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259화
에르제가 벽을 밀기 시작한 시점.
그곳에서는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게 바깥과 시간이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후로, 현실에서는 1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니까.
윤치우와 라하임이 계속해서 방법을 찾고 있던 사이, 토트윈의 싱글 앨범 준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지금까지, 1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토트윈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다른 멤버들이나 토트윈 그룹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비주얼 센터인 서은우, 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기존까지는 연습을 좀 덜 해도, 대충해도 됐다. 그동안 서은우가 노래 실력으로 보여 준 것이 있었으니까.
그가 처음 원했던 대로, 음유 시인인 뱀파이어의 힘을 빌려와 그대로 펼쳐 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드의 힘을 빼앗긴 이후로, 서은우에게는 더 이상 뱀파이어의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노래는 예전 같지 않았다.
마치 그가 연습생이었을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연습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서 민주혁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서은우는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방법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더 이상 신경 쓰지도 말고.”
“……알았어.”
악귀 그리고 아버지에 관해 도움을 받았던 만큼, 민주혁은 서은우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도 그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방법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민주혁은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몰랐으므로 ‘정말 방법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 에르제가 보여 주었던 것이 있었으니, 민주혁은 자연스럽게 그 기대감을 서은우에게도 가졌다.
‘……빌어먹을.’
서은우는 연습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입술을 짓씹었다.
‘방법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꾸욱 주먹을 말아 쥔 서은우는, 힘을 빼앗긴 이후 지난 1달 동안 계속해서 꿈을 꾸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로드의 힘을 빼앗기고 난 뒤에는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꿈을 꾸려 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사비를 이용해 테라피나 명상, 최면 등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는커녕 점점 화만 쌓이는 기분.
“후우.”
서은우는 이를 꽉 깨물었다가 다시 놓았다.
꿈 말고 다른 방법도 딱히 통한 것은 없었다. 그 빌어먹을 에르제 놈에게서 최소한 뱀파이어의 능력만이라도 가져와야 하는데.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으니 그의 옆으로 윤치우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괜찮겠어?”
“뭐가.”
“……이대로 앨범 나가도.”
유일하게 서은우의 영혼이 돌아왔음을 알고 있는 윤치우는 그렇게 물었다.
괜찮겠냐고, 팬들이 알아채지 않겠냐고.
그러나 서은우는 가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욕먹어도 내가 먹는 건데, 뭐가 문제야.”
“……욕까지 하시지는 않을 거야 팬들이.”
다만, 갑자기 줄어든 실력에 대해 걱정은 할 것이다. 건강은 문제가 없는지, 토트윈 내에 불화가 있는 것은 아닌지.
노래, 그것과 상관없는 다양한 루머들이 생성되고 소모될지도 모른다.
윤치우가 걱정한 것은 그것이었으나, 서은우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 * *
다시 2달의 시간이 흘렀다.
뮤직비디오 촬영도 끝이 났고 음원도 발표되었다.
음원은 그나마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기계의 힘으로 커버를 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팬들은 팬들인지,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는 것만은 캐치한 듯이 보였다.
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 하얀과의 무대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음악 방송 대기실.
자리에 앉아 댓글을 확인하던 서은우는, 헛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옆으로 툭 던져 놓았다.
더 이상 댓글은 읽기도 싫었다. 그냥 짜증만 난다.
곧 음악 방송 무대에 서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불쾌해지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판단한 서은우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음정도 잘 맞고 박자도 잘 맞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난리를 치는 건지.
더 이상 꿈에 들어가는 것 따위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 연습도 죽어라 했다. 몇 시간씩 노래 연습에 매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트릴을 했다.
덕분에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이미 싱글 앨범이 준비되고 있었던 만큼 시간이 충분치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을 했어야 했나.’
됐다. 앞으로 시간은 많았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떠들어대겠지만, 계속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나아질 거고 사람들도 적응하겠지.
어차피 당분간은 립싱크로 할 예정이라 했다.
서은우는 한숨을 후, 뱉어내며 눈을 떴다.
최근 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인지, 그에게 말을 거는 멤버들은 없었다.
‘……정말로 짜증이 나는군.’
그냥 에르제가 있었을 때처럼 편하게 대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깟 노래 실력 죽었다고 자신의 눈치만 살살 살피는 게 더욱 보기가 싫었다.
쯥, 하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은 서은우는 곧 토트윈의 차례라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사전 녹화를 딴 이후, 오늘 음악 방송은 숨소리까지 정교하게 녹음된 LIVE AR을 틀 예정이었다.
그동안 진짜 라이브를 하던 토트윈으로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은우의 컨디션이 좋지 않잖아.’라는 장 대표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했다.
서은우와 다른 멤버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마이크를 착용하고, 늘 하던 대로 원을 그리고 모였다.
