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267화
에르제의 홈마는 그 장면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에르제의 눈물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영상에서 그리고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호수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에르제의 모습과 그 뒤로 이어진 눈물이,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데도 감정만큼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느낌.
가사가 이집트어로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에르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했다.
“…….”
그렇게,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던 에르제는 결국 그 중간 어딘가에서 갇히고 말았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하지 못한 채로.
여자는 텅 비어 있던 방 안 에르제가 노려보던 벽지 앞에 나타나기도 했고, 호수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에르제의 홈마 또한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와.”
마지막 장면.
노래의 끝과 함께 호수 속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는 에르제의 모습과, 동시에 대비되는 잠들어 있는 에르제.
결국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한 잠에 들었음을 보여 주듯, 뮤직비디오는 그렇게 끝이 났다.
“슬프다.”
에르제의 홈마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털었다.
강했다가 또 여렸다가. 밀고 당기는 듯한 노래와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듯한 몽롱하고 몽환적인 반주와 멜로디.
적재적소에 포함되어 있는 사운드와 더불어서 뮤직비디오에 담겨 있는 서사는, 그녀 또한 에르제가 의도한 감정에 스며들고 말았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댓글 창은 난리가 나 있었으니 말이다.
― 솔로곡이라 해서 걱정했는데…… 미쳤다;; 퀄도 그렇고 장머 완전 작정했는데?
― 은우가 노래를 원래 이렇게 잘했나? 엄청 깔끔하네
┖ 최근 토트윈 싱글 앨범에서는 뭔가 아쉬웠는데, 이번에 재각성한 듯
┖ ㅇㅈ 이렇게 감성적인 노래도 잘 어울릴 줄 몰랐음 ㅠㅠ 나 진짜 펑펑 울었다
― 아…… 내가 저 꿈에 같이 따라 들어가서 끄집어내 주고 싶다
┖ 안 돼…… 그러면 또 그리워하잖아 ㅠ
에르제의 노래 실력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영상, 그리고 ‘In Mind’의 가사에 공감하는 이들까지.
수많은 댓글들이 다양한 내용들을 담아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In Mind’가 보여 주고자 하는 내용은 조금 특이했지만, 공감되지 않는 소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혹여 꿈에라도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기뻤던 순간이 있다.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상상을 꿈에서는 이룰 수 있으니까.
해서 에르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팬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이 없었다 하더라도, 최광수의 디렉팅을 받은 에르제의 노래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댓글을 스윽 훑어보던 에르제의 홈마는 이내 손가락을 뚜둑 풀었다.
이번에 보니 미국 음원 사이트에도 곡을 푼 것 같은데, 팬들의 화력을 보여 줄 때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 (미국 음원 사이트 링크) 여러분! 은우 신곡이 여기도 올라왔어요. 다들 스트리밍 열심히 돌립시다!!
┖ 출격합니다
┖ 222
무튜브 댓글 포함 커뮤니티, 그리고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계정까지 글을 올리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녀가 워낙 네임드였던 덕분에, 이를 공유하는 팬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토트윈보다 미국으로 먼저 진출했던 한국 부동의 1위 그룹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미국 성적은 ‘어마어마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수준.
물론 국내에서는 그들이 대단함을 연신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그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에르제의 노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를 통해 토트윈이 넘어가서 정말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그때는 1티어 뿐만이 아니라,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에 그녀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곧바로 미국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반대로.
에르제의 곡 ‘In Mind’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지만, 그 혜택을 본 것은 전혀 다른 그룹이었다.
* * *
[ ‘In Mind’, ‘스포티타임’ 주간 차트 30위권 달성 ]
[ ‘In Mind’ 스트리밍 횟수 1주일 만에 970만 달성. 1,000만 목전에 ]
[ 한국 아이돌에 대해 높아진 관심? ]
에르제의 솔로곡은 이브들의 화력도 화력이었지만, 외국에서도 굉장히 많은 인기를 끌었다.
토트윈 혹은 에르제, 그 어떠한 이름도 ‘유명하다’라고 할 정도는 되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미국 쪽에서도 꽤 많은 팬들이 이미 존재했었고.
그들이 ‘스포티타임’에 에르제의 신곡이 올라왔음을 확인하고, 열심히 홍보해 주었던 덕분이었다.
물론 바이럴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주간 스트리밍 횟수를 거의 1,000만까지 올려놓았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이번 ‘In Mind’에서 나온 에르제의 외모 때문이었다.
진한 메이크업으로 인해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에르제의 모습과, 반대로 완전 폐인처럼 보이는 방 안 에르제의 모습. 그 두 갭 차이가 미국인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또한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었는데, 그 갭 차이를 활용한 보컬의 차이 덕분이었다.
진한 슬픔, 그리움, 그리고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자기혐오.
에르제의 노래는 마치 두 인격을 노래하듯, 미세한 차이를 두어 자신의 다른 모습을 표현했다.
폐인의 모습일 때는 지치고 무기력함을, 그리고 반대로 꿈속 세계에서는 광적인 환희를.
처음 한국 뮤직비디오로 먼저 ‘In Mind’를 접했던 이들은 가사를 모름에도 흠뻑 빠져 들었었지만, 영문 버전이 나오고 난 뒤에는 더욱 그 분위기가 과열되었다.
