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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70화 (270/307)

제270화

270화

PPT 일정을 위해서 장 대표를 포함한 앨범 작업 관련 직원들이 모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그들이 시차 적응을 마친 다음 날, 임시로 빌린 회의 장소에 장 대표와 직원들이 먼저 도착했고 토트윈 또한 이윤과 라하임의 인도 아래 회의실에 당도했다.

타원형의 테이블, 스크린에서 가장 먼 쪽에 앉은 장 대표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한국에서도 너희들 얘기 정말 많이 하더라.”

끌끌 웃은 장 대표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LAK도 선방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 정규 앨범만 잘 터지면 완전히 자리 잡겠어.”

“그러니까요. 요즘 완전 상승 분위기예요.”

장 대표의 말에 그의 양옆으로 죽 늘여 앉은 직원들도 동의하며 화답했다.

덕분에 들어오자마자 칭찬 세례를 들은 토트윈만이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은 윤치우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바로 회의 시작할까요?”

예전에 비하면 이제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도 토트윈의 위상도 극적으로 치솟은 상황.

매번 망하기만 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드디어 성공한 것도 모자라서, 장 대표가 지금까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여자 아이돌 그룹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안단테가 작곡한 곡과 멤버들이 작사했던 곡들 등, 그들 스스로 이루어 낸 것으로 결과를 보여 주었으니 오늘 회의의 주도권은 토트윈이 가지고 있다 보아도 무방했다.

장 대표는 윤치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단테랑 은우가 작곡한 곡들 중에서 타이틀곡으로 정할 거 뽑으면 되는 거지? 그거에 맞춰서 앨범 콘셉트 잡으면 되는 거고.”

“네, 맞습니다.”

“좋아 좋아.”

장 대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존 같았으면 그냥 화상 연결로 회의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장 대표는 이번 미국 진출에 사활을 걸었다.

LAK가 이대로 성공을 거둔다면, 그들을 포함한 다른 1군 아이돌 그룹을 따라잡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 명확한 승리자가 없는 이곳에서, 선두를 빼앗기고 후발주자가 된다면 결국 제2의 누구라는 말만을 듣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런 장 대표의 의지가 주변에도 전해진 것인지, 괜히 직원들도 긴장해서는 허리를 빳빳이 폈다.

되레 토트윈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는 분위기가 되기는 했지만, 안단테와 에르제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이 준비해 온 곡과 콘셉트를, 이들에게 보여 주고 타이틀곡으로 선정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

‘은우 형도 작곡을 엄청 잘하니까 인정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의 첫 앨범이니까……!’

‘이미 단테가 작곡을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밥그릇을 뺏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 승부하게 된 거 이기고 싶은데.’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생각에 빠져서 PPT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준비해 온 것을 잘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 질문과 다른 것들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단테 거부터 먼저 들어 보자고.”

장 대표가 손짓을 했고, 안단테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옆으로 빠졌다.

탁―.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곧 빔 프로젝터에서 쏘아진 스크린에 안단테가 준비해 온 PPT 화면이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노래를 들려주는 대신, 설명을 먼저 이어갔다.

이번에 안단테가 준비해 온 곡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석’.

한국 아이돌의 느낌이 미국에서도 먹힌다는 것을 확인한 뒤이기에, 안단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즉 정석적인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고 왔다.

“제목은 ‘BANG!’이고여, 디스코 팝 장르를 활용해서 미국 시장에서도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여. 가사도 전부 영어로 작사할 생각이고여.”

전체적인 곡의 세부적인 설명부터 시작해.

“전체적으로 코디는 블랙 계열로, 개인적으로는 슈트 같은 것도 굉장히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있어여.”

의상과 무대 콘셉트까지.

안단테가 작곡을 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조악하지만 PPT 위에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였다.

‘잘했네.’

에르제와 안단테, 둘 모두 서로에게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지 않은 상황.

먼저 더 나은 곡으로 결정이 되면 협력하기로, 둘은 그렇게 합의를 본 상태였다.

해서 에르제는 이어진 안단테의 ‘BANG!’의 MR을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단테 스스로 가이드를 딴 멜로디 라인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확실히 안단테가 들고 온 ‘BANG!’이라는 곡은, 리프 구간을 활용한 중독성이 포인트였다.

디스코 팝 장르에 영어 가사, 미국의 정서를 어느 정도 챙기면서도 한국 아이돌의 특징들을 그대로 따 온 느낌.

특히나 댄스 브레이크 혹은 퍼포먼스를 끼워 넣을 공간들이 많이 보여서, 안단테가 어떠한 무대를 머릿속에 그리며 작곡을 했는지 훤히 보였다.

‘역시.’

에르제는 괜히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예전 안단테가 처음 작곡을 배웠을 때만 하더라도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었는데, 지금까지 작곡 부분을 도맡아 하다 보니 실력이 많이 상승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준 악보들을 보고 분석도 많이 했었는지, 자신의 오랜 경력으로 쌓인 노하우들도 중간중간 잘 녹아 있었다.

‘엄연히 스승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단테가 자신이 작곡한 곡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아 성장을 했다면, 이번 PPT의 승자는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원조를 이기는 건, 쉽지 않은 법이다.

짝짝짝짝!

안단테의 깔끔한 PPT 발표가 끝나고, 장 대표와 직원들은 상당히 감탄한 눈빛을 보내며 박수를 쳤다.

“좋은데?!”

