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280화
에르제가 제시한 의견은 토트윈이 각자 내기로 한 기부금을 팬들이 모금하는 곳에 주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팬들이 이렇게 따로 모금을 해 주시고 계시는데, 우리가 한 번에 큰 금액을 기부하고 나면 언론에서도 팬들 얘기는 많이 안 해 줄 것 같아서.”
“확실히 그렇겠네.”
“저는 좋아여. 우리가 팬들이 모금한 곳에 내면, 당연히 토트윈이 기부를 했다는 얘기도 나오겠지만 팬들에 관한 기사도 많이 나올 것 같아여!”
“나도 좋은 생각 같아.”
고개를 끄덕이던 민주혁이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버지한테 부탁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
민주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멤버들은 아직까지 청화의 안병인과 민주혁이 부자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는 말할 기회가 없기도 했고 에르제가 비밀을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민주혁도 이에 대한 마음 정리를 많이 했는지, 멤버들에게 이야기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잘됐네.’
에르제는 흐뭇한 얼굴로 민주혁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민주혁은 어색한 연기를 선보이며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왠지 아련한 얼굴로 차창에 보이는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청화의 계열사 중 하나인 청화 백화점이었다.
“저거랑.”
그리고 또 다음에 보이는 건물인 청화 브랜드의 의류 건물.
“저것도.”
국내에서 청화는 손에 꼽히는 대기업이었고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동안 청화와 관련된 건물들은 상당히 많았다.
민주혁이 하나씩 청화 계열사의 건물을 가리킬 때마다 멤버들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진해졌다.
그런 진득한 분위기를 느끼며 민주혁이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다, 우리 아버지 거야.”
“……?”
“……응?”
너무나도 뜬금없는 이야기, 게다가 현실과 괴리가 느껴지는 말에 다들 표정이 멍청하게 변했다.
심지어 태현우는 쩍 벌린 입이 배꼽에 닿으려고 하고 있다.
“큭.”
그 모습에 에르제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게 신호가 된 듯 멤버들이 앞다투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뭔 소리야!?”
“그러니까, 잠시만. 안병인 회장님이 네 아버지라고?”
“뭐어어?!”
“엑, 진짜여?”
“잠깐만, 그러면 지금까지 광고 들어오고 협찬 들어오고 했던 게…….”
이에 더불어 조수석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윤까지 합세했다. 이윤의 눈은 거의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맞아. 아버지가 기억상실이셨어.”
“……허.”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다들 탄식을 뱉었다.
다만 놀란 것은 딱 거기까지.
토트윈 멤버들의 생각은 곧장 다른 쪽으로 전환되었다.
지금은 멤버 간의 끈끈함과 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법한 광경이었다.
“……고생 많았겠다. 그동안 어머니랑 같이,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 거 아니야.”
“너는, 너는 처음부터 그럼 안병인 회장님이 아버지인 거 알고 있었어?”
놀람은 어느새 걱정과 위로로 바뀌어 있었다.
“……어. 알고 있었지.”
그리고 민주혁은 이를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오랜만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윤치우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을 때 결국 살짝 눈물을 보여 버렸다.
물론 그런 감동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태현우가,
“어! 시상식 민주혁이다!”
라고 외치며 신파를 깼으므로, 금세 축축한 분위기는 메말랐다.
‘하여간.’
그리고 에르제는 혼자 태현우의 의도를 짐작하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녀석은, 단순히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날에 대한 위로는 괜찮지만, 이런 얘기를 멤버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는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는 의미.
태현우는 민주혁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다시 그때의 기억에 빠지지 않도록 중간에 잘라 낸 것이었다.
‘여전히 영악하군.’
그 누구보다 포커페이스를 잘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태현우다. 2,500년을 넘게 산 자신도 가끔씩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
기특한 눈으로 태현우를 바라보던 에르제는, 민주혁의 등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
안병인 회장이 아버지인 건 알았으니, 이제 다음 이야기를 해 보라는 뜻이었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민주혁이 물기를 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다들 그런 기사 본 적 있지? 팬 모금에 기업이 동참해서 같이 기부하는 거.”
“아아. 막 광고 계약 끝나고 그 기념으로 기부 동참했다는 기사 본 것 같아.”
“응, 그러니까.”
민주혁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솔직히 우리 재산 다 합쳐도 청화에는 안 되잖아. 이참에 아버지한테 말해서 아예 기업까지 모금에 유치시켜 보자고.”
“오오…….”
“재수 없기는 하지만 맞는 말이네.”
태현우가 민주혁에게 눈을 흘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앞으로 밥은 주혁이한테 얻어먹어야겠다.”
“푸핫.”
태현우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이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희 조만간 투어니까, 주혁이한테 건강식 많이 사 달라고 해라.”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민주혁은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마치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한 얼굴이었다.
* * *
토트윈이 한국에 돌아온 뒤, 투어 준비는 착실히 정리가 되어 갔다.
그들이 미국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장 대표가 손수 모든 것을 관리하며 진행시킨 덕분이었다.
그들로서는 처음 하게 되는 콘서트 투어.
