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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7화 (257/307)
  • 제257화

    257화

    “허어어억!!”

    서은우는 깊은 물에 잠겨 있다 빠져나온 사람처럼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악……!!”

    거의 튕기듯이 일어난 덕분에 사선으로 튀어 나간 머리가 벽에 박혔다.

    “으.”

    서은우는 손으로 재빨리 머리를 문지르며, 아픔이 가시고 난 뒤에야 눈을 비볐다.

    ‘꿈…….’

    그러고는 이렇게 놀라며 잠에서 깨게 된 이유에 대해 떠올렸다.

    어둠밖에 없는 세계에, 자신과 남자는 붉은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형체를 갖추고 보여진 남자의 모습은 분명.

    ‘에르제였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는 에르제의 영혼이 아니라, 카테이아 대륙에서 자신의 손에 의해 죽은 에르제의 육신.

    몸을 빼앗은 것이 에르제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에르제의 육신을 기억에 남겨 두었기에 확실하다.

    스치듯이 보았다 해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얼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우.”

    서은우는 갑갑한 숨을 내뱉으며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도대체 왜 그런 꿈을 꾼 걸까.

    지금껏 영혼 전이로 타인의 육신을 차지했을 때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이런 꿈을 꾸게 되는 건지.

    ‘이번에 몸 주인은 나라고.’

    서은우는 짓씹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잇새로 피가 새어 나왔다.

    금세 쓰라린 통증을 느끼는 입술 위를 서은우가 혀로 핥아 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붉은색 실이 이런 피인 건가.’

    그는 잠시 생각을 좀 더 해 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저 잠깐 지나가는 바람처럼 곧 없던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파악하기 어려운 의미를 가지고 생각을 해 보았자 쓸데없는, 생산성 떨어지는 일일 뿐이다.

    생각을 정리한 서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오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11시인가.’

    꿈 때문에 피곤하기만 한데도 잠은 꽤나 오래 잔 모양. 다른 멤버들은 이미 회사로 연습을 하러 간 듯했다.

    “조용하네.”

    나지막이 중얼거린 서은우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TV를 틀었다.

    윤치우가 일단 하루 쉬라고 했으니 푹 쉬어야지. 굳이 죽도록 연습하지 않아도 에르제의 능력이 있으니 노래나 춤을 하는 데에 그리 어렵지 않다.

    영 못 해 먹겠다 싶으면 매혹의 힘을 쓰면 되고.

    TV를 틀자마자 나오는 뉴스에 서은우는 버튼을 눌러 채널을 넘겼다.

    곧 예능을 재방송하고 있는 채널이 나와서 서은우가 손을 멈추었다.

    예능 이름은 ‘알바 몬스터 시즌 2’.

    자신이 본래의 몸을 되찾기 전, 에르제가 멋대로 몸을 굴리던 예능이다.

    흔하지 않은 알바 혹은 노동을 하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는 예능.

    ‘저런 걸 재미있다고.’

    몇 분을 봤지만 딱히 재미있지도 흥미가 가지도 않는다.

    ‘차라리 나는 힐링 예능 같은 거 나가게 해 달라고 해야지.’

    서은우는 다른 채널로 옮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죽자고 발버둥 친 것은 지금까지 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예전에 제이와 함께 에르제가 찍었던 예능처럼, 그런 힐링 계열이 좋을 듯했다.

    ‘만약 시즌 3에도 날 쓰겠다고 하면, 거절해야겠어.’

    알바 몬스터는 여기까지다.

    서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내 음악 방송으로 옮겼다. 이것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번 주 방송을 재방송하고 있었다.

    현재 무대에 등장한 것은 ‘루비다이아’.

    서은우는 잠시 강제 계약을 통해 지구로 왔던 자신이, 하얀과 함께 무대를 했던 ‘Chaser’를 떠올렸다.

    그래, 생각해 보면 토트윈으로서도 에르제가 아닌 자신이 몸을 되찾은 것이 확실하게 이득이다.

    에르제는 하얀과의 춤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었는데, 그걸 자신이 해결해 주지 않았던가.

    노래는 음유 시인 에르제의 기억 대로만 부르면 문제가 없고, 춤은 자신의 느낌을 첨가하면 더욱 좋아질 터다.

    픽 웃으며 루비다이아의 무대를 보고 있던 서은우는.

    쿡.

    다시금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심장에 전해져 와서 얼굴을 찌푸렸다.

    “또…….”

    아니, 전보다 통증이 더 심해졌다.

    어제는 그냥 걸어가다 레고를 밟은 수준이라면, 지금은 유리 파편이라도 밟은 듯했다.

    게다가 생각보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도 않는다.

    꾸욱, 가슴팍을 쥐어짜듯 손으로 누른 서은우는 몸을 소파 위로 완전히 뉘었다.

    대악마이자 뱀파이어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치유가 되지 않는다. 그저 인내하고 견디는 수밖에.

    천장을 보고 누운 서은우는 눈을 감은 채로 심장 위를 지그시 눌렀다.

    압박이 가해지자 통증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끄윽…… 후우.”

    조금 전에 깨물어 상처가 난 입술이 더욱 쓰라렸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게 꽉 창문을 닫아 놨기 때문인지, 숙소 안의 공기가 갑갑했다.

    쿠욱.

    다시금 찔러오는 통증에 색색거리며 서은우의 잇새로 옅은 숨이 터져 나왔다.

    “크으으으…….”