“그러게요. 기존에 스타라이트나, LAK에서 시도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곡 콘셉트나 작곡 퀄리티는 확실히 더 뛰어나네요.”

“나는 일단 찬성. 실험적인 곡 하는 것보다는, 정석적으로 돌파하는 게 더 안정적이기는 해.”

아직 에르제의 PPT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승자를 정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에르제의 능력을 무시했다기보다는 그만큼 안단테가 들고 온 곡의 퀄리티가 좋았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까지 안단테가 작곡 능력으로 보여준 것들이 많다는 것도 한몫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하이 리턴을 노린 것이 아니라 일단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 정도.

‘물론 그 와중에도 작곡한 수준이 뛰어나서 다른 그룹에 밀리지는 않겠지만. 안단테 답네.’

뒤에서 살짝 웃음을 지은 에르제는,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안단테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때여?!’ 하고 자랑스럽게 뽐내는 듯한 표정이 안단테의 얼굴에 가득했다.

막내의 재롱을 보는 것 같아서 에르제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이제는 에르제의 차례였다.

“우선, 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능숙하게 PPT의 시작 부분을 알린 에르제는, 준비해 온 자료를 꺼내 들었다.

안단테와는 다르게 에르제는 처음부터 곡의 MR을 재생시켰다.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던 브릿 팝이나 얼터너티브 록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K-POP의 감성을 그대로 살려서, 말 그대로 장르만 따 온 듯한 느낌. 쿵쿵 찍히는 비트와 강렬함이 넘치는 멜로디.

‘나쁘다.’라는 느낌의 이미지가 가사가 없음에도 절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홀려서 노래를 다 듣고 난 장 대표와 직원들은 멍한 눈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마치 ‘은우가 작곡을 이 정도로 잘한다고?’ 그런 눈빛들이었다.

하기야, 예전 팬 송을 제외하고는 에르제가 만든 곡이 따로 없었기에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이윽고 당황과 감탄의 눈빛이 서려 있던 그들의 눈동자가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결과물을 먼저 들려주고 설명을 하겠다는, 에르제의 전략이 잘 먹혀 든 것이다.

잠시 뜸을 들인 에르제는, PPT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하얀 화면 위에, 단 두 글자만이 떠올랐다.

‘초심.’

“사실 개리 제임스와 이미 콜라보 곡을 통해서 저희의 실력과 개성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데뷔 때를 생각하면 조금 다른 것도 사실이에요.”

에르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희의 데뷔 때 콘셉트와 가장 최근에 냈던 디지털 싱글 앨범을 보면, 늘 저희의 이면. 또 다른 정체성이 늘 함께 들어 있었어요.”

“판타지…….”

장 대표가 중얼거리자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거부감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미국에서의 데뷔곡에 그 콘셉트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더라도, 이후 저희의 세계관을 보여 줄 방법은 없을 테니까요.”

나중에 가서 판타지스러운 콘셉트를 들고 온다면, 되레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컸다. 이미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에르제는 나름대로 조사해 온 근거를 덧붙였다.

“미국은, 아니 서구권은 판타지에 대한 욕구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큽니다. 해X포터와 같은 수많은 영화들이 그렇고, 유명 작가들이 쓰는 책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미국에서 유명세를 타는 곡들 중에서도, 자신 혹은 다른 대상을 영웅이나 판타지적 존재에 비교하는 가사도 굉장히 많아요.”

“……생각해 보니까 그렇기는 하네.”

장 대표도 직원들도, 공감이 가는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르제는 다음 장으로 화면을 넘겼다.

그곳에는 각자가 맡고 있는 판타지 캐릭터들이, 순한 버전이 아니라 악당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악당에게 열광하죠.”

에르제가 준비해 온 곡의 제목은 ‘Villain(빌런)’, 그가 작곡해 온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나쁘다’가 퍽 잘 어울리는 주제였다.

“한국에서는 기존까지 지구로 넘어온 판타지적 존재의 설정을 보여 주었다면, 여기서는 그들의 흑화 버전을 보여 주는 거죠.”

“…….”

“…….”

그 뒤로도 무대나 의상에 관한 에르제의 설명이 이어졌으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에르제의 의견에 공감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안단테와 에르제 둘이 가져온 곡에 대한 평가를 실시간으로 내리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울질을 해 보던 이들이 하나씩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정석적인 K-아이돌의 느낌을 보여 줄 수 있는 안단테냐.

어느 정도 미국 정서에 맞춘 빌런 버전의 판타지 콘셉트를 들고 온 에르제냐.

곡을 얼마나 잘 썼는가로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앞으로 토트윈이 미국에서의 행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대한 의미가 될 테니까.

“다들 마음은 정했나?”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정을 내린 장 대표가 직원들을 돌아보며 물었고, 그들 모두 고민을 끝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각자 거수로 투표하지. 단테랑 은우 제외하고 너희들도 투표에 참여해.”

“어…… 그렇게 하면…….”

편 가르기 되는 거 아니에요? 윤치우가 조금 걱정스럽게 눈으로 물었으나 장 대표가 껄껄 웃었다.

“은우나 단테가, 이런 거로 뒤끝 있을 애들이야?”

“음 그건 아니죠.”

장 대표의 말에 설득된 나머지 토트윈 멤버 3명도 직원들 뒤에 대충 자리를 잡고 섰다.

장 대표는 헛기침을 하고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두들겼다.

“그럼 먼저, 단테의 곡이 더 좋다 생각하는 사람부터 손들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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