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254화
“그럼, 에르제는 어디에 있어?”
윤치우의 질문이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왠지 모르게 쿡 쑤시는 질문이었다.
왜.
서은우는 꾹 다물어졌던 입술을 떼었다.
“왜, 없는 놈을 찾아?”
“……아, 아니.”
윤치우는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바뀌었다고 하니까 놀라서. 놀라서 그런 거야.”
“…….”
서은우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윤치우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면서.
충분히 당황할 만하다. 에르제가 이들과 함께한 것이 딱 토트윈으로 활동했을 시기와 같으니까, 그동안 많이 친해졌겠지.
아무리 자신이 아니라 에르제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간의 정이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뱀파이어임을 밝혔을 때처럼, 지금도 혼란스럽겠지.’
서은우는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 할 말은, 이미 했다.
“그 얘기 하려고 남아 있던 거라서, 먼저 들어가 볼게.”
“……응.”
윤치우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표정을 보지 못한 서은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 * *
윤치우는, 거실에 혼자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에르제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윤치우는 순간 공포심을 느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심연, 그게 서은우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내가 했던 부탁 때문에.’
윤치우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기분이 이렇게 좋지 않은 걸까.
솔직히, 에르제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만 해도 자신은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팀을 책임져야 하는 리더이기에 묵묵히 견디고 있었을 뿐.
그의 머릿속에는 늘 서은우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 건지 걱정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에르제와 함께 토트윈으로서 지내다 보니 정이라도 들었던 걸까.
드디어 찾아 헤매던 서은우의 영혼이 돌아왔음에도, 에르제는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고야 말았다.
에르제에게 상처가 되었듯, 분명 서은우에게는 더욱 큰 실망감이 되었을 텐데도 말이다.
꾸욱, 말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리더로서의 자격은 하나도 없구나.
연장자라서 이 직책을 받아 하고 있을 뿐, 지금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이 늘 차분하고 이성적인 민주혁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무력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아.”
윤치우는 푹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그의 시선이 보름달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둘 다……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꼭 저렇게 따로따로, 하나씩만 나타나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은우의 영혼이 살아있었듯이…… 에르제의 영혼도 어디엔가 있는 거 아닐까.’
문득 든 생각에 윤치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는 에르제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를 치료해 준 에르제를 위해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라하임 매니저에게 말해 보자.’
그는 이미 라하임이 에르제의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챈 뒤였다. 그렇다면 그 또한 뱀파이어일 확률이 높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스마트폰을 꺼내던 윤치우는 잠시 발을 멈췄다.
‘……괜히 이 얘기를 했다가, 은우만 사라지는 건 아닌가?’
순식간에 불안감이 차올랐지만, 윤치우는 다시 발을 앞으로 떼어 놓았다.
분명 길은 있을 것이다.
둘 다, 모두의 영혼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길이.
‘이번에 에르제가 사라졌던 이틀간, 은우가 돌아온 건 분명 그것과 관련이 있겠지.’
에르제의 수하로 보이는 라하임이 그 기간 동안 굳이 그와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쉬이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이대로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윤치우는 곧바로 라하임에게 전화를 걸며 숙소를 나섰다.
* * *
윤치우는 숙소 앞까지 차를 끌고 온 라하임과 만났다.
늦은 시간 어디 가기는 애매해서, 차에서 이야기를 하자며 라하임이 직접 온 것이었다.
아직 자신을 찾은 이유를 모르는 라하임은, 매니저인 척 태연하게 물었다.
“이 시간에 스케줄도 없는데 매니저를 불러내면 야간 수당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피식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그의 말에도 윤치우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제야 무언가 심각함을 느낀 라하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
윤치우는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며 망설이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말했다.
“에르제 말이에요.”
“……서은우 님 예명 말씀이시죠?”
“아뇨.”
윤치우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거울로 그와 시선을 맞췄다.
“뱀파이어, 에르제요.”
“그……러니까, 그게 토트윈…….”
“토트윈 말고, 진짜 뱀파이어요. 서은우의 몸에 들어 있는 진짜 정체.”
윤치우의 말에 라하임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라하임 또한 에르제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윤치우가, 서은우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윤치우가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할 이유는 없다. 그는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에르제와 같은 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한다는 것은…… 아니, 아니다. 유도 심문일 수도 있다.
생각을 마친 라하임이 뒤늦게 반응했다.
“글쎄요,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라하임 매니저님이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어요.”
