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68화 (268/307)

제268화

268화

미국에 진출한 ‘LAK’는 최근의 분위기에 힘입어 꽤나 빠르게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STARLIGHTS’가 기록한 빌보드 최고 순위는 21위, 현재 LAK는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 기록을 차근차근 따라잡는 중이었다.

“하하.”

제이는 며칠째 답장이 오지 않는 코코아톡을 보며 맑게 웃었다.

익숙지 않은 미국 생활에 에르제의 무반응은 되레 그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아마 분해서 잠도 잘 못 자지 않을까?

생각보다 그 상상이 즐거워서 제이의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선수를 쳤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에르제의 예상대로, 제이는 토트윈의 속셈을 이미 읽고 있었다.

솔로곡을 연달아 내며 토트윈에 대한 관심도를 높인 다음, 그 후 토트윈 그룹 전체로 컴백하여 임팩트를 주겠다는 계산.

나쁘지 않은 계획으로 보였으나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첫째는 솔로곡이 잘되지 않았을 때 계획 전체가 어그러진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처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이는, 솔로곡이 망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보더라도 토트윈 개개인의 실력은 출중했고,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자본적인 지원 또한 충분했으니 말이다.

해서, 자신이 노릴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맹점뿐이었다.

다행히 제이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토트윈은 치명타를 입었다.

에이리스와 1장로 그리고 대악마를 상대할 때는 같은 편이었지만, 아이돌 세계에서는 완전히 적이다.

어느덧 LAK의 라이벌이라 불릴 정도까지 성장한 토트윈은, 자신이 잠적했던 사이에 그 위상을 완전히 뒤엎었으니까.

‘이건 합법적인 복수지.’

암, 그렇고 말고. 제이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주변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이채선이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제이를 대하는 이채선의 태도는 예전과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매사 눈치를 보던 모습이 아니라, 훨씬 편하게 대하는 모습.

제이가 이제는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온 뒤이기도 했고, 그 이후부터는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몇 달간 적응의 기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대등한 동료 관계로서 편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아아.”

제이는 이채선의 말에 고개를 들며 목소리를 냈다.

“서은우 반응이 웃겨서.”

“오, 왜? 답장 왔어?”

“아니. 안 왔어.”

뭔 소리야, 이채선이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좁히자 제이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너 서은우 성격 알잖아.”

“……알지.”

에르제에게 여러 번 데어 본 이채선은 얼굴을 굳히며 대꾸했다.

그런 그에게 제이가 스마트폰 화면을 흔들었다. 계속해서 사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코코아톡을 철저히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에르제와의 톡방 화면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뭐라 했을걸? 근데 답장도 하지 못하는 거면, 진짜 분한 거지.”

“……아!”

그제야 깨달은 이채선이 그를 따라 씩 웃었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그러네. 태현수 솔로곡도 며칠 전에 나오지 않았나? 별로 이슈는 안 된 것 같던데.”

“태현수가 아니라 태현우야.”

여전히 처참한 기억력을 보이는 이채선의 말에 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그의 말을 하나 더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 이슈가 안 되지는 않았어. 태현우 솔로곡도 지금 상당히 인기 많으니까.”

“엥, 그래?”

“……그래도 라이벌 그룹인데 관심 좀 가져라.”

제이는 어휴, 한숨을 쉬었다.

현재 에르제의 솔로곡 ‘In Mind’는 ‘스포티타임’ 기준 주간 차트 5위권까지 올라왔다. ‘In Mind’가 LAK의 앨범에 도움을 주었듯, LAK가 거두는 성적에 따라 ‘In Mind’또한 반대로 영향을 받았다.

물론 한쪽은 에르제 하나였고 이쪽은 그룹 전체였기에, 이득으로 보자면 이쪽이 훨씬 이득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에르제의 솔로곡이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당연히 그렇기에 태현우의 솔로곡 ‘Rain’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르제의 솔로곡과 비슷한 수준으로 치고 올라오는 ‘Rain’은 어느덧 10위 근처에서 자리를 맴도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이채선이 말했듯 이슈가 안 된 게 아니라, 이미 충분히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봐도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 파이를 꽤 많이 뺏어 먹고 있으니까.’

토트윈에서 솔로곡을 내면 낼수록, 결국 손해 보는 쪽은 저쪽일 것이다.

‘우리는 그룹 전체가 손해 볼 각오를 하고 리스크를 안았으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대충 생각을 정리한 제이가, 내일 나가게 될 토크쇼 준비를 시작하려던 때.

드디어 에르제에게서 코코아톡이 날아왔다.

“!!”

당연히 끝까지 답장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변수가 생겼나?’

긴장…… 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에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그리고 코코아톡을 확인한 제이의 입에서.

“미친.”

절로 욕설이 나왔다.

에르제가 보낸 것 또한 글로 이루어진 텍스트가 아니었다.

그가 보낸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진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작업실의 광경이었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백인과 그 주변에 모여서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토트윈의 모습에 제이가 입을 벌렸다.

‘개리 제임스.’

그는, 미국에서도 절대적인 음원 강자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였다.

* * *

“훗.”

복수에 성공했다.

에르제는 답장이 오지 않는 코코아톡을 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최근 태현우의 솔로곡이 나오고 나서,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참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당장에라도 이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똑같이 사진으로 복수하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참아 냈던 것이다.

개리 제임스와의 첫 만남을 가지고, 미국에 구해 둔 숙소로 향하며 토트윈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떠들었다.