한국에서 투어의 첫 시작을 알린 이후, 미국의 여러 주를 돌아다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일본을 거쳐서 한국으로.
처음과 끝 모두 한국에서 마무리되는 투어는, 그야말로 대장정 프로젝트였다.
정규 앨범에 몇십 곡씩 발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투어가 조금 단조로워질 가능성은 있었으나, 예전에 곡이 몇 개 없을 때도 콘서트를 했던 토트윈이었다.
때문에 곡이 부족하다면 언제든지 유닛이나 커버 등을 통해서 유연하게 이끌어 나갈 역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투어 준비를 하며 일주일가량의 시간이 흐른 시점, 밤 11시 30분.
토트윈은 폭탄 투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팬들이 엄청 놀라겠져?!”
안단테가 두근두근거리는 얼굴로 두 손을 꼭 모았다.
“그러고 있으니까 햄스터 같다, 야.”
“물어 드릴까여?”
태현우의 말에 안단테가 쪼르르 쫓아 달려갔고, 태현우는 방으로 도망갔다.
“쟤네들은 하루를 쉬는 법이 없네.”
고개를 저으며 말하던 민주혁은 에르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고맙다, 은우야.”
“응? 뭐가?”
뭐가 고맙다는 거지?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다.
안병인 회장과 민주혁이 나눈 코코아톡 내용이었다.
대화는 기부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충 얼마를 기부할 예정이고 뭐 바이럴은 어떻게 할 건지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는 ‘사랑한다 아들’이라는 코코아톡.
“네 덕분에 일어나는 일이잖아. 이것들 다.”
민주혁이 멋쩍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회수해갔다.
“…….”
에르제가 잠시 말이 없자 민주혁이 아아, 하는 탄성을 뱉었다.
“물론,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만나게 만든 것만 빼고.”
“……아.”
그거, 서은우가 한 거라고.
목젖까지 나오는 말을 누르며 에르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떻게 보면 덕분에 악질 기자도 잡았고 결국 안병인과 민주혁의 관계에 진척도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에르제는 헛기침을 하고는 내심 걱정되는 부분을 말했다.
“그나저나, 기부도 그렇고 청화가 계속 우리 쪽만 밀어주고 있으면 언젠가 너와의 관계도 들통나는 거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집요한 인간들이라면 의심을 하는 순간, 그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숨겨야 하나? 싶긴 하더라고.”
민주혁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심란함이 묻어 나오는 몸짓이었다.
“내가 어마어마한 대기업의 아들이라고 하면, 팬들이 부자 아이돌은 싫어 하면서 떠날까?”
“그건 아니겠지.”
토트윈은 토트윈이고, 그 안의 멤버들이 어떠한 사람이든 중요하지는 않다. 실제로 돈 많은 집안의 아이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 사실을 여러 언론에서 떠들지도 않았고 팬들도 그냥 굳이 말을 꺼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 그러니까. 사실은 밝혀진다 해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
“……그렇기는 하지만, 너는 상황이 조금 다르잖아.”
“응.”
민주혁은 에르제의 말에 동의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굳이 먼저 나서서 말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혹시라도 다들 알게 되면 아버지가 기억상실이었다는 거…… 말해야지.”
진실을 밝힌다라.
물론 진짜 진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멤버들과 민주혁이 알고 있는 진실 말이다.
하지만 이걸 과연 사람들이 납득을 할까?
‘사실 버렸는데 아들이 유명해지니까 다시 접근했다.’, ‘민주혁도 서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용서한 척한 거다.’, ‘지금까지 청화가 토트윈 밀어준 것도 반사이익을 노리고 한 짓이다.’ 등등.
잠깐만 생각했는데도 온갖 악플들의 패러다임이 머릿속에 그려질 수준.
‘……이건 안 되겠네.’
저번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에르제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일족들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진실로 믿어 줄 이들이 훨씬 많겠지만, 원래 사람이 상처받는 것은 그런 몇 개 안 되는 악플에서부터 시작되니까.
‘따지고 보면, 서은우도…… 주변의 평가로 인해서 그렇게 되었었지.’
누군가의 악의는 그 사람을 병들고 아프게 만드는 법이다.
‘토트윈은, 내가 모든 힘을 다해서 지킨다.’
에르제는 주먹을 꾹 쥐며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 * *
11시 45분경,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토트윈이 이번 자선 콘서트 기부금을 팬들 모금하는 곳에 동참했다는 기사를 뿌렸다.
이미 모금하는 쪽에 기부는 마쳤고, 추가적으로 청화에서도 기부금을 투입하면서.
[ 토트윈, 자선 콘서트 기부금 팬들 모금에 동참 ]
[ 불치병 환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토트윈과 이브 ]
[ 후원 기업인 청화도 기부 대열에 합류! ]
수많은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브들은 토트윈과 청화까지 그들의 모금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또 감동을 받기도 했다.
팬들까지 기사에 나가게 해 주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또 한 사람 놀란 이가 있었으니.
[ 제이. ]
에르제는 코코아톡에 급하게 뜨는 이름을 보며 내용을 확인했다.
[ 후배님. 뒤통수 후려갈기기 있습니까? ]
정중한 존댓말에 내재되어 있는 분노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