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5화 (275/307)

제275화

275화

따로 싱글 차트에 올라간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Villain’은 첫 1주 차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기는 했었다.

첫 순위부터 50위권 내에 진입했던 ‘Villain’은 그 자체로도 토트윈에게는 이슈가 되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순위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르제의 솔로곡이 스포티 타임 등에서 미국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뒤로 이어진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곡이 한 번 더 점화를 일으킨 탓일까.

생각보다, 토트윈을 응원하고 좋아하기 시작한 미국 내의 팬들 숫자는 상상 이상인 모양이었다.

[ ‘Villain’ – ToT-win ― 8위 ]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무려 8위에 랭크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음.”

순위를 확인한 토트윈은 순간 말하는 법을 잊은 듯했다. 다들 스마트폰만 바라보면서, 심지어 안단테는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뭐지. 뒤에 0이 빠진 건가?”

태현우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리는 상태. 게다가 호재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안단테가 작곡했던 곡인 ‘Bang’ 또한 27위라는 순위에 들은 것이다.

8위와 27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아직까지 한국 아이돌이 빌보드 10위 내에 들었던 기록은 없었기에…….

“이거, 한국에 기사 엄청나겠는데.”

민주혁의 말은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 장 대표와 이윤의 전화로 울리고 있는 멤버들의 스마트폰만 보아도 그들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8위…….’

에르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솔직히 자신을 포함해 토트윈의 그 누구도 이 정도의 성과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팬들이 LAK와 토트윈 중 누가 먼저 10위안에 들어갈지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었을 뿐.

2주 차 집계 만에 8위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팬덤이 상당히 크기도 하고 스트리밍 같은 부분에서는 워낙 잘하니까, 빌보드 차트 순위 매길 때는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던데…….”

민주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그렇다는 건, 미국에서도 우리 팬들이 엄청 많다는 거 아니야.”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대표님이 투어하자고 하실 거 같은데.”

“응, 준비해야겠네.”

아직까지 장 대표와 이윤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던 토트윈은, 그렇게 대답한 윤치우가 전화를 받으면서 일단락되었다.

[ 얘들아!! 이거 꿈이냐!! ]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장 대표의 흥분한 목소리에 토트윈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꿈 아닌 것 같아요.”

[ 으하하하!! 너희들은 진짜 내 복덩이다, 복덩이!! ]

장 대표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토트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칭찬을 듣고 있는 당사자들의 얼굴이 붉어질 때쯤이 되어서야 멈췄다.

[ 일단 미국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기로 하자고. 투어도 그때 하고. ]

“몇 년씩 여기 머무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 그래, 그래. ]

“그러면요 대표님.”

윤치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장 대표에게 말했다.

“그, 한국에 다시 들어갔다가 미국으로 올 거면 아예 투어 자체를 더 크게 하는 건 어때요?”

[ 더 크게? ]

“예. 한국에서 하루하고, 일본에서 또 하루하고,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마무리 짓는 방식으로요.”

[ 어어, 그거 괜찮다. 그거 일정이랑 콘서트장 대관은 내가 알아서 다 해 놓을 테니까, 너희들은 일단 그…… 뭐야 자선 콘서트만 잘 마무리해. ]

“알겠습니다.”

[ 그래. 투어 돌면서 완전히 쐐기를 박자고!! ]

그렇게 말한 장 대표가 전화를 끊었고 윤치우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스피커 폰으로 돌려놓았기에 그들 모두 통화 내용을 들은 상태였다.

“진짜 꿈 같아여.”

안단테는 눈병이 날 정도로 눈을 비비다가 지금은 힘이 빠져서 소파에 주저앉아 있었다.

“8위라니.”

그렇게 중얼거린 안단테의 시선이 이윽고 에르제에게 닿았다.

천천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르제 쪽으로 걸어왔다.

다른 멤버들도 눈치를 챘는지 마찬가지로 에르제를 둘러쌌다.

“뭐…….”

당황한 에르제가 한발 물러섰지만, 그 뒤에 있던 민주혁에게 가로막혔다.

“잠깐만.”

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것 같아서, 에르제가 양손을 내어 보였지만 멤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뱅 서은우 선생님 덕분입니다!!”

태현우가 과장되게 소리치며 에르제의 다리를 붙잡았고, 다른 멤버들도 각자 그의 신체를 하나씩 붙잡은 채 가로로 뉘었다.

“잠깐……만……!!”

이제 뱀파이어의 힘이 없는 에르제는 속절없이 4명의 인간의 힘에 의해 무너졌고, 그 뒤로 숙소에서는 한참이나 헹가래가 지속되었다.

그렇게 얼마간 멤버들끼리의 자축이 이어지고 있을 때.

윤치우의 스마트폰이 이윤이 걸어온 전화에 의해 다시금 울렸다.

“여보세요?”

이미 장 대표와 한차례 통화를 한 뒤인지라 별 내용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윤치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네? 진짜요?”

그의 반응에 토트윈의 표정에 궁금증이 떠올랐다.

