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7화
277화
LAK의 센터로 나온 것은 제이가 아닌 이채선이었다. 그동안 이채선이 토트윈에게 비호감 포인트를 많이 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아이돌이란 뜻은 아니었다.
출중한 노래 실력과 춤, LAK 내에서도 제이 다음으로 많은 개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멤버였으니 말이다.
― Bang
The only light
In the dark
Bang의 원래 안무, 그러니까 토트윈이 추었던 Bang의 춤 선은 그루비함에 가까웠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팔과 허리 그리고 바닥을 미끄러지는 다리까지.
그러나 LAK는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똑같은 동작이지만 조금 더 힙합에 가까운 느낌이 안무에서 물씬 드러난다.
구부러졌다가 펴지는 무릎을 따라서 상체가 웨이브를 만들고, 그 순간 절도 있는 팔 동작으로 순식간에 시선을 빨아들였다.
인사 대신으로 보여 주는 오프닝 공연, LAK는 그야말로 무대 위를 휘어잡고 있었다.
― Bullets that
Flew fast
클라이맥스에서 센터로 튀어나온 제이 뒤로 LAK의 멤버들이 날개를 폈다.
그러고는 묘기를 부리듯 안무를 순서대로 이어 간다. 맨 앞에서 뒤까지, 동시가 아닌 시간 차를 두고 움직이는 안무.
원래의 안무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모습에, 채팅창은 실시간으로 LAK의 팬들에 의해 난리가 났다.
맨 앞에서 안무를 주도하고 있는 제이와 그 뒤를 탄탄히 받치는 LAK 멤버들의 실력이 ‘Bang’이라는 곡이 보여 줄 수 있는, 토트윈과는 다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냈다.
여유 있게 서로를 보며 주고받는 손 제스처는, 마치 미국 뒷골목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쪽도 연습을 엄청 했구나.’
하기야 시간적인 여유로 따지자면 LAK가 토트윈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이쪽은 2주가량 토크쇼 준비를 추가로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떠한 핑계도 되지 못한다.
결국 무대에서 보여 줘야 하는 법이니까.
‘질 수는 없지.’
그런 기세가 에르제뿐만이 아니라, LAK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토트윈의 다른 멤버들에게서도 느껴졌다.
― Bang!
Don’t take
your eyes
off me
LAK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안무 스타일과 이를 탄탄히 받치는 노래 실력.
라이브 밴드의 커다란 사운드에 묻히지 않는 성량을 보이며, 제이의 마무리로 ‘Bang’의 무대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들은 숨이 찬 티조차 내지 않으며 카메라를 향해 여유로운 손 인사를 하곤 무대 옆으로 사라졌다.
빠밤, 밤 바바밤.
그 뒤로 간단한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이어지고 이제는 토트윈이 배턴을 이어받을 차례.
첫 곡이자 LAK의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Special to me’의 오프닝 공연이, 무대 위로 올라간 토트윈으로부터 펼쳐졌다.
‘Special to me’는 LAK가 한국에서도 몇 번 시도했던 사랑 노래 중 하나였다.
발라드나 R&B 풍의 노래는 물론 아니었고, LAK가 조금 전 보여 주었듯 아이돌 힙합에 가까운 장르.
하지만 조금 전 LAK의 ‘Bang’ 무대와는 다르게 원곡 그대로 갈 예정이었다.
순수하게 실력 대 실력으로 대비시키겠다는, 자신감에서 발로한 이유에서였다.
쿵, 쿵, 쿵, 쿵.
전혀 편곡되지 않은 기존 ‘Special to me’의 비트가 드럼의 베이스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
씩 웃는 에르제와 제이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you are special
‘cause you make
Me shine
― it’s not just
feeling
to be blown away
by the wind
중저음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고, 그 위로 맑고 청량한 태현우의 화음이 쌓였다.
그리고 힙합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안무와 춤 선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움직이는 토트윈의 모습은, 순간 기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분명 멤버들 각각의 신체는 조건과 길이가 다름이 분명한데, 누구 하나 튀어 보이지 않도록 밸런스를 완벽하게 조정하는 모습이었다.
거울을 보며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을지,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은우가 또 나 꼬신다!!
― 하 씨…… 주혁이 춤추면서 인상 쓰는 것 봐 개 치인다 ㅠㅠ 저기 미간 사이에 껴 있고 싶어
― 영어 가사가 이렇게 섹시하게 들릴 일인가;;
― 내가 데이터 무제한으로 바꾼 이유
― 오늘 이거 보려고 집까지 사족보행으로 왔습니다
― 갓기들 사랑한다 ㅠㅠㅠ 한국 언제 오니 ㅠㅠ
― 이렇게라도 무대 해 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애들은 마음씨까지 착해
LAK가 무대를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채팅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원래 한국에 있는 팬들을 위해 시도한 자선 콘서트임에도 불구하고,
― So cute
― I’m gonna join EVE :))))))
― Don’t XXcking attack me I’m eve too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미국 팬들의 숫자를 증명하듯, 영어로 된 채팅 또한 어마어마한 속도로 한글 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토트윈과 LAK의 오프닝 무대가 끝이 나고, 손 인사를 건네는 토트윈의 옆으로 LAK도 무대 위로 올라왔다.
동시에 조심스럽게 사라지는 라이브 밴드 연주자들과, 그 틈새로 의자를 놓고 가는 스태프들까지.