추측 단계였지만 윤치우는 일부러 힘을 주어 말했다. 확실하다는 듯. 지금 붙들 수 있는 동아줄은 라하임 하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겠죠. 그리고 저도 그걸 밝힐 생각은 없었어요.”
윤치우는 빠르게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라하임 매니저님도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서, 어쩌면 저 하나밖에 모르고 넘어갈지도 몰라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조금, 급박한 상황이에요.”
“…….”
윤치우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었는지, 라하임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무슨 얘기인지부터 들어봅시다.”
“……매니저님은.”
불안하게 떨리던 윤치우의 동공이 차차 잦아들었다.
“지금 서은우의 몸에 있는 게, 에르제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요?”
“……?”
그의 말에 라하임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조금 전에 은우가 직접 저한테 와서 말해 줬어요. 에르제는 더 이상 여기 없다고, 드디어 자기 몸을 찾았다고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저도 들은 얘기라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윤치우는 그와 대화를 나누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마 은우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진짜…… 다른 사람 같았어요.”
지금까지 지켜봐 온 윤치우는, 그리고 로드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윤치우는, 이런 허튼 이야기를 굳이 할 인간이 아니다.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자신을 불러내기까지 해서 말이다.
“X…….”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라하임을 보며 윤치우가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만요!”
운전석에서 거의 내리다시피 하던 라하임이 윤치우의 비명 섞인 다급함에 몸을 멈췄다.
“……제가 이 이야기를 매니저님에게 한 이유는, 하나예요.”
“중요한 말을 해 줬으니,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라하임에게서 나온 말은 진심인지라, 윤치우는 침을 꿀꺽 삼켜 넘기며 말했다.
“둘 다 살려 주세요.”
“……에르제 님과 서은우, 둘 다?”
“네.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발.”
“…….”
거의 90도로 허리를 접은 윤치우를 보며 라하임이 얼굴을 굳혔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야 했다. 윤치우가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자신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서은우의 영혼은 완전히 소멸이 될 겁니다. 설령.”
라하임이 눈썹을 위로 끌어올렸다.
“로드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째서…….”
“그는, 더 이상 윤치우 님이 알고 있는 서은우가 아닙니다.”
대악마니 미친 황제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까지 윤치우에게 할 수는 없었으나 그 말만은 진실이다. 서은우는, 예전의 서은우가 아니다.
“본인도 그걸 느꼈기 때문에, 굳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거 아닙니까?”
윤치우는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그와 눈을 마주했을 때 보였던 깊은 심연, 늘 순진한 얼굴로 맹하니 웃기만 하던 녀석은 그곳에 없었다. 고작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그와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은 두렵기만 했으니까.
- 없는 놈을 왜 찾아?
싸늘하게 식어 버린 표정으로 묻던 서은우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던 살인마의 표정과 비슷했다.
그러나 입술을 아래로 누르던 윤치우는,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설령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서은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또다시 누군가를 찾는 상실감을 겪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둘 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어요?”
“…….”
라하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차피 이대로 숙소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그를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번에 기습했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서은우는 완벽하게 에르제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동안 그와 대화를 나누며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니…… 아마 로드의 힘까지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에이리스까지 죽였으니 비로소 하나가 된 로드의 힘은, 자신과 일족들의 수준에서는 제압하기가 불가능할 터.
일단은 윤치우를 안심시켜 두는 편이 나을 테니, 라하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당분간 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
윤치우가 화색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진짜로.”
두 사람 모두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간절함에 거짓으로 응해야 하는 라하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 * *
같은 시각,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인물이 있었다.
마치 영화를 영사하듯 흘러가는 장면, 두 개의 눈동자는 슬픈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 어떻게 할 텐가? ]
그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 나는 이렇게 되리라 예측을 했고, 때문에 한참이나 힘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을 해야 했지. ]
남자는 하얀색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의 방법일세. ]
“…….”
화면을 바라보던 이는, 다리를 모았다. 어떠한 형태도 갖추지 못한 하얀색의 영체가, 잠깐 흐릿해졌다가 돌아왔다.
[ 잊히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고 말 거야. ]
턱수염을 쓸던 남자는 영체의 옆에 나란히 앉아 윤치우의 시점을 같이 관찰했다.
[ 선택을 해야 하네. 잊히든가, 본래의 세상으로 가서 기회를 잡든가. 그리고 그 기회는, 내가 제공해 줄 수 있지. ]
그의 말에, 영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