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260화
[ 서은우 음악 방송 무대 중 쓰러져. ]
[ 건강 적신호?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사고 ]
[ 토트윈 비상. 무대 위에서 서은우 기절. ]
잘만 소화하고 있던 무대에서 급작스럽게 쓰러진 뒤, 언론에서는 서은우에 관한 기사들을 내고 있었다.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를 위해 막아 보려 시도하기에는, 이미 목격자도 많았고 그 사태가 너무 컸다.
소속 아티스트의 건강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부터 시작해서 모카 엔터가 다분히 억울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루머들이 커뮤니티에서 쏟아졌다.
심지어는 ‘소속사를 패야 한다’는 깃발 아래 엄청난 대군이 모이기 시작했단다.
장 대표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이윤에게 물었다.
“은우는? 아직이야?”
“예…….”
“이유는 모르고?”
“아, 그건 아닙니다.”
이윤은 2시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의사가 왔다 갔는데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고…… 과로에 의해서 그렇다 하기에도 너무 멀쩡하다던데요.”
“아니, 그러면 도대체 왜……!”
장 대표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고는 울상을 지었다.
“이번에 싱글 앨범 준비하는 것도 여유 있게 했잖아. 응? 심지어 작년도 그래. 데뷔 초에 너무 빡세게 달렸으니까, 작년도 디지털 음원으로 3곡밖에 안 냈잖아아.”
장 대표는 거의 칭얼거리다시피 한탄을 뱉어 내며 다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은 멀쩡하다며.”
“그렇……습니다.”
“그럼 정신 문제야? 그, 예전에 있었던 교통사고 후유증이 재발하고 그런 건 아니고?”
“그것까지는 저도 잘.”
정신과 의사까지 부르지는 않았기에 이윤이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빨리 알아봐.”
“그게, 정신 쪽으로 확인하려면 일단 깨어나기는 해야 해서…….”
이윤은 말끝을 흐리며 볼을 긁적였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서, 장 대표는 한숨만 다시 벅벅 내쉬었다.
그리고 이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이 이상이 없다 하니 자연스레 정신 쪽으로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도 서은우는,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만든 적이 있었다. 다행히 사전 녹화 때여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때 서은우는 분명,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아서’라고 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걸까, 이윤의 걱정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의 무의미한 시간이 더 흐르고.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이윤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떨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윤치우였다.
“!!”
장 대표와 이윤이 동시에 헛숨을 삼키고, 곧 그가 전화를 받아 들었다.
“그래? 정말로? 괜찮대?!”
이윤은 상대의 말이 끝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급하게 대답하며 서둘러 겉옷을 챙겼다.
곧바로 전화를 끊은 이윤이 장 대표에게 말했다.
“은우 일어났대요, 대표님!”
“가, 가자.”
장 대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둘은 토트윈의 숙소로 차를 타고 내달렸다.
* * *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엄청난 운전 실력을 보여 준 이윤 덕분에, 둘은 원래 걸릴 시간보다 절반은 단축한 시점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뛰다시피 숙소로 향한 그들은 숙소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은우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윤이 물었고, 곧 소파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 서은우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서은우가 아니라 에르제였지만.
“은우야! 괜찮아!?”
섣불리 몸에 손은 대지는 못한 채, 이윤과 장 대표가 발을 동동 구르며 그에게 물었다.
에르제의 초점이 돌아오면서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괜찮아요. 조금 멍하기는 한데.”
“하아. 다행이다.”
장 대표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이윤의 불안감은 아직이었다.
“혹시…… 막 기억이나 그런 쪽은 문제…… 없는 거고?”
에르제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괜찮아요.”
“……후우.”
깊이 차오른 숨을 뱉어 내며 장 대표와 이윤은 거의 제자리에 주저앉다시피 했다.
“진짜로 다행이네. 무대에서 쓰러졌다고 해서 팬들 분위기도 엄청 심각했고, 기사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넋두리를 하던 이윤이 주변 분위기를 깨닫고 입을 닫았다. 이제 막 깨어난 환자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는 듯한 눈빛들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크…… 흠…….”
이윤은 과도하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들, 그대로네.’
그리고 에르제는 그런 그들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건지도 모르겠는데…… 여긴 달라진 게 없어.’
지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냈는지 이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 시간의 흐름 정도를 알 수 없는 공간…… 이 밝은 공간으로 돌아오기 위해, 에르제는 오로지 벽에 의존한 채 버텼다.
그리고 서은우와 자신의 영혼의 경계를 갈라놓은 벽을 절반 이상으로 밀어냈을 때, 그때 시야가 반전되며 비치던 빛은…… 너무도 따뜻했다.
에르제는 말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매혹의 힘, 로드의 힘…… 그 어떤 것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몸 안에 그 힘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벽을 밀기 위해 그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이리라.
아귀처럼 힘을 먹어 치운 그 벽 안에서 자신의 힘은 모두 소모가 되었다.
이제는…… 제이처럼, 자신도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에르제는 기절하기 직전까지의 서은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타이밍도 참 안 좋지. 하필 음악 방송 무대 위에서 기절하게 만들다니.
하지만 그 안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 보고 싶다.
에르제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현기증이 좀 있었는데, 조금 쉬다 보니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움직이면 안 되는데……!”
