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265화
2달간 토트윈은 특별히 몸을 쓰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TV에 얼굴을 보인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가벼운 토크쇼나 앉아서 하는 예능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의 것이라고 하면…….
윤치우가, 이수현과 함께 ‘8시 달콤한 라디오’의 메인 DJ가 되었다는 거였다.
윤치우의 평소 목소리는 듣기 편한 안정적인 톤이었고, 해서 그를 콕 집어서 방송국 측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수현은 상당히 많은 인지도를 쌓은 아나운서 출신 전문 MC였는데,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두 사람의 목소리 덕분인지 그들의 라디오를 듣는 이들이 꽤 많다고 했다.
심지어는 다시 활동을 시작한 LAK의 리더 제이 또한, 그들의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고 전해 달라 에르제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인간이 되고 나서도 계속 아이돌을 하는구나.’
에르제는 신곡 발표를 한 LAK를 보며 피식 웃었다. 뱀파리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이 된 제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꽤나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보이려나.’
에르제는 매혹의 힘 없이도 잘 해내는 제이를 보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곧 있으면 8시가 될 예정인지라, 에르제는 스마트폰으로 미리 라디오 방송국 어플에 들어가 둔 상태였다.
윤치우의 생방 라디오를 다 같이 들을 예정이었으므로, 아마 방에서 따로 노는 녀석들도 곧 나올 것이었다.
신곡 활동을 하는 LAK의 무대까지만 보고 재방송을 끈 에르제는, 익숙한 멜로디에 발끝을 까딱거렸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8시 달콤한 라디오’의 테마송이었다.
안단테가 윤치우를 위해 만들어 준 곡이었는데, 마침 방송국 측에서도 좋다고 흔쾌히 수락했고.
실제로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아서 아예 메인 테마 곡이 되었다고 한다.
― Sweet, Sweet
8시, 달콤한 라- 디오.
흥겨운 노래가 끝이 나고, 곧 인사를 하는 이수현과 윤치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느덧 방에서 나온 멤버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귀를 기울였다.
[ 안녕하세요, ‘8시 달콤한 라디오’의 이수현, 윤치우입니다. ]
“치우 형 평소 우리한테도 이런 목소리 내 주지.”
“맨날 말썽을 부리는데 어떻게 그래.”
“우씨.”
태현우의 말에 민주혁이 일침을 놓는다.
그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놓치지 않고 들었다.
‘진행 능력이 생각보다 좋단 말이야.’
시청자들의 사연을 읽어 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윤치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리더로서 그룹을 관리하는 입장이었던 덕분인지, 고민 상담 등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하는 중이기도 했고 말이다.
라디오 PD가 윤치우를 그렇게 예뻐한다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중간과 마지막에 읊는 광고 브랜드 이름을 또박또박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있으니, 태현우가 이내 궁금하다는 듯 에르제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은우야. 저번에 대표님이 말했던 거, 아직 얘기 없어?”
“무슨 얘기?”
“왜 그, 2달 뒤에 제안할 거 있다고 하셨잖아.”
“아아.”
에르제는 2달 전, 장 대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은 얘기 없던데. 무슨 제안인지도 안 알려 줘서, 감이 안 잡히기도 하고.”
사실, 제안이랄 게 있나 싶었다.
아마 예능이나 연기, 그런 쪽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이 되는데…… 그건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거 아닌가.
물론 하기 싫어도 장 대표가 꼭 필요한 일이라 하면 하기야 하겠지만…… 글쎄.
에르제가 어깨를 으쓱 위로 올리자 태현우가 흐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조만간 말씀하실 것 같기는 한데, 나도 궁금하다 뭔지.”
“그러게. 먼저 물어봐야 하나?”
“까먹으셨을지도.”
태현우가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의 관심은 다시 라디오로 향했지만 에르제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장 대표가 제안하겠다고 하는 건 뭘까?
다른 토트윈 멤버들한테는 그런 얘기를 딱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심지어 예능 등을 자유롭게 나갔던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에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이제 뱀파이어의 힘이 없는 만큼 쉬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바쁘게 지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갑갑했던 것이다.
‘진짜 먼저 물어봐야 하나.’
입맛을 다시던 에르제는 뭉친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에르제를 장 대표가 호출한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이윤을 따라서 대표실에 도착한 에르제는 여전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 대표를 마주했다.
그는 기대감과 불안함, 두 개가 공존하는 얼굴이었는데 때문에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에르제는 혹시나 두 달 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먼저 선수를 쳤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제안할 거 있다고 하신 거. 그거 때문에 부르신 거 맞죠?”
“어어, 맞아.”
다행히 장 대표도 그 이유로 그를 호출한 것으로 보였다. 에르제가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장 대표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좀이 꽤 쑤셨나 보다? 먼저 그렇게 물어볼 정도면.”
“좀 갑갑하기는 했어요.”
물론 무대에서 쓰러지면 소속사 대표 누구라도 그렇게 하겠다만, 스스로 멀쩡함을 알고 있는 에르제는 과잉보호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해서 에르제의 말에 장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차라리 좀 갑갑하고 마는 게 낫지. 마음 같아선 한 1년 아무것도 하지 말라 하고 싶은데, 그러면 팬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니까.”
장 대표의 말에는 꽤 여유가 넘쳤는데, 그동안 토트윈이 벌어들인 수익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터.
