……!!”

수습 마녀가 황급히 말을 하고는 몸을 휙! 돌렸다.

‘어떡해……!’ 따위의 말이 작게 들려온다.

“가, 가실게요!”

수줍은 팬의 등장에 에르제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마녀들 중에서도 토트윈의 팬이 있었다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멤버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에르제는 앞서 가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토트윈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해요?”

“그…… 민주혁…… 님이요.”

“……아.”

주혁이가 들었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꼭 전해 주지 말아야지.

에르제가 결연하게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도착, 했어요……!”

수습 마녀는 어떤 방문 앞에서 옆으로 물러나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비켜섰다.

“본단에 있는 공연…… 장이에요. 들어가시면 돼요.”

“……? 네? 공연장이요?”

“어서요.”

에르제가 멈칫하는 듯하자, 수습 마녀는 재빨리 문을 열고 그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

“이게…… 도대체.”

얼떨결에 따라 들어온 라하임도 그리고 강제로 밀어 넣어진 에르제도.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에 얼떨떨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본단의 공연장이라고 하더니.

에르제의 눈앞에는 기대감이 가득한 수십의 마녀들과 일반 콘서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커다란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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