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화
263화
은은한 가게와 술집의 불빛이 비치는 해변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길,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5명의 모습은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대부분은 외국인들이 많아서 곧바로 한국에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하와이에는 한국인들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토트윈 아냐?”
“토트윈이 누군데?”
한 신혼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이제 무대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토트윈의 귀로 들려왔다.
“여기서도 우리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기는 하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아직 모르나 봐.”
“그건 미국이나 이런데 진출해야 되는 거 아냐?”
멤버들은 그렇게 떠들며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짝짝짝!!
그들을 향해서 공연을 관람한 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Nice!!”
덩치 큰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박수 소리를 뚫고 들려온다.
“Thank you!!”
유창한 발음으로 토트윈이 대답하며 인사를 하자 박수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렇게 토트윈이 인파 사이를 뚫고 나가려던 차.
“Hey!”
몇 외국인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ToT-win, I know you guys!”
“팬, 이에효.”
어눌한 한국말로 팬이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see?”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이 찍은 영상을 올린 SNS를 보여 주었다. 언제 올렸던 건지, 그 밑으로 답글이 우르르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라방은? 라방은?!ㅠㅠㅠㅠ’하며 우는 한국 팬들도 그의 SNS 계정에 와 있었다. 아마 소문이 벌써 퍼진 듯했다.
“오.”
태현우가 신이 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고, 이후 그들은 악수와 사인 그리고 사진까지 알뜰하게 챙겨 돌아갔다.
이브들의 부러워하는 댓글은 여전히 많았다.
“저, 저희도 사진 가능할까요?”
아까 그들을 알아본 신혼부부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진을 요청했다.
“그럼요.”
이곳은 그래도, 예전에 에르제가 마트에 갔을 때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지는 않는다.
줄을 섰다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수준인지라, 사진이든 사인이든 해 주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
해서 라하임도 따로 제지하지 않고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15분가량이 지나고 이윽고 사람들이 다들 각자 하던 거 하러 돌아갔을 때, 토트윈도 비로소 숙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일 또 하고 싶다. 버스킹.”
“그러게. 장비 없이 노래하는 것도 재미있는데?”
“아니, 내일은 춤춰.”
오늘 버스킹의 최대 피해자(?) 민주혁이 쀼루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긴 메인 댄서 비중이 오늘은 많이 적긴 했다. 노래도 어쿠스틱 편곡이라, 그의 랩 파트가 강렬하게 살지 않기도 했고.
‘다들 욕심 많은 건 여전하네.’
다른 멤버들과 분량 싸움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거 보여 주려는 욕심 말이다.
어쩌면 토트윈이 이렇듯 빨리 성장하고 유명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에르제는 내심 그렇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뱀파이어의 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
매혹의 힘은 어차피 편법이었으므로, 노래 실력 자체에는 크게 영향이 없었지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다든가 하는, 신체 능력과 관련된 부분은 많은 연습이 필요할 터.
‘그러고 보면, 나는 연습생 기간이랄 게 없었지.’
피식, 웃은 에르제는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서은우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노래를 했듯, 자신 또한 서은우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춤을 추는 데에 꽤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원래 에르제가 춤을 아예 못 추던 것은 아닌지라, 앞으로의 휴가 기간 동안 민주혁에게 도와 달라 하면 될 터다.
곧 숙소에 도착한 에르제는, 윤치우 민주혁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태현우와 안단테는 옆 방으로 둘이 들어갔는데, 둘이서 베개 싸움을 할 거란다.
둘이서 그게 되나, 싶기는 한데 태현우니까 될 것 같기도 하고.
음, 에르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침대에 앉았다……가 윤치우한테 혼났다.
“은우야! 밖에 입고 다닌 옷으로 침대에 바로 앉으면 어떻게 해! 씻고 옷 갈아입고 와.”
“……응.”
잔소리가 그립지는 않았다만, 에르제는 윤치우가 시키는 대로 얼른 씻은 뒤에 옷을 갈아입고 왔다.
이제 이 뒤로 민주혁과 윤치우가 잘 준비를 하고 오면 숙면을 취하면 된다.
하지만.
“?”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와이에 오고 난 뒤로 늘 즐겁기만 했던 둘의 표정이 꽤나 심각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옆 방에서 베개 싸움을 하겠다고 했던 태현우와 안단테까지 와 있었다.
“다시 찾아봐. 정말 없어?”
“……네에. 어떻게 하져.”
안단테가 제일 심각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인데?”
에르제가 묻자 윤치우가 대답했다.
“단테 지갑 잃어버렸대.”
“지갑을?”
에르제는 미간을 좁혔다. 지갑을 잃어버릴 만한 일이 있었던가?
“응,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 주신 거라는데. 아까 은우 너 씻는 동안 단테랑 현우가 버스킹한 곳까지 뛰어갔다 왔는데도 없다더라.”
“우리 왔다 갔다 했던 곳도 잘 확인했고?”
“응.”
태현우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이긴 한데, 누가 훔쳐 간 거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기는 하겠네.”
