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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1화 (271/307)
  • 제271화

    271화

    장 대표와 직원들 그리고 토트윈의 멤버 셋까지 포함하여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총 14명.

    그들 모두 심사숙고를 끝내고 난 뒤에 손을 들었다.

    안단테의 곡으로 하면 좋겠다고 거수한 사람은 윤치우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기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책상에 팔을 붙이고 있던 장 대표가 흠, 하며 에르제의 곡이 나았다면 거수하라고 말을 이었다.

    손들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두 개 다 좋아서 선택을 하지 못하겠다는 직원 2명을 제외하고는, 8명이 에르제의 곡이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단순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8:4라는 스코어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졌다.

    당사자들을 눈앞에 두고 이런 논의를 벌이는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은 에르제와 안단테가 직접 부탁한 일이었다.

    이런 거로 상처받지 않으니까, 솔직한 의견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면서 말이다.

    “확실히 토트윈의 판타지 콘셉트를 버리는 건 아깝습니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단테가 작곡한 곡이 조금 더 안정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거기에 판타지 콘셉트를 가사로 섞는 거죠.”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애초에 그걸 노리고 작곡한 것과는 차이가 있죠. 들으셨다시피 곡 분위기부터 다르잖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정석으로 가자는 의견과 토트윈의 기조를 버리지 말자는 의견들, 그리고 그 외의 추가적인 의견들로 인해서 회의는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그렇게 30분가량의 논의가 더 이어지고 난 뒤에, 비로소 직원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타이틀곡은 에르제의 것으로 하기로 말이다.

    다만 안단테의 곡이 버려지지는 않았다. 더블 타이틀곡으로 하자는 의견은 아쉬움 속에 묻혔지만, 그래도 3번 트랙에 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2번 트랙은 inst와 그 뒤에 이어질 타이틀곡, 그 분위기를 그대로 끌고 가는 편이 좋아서 안단테의 곡이 3번으로 밀렸을 뿐.

    안단테가 작곡한 곡 또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남아 있었다.

    “꼭 타이틀곡이 인기 많은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앨범 전체를 듣는 인원들 중에서 선호도에 따라 스트리밍하는 곡이 갈릴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그들 가운데, 장 대표가 이야기를 총합하여 에르제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그럼 타이틀곡은 은우 것으로 하기로 하고, 은우가 일을 하나 더 해야겠는데.”

    “무슨 일이요?”

    “2번 트랙 작곡도 네가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아하.”

    에르제는 장 대표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타이틀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 줘야 하는 특성상 에르제가 작곡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일 터였다.

    “알았어요.”

    에르제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장 대표는 손뼉을 몇 번 부딪쳤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우리는 근처 식당 맛집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오오, 대표님 최고!”

    직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장 대표와 직원들이 먼저 자리를 비켰다.

    그들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나서는 것은 토트윈, 그들 가운데 안단테가 에르제에게 말했다.

    “으, 나도 판타지 콘셉트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그랬어?”

    “네. 근데 미국 시장에 판타지를 어떻게 섞을까 고민해도 답이 안 나와서여. 그래서 포기했었는데, 확실히 얼터너티브로 가면 그 분위기가 살 것 같아여.”

    안단테는 타이틀곡에 자신의 곡이 실리지 않게 되었음에도 분하거나 질투에 찬 얼굴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도리어 든든한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은우 형이 있으니까 더 자극이 돼여.”

    ……아니, 든든했다기보다는 의욕이 가득한 얼굴이었나 보다.

    “다음번에는 안 질 거예여.”

    “나도 마찬가진데.”

    에르제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안단테와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빌런.”

    안단테는 헷, 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 위로 올렸다.

    “재미있을 것 같아여.”

    “빌런 좋지.”

    안단테의 말에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현우가 흐흐 하고 웃었다. 벌써부터 신이 나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 영화 볼 때 악당을 제일 좋아하거든.”

    “앗, 저도여.”

    누가 단테 현우 크로스 아니랄까 봐, 이런 것마저도 합이 잘 맞는다.

    “미국에서 완전히 악당으로 데뷔해 보자고.”

    태현우의 말에 나머지 토트윈의 입가에는 기대감이 물들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정규 앨범은 적어도 LAK에게 있어서는 악당의 등장이 될 테니까.

    * * *

    정규 4집 앨범 작업은 타이틀곡이 정해진 이후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타이틀곡인 1번 트랙 ‘Villain’이 악당의 등장이라면, 에르제가 추가로 작곡을 한 2번 트랙 ‘Sunset’은 그런 악당들의 서사를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악당이나 아무 이유 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영화든 소설이든,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지지를 받는 악당들은 저마다의 서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슬픈 과거이든, 혹은 태어날 때부터 빌런 그 자체이든.

    그들이 하는 행동에 의미 부여가 될 수 있는 서사와 이야기들, 에르제는 그게 필요하다 판단해 2번 트랙을 작곡했다.

    ‘Sunset’, 해가 진 이후 그들의 이야기.

    어둠 속에 살 것 같은 그들도 사실은 두려워하는 것이 있고, 해가 없는 곳에서 지켜야 할 이들도 있다는 것.

    작곡한 곡과 에르제가 임의로 붙인 가사에 토트윈 멤버들은 매우 만족했다.

    본인이 각자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가 간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앨범 작업과 마스터링, 뮤직비디오 작업까지.

    토트윈은 미리 공식 계정과 타임 테이블 그리고 기사 등을 통해서 예고한 대로 다음 해인 1월 28일, 정규 4집 앨범 ‘Villains’의 쇼케이스를 가지게 되었다.

