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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8화 (278/307)
  • 제278화

    278화

    팬들의 모금이 진행되고 있는 같은 시각.

    토트윈은 LAK의 타이틀곡인 ‘Same as’의 무대를 위해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 자선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미국에 있는 한 소규모 공연장이었는데, 다행히 대기실이라든가 옷을 갈아입을 공간 그리고 쉴 수 있는 곳도 마련이 되어 있었다.

    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토트윈은 ‘Same as’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섰다.

    ‘LAK는 이걸 부드러운 결로 표현을 했었지.’

    ‘Same as’의 장르 자체가 그랬다.

    감성적인 시티 팝의 느낌을 가져 온 ‘Same as’는, 가사 또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곡이었다.

    ‘같다’라는 뜻의 ‘Same as’처럼, 이 곡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와 나는 같아’라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인간들은, 늘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름에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지지.’

    그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늘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서.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움직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Same as’의 가사에서는 ‘우리는 같다’라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굉장히 높게 구축되어 있는 피라미드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아주 높은 위에서 보면 그저 평평한 바닥으로 보일 뿐.

    나보다 더 잘나간다고 여긴 그들 또한, 다른 누군가를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에르제는 다시금 ‘Same as’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LAK는 이걸 위로하듯이 부드럽게 곡을 구성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스타일로.’

    직전에 오프닝 무대로 했던 곡은 편곡 없이 LAK와 완전히 똑같이 보여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타이틀곡이었다.

    LAK도 그만큼 힘을 많이 쏟은 곡이고 다른 사람들도 원곡을 많이 들었을 터.

    두 그룹 간의 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곡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졌다.

    에르제는 연주가 시작되기 전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LAK의 뮤직비디오가 캐주얼한 의상에서 여유로운 안무를 보여 주었다면, 오늘 그들이 입고 나온 옷은 정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정장이라는 이름 하에 입는 아이돌 식의 정장이 아니라, 진짜 회사원들이 입는 정장 말이다.

    이번에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공감’이었고, 이를 위한 에르제의 아이디어였다.

    이 곡을 보고 들을 사람들이 어쩌면 가장 많이 입을지도 모르는 옷.

    토트윈은 ‘Same as’를, 팬들 뿐만이 아니라 팬이 아닌 다른 이들도 공감을 시키고 싶었다.

    ‘LAK의 곡이긴 하지만 확실히 의미가 있고 곡이 좋으니까.’

    그리고 제이에게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LAK의 곡이 아니라 토트윈 버전의 곡을 많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한 무대였다.

    끄덕끄덕.

    에르제의 시선을 받은 윤치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곧 토트윈 버전의 ‘Same as’ 무대가 펼쳐졌다.

    * * *

    앨런은 현재 그녀의 베스트 프랜드 미샤와 함께 자선 콘서트를 시청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오프닝 이후 30분가량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라이브 시청자 숫자는 200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헤엑.”

    미샤는 긴 머리를 찰랑대며 시청자 수를 보고 놀랐다.

    “개리 제임스가 온라인 콘서트를 하면 이 정도 숫자가 나오려나!?”

    “……모르겠는데.”

    앨런은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개리 제임스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솔직히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토트윈과 LAK, 두 그룹이 불러 모은 팬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아마, 한국 팬들이 많지는 않아서…… 개리 제임스도 200만은 힘들걸.”

    “하긴.”

    미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저번에 개리 제임스랑, 다른 미국 가수들 한 5명 정도였나? 같이 온라인으로 기부 콘서트 했을 때, 한 170만? 정도가 모였었잖아.”

    “아! 그렇네.”

    앨런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러고는 감탄 어린 어조로 말을 뱉었다.

    “와…… 미국에 토트윈 팬들이 이렇게 많았나.”

    “앨런.”

    미샤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지금까지 R&B 가수 말고, 다른 가수들 좋아하는 거 본 적 있어?”

    “음…….”

    고민하던 앨런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미국에는 한국과 비슷한 아이돌은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백스트릿맨즈처럼 비슷한 사람들은 있었잖아.”

    미샤는 팔짱을 끼며 후후 하고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뿌듯해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려 아이돌에게 빠졌다고!”

    “…….”

    과장된 미샤의 모습에 앨런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다 풋 하고 웃었다.

    “푸하하!”

    “왜 웃어?”

    “네가 말하니까 신빙성이 엄청 높아서 웃었어.”

    눈물까지 글썽인 앨런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그래, 무려 미샤가 아이돌을 좋아하고 있다.

    학교에 아무리 잘생긴 남자애가 있더라도 관심조차 주지 않던 미샤가 말이다.

    그렇다는 건.

    “네가 토트윈의 팬이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겠네.”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라고.”

    다시 한번 뿌듯해하는 미샤의 모습에 풋, 하고 다시금 웃음을 터뜨린 앨런은,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무대 시작한다!”

