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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9화 (279/307)

제279화

279화

‘Same as’의 무대에 빠져 있던 에르제는, 그 무대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매혹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이번에도, 저번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매혹의 힘이 발현되었다.

어떠한 조건도 이유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뭐 때문이지?’

에르제는 준비를 하러 가는 LAK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제이도 분명히 눈치를 챘을 것 같은데.’

무대가 끝난 뒤에 제이가 별말을 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시 인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본인이 사용했던 힘이었으니 충분히 알아보았을 것이다.

에르제는 최대한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은 채 깊이 생각에 잠겼다.

‘조건이 뭘까.’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아마 저번처럼 혈석의 힘으로 이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이 뱀파이어로서의 힘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잔존해 있던 혈석의 힘을 다 사용한 게 아니었던 건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미국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호재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아무 때나 튀어나온다면 분명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조금 전처럼 그리 강하지 않은 매혹의 힘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만약 예전에 최광수와 이윤을 매혹했던 그때와 같은 수준으로 발현이 된다면?

당시 그들이 이지를 상실할 가능성까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수준의 힘이 카메라로 중계가 되어서 방송이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데.’

에르제는 주먹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펴며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오늘 자선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꼭 원인을 파악해야만 한다.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은 남은 두 무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라이브를 하고.’

웬만해서는 혼자 해결하는 편이 좋겠지만, 이번만큼은 라하임의 도움이 절실할 듯싶었다.

오늘 자선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곧 한국으로 한 번 돌아갔다가 오게 될 테니, 그사이에 비는 시간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에르제는 기나긴 생각 끝에 머릿속을 정리하며, ‘Villain’의 공연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오는 LAK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 * *

‘Villain’에서 토트윈이 보여 주고자 한 것은 ‘매력적인 악당’이었다.

여느 판타지 세계에서는 필수불가결하게 악당이 존재했고, 이를 흥미롭게 이끌기 위해서는 악당에게도 매력이 필요했다.

분명 주인공을 괴롭히고 다치게 만드는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런 악당.

원곡에서의 토트윈은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Villain’을 선보였다면, LAK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Villain’을 재탄생 시켰다.

토트윈이 ‘Same as’를 본인들의 스타일에 맞추어 바꾸었듯이, LAK도 같은 모험을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그리 나쁘지 않게 먹혔다.

LAK가 표현한 악당은 ‘완전히 나쁜 놈’이었고, 그들은 그런 느낌을 훌륭히 소화한 것이다.

훨씬 더 경쾌한 스텝과 더불어서 절도 있는 동작 그리고 멋.

토트윈이 ‘사연이 있는 매력적인 악당’을 보여 주고자 했다면, LAK는 멋있는 진짜 나쁜 악당을 보여 주고자 했다.

‘마피아…… 같은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에르제는 LAK가 선보이는 ‘Villain’의 무대를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모두 지켜보았다.

짝짝짝!!

그리고 그들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올 때 격한 박수도 쳐 주었다.

‘확실히, 이런 해석도 가능했겠네.’

제이가 뱀파리스였을 시절.

그때의 그는 아이돌 활동에 모든 열정을 쏟지 못했었다.

에이리스로부터 내려온 지령을 처리해야 했고, 자신이 나타난 이후로는 엮인 일도 워낙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LAK는 꾸준히 1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최근에 긴 공백 기간을 가졌음에도, 미국 진출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LAK가, 그랬던 제이가, 진심으로 아이돌 활동에 열을 다하고 있다.

산만하게 흩어졌던 정신을 한 군데로 쏟고 있다는 의미였다.

‘진짜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이번 미국 진출은 토트윈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무난히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앞으로의 토트윈과 LAK의 순위 관계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 방심했다가는 눈 깜짝할 새에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이 들었다.

‘……LAK의 멤버들도 실력이 좋은데, 그중에서 제이가 제일 만만치 않아.’

저번 토크쇼와 더불어서 이번 무대까지, 매혹의 힘이 없었다면 꽤나 비등비등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슬쩍 옆을 바라보니, 토트윈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경쟁심에 의욕을 불태우면서도 긴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LAK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무대를 보여 주었던 덕분인지.

남아 있는 4곡 모두, 무대 위에서의 토트윈은 이전보다 훨씬 좋은 공연으로 자선 콘서트를 마칠 수 있었다.

그날 가장 높았던 시청자 숫자는 246만이었다.

* * *

자선 콘서트가 모두 끝이 나고 마지막 경품 행사까지 마치고 난 뒤.

숙소로 돌아온 토트윈은 놀라운 변화를 맞이했다.

지미 쇼 덕분인 것인지, 아니면 자선 콘서트의 여파인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 수많은 인파가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한인이 아닌 미국인들이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다.

“와아.”

“이제는 미국에서도 편하게 못 돌아다니겠는데.”

멤버들은 미국에 새로 생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복화술로 중얼거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팬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경호원들의 얼굴이 꽤나 찡그려져 있었다.

