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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5화 (255/307)

제255화

255화

“미리 막을 수는 없었던 건가요?”

질문에, 남자는 대답했다.

[ 그럴 수 있었다면, 에르제 그대가 이곳에 와 있지는 않았겠지. ]

“죽이지 말라, 영혼 전이가 있다, 그런 말은 해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 푸흐흐. ]

남자, 카테이아 대륙의 신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 그것 자체로 인과율을 뒤트는 것이네. 단순히 그 말만 전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일로 변하게 될 모든 변수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

“……그동안 힘을 아꼈다고 하더니.”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좁힌 신이 투덜댔다.

[ 물론 그 인과율을 감당해 낼 힘은 있지. 그게 불가능해서 내버려 둔 것이 아닐세. ]

“……그러면요?”

[ 하지만 그러려면, 그 빌어먹을 지구의 신과 이야기를 해야 하거든. ]

에르제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런데, 지구에는 신이라는 게 없더군. ]

“……그럴 리가요.”

에르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지구에는 수많은 신앙이 있다. 나라 별로 모시는 신이 다를 정도로 다양했고, 그런 것들 중 몇 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신도들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알아낸 것만 해도 그렇게 많은데…….”

[ 많다고, 신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야. ]

“?”

그의 말에 에르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은, 찾는 이들에 의해 탄생한다.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실체화가 된다.

그들이 선할지 악할지,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특히나 지구 전체에 퍼진 신앙이 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흐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군. ]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테이아 대륙의 신이 말했다.

[ 여기 지구는, 신앙이 조금 특이하거든. 우리가 살던 곳과는 달라. ]

“다르다고요?”

[ 그렇네. 지구에서 신앙을 보이는 종족은 인간들 하나밖에 없지. ]

“카테이아 대륙도 인간들에 의해 탄생한 신들이…….”

[ 하지만 말이네. ]

신은 에르제의 말을 끊어 내며 입을 열었다.

[ 이곳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에 의해서 탄생했다 여기거든. ]

“……아……!”

그제야 에르제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가 되어 버린 것이지. ]

클클 웃은 신은, 손가락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검은색 선이 그림으로 변했다.

[ 신앙에 의해 탄생한 신이, 인간을 만들어 냈다. 서로 상충하는 논제가, 신의 탄생을 막아 버린 것이네. ]

“……그렇군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에르제는 이내 든 궁금증에 다시금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종교도 있지 않습니까?”

[ 물론 그렇지. 하지만 대부분은 그 신앙이 신을 탄생시킬 정도로 많지 않던가…… 혹은, 인간으로 남아 있길 원하더군. ]

“…….”

[ 카테이아 대륙의 신앙에 의해서 태어난 신인 내가, 신이 아니라 인간 혹은 다른 종족임을 천명하면…… 더 이상 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네. ]

“이해는 했습니다.”

신이 되길 거부했다, 신이 하는 말은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구의 신에게 허락을 받거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 푸흐흐흐흐! ]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 그대 말은, 마치 집에 주인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냐는 말과 똑같군. ]

“그게 그렇게 됩니까?”

[ 그렇지. 나에게는, 지구의 인과율을 뒤틀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네. 뭐……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 주자면. ]

잠시 고민하던 신이, 이번에는 자동차 그림을 그렸다. 라하임이 토트윈을 태울 때 운전하던, 검은색 밴이었다.

[ 조금 과격한 비유이기도 하고 실상은 다르긴 하다만, 예를 들어 이런 것이네. 이 차가 마음에 들어서, 주먹으로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온 거지. ]

“예.”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동을 걸 수 있진 않아. 차 키가 필요하거든. ]

“……하지만 차 키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다, 혹은 차 키 자체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나요?”

[ 이제야 정확히 이해한 모양이군. ]

신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고는, 이내 에르제의 앞에 다른 화면을 띄워 주었다.

영혼이 다른 세계로 넘어가 버린 텅 빈 에르제의 육체를, 미친 황제가 가져가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건…….”

그가 지구로 넘어온 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에르제는 그 장면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미친 황제, 그러니까 서은우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수하들을 시켜 들고 오게 한 자신의 육체는, 황궁에 있는 어느 방 하나로 가게 되었는데…….

“미친.”

그곳에는 다른 종족들의 우두머리 혹은 장로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보존 마법을 걸어 둔 수십 개의 종족들은 마치 전리품처럼 늘어서 있었다.

[ 보고 열이 좀 받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시게나. ]

툭 내뱉은 신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존 마법이 걸린 자신의 육체는 부패하지 않았고, 결국 서은우가 자신의 몸을 되찾은 지금에도 무사했으니 말이다.

“카테이아 대륙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으라는 말이.”

[ 그래. 이대로 서은우의 육체로 돌아간다면, 자네는 분명 영혼까지 소멸당할 것이야. ]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육체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영혼은, 가지고 있는 힘이 강하든 약하든, 무조건 몸의 원주인이 이기게 되어 있거든. 그건 어느 차원이든 마찬가지야. ]

“인과율…… 때문입니까?”

