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256화
어두컴컴한 곳,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경 속에서 에르제는 몸을 웅크렸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목이 꽉 막힌 듯 답답했고 들려오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매질이 없는 세계, 마치 우주 공간에라도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지금 짚고 앉아 있는 바닥 또한 밑이 어둠으로 뻥 뚫려 있어 바닥에 닿아 있다는 기분조차 들지 않는다.
오감 중 유일하게 작동하는 시각으로 보이는 게 온통 어둠뿐이라니.
그나마 자신의 허연 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분명 신은 서은우의 몸으로 돌려보내겠다 말을 했었는데…… 그럼 이곳이 몸속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어둠밖에 없는 것인지, 에르제는 웅크렸던 몸을 더욱 둥글게 말아 넣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몇 시간?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
‘아…….’
아무것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으니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에르제는 자신이 이곳에 언제 들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주도권을 놓고 싸운다 해서, 서은우의 영혼과 의식 저편에서 전투라도 벌이는 건가 했더니.
그냥 이런 어둠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줄이야.
괜한 호기였을까.
에르제는 무릎을 모아 앉은 채 손으로 그 위를 감쌌다.
서은우의 의식이나 그가 겪는 상황들을 같이 볼 수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서서히, 정신이 마모되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기다려 봤자 바뀌는 건 없겠지.’
우주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이라 두려움에 나아가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가는 겨우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웅크리고 있어 몸이 삐걱댔지만 에르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휘휘 돌려도 여전히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찾을 수 없다.
‘일단 걸어 보자.’
해서 그는 느낌이 오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뻥, 뚫려 있는 검은색 바닥. 언제 이 아래로 떨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두들기듯 바닥을 밟아 나갔다.
속도는 당연히 더뎠다. 그러나 여전히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도 계속 똑같은 풍경만이 존재했으니까.
만약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해도 알아채지 못하리라.
‘에르제, 라하임, 플랑, 세리나, 윤치우, 태현우, 민주혁, 안단테…….’
에르제는 끊임없이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되뇌었다. 되뇌면서 그들의 얼굴도 떠올렸다.
자신은 뱀파이어 로드 에르제이며, 누구를 만나기 위해 다시 돌아왔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또다시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한 채로, 에르제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에르제, 라하임, 플랑, 윤치우, 태현우, 민주혁, 안단테.’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겨우 기억하고 있던 이름들을 까먹을 뻔한 것이다.
‘정신 차려.’
에르제는 다시 이름을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걸어간 거리에 비례해, 기억하는 이름은 점점 줄어들었다.
‘에르제, 윤치우, 민주혁, 태현우, 안단테.’
그러나 에르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깨달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 5개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다 여겼으니까.
저벅, 저벅. 유일하게 남은 5개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는 하염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는 이윽고 자신의 이름을 먼저, 잊었다.
윤치우, 민주혁, 태현우, 안단테.
그런데 나는 누구지.
한참 뒤에 걸음을 멈춘 그는,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여전한 어둠.
몸을 내려다보니 허옇게 빛나던 영체가 상당히 희미해져 있다.
더 이상, ‘어둡다’는 인식도 하기 힘들어졌다.
‘아…….’
그는 4개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댔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돌아가야 할 곳은 그곳이다. 아직 목표는 명확하다.
비틀거리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꾸욱, 눈두덩이를 주무르던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 축복을 사용하였습니다. ]
이상한 안내 메시지와 함께, 붉은색 실선이 따라오라는 듯 길게 이어졌다.
* * *
“이상하네.”
태현우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토트윈은 각종 시상식을 다녀온 이후 다음 앨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데뷔 초에 정규는 우르르 냈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 배분을 위해, 이번에는 싱글 앨범 형태로 3곡을 담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3곡 중 하나는 굉장히 감성적인 노래. ‘Moonlight’라는 제목의 곡이었는데, 때문에 메인 보컬인 태현우와 그에 준하는 서은우의 보컬 비중이 굉장히 높았다.
그러나 현재 녹음 부스 안에서 노래를 하는 서은우는…… 뭔가 어색했다.
다른 이들은 ‘좋다’, 라는 얼굴들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멤버들 중에서 서은우와 합을 가장 많이 맞춰 본 것이 자신이기 때문에, 홀로 그 미묘한 어색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로듀서님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태현우는 팔짱을 낀 채 노래에 심취한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노래 실력은 그대로다.
발성도 톤도 깨끗했고 감정도 자유자재다.
하지만 뭘까 이 불쾌한 기분은.
묘하게 홀리는 듯한 느낌은 같은데, 출처가 다른 느낌이랄까.
태현우는 다른 멤버들에게 지금의 기분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스스로도 정의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어찌 설명을 할 수 있겠나.
태현우는 곧게 뻗은 눈썹을 매만지며 한쪽 눈을 감았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나을 듯했다.
