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261화
― 호흡 딸려서 기절했다고? 지금까지 멀쩡했던 애가!?
― 이걸 지금 믿으라고;;
― 그래도 활동 바로 접고 애들 자유 여행 보내 준 것은 칭찬할 일임
┖ 뭘 칭찬할 일이야;; 그 전에 아티스트 관리를 얼마나 못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 근데 진짜일 수도 있지 않나…….
┖ 맞음. 은우도 라이브랑 보글보글로 진짜 그것 때문이라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하던데
┖ 그걸 믿음?
┖ 안 믿으면 어떻게 할 건데 ㅋㅋㅋ
― 또 맨날 이런 식이지 진짜
이브들의 반응은 상당히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바로 활동을 쉬게 한 것은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잘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믿냐’, ‘안 믿냐’로 첨예하게 갈렸다.
아티스트가 사실이라고 해도 소속사에서 시켰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꽤 많았다. 실제로 그 의견이 반쯤 맞기도 하고 말이다.
진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에 결국 소속사에서는 의사 소견서까지 업로드하여 보여 주었고, 실제로 멀쩡히 멤버들과 농구를 하는 에르제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팬들의 격한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렇게 홍역을 앓듯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토트윈 멤버들은, 사비는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채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힐링 여행’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멤버들은 다들 상기된 얼굴로 떠들었다.
“일등석 처음 타 봐여!!”
“대박. TV도 겁나 커.”
“이거 봐, 잘 수도 있겠는데?”
최고의 여행을 시켜 주겠다더니, 모카 엔터에서는 시작부터 비용 아끼는 것 없이 투자를 했다.
보통 유명 아티스트들이 해외에 공연이나 행사 참여를 위해 일등석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볼 때, 단순 여행에 이 정도면 작정하고 휴가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크으. 진짜 좋다.”
태현우는 연신 감탄하며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보는 멤버들의 활기찬 모습에 에르제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찰칵, 나머지 멤버 넷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사진 속에서도 다들 참 성격대로 나왔다. 아마 몰래 찍어서 그렇겠지.
그렇게 각자 개인 사진까지 따로 찍어 주고 난 뒤에야 그들이 탄 비행기가 출발했다.
거의 개인 방 수준으로 좌석이 주어진 덕분에, 멤버들과 얘기하면서 놀기 위해서는 그 좌석까지 가서 놀아야 하는 게 유일한 불편함이랄까.
그것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최고였다.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을 넘어 아침에 도착할 예정. 창가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과 그 밑에 비치는 한국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뭔가 정말 지구로 돌아온 기분이네.’
딱히 다른 차원으로 갔던 건 아니지만, 자신이 갇혀 있던 곳 또한 그 정도로 다른 세계였으니 말이다.
에르제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실례합니다.”
스튜어디스가 저녁 식사를 가지고 왔다.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거의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비주얼도 마찬가지였고.
* * *
식사를 가지고 온 스튜어디스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에르제에게 마지막 애피타이저를 전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어떻게 하지.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녀는 토트윈의 초창기 데뷔 때부터 덕질을 시작했던 이브였다.
그렇지 않아도 하와이에 토트윈이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상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미치겠다.’
그녀는 후후,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숨을 뱉고는 겨우 카트를 밀고 나아갔다.
‘지금은 일 중이야! 정신 차려!’
일이 없는 날에 팬 사인회를 몇 번 가기도 했고,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아 콘서트까지 참석을 했었지만. 이렇게 일터에서 토트윈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1인 1스튜어디스로 이루어지는 일등석. 그곳에서 그녀의 최애인 서은우에게 배정이 된 것까지, 우연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겨우 팬에서 직장인 모드로 돌아온 그녀가, 마지막 X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전해 주었을 때. 그녀의 굳은 다짐은 완전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예나 님?”
“네, 네?”
자신의 아이돌이, 그것도 최애가 이름을 불러 주었다.
물론 그녀의 옷에 달린 명찰을 보고 그런 거겠지만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최예나는 상기되는 볼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한 채로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필요하신 게 따로 있으십니까?”
최대한 사무적인 어투로 묻는 그녀에게 에르제가 쐐기를 박았다.
“팬 사인회에 오셨던 최예나 님 맞으시죠? 막, 피부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라고 핸드크림이랑 선물로 주셨고.”
“……헉.”
그러고 보니 에르제의 시선은 자신의 명찰로 온 적이 없는 것 같기도…….
‘미친 기억력이라더니!’
그렇지 않아도, 팬 사인회에 한 번이라도 온 팬이라면 모조리 기억한다는 괴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일하시는 모습 보니까, 멋있어요.”
에르제가 생긋 웃으면서 말했고 최예나는 정신이 안드로메다까지 갔다 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가, 감사합니다……?”
왜 내가 감사를 하고 있는 거지. 정신 차려!!
최예나가 자책과 감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도중, 에르제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제안해 왔다.
“이렇게 이브를 비행기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진 괜찮을까요?”
“헉. 네, 네! 부디 제 스마트폰으로……!!”
“아하하. 2번 찍으면 되죠.”
에르제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한 번, 최예나의 스마트폰으로 한 번.