[ 그렇지. 최대한 현상 유지를 하고 싶어 하는 힘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법. ]

“그래서 지금까지, 잠적해 있던 거군요.”

에르제의 시선이 신에게로 향했다.

“서은우가 자신의 몸을 찾을 때까지.”

[ 그렇네. ]

신은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 나로서도, 서은우를 용서하고 싶진 않아. 다른 세계에서 넘어와서는, 내가 아끼던 종족들을 죄다 도륙해 버렸으니까. 결국 나도 떠도는 신세가 되어 여기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었지. ]

“……당신을 향한 신앙이 지구에 있으니까.”

[ 그래. ]

하지만 그 신앙이 미약하기에, 지구의 신이 되기에는 불가능했으리라.

“그럼 저는, 이제 미친 황제가 없는 카테이아 대륙에서 살아가라는 뜻입니까?”

[ 아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지. ]

“……어떻게.”

[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이걸 위해서 힘을 아껴 두고 있었다고. ]

“……아.”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했던 그 말을 상기했다.

[ 자네 하나를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 것은, 차 키가 없어도 되거든. 유리를 부수고 들어간 차에, 뭘 들고 들어가든 알게 뭔가? 시동만 걸지 못할 뿐이지. ]

간단한 비유였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터. 에르제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나의 육체로 돌아가게 되면…… 그 상태로는 토트윈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성형 수술을 했다 변명을 하더라도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니까.

아예 다른 사람을 가져다 놓고 짜잔, 서은우입니다!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애초에 장태수 대표나, 이윤 그리고 멤버들이 받아들일지조차 모르겠다.

에르제는 멀쩡히 보관되어 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육체의 주인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건…… 확실한 일인가요?”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육체의 주인이 패한 것을 본 적이 없네. ]

에르제의 속내를 짐작한 신이 고개를 저었다.

[ 그 생각은 머리에서 지우는 게 좋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능력은 내게는 없으니. ]

“……원주인이 주도권을 가지는 이유는 뭔데요?”

[ 그야 당연히, 섭리이기 때문이 아니겠나. ]

서은우는 대악마라 칭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게 패배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영혼 전이’의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에게는, 딱 한 번.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기회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신은?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인가? 궁극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뭐지?

‘내가 내 육신으로 지구에 오면…… 뭐가 달라진다고.’

신은 왜 다른 종족들 중에서도 하나씩만을 지구로 보낸 걸까.

에르제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은우는 자신의 세계를 망친 주범이었다.

그렇다면 그와 진득하게 얽혀 있는 자신을 선택해 축복을 내리고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결국 신이 마지막에 바라고 있는 결말은 뭘까.

서은우의 죽음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자신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지구에 눌러사는 것일까.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하다.

해서 에르제는, 대놓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죠? 내가 카테이아 대륙에서 지구로 오게 되면 뭐가 달라지는 겁니까?”

[ ……역시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군. ]

신은 웃음기를 지우며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그의 턱수염이 한 점 바람 없는 세계에서 살살 흔들렸다.

[ 나는, 변화를 바라지 않을 뿐이네. ]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신은,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 이만 가시게나. ]

“…….”

그러나 에르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힌트일지도 모르니까.

‘설마.’

이윽고 신의 생각에 닿은 에르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신은, 나를 다시 지구로 보낼 생각이 없는 거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신은 자신의 차로 가고 싶은 것이다.

카테이아 대륙이라는, 자신이 차 키를 가지고 있는 차로.

‘나를…… 카테이아 대륙으로 보내 놓고, 그 이후로 다시 다른 종족들도 카테이아 대륙으로 보내려는 계획.’

그가 힘을 아끼고 있던 것은, 카테이아 대륙의 재건을 위함이리라.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결국…….’

서은우를 드디어 지구에 정착시켰으니, 다시 자신을 포함한 카테이아 대륙의 이들을 불러들이겠다는 뜻.

신 또한, 더는 지구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족들은? 지구에서 새로이 생겨난 뱀파이어들과 지서후의 늑대 인간들은?

그들은 그렇게 지구에 버려지고 말 터다.

그리고, 이대로 다시는 토트윈으로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지도 못할 테고 팬들도 만나지 못하겠지.

까득, 이를 깨문 에르제가 신을 노려보았다.

“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생각대로 이룰 수는 없습니다.”

[ ……. ]

신은 고요히 에르제와 시선을 맞췄다.

[ 도달했는가. ]

또다시 의미심장한 말을 툭 내뱉은 신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불가능을 가능케 해보게나. ]

신은 하얀 손을 에르제의 머리 위로 얹었다.

[ 그것 또한 그대의 선택이니. ]

화아아악, 시야가 점멸하기 시작하면서 에르제의 전신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늘을 위해 아껴 두었던 힘을, 신은 모두 풀어냈다. 그를 구성하고 있던 입자가 빛 가루처럼 떨어져 내렸다.

[ 마지막 축복을 내리겠다. ]

그 말과 함께.

에르제는, 서은우의 육체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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