“우리 사인하고 사진 찍고 했을 때 정신없었잖아. 그때가 제일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에르제의 말에 다들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럼 어떻게 해여? 못 찾는 건가……?”
안단테는 거의 울상이 되어 말했다.
“현금은 안 들어 있기는 한데…… 민증이랑 카드 그런 것들이…….”
“그것도 새로 재발급 받으면 되기는 하니까.”
침착하게 대답한 민주혁이 팔짱을 꼈다.
“역시 관광지라 소매치기들이 있기는 하네. 마침 우리가 정신이 팔려 있어서 좋은 타깃이 되기도 했고.”
냉정히 분석하는 건 좋은데 안단테의 표정이 더욱 우울해지고 있다.
에르제는 빠르게 수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소매치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니까, 나가서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르제는 사실 소매치기 쪽에 더욱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만약 소매치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안단테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지갑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거라는 확률 또한 매우 낮을 터.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지갑을 들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딱히 중요한 게 없으면, 차라리 새로 구하는 게 낫고.”
해서 윤치우 또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부모님이 사 주신 거라는 특별함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갑도 소모성의 물건이니 말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새 지갑으로 바꾸어야 하기는 한다.
“……형들하고 찍은 사진들 말고는…….”
안단테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대답하다,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팬들이 써 준 편지도 들어 있는데……!”
“편지가 지갑 안에 들어가?”
“몇 개 접어서 넣어 뒀었어여. 좋은 말씀 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서…….”
“일단 그럼 찾아보자. 노력은 해 봐야지.”
윤치우도, 멤버들도 모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에르제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 멤버들을 따라, 그 또한 겉옷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
‘길거리에서 찾기는 힘들 거고.’
에르제는 사인과 사진을 찍어 주던 당시를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여전히 뱀파이어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소매치기의 움직임 정도는 금세 알아챘을 텐데.
‘라하임한테 부탁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물놀이 이후로도 아직 라하임에게 붙어 있던 플랑도 있고 말이다.
해서, 다시금 해변가로 나온 에르제가 라하임에게 연락을 보내려던 차.
[ 로드.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단테 님의 지갑은 제가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모습을 보이기 어려우니 이쪽으로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라하임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돌아왔다.
“!”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지 않게 제지하고 있어서 정신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인가 싶었다.
‘그럼 아예 훔쳐 가지 못하게 막지.’
무슨 꿍꿍이였던 걸까.
에르제는 흠, 하고 고민하다 수색 모드에 돌입한 멤버들에게 말했다.
“나는 저쪽 확인하고 올게.”
“어? 혼자 가면 안 돼.”
혼자 보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멤버들 때문에, 윤치우가 눈치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내가 같이 다녀올게.”
음, 윤치우는 자신이 에르제임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라하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을 텐데.
[ 밖에 나갔다가 우연히 주워 왔다고 하는 게 나을……. ]
해서 에르제가, 라하임에게 ‘윤치우도 같이 가는 중’이라며 메시지를 몰래 작성하던 때였다.
“라하임 매니저님이 뱀파이어인 건 나도 알고 있어.”
훅 들어온 윤치우의 말에 에르제의 고개가 자동 반사로 돌아갔다.
“네가…… 아니. 은우가 돌아왔을 때, 내가 라하임 매니저님 찾아가서 이야기도 했었고.”
“……그랬구나.”
확신이 어린 어조에 에르제는 머쓱하게 스마트폰을 치웠다. 라하임과 만나기로 한 장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애들한테는, 이쪽에서 찾았다고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경계 어린 에르제의 표정에 윤치우가 픽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알았어?”
“좀 됐지.”
윤치우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말없이 걸어가던 중 에르제가 물었다.
“서은우가 돌아왔을 때…… 왜 나 찾았어?”
“……몰라.”
윤치우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모르겠어. 그냥 너는 어떻게 된 건가, 걱정돼서 물었나.”
“……고마워.”
에르제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예전에 서은우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 돌아올 수 있는지 찾았듯이…… 윤치우는 반대의 경우도 똑같이 그리했다.
서은우가 상처받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에르제 자신을 찾아 준 것이다.
만약 윤치우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서은우의 몸 안에서 잊히게 됐을지도 모른다.
신은, 영체가 흐릿해지는 이유가 잊히기 때문이라 했으니까.
‘그런데 라하임은, 윤치우가 자신을 찾아왔는데도 왜 그에 대해 말을 안 했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건 직접 물어보면 될 터.
아니나 다를까, 곧.
“로드.”
라하임의 목소리가 호텔 주변에 자라 있는 수풀 사이에서 들려왔다.
“이쪽입니다.”
라하임은 에르제를 따라 이곳까지 온 윤치우를 보며 흠칫, 놀랐다.
“윤치우 님도 같이 오셨군요.”
“저도 다 알고 있으니까요.”
윤치우는 그렇게 말하며 라하임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에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라하임.”
그는 라하임의 옷에 묻어 있는 붉은색 액체들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왜 피투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