두 번 다 모두 직접 셀카 모드로 본인이 직접 사진을 찍었다.
보통은 반대였어야 할 광경인데.
최예나는 생소한 감정을 느끼며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소중하다는 듯이 꼭 품에 안았다.
최예나가 X겐다즈를 학살하기 위해 노려보는 에르제에게 말했다.
“그, 혹시. 이거 떡밥 공유해도…… 괜찮은가요?”
“아하. 네 괜찮아요.”
에르제가 고개를 위로 슥 빼고는 다른 멤버들이 잘 있나 확인했다.
“어차피 저희 여행가는 건 팬들도 다 아니까요. 딱히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대답한 그는, 작게 속삭였다.
“혹시, 다른 멤버들이랑도 사진 찍을래요?”
“허업.”
최예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덕업일체도 이 정도면 충분히 치사량이다. 최애가 먼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사진까지 찍어 주다니!
물론 악개가 아니기에 에르제의 제안대로 되면 정말 좋고 행복할 터였지만, 그것은 본분을 잊는 행동이었다.
“사실 저도 일 중인지라……!”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에르제가 ‘앗,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여워…….’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최예나는 이내 고개를 다시금 세차게 젓고는 다시 본연의 업무로 돌아왔다.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참고로 라면 같은 것도 있으니까, 끓여 달라고 하시면 돼요!”
“와, 알겠습니다.”
에르제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저 먹는 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따가 부탁드릴게요.”
최예나는 이대로 돌아가는 게 전혀 아쉽지 않다는 듯이 물러났다.
앞으로 남은 비행시간 동안. 아니, 어쩌면 몇 년은 자신의 일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비행 되십시오.”
* * *
몇 시간을 날아 하와이에 도착한 비행기는 별 탈 없이 무사히 착륙했다.
다른 이브들에게도 떡밥을 공유하겠다는 최예나는 어찌나 마음이 급했던 건지, 거의 착륙과 동시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모양이다.
팬들은 일터에서 덕질까지 성공한 그녀를 부러워하면서도, 여행가는 에르제의 모습을 올려 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등 무수히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녀가 글을 올린 지 30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때마침 모카 엔터에서 잡아 준 고급 호텔 숙소에 도착한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이미 차를 타고 오면서도 보았지만, 이국적인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쁘다.’
해변가도, 그냥 동네도 모두 한국과는 확연히 달랐다.
오히려 카테이아 대륙에 더 가까운 곳은 이곳 광경이랄까.
한국은 이제 익숙해진 다른 세계라면, 여기는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곳이었다.
‘물론 문명이 달라서 이질적이기도 하지만.’
에르제는 입꼬리를 올리며 호텔 방 앞에서 멈췄다.
느긋하게 움직이던 에르제와 민주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먼저 위로 올라와 있었는데. 그들이 두 개의 방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해?”
에르제가 묻자 태현우가 대표로 대답했다. 팔짱을 낀 그는 사뭇 진지했다.
“방은 두 개야. 그 내부도 똑같지!”
“……그래서?”
“하지만, 우리가 5명이니까 세 명 두 명 갈라져야 하잖아?”
태현우가 민주혁과 에르제까지 복도 가운데로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방 크기가 똑같으니까, 세 명 있는 곳이 좁겠지!?”
무슨 국회라도 나가는 건지, 거창하게 연설을 늘어놓는 모습이다.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태현우가 의견을 제시했다.
“간단하게, 사다리타기 어때?”
“사다리타기를 종이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민주혁의 질문에 태현우가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쯔쯔! 그런 건 인터넷으로도 다 된다고.”
“……아.”
미처 생각지 못한 민주혁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태현우가 곧바로 사다리타기 틀을 만들었다.
“1이 3개, 2가 2개야.”
1에 걸린 세 명이 한 방, 2에 걸린 두 명이 한 방. 그렇게 하자는 모양이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냐.”
민주혁이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에르제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들의 휴가 기간은 총 4박 5일, 꽤 길게 주어진 하와이에서의 생활이 이번 사다리타기에 달려 있었다.
‘대부분은 밖에 돌아다니겠지만, 어쨌든 잠은 여기서 잘 테니까.’
이참에 다른 멤버들이랑 방을 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매번 태현우랑만 같이 방을 썼으니까.
‘나는 세 명 있는 방도 크게 상관없기는 한데.’
그래도 이런 운을 테스트하는 이벤트에 빠질 수는 없다.
에르제는 각자 사다리를 탈 자리를 정하는 멤버들 사이에 껴서, 가운데에 있는 사다리를 선점했다.
“오케이, 준비 다 됐지?”
태현우가 후! 하고 숨을 뱉고는 첫 사다리부터 시작 버튼을 눌렀다.
가장 처음은 안단테. 그리고,
“아싸!”
‘2’에 걸린 안단테는 두 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다.
두 번째 차례인 윤치우는 ‘1’.
각각의 방에 들어갈 멤버가 정해졌다.
태현우와 민주혁, 그리고 에르제의 시선이 사다리 타기에 집중됐다.
‘이번엔 내 차롄가.’
가운데 자리에 있던 자신의 이름 밑으로, 진한 선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