* * *

‘Villain’의 순위는 주마다 꾸준히 한두 단계의 상승을 반복, 3월 초가 되었을 때에는 최종적으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처음 8위까지는 기존까지 모인 순수 팬들에 의해서였지만, 빌보드 차트 10위 내에 이름을 올리고 난 뒤에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이들 또한 토트윈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 전에 한국으로 돌아간 장 대표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1주일마다 갱신되는 순위 기록에 연일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은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최초로 빌보드 10위권 내에 진입한 한국 아이돌 그룹에 대한 관심은, 미국 전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8위에 올랐을 때 윤치우가 받았던 전화, 당시 이윤의 말은 그 미국에 대한 관심도를 증명하는 말이었다.

미국 심야에 방송하는 NBS의 ‘지미 쇼’, 그곳에서 토트윈을 섭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이후로 다른 토크쇼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현재 자선 콘서트까지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에 모두 출연하기는 어려워서 ‘지미 쇼’에만 출연하는 것으로 합의를 한 상황.

그리고 오늘이, ‘지미 쇼’ 출연 당일이었다.

“오늘 3곡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능숙한 매니저가 된 라하임이 차분하게 운전대를 움직이며 대답했다.

“방송에서는 얼마나 나갈지는 모르겠는데, 지미 쇼에는 방청객들도 많이 오니까 실수 없이 해야 합니다.”

“넵.”

이윤에게서 매니저 일을 지속적으로 배웠다고 하더니, 잔소리하는 법도 배운 모양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형식의 토크쇼니까, 대본에 맞춰서 외운 대로만 잘해 주시면 될 겁니다.”

끄덕끄덕,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토트윈 멤버들의 고개가 기계처럼 움직였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몰래 청심환 하나씩 먹고 왔을 것이다.

‘떨리기는 하네.’

평소 긴장을 잘 하지 않는 에르제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미국 4대 토크쇼 중 하나인 ‘지미 쇼’다. 인기도 많을뿐더러 이곳에서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토트윈의 이미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직은 한국 아이돌 문화에 대해 조금은 폐쇄적인 그들의 인식을, 메이저로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곧 스튜디오에 도착한 뒤 윤치우는 멤버들을 모아 놓고 연설했다.

“건강한 정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아이돌이라는 말의 뜻에 걸맞게, 토트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오자.”

윤치우는 결연한 얼굴로 손을 뻗었고, 그 위로 멤버들의 손이 하나씩 얹혔다.

흡사 첫 데뷔 무대를 가질 때와 비슷한 박력이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 지미와의 토크쇼가 시작되었다.

* * *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지미는 간단한 인사말을 마친 뒤에 크게 소리쳤다.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토트윈입니다!”

미국의 4대 토크쇼 호스트 중에서, 게스트들을 가장 많이 배려하고 리액션이 좋다 알려진 지미는, 등장하는 토트윈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까지 쳐 주며 환영했다.

“반가워요.”

토트윈 멤버들은 지미와 한 명씩 모두 악수를 나눈 뒤에, 테이블 옆에 놓여 있는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왼쪽부터 안단테, 민주혁, 에르제, 태현우 그리고 윤치우 순이었다.

지미는 조금 긴장한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리며 말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저는 당신들 토트윈의 팬입니다.”

“정말요?”

“네. 진짜로요.”

지미는 과장되지 않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제작진 쪽을 바라보았다.

“토트윈을 섭외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저잖아요. 빨리 그렇다고 말해요.”

지미의 말에 토트윈과 객석 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따라 웃었다.

“농담 같겠지만 진짭니다. 최근 발매되었던 ‘Villain’을 듣고 나서, 완전히 팬이 되었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럼 지미도 이브군요.”

애드리브로 대답한 에르제의 말에 지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브요?”

“할로윈 이브, 저희를 기다려 주는 팬들을 지칭하는 팬덤명입니다.”

“오오!”

지미가 설명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저를, 이브 지미라고 불러 주세요.”

큭큭, 웃는 소리가 다시금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지미와 에르제 덕분에 초반 인터뷰의 분위기가 가볍게 풀어졌고, 그 덕분에 토트윈의 다른 멤버들 또한 이어지는 인터뷰에 편하게 임할 수 있었다.

지미의 공식적인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에서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감상이?”

지미의 말에 윤치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저희 모두 사실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모든 게 새로웠어요. 완전히 다른 문화이기도 했고요.”

“그럼 첫 해외여행이 미국인 셈이군요?”

“그렇죠.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정신없이 바빴지만요.”

지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감하자, 에르제가 끼어들었다.

“사실 미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게 하나 있어요.”

“오, 뭐죠?”

지미가 상체를 숙이며 눈을 빛냈다.

“이곳에서는…….”

그러나 대답을 이어가려던 에르제는, 순간 가슴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헛숨을 삼켰다.

찌잉, 하고 울리는 고통.

에르제는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손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왜…… 갑자기……!’

아주 오래전, 그가 섭취했던 혈석.

그것이 지금, 강하게 진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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