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화
266화
멤버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에르제의 예상대로 태현우와 안단테는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민주혁은 무덤덤한 축하를 그리고 윤치우는 조언을 했다.
아마 처음으로 팀이 아닌 솔로로 곡을 하게 되는 거라, 걱정이 좀 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축하였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고 에르제는 곧바로 회사를 찾아갔다.
이 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무려 두 달이나 강제 휴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녹음실로 향하니 최광수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여전히 모카 엔터테인먼트 내의 연습생들을 트레이닝해 주고 있었고, 곡 프로듀싱도 도맡아 하는 중이었다.
해서 그의 눈 밑에는 늘 다크서클이 진했다.
“오랜만이네, 은우.”
최광수는 흐흐 웃으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에르제는 가벼운 포옹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매혹의 힘을 사용했던 인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하다 심취해서 이윤과 함께 매혹할 뻔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제는 그에게 그런 힘은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만큼은, 아니 앞으로는 마음껏 심취해서 노래를 불러도 된다.
에르제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광수가 그런 에르제를 보며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그나저나 괜찮겠어? 곡 정한 거 어제라면서. 가사나 멜로디는 다 외운 거야?”
“네. 그런데 아직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서, 디렉팅을 받고 싶어요.”
뱀파이어의 힘은 더 이상 없었지만 그렇다고 암기력이 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에르제는 어제 숙소 내에서 혼자 가볍게 연습을 하던 중에 가사와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숙지했다.
외우겠다는 생각이 없었음에도 그냥 된 것이다.
‘……아마 내가 뱀파이어로 태어나지 않았다 해도, 음유 시인으로 성공하지 않았을까?’
에르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최광수에게 MR을 틀어 달라 얘기했다.
최광수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고는 MR을 재생시켰다.
몽환적이고도 슬픈 팝 발라드 사운드.
‘In Mind’는 상상 속에서 이상적인 사랑을 만들어 내고 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런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었다.
― 현실이 되었으면 해
In Mind
행복한 꿈은 깨어나면 악몽
몽롱한 에르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곡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서은우가 아닌 에르제, 그 느낌을 최대한 살려 에르제는 멜로디와 가사에 빠져 들었다.
상상 속에서 그려 낸 이성과 이를 만날 수 없음에 좌절하는 남자.
절절하면서도 스스로를 끔찍하게 여기는 고통이 에르제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 감정에 섞여 들었다.
“오 진짜 잘 어울리는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최광수는 박수까지 쳐 가며 이야기했다.
“네 이미지랑 목소리에 맞춰서 작곡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런 티가 나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믹스 보이스로 처리하는 건 좋은데, In Mind라고 나오는 가사 부분은 진성으로 조금 급발진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꿈에서 깨기는 싫은데, 사실은 이곳이 꿈인 걸 알아서 깨어나고 싶은? 말이 좀 어렵나?”
고개를 갸웃하는 최광수를 보며 에르제가 손을 내저었다.
“아뇨, 이해했어요. 무슨 말인지.”
“역시 이해력이 빨라서 좋구만.”
그 뒤로도 이어지는 최광수의 디렉팅들.
그는 거의 한 문장마다 꼼꼼하게 짚어 주었다.
“이 가사는 가성으로 부르는 게 더 깔끔하겠다.”
“‘가’가 아니라 ‘카’로. H어택을 쓰는 편이 음정도 안 흔들리고 뒤의 고음과 더 잘 연결될 것 같아.”
“좀 더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옳지!”
처음 토트윈의 데뷔곡을 디렉팅할 때와는 달랐다. 이미 열정의 화신이 되어 버린 그의 입은 쉬지를 않았다.
하지만 에르제는 어떠한 반발도 없이 의견을 수용해 차근차근 디렉팅을 따라갔다.
그의 말 중에서 틀린 말은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다.’
에르제는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에 희열을 느꼈다.
같은 가사를 10번 넘게 반복해서 부르는 것조차도 재미있었다.
이 곡이 완성이 되었을 때.
이걸 듣는 이들의 표정을 상상하니 즐거웠다.
멤버들과 함께 한 곡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솔로곡을 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에르제의 등 뒤가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지속된 녹음은,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물론 녹음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 * *
2주, 최광수와 무려 14일의 시간을 함께하고 나서야 음원이 완성되었다.
지난 시간 덕분에 확연히 부족해진 체력을 느낀 에르제는, 1주일 전부터는 소속사 내에 비치되어 있는 운동 기구들을 이용해 기초 체력 단련까지 병행했다.
덕분에 별로 늘어나지도 않은 근육을 보고 멤버들이 ‘오올, 이두박근~.’ 그렇게 말하며 놀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음원이 완성되고 그 뒤로 이어진 뮤직비디오 촬영, 그렇게 추가로 1주일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에야.
에르제는 ‘In Mind’의 발매를 앞둘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지나온 시점.
6월 11일, 에르제의 곡 발매일은 그 날짜로 정해졌다.
“한국 음원 사이트 말고도, 미국 쪽 음원 사이트에도 다 풀 거야.”