가장 먼저 핸드 마이크를 건네받은 제이가 왼손을 옆으로 펼쳤다.
“일단, 앉을까요?”
1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줌 아웃 된 카메라에 모두 담겨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었다.
모두 각자 뒤에 비치된 의자에 앉은 두 그룹은, 이번 자선 콘서트의 MC를 맡게 된 제이의 주도하에 팬들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LAK입니다!”
“Trick or Treat! 토트윈입니다~!”
생기발랄한 그들의 인사에 채팅창은 두 그룹의 팬들이 치는 채팅으로 가득 찼다.
“하하하. 저희 두 그룹 모두 미국에서 활동 중이라, 이렇게라도 한국 팬 분들을 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제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진행을 이어갔다.
“어떤가요? 이번에 서로 곡을 바꾸어서 노래를 해 보았는데, 팬 분들께 색다르게 느껴졌을까요?”
네!!! 하는 소리들과 각자 자신이 미는 그룹에 대한 칭찬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즐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나머지 두 그룹의 멤버들도 제이를 따라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제이는 현재 라이브에 접속한 팬들의 숫자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시작한 지 10분 조금 넘었는데 벌써 시청자 수가…… 일십 백천…… 백만이 넘어가네요.”
당초 계획했던 시청자 수 곱하기 10, 그만큼 기부를 하기로 했으니 현재까지 각 멤버마다 천만 원씩의 기부금이 모인 상황이었다.
제이는 혀를 내두르며 미소를 지었다.
“무관중으로 진행하는 자선 콘서트 라이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몰랐는데,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제이가 제안했던, 서로 곡을 바꿔 부르는 계획.
현재 미국에서 두 그룹의 경쟁 체재가 유효했기 때문에, 덕분에 팬들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조만간 투어 전에 한국에 들어가기야 하겠지만, 팬들을 보기는 어려우니까.’
해서 에르제는 최대한 많은 팬들이 라이브를 봐주었으면 했는데, 100만이 넘어가는 수치라면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숫자였다.
‘그것도…… 고작 10분 만에 100만이니까, 끝날 때쯤이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을 정도로 기부금이 모일 듯싶었다.
제이는 핸드 마이크를 든 채로 LAK와 토트윈의 멤버 면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저희들의 오프닝 무대를 좋아해 주시고 또 즐겨 주셔서, 뒤에 계획되어 있는 무대들도 자신 있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이는 이후 팬들의 질문 몇 개에 대답해 준 뒤에, 토트윈의 멤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그럼 토트윈은 다음 무대를 준비해 주세요.”
의상을 갈아입을 시간과 최종적으로 멤버들과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벌어 주는 것.
두 그룹이 같이 하게 될 두 무대는 마지막에 피날레로 장식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사이에 빈 오디오는 상대 그룹이 채워야 했다.
제이의 손짓을 따라 토트윈이 내려가고, 곧 있을 그들의 다음 무대.
직전 무대였던 ‘Special to me’의 무대가, 실력 대 실력으로 대비를 보여 주겠다는 토트윈의 계획이 잘 통했기 때문인지.
채팅창에는 이번 LAK의 타이틀곡인 ‘Same as’를, 과연 토트윈이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에 대한 기대로 가득해졌다.
* * *
“로드…….”
이번에 미국을 따라가지 못한 세리나는 현재 장미영과 함께 라이브 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그녀는 악질 채팅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도, 시선은 에르제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장미영 또한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치면서, 열심히 에르제를 응원하고 있는 상태.
최애 멤버가 같은 둘이서 늘 붙어 다니는 것은 그리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세리나 언니, 무대 봤어요!? 에르제 님은 어쩜 매번 갈수록 실력이 느는 거죠!!”
“후후. 원래 로드께서는 한계를 모르시는 분이거든.”
“역시……!”
죽이 잘 맞는 둘의 쿵짝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자선 콘서트라…….”
세리나는 한참 동안이나 장미영과 에르제 찬양을 하다가, 이내 라이브 방송의 제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의 의견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한국에 있는 팬들을 위하면서도 취지까지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콘서트의 입장료를 지불한 것과는 별개로, 기부는 LAK와 토트윈만 하는 게 뭔가 아쉬웠다.
팬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참여형으로 진행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미영아.”
“네, 언니.”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볼래?”
세리나는 홀로 고민한 결과를 장미영에게 들려주었다.
“오……!”
이야기를 들은 장미영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세리나를 재촉했다.
“언니, 네임드잖아요! 올리면 바로 사람들이 반응해 줄 걸요!?”
“좋았어.”
장미영의 지지도 얻었겠다, 세리나는 뚜둑뚜둑 손을 풀며 옆에 놓여 있는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고는 공식 팬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하나 작성해 올렸다.
내용인즉슨.
이번 자선 콘서트의 홍보와 더불어서, 조금 전에 느꼈던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한 글이었다.
[ 갓기천사 ‘토트윈’을 따라서, 저 또한 기부에 참여합니다. ]
대놓고 모금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고, 그저 세리나 자신이 같이 개인적으로 기부하겠다는 글이었으나.
장미영의 말대로, 홈마로 유명한 그녀의 글은 금세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세리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수많은 이브들이, 그리고 동시에 소식을 들은 LAK의 팬들 또한 자신들도 소액이라도 기부를 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결국 그 결과.
토트윈과 LAK의 공식 팬 카페 두 곳에서 모두, 두 그룹의 생각과는 다르게 ‘모금’이 진행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