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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2화 (272/307)
  • 제272화

    272화

    ― I’ll tell you

    A secret

    Shhh―.

    I’m not a hero

    순식간에 귀를 잡아끄는 에르제의 목소리, ‘Villain’의 스타트는 에르제였다.

    검은색 티에 부드러운 소재의 검은색 코트. 그리고 데뷔 이후 무대에서 처음 착용한 안경까지.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선해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에르제가 짓고 있는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섹시한 악당’의 느낌이 물씬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느른한 표정 위로 비틀려 올라가는 붉은 입꼬리가, 그보다 더 간질간질한 목소리를 뱉어 냈다.

    ― look who’s here

    The road

    I’m walking on

    Is, RED.

    다소 섬뜩하게 들리는 듯한 가사와 그에 미칠 듯이 어울리는 에르제의 모습이, 객석에 앉은 이들의 숨을 잠시 멎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트는 윤치우였다.

    검은색 재킷과 초커를 한 그는, 와인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윤치우를 포함한 멤버들의 한쪽 손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유유자적 제자리에서 걷는 듯한 안무가 이어진다.

    ― I’ll tell you

    A secret

    Shhh―!

    I’m just villain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본다.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윤치우의 눈빛이 무대 위를 훑었다.

    일렉 기타 사운드와 일정한 간격으로 리듬감을 고조시키는 드럼 비트.

    건들건들한 안무가 완벽하게 버무려지며 곡의 몰입도를 높여 갔다.

    찰랑, 민주혁의 손목에 걸려 있는 은색 체인이 소리를 내며 그 뒤로 툭툭 뱉어 내는 그의 목소리가 무대를 채웠다.

    ― no matter

    how hard you try

    it’s no use

    ― cause I’m

    Already grabbing

    Your neck―.

    넓게 펼친 손바닥이 스스로의 목을 조일 듯 다가왔다가, 이내 늘어지듯이 툭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동시에 좌우로 향하던 토트윈의 시선이 몸과 함께 정면으로 향했다.

    먹잇감을 찾아 나서던 악당이, 마치 목표물을 발견한 듯이 말이다.

    적막에 휩싸인 어두운 골목, 그곳을 5명의 악당들이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듯 곡의 분위기는 더욱 강렬한 사운드로 채워졌다.

    ― I don’t care

    Who you are

    I’m different

    우리는 다르다,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고난이도의 안무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민주혁이 ‘인외’의 느낌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오랫동안 고민한, 그 안무들이었다.

    아크로바틱하기 보다는, 잔 동작들이 엄청나게 많이 섞여 있는.

    멤버들 간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듯한 위태로운 구성이었다.

    3초, 그 정도로 짧은 시간마다 센터에 서는 멤버들이 바뀌었다.

    ― We, are, villain―!

    클라이맥스와 함께 펼쳐지는 댄스 브레이크.

    하지만 멤버 전체가 같은 안무를 이어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센터로 하나씩 치고 들어오면서 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동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정지한다.

    그리고 쿵, 쿵!

    비트 드롭에 맞추어 수차례 정지한 채 아래로 떨어지는 몸이, 곡의 리듬을 극한으로 느끼게끔 만든다.

    뛰었다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숨 쉴 틈조차 없는 안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

    ‘실력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의지가 무대의 끝까지 이어졌다.

    ― We are, villain

    Villain―.

    반복되는 리프 멜로디 위로 얹히는 에르제의 목소리가 고막을 간질였다.

    그렇게 시작과 끝, 모두 에르제의 차지로 무대는 결말을 맞이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 쉬는 토트윈의 모습에 무대와 객석을 포함한 쇼케이스의 공간은 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마치 그들의 안무처럼 시간이 정지한 듯이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토트윈에게는 그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틱…… 틱…….

    환청처럼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가 굉장히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틱―.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겨우 제자리를 찾고 나서야.

    와아아아아―!!!

    토트윈에게로 쏟아지는 엄청난 함성 소리가, 귀가 먹먹할 정도로 들려왔다.

    미국에서의 첫 쇼케이스는, 성공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 * *

    28일 뉴욕에서의 첫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마지막인 2월 2일 LAK에서의 쇼케이스 공연까지.

    쇼케이스는 매번 전석 매진이었고, 숨이 막히는 듯한 그들의 무대는 호평으로 가득했다.

    영상으로 쇼케이스를 접하게 된 현지 미국인들이 토트윈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행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지는 판타지 세계관은, 그들의 덕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리고 ‘앨런’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은 그들 중 하나였다.

    이제 갓 18살이 된 그녀는, K-POP에 관해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 토트윈을 접하게 된 것은 개리 제임스의 콘서트 무대였다.

    열성적인 개리 제임스의 팬인 그녀는, 웬 한국 아이돌과 개리 제임스가 콜라보를 한다 했을 때부터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미국에서 ‘Dreams’라는 곡의 성적이 좋다 하더라도, 분명 그것은 개리 제임스의 덕일 것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미리 재단했었다.