장 대표는 에르제에게 그렇게 말했다.
슬슬 토트윈의 해외 진출 각을 재고 있던 장 대표는, 이번 에르제의 솔로곡으로 반응을 한 번 보려는 모양이었다.
‘잘될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사실 에르제에게는 크게 상관은 없었다.
LA에서 온 일족은 알아서 헤엄쳐서 한국까지 왔고, 해서 굳이 해외 진출을 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외 팬들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서구권보다는 아시아권이 많았고, 그들을 가장 밀어주는 팬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어디까지나 이건 에르제의 생각이었고, 토트윈 멤버들은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긴 했다.
다만, 하와이에 잠깐 놀러 갔다 왔을 때도 느꼈던 건데.
에르제는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향수병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카테이아 대륙에서 지구로 왔을 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 휴가 때는 왜 그랬었는지.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 등으로 가서 무대에 서거나 콘서트 투어를 하면, 한국이 좀 그리울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우습긴 하네.’
에르제는 자신의 진짜 고향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훨씬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카테이아 대륙인데, 지금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오래 하게 될 걸 걱정하고 있다니.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장 대표와 남은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 * *
그리고 이윽고 찾아온 6월 11일.
에르제의 ‘In Mind’ 음원이 발매되었다.
‘In Mind’ Official M/V 영상도 무튜브에 같이 공개가 되었는데, 영상이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소식을 듣고 온 수많은 팬들이 댓글을 달고 있었다.
에르제의 홈마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처음으로 발표된 솔로곡을 재생시켰다.
“와…….”
조용한 방 안에선 영상 시작부터 그녀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이어지는 뮤직비디오의 영상은 첫 시작부터 강렬한 에르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곡 뒷부분을 듣지 않아도 ‘찰떡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에르제의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 건강에 해로운 수준이었다.
진한 메이크업과 더불어 올 블랙, 그리고 두꺼운 은색 체인 목걸이로 준 포인트.
살짝 내리까는 듯한 시선은 서은우가 아니라, 그야말로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에르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뱀파이어 에르제의 모습은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들었을 정도.
곧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에르제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면서, 그 위로 그래피티 형식으로 써진 ‘In Mind’라는 곡의 제목. 그렇게 뮤직비디오가 시작되었다.
― Dream
Nightmare
Dream ― again
처음부터 꽤 높은 음.
그것을 가성으로 처리한 에르제가 공허한 방 안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편한 옷차림의 그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로지 낡은 벽지뿐.
― 지워지지 않는 기억
악몽도 꿈일까
왜, 하필 이렇게
끔찍하게 생생한 건지
이윽고 손을 내려다보는 에르제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꽉 닫아 둔 창문을 뚫고 비쳐 들어오는 햇빛, 에르제는 이내 눈을 찡그리며 이불을 덮고 다시 누웠다.
잠들기 무서워하면서도 다시 꿈의 세계로 가고 싶어 하는, 두 감정이 충돌하며 고통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 갑갑한 방 안
그리운 너를 찾아
헤매네
In…… Mind
두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거워지는 분위기.
바뀐 화면 속 어둠에 갇힌 에르제가 천천히 손을 뻗고, 세상이 뒤바뀐 듯 환한 빛이 펼쳐진다.
그리고 펼쳐지는 숲 안의 정경.
큰 호수를 두고 그 주위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울창하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음을 후회하면서도 에르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중독처럼
다시 돌아가
멈출 수 없어
Because,
You are only in my mind
천천히 호수를 향해 나아가는 에르제의 뒤를 따라 햇빛이 반사되고 부딪힌다.
그런 비현실적인 광경은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호수의 물 앞에 당도한 에르제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흔들리고 있는 하늘색의 치마.
― 중독처럼
다시 돌아와
멈출 수 없어
Because,
I live in my mind
비슷한 가사였지만 시점이 바뀐 가사는 마치 에르제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이 들렸다.
넓은 호수를 두고 끝과 끝에 위치한 두 남녀.
천천히 안으로 말아 쥐는 에르제의 손은 이내 꾹 쥔 주먹으로 바뀌었다.
잡을 수 없다는 듯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에르제의 표정은 포기한 얼굴이 아니었다.
여전히 호수 끝의 그녀를 응시하는 눈빛이 빨갛게 타올랐다.
― in mind
유려하게 꺾이는 에르제의 목소리를 따라 곡의 분위기도 조금 변했다.
몽환 속에 담겨 있는 슬픔과 갈망을, 훅 들어온 현악기 소리가 무심코 그것을 느끼도록 만든다.
고개를 살짝 숙인 에르제가 호수를 바라보자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꾸욱.
주먹을 더욱 세게 쥔 에르제가 자신의 얼굴 위로 발을 내디뎠다.
푹, 발이 물에 잠긴다.
그렇게 에르제는 호수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깊이, 더욱 깊이.
이내 에르제의 모습이 완전히 호수 속에 잠기고, 다시 바뀐 화면에 비친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