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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3화 (253/307)

제253화

253화

서은우는 라하임의 안내를 받아, 에이리스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말이 감옥이지 창살만 달려 있을 뿐, 내부는 꽤나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2장로가 갇혀 있던 곳이 여기인가.’

서은우는 내부를 슥 둘러보며 발을 옮겼다.

어느덧 그의 걸음걸이나 행동은 에르제를 퍽 닮아 있었다.

“로드, 여기입니다.”

라하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가장 깊숙한 위치의 감옥이었다.

“둘만 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예, 알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라하임은 걱정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어둠 속으로 라하임이 사라졌을 때, 서은우는 에이리스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꾸그극, 창살을 우그러뜨리고 안으로 들어간 서은우는 그녀의 앞에 털썩 앉았다.

“…….”

에이리스는 인간과 다름없어진 신체 상태, 눈앞에 있는 인물이 뭘 하든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오아시스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순간 치솟은 연민을 내리누르며, 서은우는 그녀 앞에 놓인 밥상을 바라보았다.

꽤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은, 숟가락 하나 대지 않은 듯이 깨끗했다.

“입맛이 없나 보군.”

서은우는 손으로 밥상을 옆으로 밀어 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에이리스의 텅 빈 동공이 서은우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서은우라는 사실을 모른다.

아마 에르제가 어렸을 적의 이야기나 하러 왔다 생각하는 모양.

“그래, 모든 힘을 잃어 본 느낌은 어떤가?”

“……조롱하러 온 거면, 꺼져. 아니면 죽여 주던가.”

이미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듯한 모습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영혼 전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

에이리스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염원과 야망이 부서진 기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널 살려 둘 생각은 없지만.’

같은 편이었으나, 서은우에게 있어 에이리스는 체스 위의 말이었을 뿐.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득이 크진 않다.

그렇다면 변수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 맞는 법.

“죽여 줄 테니까, 그건 안심하고.”

“……!”

에르제의 입에서 쉬이 나올 수 없는 말에 에이리스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초점이 흐려진 눈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든 건지, 그녀의 상체가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

서은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정말로.”

에이리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녀의 손이 가까이 다가왔기에, 서은우는 미간을 좁히며 그 손을 쳐냈다.

탁, 힘없이 에이리스의 손바닥이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에이리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그게 궁금한가?”

서은우는 픽 웃으며 완전히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혼 전이, 라는 걸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렇다면 묻지.”

서은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평범한 인간의 영체가, 어떻게 카테이아 대륙에서 대악마의 위치까지 올라갔을까? 어떻게 대악마가 강림의 제한 시간을 무시하고, 인간의 몸에 들어가 버틸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지. 모를 거야. 네가 겪은 일들을 내가 모르듯, 너도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서은우는 자조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던 그날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감내하고 버텨야 했던 고통과 분노의 크기는, 누구라 해도 감히 재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에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항상 그래 왔다.

그가 영혼 전이를 한 대상은, 늘 쥐 죽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단 한 번도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영혼이 말을 걸어온 적도 없었고, 신체를 다시 탈취당하는 경험 또한 없었다.

늘, 서은우는 전이를 한 대상으로 완벽하게 변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옮겨 갈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될 상황조차 없을 테고.

이제야, 그가 원했던 대로 원래의 몸에 돌아왔으니까.

“…….”

에이리스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대악마께서는 이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세상을 발아래에 두실 겁니까?”

“글쎄.”

서은우는 잠시 고민했다.

인간이었을 때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멤버들과 함께 즐겁게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음유 시인이라던 뱀파이어의 능력을 빌려 오고자 한 것이었고, 차에 치이는 두려움도 이겨 내고 행했다.

하지만, 글쎄. 이제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몇천 년의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 정작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막다른 길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다른 종족들을 죽이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세상을 발아래에 두겠다는 것도…… 지구에서는 상당히 목표가 퇴색되는군.”

“그렇습니까.”

에이리스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그녀는 자신이 죽더라도, 꿈은 이루고 싶은 모양이다.

‘꿈이라.’

서은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예전 꿈을 따라 살아가 봐야겠지.”

