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69화 (269/307)

제269화

269화

토트윈이 개리 제임스의 소개와 동시에 무대 위로 등장했을 때, 객석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끄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개리 제임스의 팬들이 대부분이니, 에르제의 솔로곡이나 토트윈의 노래를 들어 본 이들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리 제임스와 한국의 어떤 아이돌이 콜라보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들 중 몇몇은 궁금증에 토트윈의 노래를 들어 보기도 했으니.

토트윈의 팬은 아니더라도, 아예 무시로 일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박수를 쳐 주고 환호성을 질러 주는 정도의 반응은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뭔가…… 어색하네.’

그리고 에르제는 무대 위에 올라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객석에 보이는 이들이 전부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팬덤별로 나누어 앉은 이들이 각자의 응원 도구들을 들고 존재감을 발산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떼창 같은 것도 없었지.’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개리 제임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에르제는 확실히 한국과 다른 문화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Ready?”

어느덧 토트윈에게 다가온 개리 제임스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물었고, 그들은 ‘Already’라고 대답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대답에 개리 제임스가 잠시 빵 터졌다.

그는 곧 무대 조금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밴드를 향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탁.

윤치우의 손이 에르제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왠지 모르게 격려를 받는 기분이라 조금 전부터 쿵쿵대던 심장이, 그 손길 하나로 진정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후우.”

호흡을 뱉어 낸 에르제는 손에 든 마이크를 꽉 쥐었고, 곧 개리 제임스와 토트윈의 콜라보 곡 ‘Dreams’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Dreams’는 개리 제임스가 작사와 작곡을 대부분 도맡았던 만큼, 그의 감성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곡이었다.

미국에서도 음원 강자로 활동 중인 개리 제임스는 팝을 기반으로 한 장르에 더불어 노래 가사에 의미를 담는 것을 좋아했는데, ‘Dreams’또한 그와 비슷했다.

제목 그대로 꿈에 관한 이야기.

첫 소절의 시작은 개리 제임스였다.

그는 셔츠를 허리에 두른 채 캐주얼한 모습으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 Look at my eyes

They’re twinkling

This is a wish

for a dream

간질간질한 R&B 감성의 목소리가 음을 타고 논다. 콜라보 결정 이후 그의 노래를 찾아보았던 에르제는, 그의 라이브 실력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부드러워.’

특유의 소울이 가득하면서도 듣기 편하다. 고막을 녹이는 목소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사이, 다음 배턴을 이어받은 안단테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다.

미성이면서 안정적인 안단테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증폭되었다.

― No one

Believed,

But I never give up

객석에 앉은 이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개리 제임스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 주는 안단테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왠지 같은 그룹 멤버가 인정받는 기분이라 에르제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 like broken glass

It’s easy to break

I’ll hold on

Tight ―!

1절의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브리지 구간, 점점 커지는 드럼 소리에 맞추어 윤치우의 단단한 중 저음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야외 콘서트장임에도 묵직하게 때리는 그의 목소리에 객석의 반응이 점점 고조되었다.

이윽고 태현우와, 에르제의 차례.

개리 제임스의 흐뭇한 얼굴이 순서대로 그들을 훑었다.

우선은 태현우였다.

― The dream is

getting closer

I already know

I can make it ―.

개성 있는 태현우의 쨍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곡의 몰입을 높이 끌어올렸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연습한 영어 발음 또한 한몫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꿈을 향한 길이, 한달음에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이룰 수 있다는 듯, 애절하게 뻗어 낸 태현우의 손끝에 관객들의 시선이 이슬처럼 맺혔다.

이윽고 꽉 움켜쥐는 손, 그리고 아래로 툭 떨어지는 팔.

아, 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그렇게, 극으로 치닫는 고조감을 에르제가 이어받았다.

― Even if I fall,

I will get up and run―.

Dreams don’t stand still

I need to be a

little, faster ―!!

순식간에 사람을 홀리는 듯한 목소리, R&B의 기술이 들어가 있지 않음에도 고막을 간질거린다.

이에 더불어 에르제의 파트에서 얹어지는 개리 제임스의 화음까지.

이 순간, 객석에 앉아 있는 개리 제임스 팬들의 반응은 대부분 동일했다.

‘아름답다’라는 것.

에르제의 목소리를 베이스로 해서 얹히는 개리 제임스의 화음은, 현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에르제에게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태현우나 안단테, 그들과 화음을 맞출 때도 느꼈던 거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국적도 다른 사람. 영어에 꽤나 자신 있었던 에르제도, 막상 개리 제임스와의 의사소통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었는데…….

‘음악으로 소통이 된다니.’

이건 카테이아 대륙에서조차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당시 에르제는 대부분의 언어를 할 줄 알았고, 그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종족들은…… 노래를 할 줄 몰랐으니까.

‘오크와 화음을 맞춰서 노래한다는 건, 꿈에서도 하지 않을 상상이니.’