심지어 그들이 활동을 하지 않는 사이에도 음원은 순위권을 계속 유지했고, 굿즈 등의 판매도 아직 활발하게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그의 말마따나 슬슬 회사에서 투자를 할 때가 되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건 됐고.”
장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너만 따로 부른 건 이유가 있어. 너 말고 다른 멤버들도 차례로 진행할 프로젝트이기는 하지만, 네가 먼저 스타트를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프로젝트라는 말에 에르제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가 그런 단어를 쓴 것은 분명 음악과 관련된 일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대감 어린 에르제의 눈을 보며 장 대표가 입을 열었다.
“솔로곡 하나 내 보자.”
“!”
예상하지 못한 말에 에르제의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솔로곡이요?”
“어, 솔로곡. 단테가 쓴 곡은 토트윈용이니까 그거 말고.”
장 대표는 팔짱까지 끼며 씩 웃었다.
“내가 그동안 놀기만 한 게 아니라고. 두 달 동안 유명 작곡가들한테 연락 쫙 돌리고, 네 노래도 들려주고 했었지.”
그의 표정에 자신만만한 태도가 얹어졌다.
“해서, 아주 기깔나는 곡으로 뽑아 왔다.”
그 말에 에르제의 미간이 설마, 하는 생각에 좁혀 들었다.
“혹시 한 곡만 있는 건 아니죠?”
덜렁 한 곡만 주고 이거 해! 라고 하는 건 아니기를. 장 대표의 안목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적어도 자신이 직접 고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장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총 4곡이야. 그중 2곡은 아예 네 목소리에 맞춰서 작곡했는데, 일단 내가 고른 곡은 그 2곡 중 하나고.”
“아하.”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 대표가 내미는 USB를 받아 들었다.
“가서 들어 보고 고민한 뒤에 윤이한테 연락해. 프로듀싱하면서 곡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고르고.”
장 대표는 자신이 고른 곡이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에르제는 USB를 주머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자신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의 솔로곡도 하나씩 나오는 거겠지.
‘내 것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 곡까지 받는다고 시간이 걸린 건가.’
장 대표의 성격상 매달 한 곡씩 낼 가능성이 높은데, 나중에 가서 멤버들 곡을 받으려면 너무 늦어질 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상황을 납득한 에르제가 입을 열었다.
“고르고 연락드릴게요.”
“오케이. 가이드까지 딴 거니까, 녹음은 그 뒤에 한번 해 보자고.”
* * *
장 대표와의 만남을 가지고 돌아온 에르제는 곧바로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자신의 곡.
토트윈이 아닌 홀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 때문인지, 심장이 꽤나 두근거렸다.
마치 음유 시인이었을 적으로 돌아간 기분.
에르제는 조심스럽게 첫 파일부터 재생해 노래를 들어 보았다.
가이드까지 다 있는 곡이라 하더니 가사까지도 이미 완성이 다 되어 있다.
에르제는 가만히, 그리고 신중하게 귀를 기울여 노래를 감별했다.
잔잔한 발라드곡, 퍼포먼스가 가미된 신나는 곡, 그리고…… 무슨 장르인지 알 수 없는 곡.
총 3개를 듣고 난 뒤 에르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세 곡 모두 이거다, 싶은 곡은 없었다.
‘그나마 발라드 장르가 나을 것 같기는 한데.’
이것도 너무 감성적이라, 기존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뭔가 아쉽다.
에르제는 마지막 남은 곡을 클릭한 뒤 신중을 기해 귀를 기울였다.
“……!”
반주의 첫 부분부터 에르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거…….’
몽환적인 분위기의 팝 발라드, 와중에 웅장한 사운드가 가미되어서 자신의 목소리와 대비되기 딱 좋은 느낌이었다.
쿵쿵쿵, 리듬감만을 살려 주는 약하게 찍히는 비트. 그리고 힘을 완전히 풀어 부르는 가이드의 목소리까지.
‘찾았다.’
에르제는 곡 전체를 다 듣고 난 뒤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기승전결까지 깔끔한 노래다. 가사도 마음에 들었고.
특히나, 곡 전체를 관통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그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뱀파이어 에르제, 토트윈에게 하나씩 부여된 또 다른 이름이자 그의 노래의 본질.
특히나 혈석을 섭취하고 난 뒤로 좀 더 퇴폐적으로 바뀐 자신의 얼굴을 생각하면…… 비주얼적으로도 잘 어울릴 듯싶었다.
임시로 되어 있는 곡의 제목은 ‘In Mind’.
에르제는 곧바로 장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 4번째 곡, in mind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들어요. ]
답장은 곧바로 왔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 역시. 내 감이 아직 죽지는 않았구만. 오케이, 바로 녹음 잡고 빠르게 발매해 보자. ]
[ 네. ]
답장을 마친 에르제는, 한 번 더 노래를 재생했다.
지금까지 했던 토트윈의 곡들에 비견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솔로곡이라…….’
가장 먼저 자신이 하게 되어서 멤버들이 좀 부러워하겠군.
아마 메인 보컬인 태현우가 제일 부러워하지 않을까?
“훗.”
빨리 자랑하고 싶어진 에르제는, 4번 곡으로 재생을 맞춰 둔 채 거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