    [ 토트윈, 美 활동 본격화! 28일부터 쇼케이스 개최 ]

    [ 남성 아이돌 그룹 토트윈이 28일 미국 뉴욕에서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29일 워싱턴D.C, 31일 휴스턴, 2월 2일 LA까지 총 4개 도시에서 쇼케이스를 공연을 선보인다.

    특히 28일 쇼케이스는 하루 만에 5천 석이 매진이 되어 현지에서 통할까에 대한 우려를 곧바로 불식시켰다.

    토트윈의 정규 4집 앨범 ‘Villains’는 미국과 한국에 동시 발매될 예정이며…… ]

    한국에서 풀린 기사의 내용처럼, 토트윈은 28일 뉴욕 쇼케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LA까지 강행군이 예약되어 있었다.

    하루 혹은 이틀 단위로 도시를 이동하면서 노래와 춤을 선보여야 하는 하드한 일정.

    하지만 곧 무대에 올라야 하는 토트윈은 그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말이 하루지, 거의 한 시간도 안 돼서 매진이라던데!?”

    “그러니까여. 솔직히 저희도 걱정했잖아여. 사람들 많이 안 올까 봐…….”

    “내 말이. 미국에 있는 한국 팬들이 오는 건가 했는데, 외국인들이 90퍼센트 이상이래.”

    태현우가 아까 스태프에게 전해 들었는지 손으로 입까지 가려가며 속살거렸다.

    “개리 제임스 콘서트 설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은데여.”

    “그러게.”

    쿡쿡 웃은 민주혁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안단테의 등을 탁, 하고 쳤다.

    “허리는 펴고.”

    “네에.”

    “아무튼, 우리는 준비한 것만 잘 보여 주자. 쇼케이스에 와 준 분들은 벌써 우리 팬이 되신 분들이잖아.”

    민주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대로, 쇼케이스까지 와 준 이들은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그들의 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쇼케이스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으니까.

    ‘미국이 넓어서 5천 석이 금방 찬 걸까, 아니면 우리 인기가 많이 오른 걸까.’

    에르제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개리 제임스가 본인의 SNS에 토트윈의 공식적인 미국 데뷔를 축하한다 올린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했을 터다.

    ‘나중에 따로 고맙다고 말을 해야겠네.’

    콜라보 이후 정규 앨범의 홍보까지 착실히 서비스해 준 개리 제임스에게는, 언젠가는 꼭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에르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에르제는, 그것이 이왕이면 말뿐인 감사 인사보다는 ‘성공’ 이후 음악으로 보답하길 바랐다.

    그렇게 대기하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올라가자.”

    스태프가 준비 끝났다고 올라오라 말을 했고, 윤치우의 말을 따라서 멤버들은 일렬로 무대 위로 향했다.

    “꺄아아악!!”

    “ToT-win!!”

    “싸랑해요!!”

    어설픈 한국어들이 그들의 등장에 무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언제 팔아먹은 건지, 그들의 응원봉까지 들고 온 이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하하.”

    “Hi, New York!!”

    토트윈은 지급받은 마이크를 통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무려 3층 높이까지 꽉 차 있는 객석에서는 다시금 환호성이 난무했다.

    찌릿찌릿할 정도의 환대라 에르제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놓칠 뻔했다.

    곧 쇼케이스의 MC를 맡은 ‘슈어저’가 객석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인 쇼케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각자 자기소개를.”

    “미국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된 소감이 어떤지?”

    “이번 앨범의 소개를 간략하게 해 준다면?”

    등등, 앞쪽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기자들의 질문에 토트윈은 열심히 대답을 했다.

    이번 미국 활동을 위해서 앨범 준비뿐만이 아니라 영어 연습도 많이 했기에, 듣고 대답하는 데에 그렇게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혹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영어를 마스터한 에르제가 나서서 대답했기에 문제가 생길 일은 아예 없다고 보아도 전무했다.

    데뷔 첫해까지만 해도 인터뷰나 쇼케이스 등에서 답변으로 사고만 치던 에르제가, 이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다니.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운 멤버들의 표정들이 에르제에게 쏟아졌다.

    ‘민망하게.’

    에르제는 크흠, 헛기침을 하자 MC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옆으로 펼쳤다.

    “그렇다면, 토트윈의 4집 앨범 타이틀곡 ‘Villain’을 들어 보지 않을 수 없겠죠!”

    “네에에에에!!”

    MC, 슈어저의 말에 객석에서 떠나갈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를 따라, 토트윈 멤버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앉아 있던 의자들이 스태프들에 의해 속속들이 치워지기 시작했다.

    ‘갈까?’

    ‘나는 준비 됐어.’

    멤버들 간의 시선 교환이 이루어지고, 이내 MC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윤치우의 사인을 받아서…….

    우우우웅―!!

    어두운 조명으로 변한 쇼케이스 무대 뒤쪽,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스크린에 ‘Villains’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멤버들의 오늘 착장은 올 블랙 그리고 초커, 손목과 허리춤에서 짤랑거리는 은색의 체인.

    악동 같이 짓궂은 미소들이 토트윈의 얼굴 위로 번졌다.

    둠, 둠둠둠, 둠!

    팜뮤트 된 일렉 기타 소리가 강렬하게 무대 위에 울리기 시작하고.

    ― I’ll tell you

    A secret

    에르제의 검지손가락이 쉿, 그의 붉은 입술 위로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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