새삼, 지난 미국에서의 일정의 결과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아직까지는 2위지만.’

다음 주, 혹은 그 이후 몇 년 후라도.

에르제는 꼭 빌보드 1위라는 자리를 차지하겠다 다짐하며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토트윈은 미국 공항에서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퍼졌던 탓인지, 이브들이 공항에 엄청나게 많이 몰렸던 것이다.

“빨리!”

“자리부터 잡아!”

출구를 나서는 길목 모두 경호원들이 뛰쳐나가며 토트윈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와중에 토트윈은 사인을 해 줄 수 있는 이들은 사인까지 해 주면서 천천히 차를 향해 이동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해진 일정은 없었기에, 조금 늦어진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브들은 사이에 섞여 있는 운영진(?)들에 의해 질서정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토트윈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와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달려든다거나 주위를 밀치는 행위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덕분에 보다 편한 마음으로 토트윈은 팬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렇게 무사히 모카 엔터테인먼트로 가는 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아이고. 장거리 비행은 진짜 너무 힘들다.”

차가 출발을 하자마자 웃는 낯을 지운 태현우는 의자에 온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윤치우와 민주혁도 별말 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라고 그리 다를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생 많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윤이 그렇게 말했을 정도면, 현재 토트윈의 몰골이 어땠을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가히 짐작이 되었을 정도.

‘피곤하네.’

에르제 또한 좌석에 몸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비단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느껴지는 피로는 아니었다.

먼 타지에서 몇 달간 머무르며 고생했던 나날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긴장이 풀린 게 큰 듯싶었다.

‘인간이 된 것이, 이런 점에서는 불편하네.’

만약 로드의 힘이 있었다면 아마 멀쩡했을 텐데 말이다.

에르제가 입맛을 다시며 ‘혈석’에 관해 떠올리고 있을 때, 길게 하품을 한 안단테가 그들에게 물었다.

“이번에 저희 246만인가 나왔던데, 그럼 각자 2,460만 원씩 기부하는 거예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 246만 원씩 하기에는 좀 그런데.”

“우음.”

안단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주혁이 말을 받았다.

“그나저나 희망적으로 예측했던 숫자에 비하면 2배나 되기는 해. LAK 멤버들 것까지 합치면 거의 2억 5천 정도 되겠다.”

“힉,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기부금이 어마어마하기는 하네.”

이번에 자선 콘서트를 통해 기부하게 된 곳은 불치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기관이었다.

과거 윤치우가 어머니의 일로 같은 경험을 겪기도 했었고, 민주혁도 ‘악귀’에 관한 것을 떠올리며 적극 동의를 했던 바가 있다.

‘……어쩌면 2억 5천이라는 금액이 큰 것은 맞지만, 그들의 수술비나 장기 이식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워낙 커서…….’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시청자 수의 20배로 기부하는 걸로 바꾸는 게 나을까?’

지금까지 토트윈이 정산받은 금액에 비하면 각자 그 정도의 금액을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자선 콘서트를 통해서 기부를 하면 그로부터 얻는 이미지 효과도 절대 적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최근 어머니와 함께 살 아파트를 구매한 윤치우에게는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는 했다.

‘흐음.’

그렇게 에르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있을 때.

“힉.”

태현우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야.”

태현우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서 멤버들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 속에는 토트윈의 공식 팬 카페의 공지가 보였는데, 이는 에르제도 처음 확인하는 글이었다.

자선 콘서트 이후, 직전까지의 빡빡한 일정의 여파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터라 커뮤니티니 뭐니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가.’

에르제는 공지에 보이는 글을 읽어 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곳에는 에르제가 조금 전까지 고민하던 것을 불식시켜 줄 내용이 적혀 있었다.

[ 현재까지 모금 금액 : 122,136,714원. ]

자선 콘서트가 열렸던 그날부터 이브들끼리의 모금이 진행이 되고 있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 무려 1억이 넘는 금액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토트윈이 기부하기로 결정한 날짜에 맞춘다고, 기간이 아직 1주일이나 더 남아 있었다.

‘…….’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

일부러 팬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그들에게 콘서트 유료 비용만 받았던 건데…….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팬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그들을 따라와 주었다는 사실은 커다란 감동이었다.

“……이런 분들이 팬인 게, 저희한테는 너무 과분한 거 아닐까여.”

안단테의 말에 괜스레 숙연해졌다.

에르제 또한 미묘한 감정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이내 갑자기 든 생각에 아! 하고 탄성을 뱉어 냈다.

“우리, 기부하는 곳을 바꾸는 게 어때?”

고개를 휙 들어 올리며 말하는 에르제의 모습에 멤버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바꾸자고?”

“어디로 바꿔?? 그건 좀 어렵지 않나?”

갑자기 기부하는 곳을 바꾸면 곤란할 텐데, 멤버들은 그런 눈빛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고.

“팬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었으니까, 우리도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게 어떨까 싶어서.”

에르제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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