다음 차례로 넘어간 파트에서 마이크를 아래로 내린 에르제는 손으로 가슴 부근을 꾸욱 눌렀다.

진정되었던 심장이 급작스럽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상황이 곡 이름처럼 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한국에서 먼 이곳 나라의 사람들을, 토트윈의 팬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 Dreams aren’t

That faraway

그리고 지금 막 발아한 에르제의 꿈은, 말 그대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을 찍고 있는 스마트폰은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

* * *

토트윈은 총 3번. 3일 연달아 진행되었던 개리 제임스의 콘서트에서 모두 무대에 섰다.

마지막 날까지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났을 때, 게리 제임스의 얼굴에 걸려 있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정도.

그는 그 자리에서 토트윈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으며, 실제로 본인 SNS 계정에 그 말을 직접 올리기까지 했다.

20대 후반부터 해서 뒤늦게 빛을 발하게 되었던 개리 제임스는, 30대 중반인 지금 꿈을 이룬 상태였고.

자신의 그런 감정을 공유하며 같이 노래로 표현해 준 토트윈에게 진심으로 감탄을 한 듯이 보였다.

앞으로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곡은 무대보다는 음원으로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그와의 다음 무대는 아직은 기약이 없었으니까.

“곧 좋은 소식 들려드리죠.”

하지만 개리 제임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토트윈과의 악수를 한 명씩 모두와 나누었다.

그렇게 그 이후 본격적으로 ‘Dreams’가 음원으로 공개가 되고, 개리 제임스가 일부러 자신의 사비까지 얹어 만든 단 한 곡짜리 실물 앨범 또한 시장에 판매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리 제임스의 팬들과 한국에서의 주문이 대부분을 이루었지만, 그 분위기가 바뀐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리 제임스의 콘서트 VOD를 포함해, 팬들이 찍은 것들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 세상에, 이 남자들은 누구야?

┖ 한국에서 온 아이돌이래.

┖ 정말 잘하는데? 개리 제임스 웃고 있는 것 봐

무튜브 및 커뮤니티에 미국인들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토트윈에 대한 관심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곡뿐만이 아니라, 기존 토트윈의 곡들과 이번에 풀린 솔로곡들까지.

토트윈이 아닌 에르제만을 알고 있던 이들 또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에르제와 태현우의 솔로곡이 ‘스포티타임’ 차트 상위권에 위치하게 된 것도 모자라서, ‘Dreams’의 빌보드 차트 순위는 순식간에 20위권 내로 진입을 했다.

발매된 지 고작 1주일, 주간 순위에 곧바로 진입을 한 것도 모자라 순위까지 높았다.

“미쳤다 진짜.”

“와…… LAK 16위 보고 배 아팠는데, 이 정도면 저희 역전할 수 있는 거 아니에여!?”

해서 미국 숙소에 모여 있던 멤버들이 신나서 이야기했지만, 민주혁만이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 산통 깨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는 한데, 이건 우리 힘만으로 이뤄 낸 건 아니잖아.”

“음.”

“개리 제임스가 이미 미국 내에서 유명하니까, 그쪽 팬덤도 엄청나게 붙었을 거야. 우리는.”

민주혁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평소 잘 볼 수 없는 그의 미소였다.

“이번 정규 앨범으로 순수하게 붙어 보자고.”

물론……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진 뒤라서, 그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순수하다 볼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LAK 또한 에르제의 솔로곡 효과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Dreams’로 빌보드 1위를 하더라도, LAK의 16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리고 역시 다들 시무룩하거나 분위기가 깨졌다고 여기는 대신 의지를 불태운다.

현재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정규 4집 앨범의 총 곡 수는 7개.

이번에 발매하지 못해서 정규 앨범에 포함시킨 안단테의 솔로곡을 제외한다면, 그룹으로서는 총 6곡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곡을 하면서도 계속 곡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작곡과 관련된 부분은 이미 끝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2곡은 은우 형이 작곡했잖아여. 지지 않겠슴다.”

팔을 걷어붙이며 말하는 안단테의 말처럼, 6곡 중 2곡은 에르제가 작곡을 했다. 그리고 다른 2곡은 안단테가, 나머지 2곡은 회사에서 받아 온 곡으로 준비가 되었다.

시간이 없기에 그렇게 결정된 사안이었지만, 아직 에르제와 안단테가 작곡한 4곡에 대해 회사에서 확인하기 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되어 있는 이틀 뒤의 PPT 일정.

안단테의 작곡 실력 또한 뛰어나지만, 자신도 오랜 기간 곡을 써 왔던 경험이 있었다.

“어떤 곡이 타이틀이 될지 보자고.”

에르제는 승부를 걸어오는 안단테를 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타이틀이 누구의 곡으로 되느냐에 따라, 정규 4집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작사 콘셉트가 정해질 터.

콜라보 곡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열의를 높이는 둘의 모습에,

“안무 짜러 간다.”

“나도 노래 연습해야겠다.”

“…….”

다른 세 명의 멤버들도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연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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