    하지만 막상 콘서트까지 찾아가서 그들의 무대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앨런의 생각이 아주 조금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K-POP은 미국의 음악에 비해 뒤떨어지는 수준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편협했었음을 인정했다.

    그저 두 국가의 문화가 달랐을 뿐.

    겉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노래 실력과 춤 실력은 앨런의 눈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거기까지.

    인식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토트윈의 팬이 되었냐고 한다면 NO, 였다.

    여전히 그녀는 개리 제임스의 덕택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미국을 설득시키는 건 힘들 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아이돌이 인정할 만한 성적을 거둔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앨런은 ‘Villain’의 노래를 101번째로 재생하며 피식 웃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이브가 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연히 무튜브의 급상승 인기 동영상에 선정된 토트윈의 쇼케이스 무대를 보았을 뿐이니까.

    얘네 개리 제임스랑 콜라보한 애들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누른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Villain’이라는 곡은 단 한 번 만에 그녀의 생각을 바꿔 버렸다.

    오히려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곡 때, 토트윈은 그들의 실력을 자제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앨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번에는 ‘Villain’의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그곳에서 보여지는 영상미와 토트윈의 모습, 그리고 혼을 앗아가는 듯한 목소리는…… 18년의 인생 동안 처음으로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노래도 춤도 비주얼도 완전히 미쳤다고.’

    심지어는 그들이 들고 온 콘셉트까지도, 완벽히 취향 저격을 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빌런이라는 것만 해도 심장이 쿵쿵 뛰는데, 이에 더불어 판타지 세계관이라니.

    어떻게 보면 과할 정도의 콘셉트인지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토트윈은 그런 거부감을 실력으로 뒤집었다.

    토트윈이 개연성이다, 마치 그런 느낌.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무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그녀 옆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중 하나인 ‘미샤’였다.

    윤기 나는 금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그녀는 학교 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친구였는데, 그런 미샤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것이 앨런이었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미샤가 앨런의 옆에 찰싹 붙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네 그냥.”

    앨런은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뒤로 숨기며 어깨를 으쓱했다.

    토트윈에게 취향 저격을 당하고 이브가 된 것과는 별개로, 미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뭔가 부끄러워서였다.

    미국에서는 아이돌 문화가 따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만큼,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앨런의 모습에 미샤가 미간을 좁혔다.

    “뭔데 그래~. 우리 사이에 비밀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앨런이 말꼬리를 흐리자, 미샤는 그대로 앨런 위로 몸을 던져 깔아뭉갰다.

    “앗! 무거워!”

    미샤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앨런의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설마 남자친구 생긴 거야? 응? 누군데~!! 나도 보여 줘!”

    “남자친구, 아니……야!”

    힘겹게 미샤를 밀어낸 앨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이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잠깐……!”

    하지만 미샤는 이미 앨런의 스마트폰을 열고 그녀가 보던 영상을 확인한 뒤였다.

    “너.”

    미샤가 눈썹을 위로 끌어올리며 아름다운 미모를 드러냈다.

    “…….”

    앨런은 이미 늦었음을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미샤는 특히나 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미샤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남학생들은 너무나 많았고, 그런 그녀가 아이돌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으니까.

    “돌려줘.”

    앨런이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손을 뻗자, 미샤가 고분고분하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이를 받아 들자,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친한 친구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실 평범한 자신과 미샤가 제일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거였다.

    ‘어떻게…….’

    하지만 그녀의 예상을 깬 것은 미샤의 행동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꽉 잡은 미샤가 눈을 똑바로 마주보도록 만들었다.

    “설마 네가 한국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네 친구가 더 이상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 그……게.”

    “그런 거였으면 너랑 친구 같은 거 진작에 하지도 않았어. 여전히 너는 내 베스트 프랜드라고.”

    “…….”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분에 앨런이 고개를 돌리자, 미샤가 쿡쿡 웃었다.

    “토트윈 좋아하는 게 뭐 어떻다고.”

    “……고마워.”

    고마운 일인가 싶기는 했다만, 소심한 성격인 앨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토트윈? 미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영상 제목에서 본 건가?

    ‘아니, 한국의 아이돌인 것까지도 알고 있는 듯이 말을 했는데…….’

    앨런의 표정에 설마? 하는 낯빛이 감돌자.

    “푸하하하!”

    미샤가 웃겨 죽겠다는 듯이 배를 잡으며 웃었다.

    “이제 눈치챈 거야, 앨런?”

    “미샤.”

    앨런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미샤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나도 이브야.”

    “세상에.”

    둘이 정말 친한 친구였음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8세의 두 소녀는 여과 없이 팬심을 드러내며 사이좋게 토트윈의 영상을 감상했다.

    그리고.

    “투어도 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꼭 표 구해서 같이 가자.”

    이루어질지 모르는 약속을 우정과 팬심 사이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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