같은 날, 안무 연습을 하기 위해 찾은 연습실.
이번에는 민주혁이 이상 현상을 느꼈다.
그러나 태현우와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나빠진 게 아니라 좋아졌으니 말이다.
‘……원래 저렇게 춤을 췄었나?’
원래의 서은우의 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곧잘 동작을 따라 하고 본인만의 색을 입힐 줄은 알았지만, 민주혁은 늘 그에게 ‘하나’가 부족하다 여기고 있었다.
표현의 자신감, 서은우는 조금만 수위가 높아진다 싶으면 품격이 떨어진다 표현을 했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런 춤을 표현하는 데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조를 바꾼 건가?
그러나 역시, 그 또한 태현우와 마찬가지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시선을 빨아들이는 춤이지만, 어딘가 깊고 칙칙한…… 그런 기분.
하지만 민주혁 또한 결국 고개를 갸웃하고 말 수밖에 없었다. 태현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미묘하고 어려웠으니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 * *
“……윽.”
연습을 마치고 온 어느 날. 서은우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요즘 들어 가끔씩 이러는데, 아직 그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에이리스에게 빼앗은 로드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가.’
서은우는 일그러뜨린 얼굴 위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다시 아이돌을 하게 되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지루한 노동의 반복일 뿐이다.
‘……무대에 선다고 좋을지도 모르겠고.’
요즘 건강도 안 좋은 느낌인데, 그냥 다 때려치우고 몸조리나 할까.
대악마에 뱀파이어 로드의 힘을 지닌 자신이, 건강이 좋지 않다니. 실소가 나왔지만 실제로 그런 걸 뭐 어찌하겠는가.
쿡, 또 가슴을 쑤시는 통증에 서은우는 낮게 신음을 뱉어 냈다.
“왜, 몸 안 좋아?”
“…….”
윤치우가 곧바로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날 밤 이후로 둘의 관계는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해서 서은우는 살짝 거리를 두며 대답했다.
“조금, 안 좋네. 무리해서 그런가 봐.”
“……하긴.”
윤치우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내가 말해 둘 테니까 며칠만 쉴래? 너…… 지금 원래 몸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잖아.”
윤치우는 그날 이후 자신에게 어떠한 것도 묻지 않았다.
어디에 있었는지, 뭘 겪었는지 물어볼 법도 했는데. 윤치우가 자신에게 한 질문은, 에르제는 어떻게 되었냐는 말뿐.
‘언제부터 그렇게 걱정했다고?’
순간적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참으며 서은우가 실소를 지었다.
“그래 주면 고맙지.”
“알았어. 일단 내일 연습 하루만 쉬자.”
고개를 끄덕인 서은우가 방으로 향하자.
“현우야. 오늘은 우리 방에서 자.”
“엉? 왜?”
“오늘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럼 은우 혼자 자고?”
윤치우가 태현우에게 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마 혼자 있게 해 주고 싶은 모양인데 쓸데없는 배려였다.
‘……그래도 혼자 있으면 편하긴 하겠군.’
서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자 끼익거리며 위태로운 소리를 낸다.
‘토트윈으로 돈도 많이 벌었으면서 침대나 좀 좋은 걸로 갈아 주지.’
소속사에 대해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은 서은우는 거슬리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예전부터 그랬다.
뭐든 해 줄 것처럼 하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해 주는 게 없다.
자신이 다른 연습생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윤치우나 태현우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는데…….
이제는 그들에게서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왜.’
서은우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우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어째서 예전 같지 않은 거지.’
그동안 에르제, 그 빌어먹을 놈이 그들과 함께 지내서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다른 세계에 너무 오랜 시간 살다 와서?
‘내 몸인데.’
연수로 따지면 에르제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산, 자신의 몸인데.
쿡, 또 심장이 시큰거렸다.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까지도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다.
“역시, 그냥 모조리 다 죽여 버리는 게 맞았나.”
몸 따위 찾지 말고, 카테이아 대륙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놈들 모두 멱을 땄어야 했던 걸까.
“X발…….”
나지막하게 욕설을 뱉어 낸 서은우는, 침대 위에 대각선으로 비켜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슬슬,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로를 모르는 몸임에도 고된 연습에 정신이 갉아 먹힌 것인지, 몽롱한 기분이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깊이 잠든 서은우의 숨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리고 서은우는 대악마가 된 이후로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캄캄한 어둠이 가득한 세계에 서은우는 홀로 던져져 있었고, 누군가가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와 자신은, 붉은색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얀색 영체. 정체는 알 수 없다.
서은우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보고 있으니, 영체가 점점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흑발, 조각처럼 빚어낸 고고한 얼굴, 새하얀 피부, 그리고 보석처럼 붉게 빛나는 눈동자.
서은우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