“오늘은 퍼포먼스에 집중해서, 최대한 팬 분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무대 하자. 다들, 잘하잖아 그치?”
윤치우가 조금 쳐져 있던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파이팅을 외쳤고, 나머지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풀었다.
그래, 라이브든 AR이든 무슨 상관일까. 그동안 토트윈이 모든 곡을 라이브로 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석연치 않은 과정은, 결국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은우는 백스테이지에 서서 무대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춤은, 내가 훨씬 나아.’
노래 실력이 이대로 더 늘지 않으면 뭐 어떤가?
애초에 비주얼 센터, 그게 자신의 포지션이다.
퍼포먼스형 아이돌로서 새로 태어나도 괜찮을 거고 말이다.
‘태현우랑 안단테, 둘 다 노래 곧잘 하는데 나까지 그렇게 잘해서 뭐 하겠나.’
서은우는 자기합리화를 마친 채, 멤버들을 따라 무대 위로 올랐다.
* * *
토트윈이 음악 방송에서 보여 준 무대는 가창이 중요한 ‘Moonlight’가 아닌, 다른 두 곡들 중 하나인 ‘Spotlight’이었다.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는 무대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두 번의 음악 방송 무대는 무리 없이 진행이 되었다.
보정된 LIVE AR을 틀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퍼포먼스 그 자체로 충분히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Moonlight’의 무대를 보여 줄 때는……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일단은 서은우에게 있어서 노래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다행이야.’
서은우는, 이번 주 마지막 음악 방송 무대에 오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이대로 ‘Spotlight’ 위주로 활동을 마칠 수만 있다면, 그에게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이다.
‘환영인 줄 알았던 놈이…… 아직 내 몸 안에 살아 있는 게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걸 보니, 녀석도 완전히 소화가 된 모양이다.
놈이 빼앗아 간 로드의 힘이 돌아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더 이상 쿡쿡 쑤시지 않는 심장 부근을 매만지며, 서은우가 손을 들어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의 이름과 토트윈을 부르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거지.
에르제가 했던 지난날의 활동보다, 앞으로 자신이 활동할 날이 훨씬 많다. 서서히, 팬들의 기억에서도 자신의 모습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거다.
곧 ‘Spotlight’의 AR이 흥겹게 흘러나왔다.
쿵쿵 울리는 비트와, 빠바밤! 울리는 트럼펫 소리.
흥겨운 리듬 위로 토트윈의 군무가 아름답게 이어졌다.
― 믿기 힘든 순간이야
내가 서 있는 이곳
그 위로 쏟아지는 시선
Spotlight 같아
― 눈이 부시게 만들어
너와 함께 있으면
그 뒤로 이어지는 시선
마치, Spotlight―!
왼손, 오른손, 도합 10개의 팔과 다리가 원근감을 무시하고 이리저리 겹치고 얽힌다.
타닥, 경쾌하게 밟는 스텝과 겉에 입은 재킷을 살짝 털었다 놓는 무심한 춤.
사선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얼굴 속, 눈과 입이 모두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다.
― 밝게 비추는 밤
그리고 이곳
태현우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함께, 곡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전자음과 함께 이루어지는 댄스 브레이크.
어깨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대각선으로 기울이는 상체가 위태로워 보였다.
격한 춤과 함께 댄스 브레이크는 절정으로 향했다.
난도 높은 안무가 이어지던 순간.
‘……어?’
서은우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 심장 부근에서 느껴졌다.
끼긱, 끼긱.
대번에 집중력이 깨지며 스텝이 꼬였다.
“!!”
“엇……!”
순간적으로 대형을 무너뜨린 서은우를 피해 멤버들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팬들 또한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미 원래의 안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분명 지금 센터로 들어온 서은우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러나 그 누구보다, 서은우보다 당황하고 있을 사람은 없었다.
서서히, 의식이 가라앉고 있었다.
심장을 누군가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이어졌다.
“악……!!”
저도 모르게 뱉어낸 신음 소리가, AR은 뚫지 못하고 주변 멤버들 귀에만 들렸다.
놀라서 서은우가 있는 곳으로 멤버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완전히 블랙아웃이 된 서은우의 의식은, 아주 깊숙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마치, 몸 안에 들어와 있던 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멍하니 심장을 움켜쥔 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상태로 서 있기만 한다.
“은우야!!”
무대고 뭐고, 놀라서 달려온 멤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순간.
풀썩, 의지를 잃고 풀려 버린 다리가 바닥에 닿았고 곧 서은우의 몸이 그대로 무대 위에 쓰러졌다.
대형 사고라는 말로도 포장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싱글 앨범 3번째 음방 무대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에르제가 민 벽이, 절반을 넘어간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