‘하루 종일 이것만 듣고 있다.’
‘계속 듣다가는 정신 나갈 것 같은데 놓을 수가 없다.’
‘약 한 기분.’
별별 다양한 댓글과 반응들이 이어졌고, 그로 인한 결과가 1주일 뒤 970만이라는 스트리밍 횟수로 증명이 되었다.
당연히 이 사실을 확인한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는 그야말로 축제가 열렸다.
“이거 ‘STARLIGHTS’도 못한 거 아니냐!”
장 대표는 기세등등한 상태로 토트윈의 숙소까지 와서 그렇게 외쳤다.
토트윈 곡도 아니고 에르제의 솔로곡인데, 이렇게 숙소에서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괜히 걱정이 돼서 에르제가 멤버들 눈치를 살폈지만…….
“저 왠지 감동했어여. 은우 형 인정받은 거 같아서.”
“메인 보컬도 그냥 네가 해라.”
“얌마!”
“덕분에 저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겠네요.”
민주혁과 태현우가 잠시 아옹다옹했지만, 그 누구도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에르제가 거둔 성적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분위기.
“…….”
장 대표가 멤버들의 성격까지 꿰차고 있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랬으면 처음에 응원봉도 그렇게 줄 세우기 형태로 팔지 않았겠지.
“큼큼! 그렇지. 나는 잘될 줄 알았다고.”
장 대표는 턱을 매만지다 이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다음 타자 준비됐나?”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태현우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대답했다. 연습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건지 그의 표정은 밝다 못해 자신감이 넘쳤다.
“좋아! 이대로 너희들 각자 느낌 살려서 올해 안에 솔로곡으로 쭉 깔고, 활동 마치면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해 보자고.”
장 대표의 계획은 그러했다.
에르제의 예상대로 그는 한 달에 한 번, 또다시 ‘매달 발매’ 콘셉트로 멤버들의 솔로곡을 낼 요량이었다.
7, 8, 9 그리고 10월까지.
마지막 주자인 안단테의 솔로곡까지 발매되고 나면, 그 뒤로 정규 4집 앨범을 미국 진출용으로 만들겠단다.
즉 이번 에르제의 성적에 힘입어 멤버들이 차근차근 토트윈의 이름을 위로 끌어올리고, 그렇게 발판을 마련한 채로 토트윈으로 활동하겠다는 뜻.
대부분은 처음부터 그룹 활동 위주로 먼저 하기 때문에, 이 방식이 잘 먹힐지는 모르겠다만…… 어찌 되었든 그것은 결과를 두고 봐야 알 듯했다.
* * *
하지만 어느덧 태현우의 솔로곡 발매일이 3일 남은 시점,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기존에 ‘STARLIGHTS’가 깔아 둔 발판에 더불어 에르제의 솔로곡까지, 미국의 한국 아이돌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진 시점에서.
그 틈새를 파고든 그룹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르제의 솔로곡을 보고 시작했는지, 혹은 그 전부터 생각 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물이 오르고 있는 ‘관심’을 그들이 죄다 가져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 그룹은 바로 제이가 리더로 있는 ‘LAK’.
작정을 했는지, 타이틀곡은 전부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에르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LAK의 소속사가 이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애초에 그곳은 제이가 쥐고 휘두르는 곳이었으니까.
분명히 제이가 계획하고 벌인 일일 것이다.
‘인간 세계의 일이라고, 곧바로 뒤통수를 이렇게 치나.’
에르제가 헛웃음을 흘렸다.
계속해서 강력한 라이벌로 남아 달라고 했던 자신의 말, 그것을 지키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이쪽이 솔로곡으로 가다가 미국 진출을 노릴 거라는 걸 알아챘나 본데.’
자신의 뒤를 이어서 솔로곡을 내는 것은 태현우, 그는 자신과 스타일은 달랐지만 국내 아이돌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의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에르제와 태현우. 둘이서 노래 실력만으로 연타를 때리고 나면, ‘LAK’의 입장에서는 위험할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 또한 훌륭했지만, 어찌 되었든 두 그룹이 비교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토트윈에게 관심이 전부 넘어가기 전에 선수를 쳤어.’
누가 뱀파리스 출신 아니랄까 봐 영악하기 그지없다.
이러면 이쪽도 다르게 대응을 해야 하나.
태현우까지만 솔로곡을 내고, 곧바로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해서 맞불을 놓는 게 나을까.
여전히 미국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STARLIGHTS’도 똥줄이 타겠지만, 토트윈이라고 해서 다를 상황은 아니었다.
‘장 대표도 소식 들었을 텐데.’
일단은 멤버들이나 회사의 대처 방법부터 들어 보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곧 그의 스마트폰이 지잉 소리를 내며 울렸다.
오 대처 빠른데, 에르제가 장 대표나 이윤일 거라 추측하고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순간.
코코아톡을 보낸 이름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었다.
안타깝게도 장 대표나 이윤이 아니었다.
[ 제이 ]
심지어 미리 보기에 보이는 건 텍스트도 아니었다. 첨부 파일이었지.
그는 고민하다 결국 대화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에르제의 눈에 비친 것은, 뉴욕……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실시간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