저번에 계약을 통해 만났지만, 멤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에르제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것들이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또 살아지겠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서은우는 이제 대화는 충분하다는 듯, 오기 전부터 두르고 있었던 로드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일단은, 반으로 쪼개진 것부터 하나로 합쳐야겠군.”

“…….”

에이리스는 대답 없이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수긍했다.

자신은 성공했으며 또 실패했다, 그런 감정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성공은 ‘서은우’ 혼자 독차지하겠구나.

대악마를 믿어서는 안 되었던 걸까.

복잡한 상념을 밀어 넣으며, 에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제 오라버니는, 그리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

“조심하십시오.”

싱긋 웃는 에이리스의 심장을, 서은우가 망설임 없이 꿰뚫었다.

그렇게 로드의 힘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 * *

거한 식사와 함께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서은우는, 라하임의 차에 올라탔다.

“로드의 힘이 하나가 되었군요.”

그가 서은우라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는 라하임은,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지치네.”

다양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말에, 라하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낯 위로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에이리스 님은,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래.”

적이지만, 또한 로드의 여동생이었다.

라하임의 말속에는 그러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서은우는 무심히 대답하며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오랜만에 겪는 영혼 전이의 탓인지, 잔존하고 있는 에르제의 기억 속 심정 탓인지, 여러모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제 손에 묻은 에이리스의 피가, 아직도 말라붙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아가자.”

서은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라하임이 운전하는 차는 숙소로 하염없이 달렸다.

* * *

말도 없이 사라졌던 기간 동안, 소속사와 숙소는 생각보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었다.

실종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첫날, 라하임의 연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위급하여, 급히 다녀온다는 말을 남겨 두었고, 제가 같이 갔다 온다 했으니…… 별다른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잘했네.”

“다만 저번에도 같은 변명을 했던 지라, 의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을 테니 로드께서 잘 넘기셔야 합니다.”

“아니지.”

서은우는 고개를 저으며, 숙소 문 앞에 섰다.

“병은, 여러 번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아, 그렇군요.”

저번에도 위급했다면, 이번에 또 위급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오히려 더욱 심각하게 보일 뿐.

“잘 대처했어.”

서은우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준 다음,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부터 자신이 왔음을 직감했는지, 멤버들은 거실이나 현관까지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야!!!”

“그, 친척분은 괜찮으셔?!”

“혀엉!”

환영 세례를 받으며 서은우는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감정인 건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서은우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미어캣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인사했다.

“진짜, 돌아왔어.”

무슨 말이지? 하는 눈빛들이 있었지만, 서은우는 만족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뒤라 후련해진 덕분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완치되신 것 같아.”

“그렇구나…….”

그에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는 윤치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찰나의 순간, 그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한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나를 찾던 사람.’

아마도 에르제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고 있기에 그랬을 수도 있으나, 그 때문에 서은우는 윤치우에게 특별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며칠간 서은우가 없었던 때의 회포를 풀던 그들은, 하나둘씩 각자의 할 일을 하러 흩어졌고.

거실에는 서은우와 윤치우, 그리고 민주혁만이 남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말없이 나가지 좀 마.”

잠시 침묵하던 민주혁이 툭, 그렇게 말을 내뱉고 방으로 사라졌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마. 걱정되니까.”

윤치우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라하임 매니저님이 말 안 해 주셨으면, 진짜 이미지고 뭐고 실종 신고부터 했을 거라고.”

“미안해.”

서은우는 멋쩍은 얼굴로 사과를 했다. 자신이 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걱정이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드디어, 원래 살던 세계의 품으로 돌아온 듯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서은우는 둘만 남은 거실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치우 형.”

“……?”

에르제는 그를 형이라 부른 적이 없었기에, 윤치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서은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에게 말했다.

“이제, 에르제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진짜 서은우라고.”

잊고 있던 감정이 살아나면서, 서은우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톡 하고 떨어졌다.

“다시…… 내 몸 찾았다고.”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윤치우를 보며, 서은우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러나 당연히 돌아와야 할 환대는 없었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띠던 윤치우는,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그럼…… 에르제는,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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