민주혁이 곧바로 다가와 부축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 머쓱한 얼굴로 다시 물러났다.
반쯤 혼이 나가 있는 얼굴로 이를 지켜보던 장 대표가, 일어선 에르제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쉬지 않을 거라 해도 쉬게 만들 거다.”
“…….”
“다만, 진짜 건강 문제 때문에 기절했다고 하면…… 논란만 불거지니까. 그건 다르게 입장문을 발표해야겠지.”
“노래 부르다 호흡이 모자라서 블랙아웃이 왔다고 하면 어떨까요?”
실제로 현기증 말고는 의사피셜 건강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니, 윤치우가 그렇게 제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게 제일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 둔 참이었다.”
장 대표는 윤치우의 의견에 동의하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윤도 따라서 엉거주춤 섰다.
“어쨌든 또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음방 활동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자. 다들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 은우는…….”
장 대표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웬만하면 움직이지 말고 푹 쉬고.”
그는 쓰러진 이유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그냥 괜찮다고 하니,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어차피 물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려고 하긴 했지만.’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숙소를 나가려던 장 대표가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리고 이건 이번 앨범 끝나면 할까 생각했던 거기는 한데.”
“?”
이윤도 금시초문이라는 듯 멤버들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걸까.
뭔가 불안감이 맴돌았지만, 장 대표는 그런 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에 푹 쉬고 좀 잠잠해지면, 너희들 여행 한번 다녀오라고.”
“……! 혹시 자컨이에요?”
“아니 자컨은 무슨 자컨. 거기 가서 너희들이 라방 키는 거야 뭐 자유지만, 말 그대로 진짜 휴가 말하는 거야. 비행깃값이랑 숙소, 식비 등등 다 회사에서 지원해 줄 테니까 비용은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와.”
그의 말에 다들 입을 쩍 벌리고 있으니, 장 대표가 마침표를 찍었다.
“가고 싶은 곳도 너희들끼리 정하고. 그, 치우가 정리해서 나한테 알려 줘라. 윤이한테 말해도 되고.”
“네, 네!”
정말 뜻밖의 제안에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른 나라…….’
그리고 에르제도, 두근거리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더 이상 뱀파이어도…… 로드도 아니었기에, 인간으로서 하게 되는 여행은 분명 색다를 것이다.
에르제는 신이 난 멤버들을 보며 찌릿한 가슴 부근을 손으로 눌렀다.
‘다시…… 여기로 정말 돌아왔구나.’
도대체 숙소 환기를 왜 이렇게 안 해 둔 거야.
에르제는 먼지가 들어간 눈을 손등으로 닦았다.
* * *
평화로운 분위기의 토트윈 숙소와는 다르게, 하얀빛으로 가득한 공간에는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인간과 수염이 난 남자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에르제가 되돌아간 풍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뱀파이어.”
서은우는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영혼은, 주도권을 잃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향했다. 에르제가 무슨 짓을 해서 몸을 빼앗은 건지, 그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자칭 신’ 또한 그건 알려 주지 않았다.
[ 모든 것이 원래 갔어야 할 자리로 가는 것뿐. ]
“……내 몸에 내가 있는 게 있어야 할 자리이지 않나?”
[ 자네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나? ]
“내가 무슨 선택을 했다고?”
서은우가 얼굴을 구기며 대꾸했다.
“나는 내 몸을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 가짜 의식에 속았든 속지 않았든, 그대가 선택한 일이었고 그에 따른 결과는 이루어졌어야만 하네. ]
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하지만, 그것도 시공간의 축 때문에 어그러져 있었지. 내 역할은 모두가 ‘순리’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뿐. 그대 또한 순리를 찾아가야 하네. ]
“……무슨 뜻이야.”
[ 대악마의 힘은 이제 내려놓고, 의식의 결과 대로 가야 하지 않겠나. ]
서은우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그나마 대악마의 힘이라도 있어야 몸을 되찾을 텐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했다.
[ 다만 선택은 할 수 있어야겠지. 대악마의 힘을 가진 채 나와 이곳에서 영원히 살든가, 혹은 그 힘을 대가로 본래의 순리를 찾아가는 것. 둘 중에서 선택하게나. ]
신은 양 손바닥을 펼쳐 그에게 내밀었다.
서은우의 앞에 두 손바닥이 위를 향한 채 놓였다.
까득, 이를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순리가 그래서 뭔데. 뭐 어떻게 하라고?”
[ 그대가 원했던 대로. ]
신이 새로이 보여 주는 화면에는, 에르제의 육신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지금 나보고 카테이아 대륙에 되돌아가서, 에르제의 몸으로 살아가라는 뜻인가!?”
[ 아니. 그대도, 지구로 돌아와야지. 본디 내가 다른 종족들에게 그러했듯, 죽기 전의 에르제가 지구로 와야 했듯이 말이네. 육신 그대로 올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기나긴 시간을 버틴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네. ]
“……하.”
서은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구나.
자신은 에르제가, 에르제는 자신이 되어서 살아가는…….
“수작 부리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주지.”
[ 끌끌. 거짓말은 아니네. 아무튼, 선택한 것으로 알아듣지. ]
고민을 끝낸 서은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영혼은 카테이아 대륙 에르제의 육체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