    고통스런 신음을 뱉어 내던 서은우는 누워 있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여기인가.’

    서은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시 왔다. 어제 꾸었던 꿈과 같은 장소였다.

    ‘그래도 여기선 아프지 않으니 좋군.’

    서은우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가슴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깊은 어둠, 서은우는 잠시 서 있다가 이내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어제처럼 에르제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손목을 따라 이어진 붉은 실이 아래로 늘어뜨려진 채 그가 걷는 걸음을 따라갔다.

    “아무것도 없군.”

    일부러 목소리를 내어 말해 보았지만 자신의 음성 외에는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나, 서은우가 그런 생각에 출구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때였다.

    툭, 투욱.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딛는 걸음이 그의 등 뒤에서부터 들렸다.

    “!”

    섬뜩한 기운에 몸을 돌리자, 그제야 그의 손목에 묶여 있던 붉은 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실의 끝에선 어제 꿈과 같이 에르제가 걸어오고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터덜터덜 자신만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에르제가.

    “…….”

    그러나 서은우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이곳은 단순히 꿈속의 세계일 뿐이며, 에르제는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테니까.

    “멈추지.”

    서은우는 지척에 닿은 에르제를 보며 그렇게 말했고, 그 또한 제자리에 멈추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내 몸까지 네 몸으로 바꿔보려는 건가? 그리고 이건 또 무슨 꿍꿍이지?”

    서은우는 자신의 손목에 걸려 있는 붉은 실을 흔들어 댔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강제로 풀려고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는 모양인지 에르제는 멍하니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뿐.

    “……내가 뭘 하는 건지.”

    서은우는 후, 하고 숨을 뱉었다. 환청이랑 무슨 얘기를 나누겠다고.

    언젠가는 여기서 나가게 되겠지.

    시공간의 축에 갇혀 있던 때와 비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주변을 맴돌며 우우우우, 거리던 망령들을 생각하면 ‘무음’은 양반이니까.

    짜증스럽게 투덜댄 서은우는 그냥 그 자리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에르제는 그 자리에 멈춘 채 뭘 할 생각도 없어 보였고, 그냥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변은 그 순간 일어났다.

    붉은 실이 진동을 떨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서은우는 드러누운 지 10초도 채 되지 않아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목이 붉은 실을 따라 미세하게 진동을 거듭하고 있었다.

    헛숨을 들이킨 서은우는 그보다 더욱 떨리는 눈동자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서은우는 이를 꽉 깨물며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은우의 몸이 벽에 부딪혔다.

    마치 둘 사이를 갈라놓은 듯한 벽은, 옆으로 돌아가려 시도해도 모조리 막힐 만큼 넓게 퍼져 있었다.

    쾅!!

    서은우가 주먹을 쥔 손으로 거세게 벽을 내리쳤다.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붉은 실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은, 이윽고 하나가 된 ‘로드의 힘’이었다.

    * * *

    목소리도 낼 수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에르제는 서은우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입 모양과 표정만으로도, 그의 당황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

    에르제는 그와 연결되어 있는 붉은색 실을 바라보며 미소를 거두었다.

    서은우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실인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로드의 힘’이 실을 타고 자신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번에 서은우를 이곳에서 만났을 때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었는데.’

    오늘 다시 서은우를 찾았을 때에는, 로드의 힘이 자신의 영혼에 반응을 해 주었다.

    쾅쾅쾅! 소리 없이 서은우가 벽을 내리치는 모습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왔다.

    서은우도 지금 느끼고 있을 것이다.

    로드의 힘이 에르제 자신에게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동시에, 에르제의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공간에 처음으로 촉각이 느껴졌다. 곧이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그리고.

    “아.”

    천천히 뱉어 본 목소리가 그제야 제소리를 내었다.

    “……아아.”

    물기를 흡수하지 못해 말라 버린 음성이 다시 제 귀를 타고 돌아왔다.

    “내 말, 안 들리나?”

    간신히 제 기능을 찾은 고막으로 서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트윈 앨범 녹음 때마다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윤치우, 민주혁, 태현우, 안단테.’

    “아아아.”

    겨우 그 끝을 붙잡고 있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에르제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고, 일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억이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짜릿한 감각이었다.

    반쯤 반개하고 있던 에르제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아오고, 그는 서은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에르제가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서은우.”

    “하…… 말할 수 있었군.”

    어이없다는 듯이 서은우가 눈을 부라린다.

    “어차피 여긴 꿈속이다. 로드의 힘을 가져가 봤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만약 이게 현실에서 일어났다 쳐 보지.”

    화가 나 있던 서은우가 이내 조소를 얼굴에 띠며 에르제를 비웃었다.

    “대악마의 힘은 가져가지 못하지 않나? 너 같은 종족들이 몇이 덤벼도 내 앞에 무릎 꿇었던 건 기억에서 지운 것인가?”

    “……서은우.”

    그러나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꼭 해야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다시, 네 몸을 찾으러 갈 거야.”

    “……환청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군. 아주 현실적이고 좋아.”

    그러나 에르제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미안한 감정은 여기까지다. 애초에 서은우는, 자신의 육신을 한 번 버렸으니까.

    ‘그리고.’

    몸을 찾을 단서는, 서은우 본인이 직접 자신에게 깨닫도록 만들었다.

    ― 내 몸을, 네 몸으로 바꿔보려고?

    입 모양으로 읽어 냈던 그의 말을 되새기며, 에르제는 사방을 둘러싼 어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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