“진짜 개리 제임스 맞져?! 닮은 사람 아니고?!”

“오늘 데모까지 들었잖아. 확실해.”

“이게 꿈이야 생시야.”

“자! 은우에게 박수!!”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에르제에게 박수를 쳐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우 형 덕분에 개리 제임스도 만나고, 콜라보까지 하게 되고……!!”

“그러게 말이야. 개리 제임스가 은우 노래를 그렇게 좋게 들었을 줄은 몰랐는데.”

윤치우가 기특하다는 듯이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개리 제임스와의 콜라보, 그 전말은 이러했다.

스포티타임의 주간 차트에서 10위권 내로 진입을 했을 때, 미국 음원 강자인 개리 제임스는 궁금증에 에르제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어가 대부분인 가사임에도 그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해서 영문 자막이 달린 뮤직비디오까지 찾아보았다고 하는데, 그는 에르제와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했단다.

“덕분에, 우리 노래까지 다 들어봤다잖아.”

그리고 민주혁의 말대로 개리 제임스는 에르제가 속해 있는 토트윈의 노래를 대부분 들었다고 했다.

원래는 에르제의 노래를 들으려고 했는데, 솔로곡은 이번이 처음이니 자연스레 토트윈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토트윈의 실력 또한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목표가 바뀌었다.

에르제가 아니라 토트윈 전체와 함께 곡을 해 보고 싶다는 것으로 말이다.

그는 모카 엔터테인먼트에 다른 사람을 통해 연락을 넣었고, 장 대표는 한동안 ‘사기 아니야?’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에르제 덕분에 지금의 상황이 펼쳐졌다.

해서 멤버들의 솔로곡은 다음으로 미뤄지게 되었지만, 그들 입장에서 더욱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은 틀림없었다.

개리 제임스와 함께 콜라보한 곡, 그리고 이어서 정규 앨범을 투척한다면…… 노이즈 마케팅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으니까.

‘역전 시간이다.’

에르제는 지금까지 즐겼을 제이의 얼굴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토트윈이 미국에 오기 전부터, 개리 제임스는 곡을 만들고 있었다.

그 덕분에 토트윈이 가이드 버전을 받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에서 작업실을 빌려 정규 앨범 준비를 하고 있던 토트윈에게는 상당한 희소식이었다.

다만 콜라보와 정규 앨범, 두 가지 모두 소화를 해야 하는 일정이기에 굉장히 빠듯했지만.

에르제가 무대에서 쓰러졌던 이후 충분한 휴식 시간을 거쳤으므로, 그들의 체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렇게 그들은 개리 제임스의 녹음실에서 콜라보 곡을, 한편으로는 정규 앨범을.

그 두 가지 모두 병행하며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물론 그 사이 LAK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각종 토크쇼에 초청을 받아 토트윈 보다 그룹 LAK의 위상을 공고히 만들었고, 다양한 무대에 서고 홍보를 아끼지 않으면서.

토트윈의 콜라보 곡이 공개되기 1달 전에는 빌보드 차트 16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에르제는 제이에게서 차트 16위 사진을 전달받았지만, ‘우롱차’를 마시는 사진으로 맞대응을 했다.

* * *

그렇게 생각보다 깐깐한 개리 제임스의 디렉팅을 거치고 난 뒤, 드디어 그와의 콜라보 곡 ‘Dreams’ 발매를 앞둔 현재.

토트윈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기색을 하고 있었다.

이번 콜라보 곡은 특별한 방식으로 소개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개리 제임스는 음원도, 간소하게 찍었던 뮤직비디오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최초 공개를 인터넷상으로 하지 않겠다 말했다.

올해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개리 제임스의 개인 콘서트, 아예 그곳에서 최초 공개를 하려는 것이었다.

해서 11월 6일 콘서트 첫날 당일, 토트윈은 이곳 콘서트장에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너무 떨려여. 토할 것 같은데.”

안단테가 안색이 푸르죽죽해서는 중얼거렸고, 민주혁이 말없이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무대에 오르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토트윈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곳은 미국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콘서트 무대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윤치우는 안절부절못하는 멤버들을 보며 박수까지 치면서 말했다.

“이번에 최초 공개 콘서트에서 하잖아. 음원으로 푸는 것보다 파급력은 더 클 거야. 우리 콘서트도 아니고, 개리 제임스 콘서트에 초청이 되어서 하는 거니까.”

윤치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콜라보니까 개리 제임스는 본인 곡 부른다 생각하고 하겠지만, 우리는 연습 때보다 더 잘해야 하는 거 알지? 오늘 무대로 정규 앨범 성패까지 결정될 거야.”

긴장을 풀려는 게 아니라 되레 부담을 주려는 모양이다.

“으.”

윤치우의 말에 멤버들이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오늘 LAK도 콘서트 보러 왔대.”

“!!”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에 토트윈의 전투력이 극적으로 상승했다.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윤치우가, 내내 말을 하지 않고 지금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LAK에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 복수할 기회가 생긴 지금.

긴장 따위는 잊은 채로 토트윈이 전의를 불태웠다.

곧 오프닝 곡을 마친 개리 제임스가, ‘Dreams’의 공개를 하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정말로 이제는 그들의 차례였다.

“뒤집어 보자.”

최종 의상 점검을 마친 토트윈은, 그들을 부르는 소리에 무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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