    “앗, 그래!?”

    두 소녀는 허둥지둥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나 다급하게 자리를 잡았는지 금발과 갈색 머리가 침대 위에 파라락 휘날렸다.

    “정장 핏 미쳤다.”

    “세상에.”

    그리고 갈색 머리, 앨런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펼쳐 놓은 노트북에서는 본격적으로 토트윈의 ‘Same as’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찌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회사원 민주혁은 동네에 있는 한적한 BAR로 향한다.

    어느덧 BAR처럼 꾸며진 무대 위에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는 민주혁이 터덜터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바텐더, 윤치우에게 ‘늘 먹던 걸로’를 주문한다.

    동시에 시작되는 시티 팝 기반의 ‘Same as’의 반주.

    분명 라이브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The same day

    that repeats

    everyday.

    ― I need a break

    at the end of

    a boring day

    so, I’m here.

    윤치우가 내민 빈 잔을 입 안에 털어 넣은 민주혁이, 중얼거리듯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주변을 하나둘씩 채우는 토트윈의 멤버들.

    바텐더인 윤치우와 그 주변의 자리에, 하나둘씩 지쳐 보이는 그들이 턱을 괸다.

    어느새 구석에 놓인 소파에 몸을 뉘인 민주혁과, 손수건으로 컵을 닦고 있는 윤치우가 화면에 잡혔다.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각자의 직장에서 돌아온 회사원처럼 보였고, 이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 현재, 유일하게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언뜻 보면 눈치채기 어려웠지만, 바텐더인 윤치우는 아직 직장에 나와 있는 상태.

    컵을 찬장에 올리며 윤치우가 털썩, 카운터에 앉는다. 그러고는 멍하니 찬장에 놓인 수많은 유리컵들을 바라본다.

    ― there is no place

    where you can

    rest comfortably

    BAR는 안식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피처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고 돌아온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만, 끝이 없는 내일을 상상하게 만드니까.

    ― Everyone here is

    Conscious of each other

    가사의 말처럼.

    이곳에 있는 바텐더를 포함해, 회사원이 된 토트윈의 멤버들은 흘긋흘긋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가사도, 말도 없었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전해졌다.

    내가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나? 저 사람이 차고 있는 시계는 얼마짜리지? 구두는?

    옆으로 잔뜩 기울어 버린 노골적인 시선은, 그렇게 염탐하듯 BAR의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진절머리를 느낀 한 사람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앞에 놓인 술을 쭉 들이켰다.

    안단테였다.

    ― But in fact,

    We are no

    Different

    ― we’re just

    Parts in a

    Giant cog wheel ―.

    가장 먼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듯, 안단테의 표정이 불쾌함에서 상쾌함으로 변해 갔다.

    노래를 부르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의 표정과 힘 있게 뻗어 나가는 목소리는, 보고 듣는 이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축 처져 있었던 분위기가, 안단테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반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원곡과는 다르게 편곡이 된 드럼 소리가.

    쿵쿵쿵!!

    강렬하고 묵직한 소리를 뿜어내며 곡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그런 안단테의 말에 공감하듯, 토트윈 멤버들이 하나둘씩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유일하게 카운터에 남아 있는 윤치우를 제외하고는, 남은 4명의 멤버들은 BAR 한가운데서 대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드러웠던 LAK의 안무를, 보다 힘 있고 절도 있게 바꾸어서 춤을 췄다.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어 냈다가 급격하게 당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한 바퀴 돌린다.

    타닥, 타다닥! 어지럽게 꼬이는 스텝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정교한 안무 속에서 좁은 틈으로 빠져나온 에르제가 카메라를 보며 싱긋 웃었다.

    ― We are same

    Find your own

    Happiness―!

    ― anything is okay

    Protect yourself

    Don’t put you

    In a pitch-black pit

    우리는 모두 같아, 그러니까 네 삶을 살아.

    남들과 비교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에르제는 간질간질한 목소리 위에 묵직한 메시지를 얹었다.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정장, 갈색 구두, 그리고 에르제 본인도 모르게 붉게 변한 눈.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현란하게 움직이는 안무까지.

    마치 토트윈의 곡인 것처럼 펼쳐지는 ‘Same as’ 무대에, 이를 지켜보는 모든 시청자들은 숨을 삼켰다.

    그리고 서서히, 에르제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이브도, LAK의 팬들도, 미국에서 새로 생긴 토트윈의 팬들도 그리고 그냥 궁금해서 들어온 일반인들까지.

    ― Same as ―.

    그들 모두의 뇌리에 에르제의 붉은 눈동자가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뭐야.”

    무대 앞에서 이를 직관하고 있던 제이는, 그런 에르제를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거짓말이었나…….”

    중얼거리는 제이의 시선에는, 넘실거리는 매혹의 힘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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